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 이현구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는 해가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며 전 세계적으로 안 미치는 지역이 없다.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그 피해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 나고 있다. 최근에도 파키스탄에서 폭우와 대홍수로, 인도에서는 폭우를 동반한 사이클론과 폭염으로 큰 재난을 당하고 있으며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대규모 산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여름에 물 폭탄과 찜통형 폭염이 예상된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CO2와 소량의 CH4 등의 온실가스가 지구에서 반사되는 태양광을 대기권에 가두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므로 야기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온실가스의 배출을 감축하거나 궁극적으로는 “0”(net zero)으로 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2016년에 발효된 파리협정은 193개의 UN 기후변화 협약당사국이 서명한 협정인데,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2℃ 아래로 억제하고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하여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 년 대비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파리협정은 2020 년부터 5년마다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제출을 요구하는데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며 2050년에는 순 배출량 “0”에 도달하는 목표를 세워 2021년에 제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이후 온실가스배출량이 계속 늘어 2018년에는 7.27억 톤에 달하여 총량으로 세계 7위를 기록하였다, 2030년까지 40%를 감축하려면 순 배출량을 4.36톤까지 줄여야 한다. 영역별 온실가스 배출은 발전(37%), 산업(36%), 건물(7%), 수송(14%) 등으로 비중이 높다. 즉 에너지를 전환하거나 사용하는 분야에서 대부분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이때 이용되는 연료의 상당 부분이 석탄, 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이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탄소를 함유하지 않는 대체 청정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에도 원자력발전,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 환경 친화적인 신재생에너지의 역할이 아주 크지만, 전체 에너지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래 청정에너지 원으로 핵융합발전을 고려할 수 있지만, 현재 프랑스에 실증로를 건설 중이며 우리나라도 첨단 수준의 기술력 보유 국가로서 참여하고 있는데, 실용화는 2050년 이후로 전망된다.
이에 비하면 수소에너지는 아직 연구·개발해 나가야 할 여지가 많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미 실용화 단계로 들어섰다. 독일, 호주, 미국, EU, 영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수소의 생산에서부터 저장, 운송, 활용에 이르기까지 수소 생태계를 조성하고 관련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하여 큰 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2020년에 수소 경제의 콘트롤타워로서 “수소경제위원회”를 출범하여 기본계획과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예산을 확보하고 대기업들과 협력하여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현재 수소는 생산방법에 따라 분류되는데, 첫째 태양광, 풍력 등으로 생산되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 하여 얻는 그린(green) 수소와 천연가스를 개질 하여 얻는 그레이(grey) 수소, 그리고 그레이 수소 생산 단계에서 CO2를 분리·포집하여 활용하거나 저장하면서 얻게 되는 불루(blue) 수소가 있다. 가격은 그린 수소가 $10/kg으로 가장 비싸며 불루 수소는 $5/kg 정도이지만 아직 고가여서 난관이 되고 있다. 이외에 정유· 석유화학산업에서 발생하는 부생 수소(그레이 수소)가 있으며 가격은 낮은 편이나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일부 그린 수소도 활용되고 있지만, 대부분 부생 수소를 포함하여 그레이 또는 불루 수소가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에 천연수소(Natural or Geologic Hydrogen)가 대량 존재할 수 있으며 미국, 호주, EU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적인 보도가 나왔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수소 에너지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에서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현대차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에 성공하는 등 세계적으로 수소전기차 분야를 선도하고 있으며 수소 승용차와 수소버스, 수소트럭은 시판 중이다. 전통 주력 산업인 수소자동차를 넘어서 선박, 기차, 도심항공교통 (UAM) 등 전 수송영역에서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핵심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수소충전소 설치 등 인프라 구축에도 투자하고 있으나 70%를 정부 지원에 의지하며 수소버스와 수소승용차 판매도 상당한 수준의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어 아직은 재정상의 한계를 안고 있다.
