방랑시인 김삿갓(66)
2부(16)
벽제관(碧蹄館)에서
옛일을 회상(回想)하며 만난
선풍도인(仙風道人) (上)
북쪽으로 북쪽으로만 길을 가던 김삿갓은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길을 가던 초립동이를 보고 물었다.
"날이 저물어 어디선가 자고 가야 하겠는데,
이 가까이에 절이나 서당 같은 것이 없느냐?"
"절이나 서당은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벽제관(碧蹄館)에 주막(酒幕)이 있어요.“
김삿갓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래? 그러면 여기가 바로 벽제관이란 말이냐?“
이곳이 벽제관(碧蹄館)이라는 소리에
김삿갓은 불현듯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當時)의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임금 선조(宣祖)는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이 진격(進擊)해 오는 왜군(倭軍)을 피해
의주(義州)까지 피난(避難) 갈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압록강(鴨綠江)을 건너면 명나라 땅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난관에 빠졌다.
이때는 이미,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이
명나라로 구원군(救援軍)을 요청(要請)하는 사신(使臣)으로 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명 조정(明 朝廷)의 분위기
(雰圍氣)를 알아챈 한음은 난감(難堪)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 황제(明 皇帝)가 선뜻 원군(援軍)을 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皇帝 陛下), 정녕 우리 조선(朝鮮)을 구원(救援)해 주실 수
없단 말씀입니까?"
한음(漢陰)은 담판(談判)을 시작
(始作)했다.
"그렇소. 조선에 원군(援軍)을
보낼 수 없소.“
명나라 황제는 손조차 내 저으며
거절을 했다.
"우리 조선(朝鮮)과 명나라는
오랜 형제지국(兄弟之國)입니다.
형제(兄弟)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모른 척하시다니요."
"조선국(朝鮮國) 사신(使臣)은
더는 나를 설득(說得)하려 하지 마시오."
황제(皇帝)가 냉정(冷情)하게 잘라서
말을 했다.
"음!" 그러자 한음(漢陰)은
마지막 수단(手段)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朝鮮)은 스스로
살아남을 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사옵니다."
"잘 생각했소. 스스로 싸워 이기는 것이
가장 현명(賢明)한 길이오."
황제(皇帝)는 빙그레 웃기까지 하였다.
"폐하(陛下), 그 길이 어떤 길인 줄 아십니까?"
협박(脅迫)하는 어조(語調)로 한음
(漢陰)이 말했다.
"내가 알 리 있겠소? 그래, 어떤 방법(方法)이오?"
명나라 황제(皇帝)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말씀드리기 황송(惶悚)하오나, 우리 조선(朝鮮)이 목숨을 보전(保全)하는
길은 왜적(倭敵) 앞에 나아가 항복(降伏)하는 길뿐이옵니다."
한음(漢陰)은 황제(皇帝)를 은근히 협박했다.
"으흠, 그런 방법(方法)도 있겠구려."
황제(皇帝)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였다.
"우리 조선이 왜군에게 항복(降伏)하게 되면 그들의 길잡이가 될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야, 뻔한 일이 아니겠소?"
"그리고 왜군(倭軍)은 우리를 길잡이 삼아,
이 명나라로 진군(進軍)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폐하!"
보탬 :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명나라는 이미 왜(倭)의 침공(侵攻)을 받아 국토(國土)의 한 부분이 유린(蹂躪)당하고 백성(百姓)들은 물론 적잖은 군사(軍士)들이 상한 일이 있었다.
물론 초기(初期)의 승승장구(乘勝長驅) 하던 기세(氣勢)와는 달리 시간(時間)이 흐르면서 보급로(補給路)와 기세(氣勢)가 꺾이면서 왜군(倭軍)들도 많은 희생자 (犧牲者)를 남기고 철군(撤軍)했지만.
이번의 임진왜란(壬辰倭亂)도 경로(徑路) 를 바꿔 조선(朝鮮)을 먼저 무너뜨린 뒤
조선반도(朝鮮半島)를 보급기지
(補給基地)로 삼아 명나라로 침공(侵攻)하려는 뜻임을 명나라도 결코
외면(外面)할 수 없는 일임을 계산(計算)한
이덕형(李德馨)이 내던진 초강수였다.
"뭣이라고?“
명나라 황제(皇帝)는 순간(瞬間) 얼굴이 굳어지며 호통을 쳤다.
"조선이 길잡이가 되어 우리 명나라를 치겠다고?
감히 누구를 겁박(劫迫)하려 하느냐!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그러나 한음(漢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침착한 모습으로
황제를 설득했다.
"폐하!(陛下) 소신(小臣)을 처단(處斷) 한다고 해서 문제(問題)가 해결(解決)
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소신(小臣)이 이곳에서 기한(期限) 내에 돌아가지 않으면 소신(小臣)의 임금께서는 부득불(不得不)왜군 앞에 나아가 항복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아니 저놈이 아직도 내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고 있구나!"