SK그룹에서는 올해 5월 인천에 3만 톤 규모의 액화 수소공장을 준공했는데, 인천 석유화학 공장에서 발생하는 부생 수소를 –253℃로 냉각해 액화수소를 만든다. 액화수소는 운송비가 70% 정도 절감되어 수소 가격 면에서 유리하며 주로 수소버스용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한편 SK E&S에서는 충남 보령 지역에서 천연가스를 개질하여 수소를 생산하는데, 이때 CCS(CO2 포집 및 저장 기술)를 적용해 CO2를 제거한 블루 수소를 연간 25만 톤 생산하고자 설계를 끝냈으며 2026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이 중 5만 톤은 연료 전지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데 사용하고 20만 톤은 액화하여 수소충전소에 공급할 예정이다. 포집되는 CO2는 210만 톤에 달하여 친환경적이며 액화한 후 호주 북해상의 폐가스전에 저장하게 된다.
효성중공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 공장건립, 수소충전소 건립 및 운영 부문에 계획을 세워 투자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울산에 수소만을 연료로 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1MW 규모의 수소엔진 발전기를 세워 가동을 시작하였다. 100% 수소발전기의 상용화는 세계 최초이며 석탄발전 대비 7천 톤의 CO2 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와 협력하여 블루 수소와 블루 암모니아((NH3)를 국내에 들여와 저장·공급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탄소중립 연료인 e-Fuel에 관한 연구와 기술개발도 아람코와 함께 추진한다. e-Fuel은 독일에서 개발되었는데, 수소와 CO2를 결합하여 얻는 연료로서 내연 기관의 휘발유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중부발전에서는 충남 보령에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기지를 구축할 계획인데, 2.5MW급 설비로 하루에 1,000kg의 청정수소를 생산한다. 미분탄보일러에 대한 수소 혼소 기술도 개발 중이며 수소를 20% 혼합해 연소하면 1,350만 톤의 CO2 배출 감축 효과가 기대된다.
포스코는 철광석의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에 관심을 두고 국내외에서 그린 수소 사업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호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그린 수소를 그린 암모니아로 전환하고 –33.5℃에서 액화하여 수송하는 인프라도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 해운사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그린 암모니아를 해상운송하며, 또한 직접 선박 연료로 주입하는 기술개발에 나선 상태이다.
이 외에도 한화, 두산, HD현대오일뱅크, 한국가스 공사 등 여러 기업이 다양하게 수소 산업에 참여하고자 계획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이다. 실제로 천연가스 발전소에서는 이미 수소를 20%~50%의 범위에서 천연가스와 혼소하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며, 도시가스에 20% 정도 수소를 혼소하는 과제도 연구되고 있다. 최근 일본 도요타에서 연료만 수소로 대체하고 기존의 내연기관을 그대로 활용하는 자동차를 개발해 공개하기도 하였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가볍고 가장 많이 존재(우주 질량의 75%)하는 원소인데, 대부분 물(H2O)의 구성 요소로 존재한다. 수소는 액체나 고압 기체로 저장이 가능하고 운송이 쉽다는 이점도 있다. 수소는 연소하거나 발전에 사용하면 물(H2O)만 생성되는 미래 청정 연료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에서 수소에너지 관련 기술개발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수소 산업의 생태계를 위한 인프라도 잘 구축되고 있다. 수소에너지 관련 기술의 성숙도는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이며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정부에서도 당면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서 수소를 국가 에너지로 선정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며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하고 있다. 다만, 높은 수소 가격 때문에 경제성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물의 전기분해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비용을 낮출 수 있어야 하겠다.
또한, 최근에 지하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천연수소(금 또는 백색 수소)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노력도 요망된다. 정부는 정책과 예산지원으로 앞에서 이끌고 기업계에서는 수소경제의 차원에서 수소 에너지산업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기술 수준을 높여 당면한 기후변화 위기의 극복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소개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미네소타 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
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이사장
전 대통령과학기특별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