"폐하, 고정하시고 소신의 말을
더 들어 주소서.“
"소신(小臣)의 임금이 왜군에게 항복(降伏)하면 오래도록 형제국
(兄弟國)으로 지낸 두 나라는
의리(義理)를 저버리게 됩니다.
폐하!(陛下)
이 같은 크나큰 수치(羞恥)를 역사
(歷史)에 남기지 마소서."
"무엇이라!"
명나라 황제(皇帝)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폐하!(陛下) 바라옵기에 그런 불행(不幸)이 없도록 통촉(洞燭)해 주시옵소서!"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은 이같이 고하고 명(明) 황제(皇帝)의 처분(處分)을 기다렸다.
그러자 배석(陪席)해 있던
명나라 신하(臣下)가 말하기를
"폐하, 조선국 사신의 목숨을 내건 충절(忠節)이 갸륵하옵니다.
그의 말 대로 조선(朝鮮)의 군사를
길잡이로 왜군이 쳐들어온다면 우리 명나라도 시끄러울 것입니다.
하오니 통촉(洞燭)하시어
조선국(朝鮮國)에 원군(援軍)을 보냄이
타당(妥當)하다 사료(思料)가 되옵니다."
하였다.
그러자, 함께 있던 다른 신하(臣下)들도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아뢰는데,
"원군(援軍)을 보냄이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보탬 :
이때 선조(宣祖)는 사신(使臣)으로 간 이덕형(李德馨)으로부터의 명군(明軍)의 파병(派兵) 소식(消息)을 초조(焦燥)하게 기다리면서 한시바삐 압록강(鴨綠江)을 넘자고 신하(臣下)들을 채근하면서
"나는 명나라에 귀부(歸附)하겠다.“
"조선(朝鮮)의 왕으로 살기보다 명(明) 황제(皇帝)의 제후(諸侯)로 살기를 소망(所望)하고 있다" 는
임금답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얼뜨기였다.
조선(朝鮮) 사신(使臣) 이덕형(李德馨)의 목숨을 건 명(明) 황제(皇帝)와의 담판(談判)(?)은 풍전등화(風前燈火) 조선(朝鮮)에 실낱같은 희망(希望)이 보이게 되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다.
이렇게 하여 이여송(李如松) 장군(將軍)이 이끄는 5만의 군사(軍士)는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와
평양성(平壤城)과 개성(開城)을 차례로 탈환(奪還)했는데, 벽제관(碧蹄館) 에서만은 왜군(倭軍)에게 크게 참패(慘敗)하였다.
승승장구(乘勝長驅)하던 이여송
(李如松)은 벽제관(碧蹄館)에서
왜군(倭軍)에게 한번 혼이나자,
멀찍이 송도(松都)까지 퇴각(退却)하여
다시는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국(戰局)은 조명연합군
(朝明聯合軍)에게 매우 불리(不利)하게 돌아갔다.
왜군(倭軍)을 압박(壓迫)하여 무찔러야
할 판인데,이여송(李如松)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싸우려고 하지 않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때 이여송(李如松)의 접대관(接待官)은
지혜(智慧)롭기로 유명(有名)한, 명나라에서 돌아온 한음(漢陰) 이덕형
(李德馨)이었다.
이덕형(李德馨)은 이여송(李如松)에게
속히 싸워 주기를 여러 차례 간청(懇請)하였다.
그러나 이여송(李如松)은 갖은 핑계를 대며
좀처럼 왜군(倭軍)과 싸우려 하지 않았고
보탬 :
한 수 더 떠서 이덕형(李德馨)을 따라
이여송(李如松)의 진영(陣營)으로 함께
왜군(倭軍)과의 전투(戰鬪)에 나설 것을
간청(懇請)하던 수행관리(隨行官吏)를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징비록(懲毖錄)]
이여송(李如松)은 누구인가?
그는 원래(元來)조선(朝鮮)과 여진
(女眞)의 접경지역(接境地域)에
살던 조선인(朝鮮人)의 후손(後孫)으로 그의 윗대 어른들이 명나라에 귀화(歸化)하여 명군(明軍)의
장수(將帥)가 되었고 그런 점(點)이 감안(勘案)이 되어서 왜군(倭軍)을 진압(鎭壓)하는 명군(明軍)의
수장(首將)으로 왔다는 설이 있다.
이덕형(李德馨)은 간청(懇請)을 하다 하다
이여송(李如松)이 끝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나중에는 화가 치밀어 결례(缺禮)임을 알면서도 이여송(李如松)의 방에 있는 적벽도(赤壁圖)병풍(屛風)에 아래와 같은 시 한 수를 써 갈겼다.
승부란 한판의 바둑과도 같은 것
전쟁은 꾸물거림을 가장 꺼리오
알 쾌라 적벽 싸움 전에 없던 공적은
손 장군이 책상을 찍던 그때부터요.
그 옛날 중국 삼국시대에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위왕(魏王) 조조(曹操)에게 크게 패(敗)한 뒤 부하 장졸(將卒)의 사기(士氣)가 땅에 떨어져 모두가 조조(曹操)에게 항복(降伏)할 것을
권고(勸告)했다.
그러나 모사(謀士) 주유(周瑜)와 노숙(魯肅)만은 끝까지 싸울 것을 고집(固執)하였다.
이에 손권(孫權)은 분연(奮然)히
자리에서 일어나 칼로 책상(冊床)을 찍으며
최후(最後)의 선언(宣言)을 했다.
"우리는 옥쇄(玉碎)할 것을
각오(覺悟)로 끝까지 싸우자."
그리하여 결전(決戰)의 방침(方針)이 정해졌고 군신(君臣)이 한마음 한뜻으로 조조(曹操) 군에 맞서게 되는데 이게 적벽대전(赤壁大戰)이다.
손권(孫權)은 그 有名한 적벽대전에서 조조에게 커다란 패배(敗北)를 안겨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적벽도(赤壁도)가 그려진 병풍
(屛風)에 한음(漢陰)이 휘갈겨 쓴 시(詩)의 뜻을 이여송(李如松)이 모를리가 없었다.
이여송(李如松)은 이덕형(李德馨)의 시(詩)를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왜군(倭軍)을 상대(相對)로 진격(進擊)을 하게 되었고,
전황(戰況)은 조명연합군의 우위(優位)로
왜군(倭軍)을 점점 쇠퇴(衰頹)시켜 결국(結局)은 퇴각(退却)시키기에 이르게 되었다.
보탬 : 물론 거기에는 이덕형(李德馨)의
지혜(智慧)도 컸지만, 병조판서(兵曹判書) 였던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후 좌의정(後 左議政)]의 지혜(智慧)가
더욱 빛난다.
서애 유성룡은 논리(論理)와 인품(人品)과
언변(言辯)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성격(性格)을 "조왜전쟁(朝倭戰爭)"이 아니라 "명왜전쟁(明倭戰爭)"이며. 조선(朝鮮)은 왜군(倭軍)의 명나라 정벌(征伐)을 위한 전초전(前哨戰)으로
병참기지(兵站基地) 확보(確保) 전쟁(戰爭)의 희생자(犧牲者)일 뿐임을 명군 지휘부(指揮部)에
명확(明確)히 인식(認識)시켰다.
세부적(細部的)인 내력(來歷)이야 어찌 됐건,김삿갓은 한음(漢陰)의 이 훌륭한 시(詩) 한 편이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도탄(塗炭)에 빠진 나라와 백성(百姓)을 살리는 계기(契機)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벽제관(碧蹄館)으로 와서
어느 주막(酒幕)에 숙소(宿所)를 잡았다.
그 주막(酒幕)에는 70을 넘었다는 노인(老人)이 한 분 있었다.
하얀 구레나룻 수염(鬚髥)이
배꼽에 닿을 만큼 탐스러워, 얼른 보기에도
선풍도인(仙風道人)의 노인(老人)이었다.
김삿갓은 저녁을 먹고
그 노인(老人)과 한담(閑談)을 나누고 있었다.
마침 그때 젊은이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노인(老人)에게 인사(人事)를 올리며,
"저는 지금(只今) 한양(漢陽)에 다녀오는
길이옵니다. 한양(漢陽)에는 오늘 아침에
괴상(怪狀)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한양(漢陽)에 괴상(怪狀)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그러나 노인(老人)은 놀라는 기색(氣色)이 전혀없이 태연(泰然)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양(漢陽)이 워낙 복잡(複雜)한 곳이라
괴상(怪狀)한 일이 생길 만도 하지.“
노인(老人)은 괴상(怪狀)한 일이라는 게 어떤 일인지도 묻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삿갓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자기가 앞질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한양에 어떤 괴상한 일이 생겼다는 말이오?“
젊은이는 김삿갓에게 대답(對答)하는데,
"한양(漢陽)의 진산(鎭山)인 남산(南山)이
오늘 아침에 무너져 버렸다오."
"뭐요? 남산(南山)이 무너지다뇨.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김삿갓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주인(主人) 노인(老人)은 놀라기는커녕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거야. 남산(南山)은 수 천 년이나 오래된 산이니까.
무너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노인장(老人丈)! 남산(南山)이 무너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아무리 오래되었기로
산이 무너지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노인(老人)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허기는 자네 말도 옳아.
산은 머리가 뾰족하고 밑은 넓적한 데다가, 바위와 바위들이 서로 얽혀있어서,
좀처럼 무너지는 일이 없을 것이야.“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노인장(老人丈)께서는 이 말도 옳다,
저 말도 옳다.
도무지 줏대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도대체 그런 애매 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허! 허! 허! 자네 말도 역시 옳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