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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가을비_친구들 * 2019.11.17./ 청천산악회 * 17기 참가자 ; 이재익, 김기식. 이준희, 배종복 1. 청량사 올라는 곳. * 첫째는 가파른 도로로 올라가는 곳있고, * 둘째는 도로 가운데 입암이 있는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이 입암에서 출발하는 곳에 이 표지가 있다. * 청량산은 명산이니, 불사의 창건 또한 시기가 빠르고 비상하다. 청량사는 663년 신라 문무왕 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2. 청량산에서 만나는 두 분 위인은 신라 원효와 조선의 이황 선생이다. 원효는 청량사를 지었으며, 이황은 청량산을 무척 사랑하여 많은 시구를 남겼다. 다음은 청량사 안내판을 다시 옮겨 적어 본다. * 유리보전앞 안내판에 틀린 글자 두 곳 있어서 바로잡는다. 원효대사(617~686) 원효(元曉)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을 설씨, 법명은 원효, 법호는 화쟁(和諍), 초명은 서당(誓幢)이다. 신라 진평왕 39년(617년) 압량군 불지촌(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젊은 시절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수학하고자 요동까지 갔지만, 고구려군에게 첩자로 몰려 갇혀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 왔다.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 도중 하루 밤을 지내게 된 토굴에서 갈증이 나 토굴 속에서 고여 있는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묘지였고, 물을 마셨던 그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오(大悟 ; 번뇌에서 벗어나 진리를 크게 깨달음)한 원효대사는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신라로 돌아 온 원효대사는 미친 사람이나 거지 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 포교에 들어갔다. 이후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고 그 후 파계하였다. 파계한 후 속복(俗服)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면서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효대사가 교화한 사상으로는 인간의 원래 본성인 일심(一心)으로 돌아가자는 일심사상(一心思想), 모두가 실제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난다는 화쟁사상(和諍思想),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애사상(無碍思想)이 대표적이다. 말년에는 왕궁에서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강의하였고, 십문화쟁론을 찬술하였다. 분황사(芬皇寺)에서 화엄경(華嚴經), 사십회향품소(四十廻向品疎)를 지었다. 원효대사는 신라 신문왕 6년 70세의 나이로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였다. 입적후 아들 설총이 원효대사의 유해로 소상(塑像)을 조성하여 분황사에 봉인하였다. 원효대사의 대표적 이야기로는 무덤속 대오설화(해골물설화), 척판구중설화, 화엄신장 옹호 설화 등이 전해오고 있다.
3. 청량산 청량사 탑 곁에 있는 소나무가 <삼각우송(三角牛松)> 이며, 설화가 있었구나! 4. 주변에 김생이 공부한 김생굴도 있다. 이참에 가볼까? 날씨 안좋아 못가겠네. 5. 절터는 높고 가파르고 좁다. 이황은 특히 이 산을 사랑해서 거처했으며, 오산당은 퇴계가 머물며 공부했던 터전이다. 도산서원을 세울 때 현재의 안동 도산서원 터와 이곳 청량산 지역을 놓고 선택의 마음 갈등을 일으켰던 곳이었다. 결국 도산서원 후보지로 끝났다. 6. 우리들 마음 속에, 탐(貪, 탐욕), 진(嗔, 노여움), 치(癡, 어리석음), 불안, 번민, 애증, 망상 등~ 얘들아,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이라도 마음을 씻고 가야한다. 7. 이렇게 폼잡고 찍은 사진이 아래 사진이네. ↓ 8. 행복한 한 때. 9. 청량산 청량사, 와~ 멋지네, 깜짝 놀라는 저 표정. 10. 이내 단정해 진다. 11. 찍거나 말거나, 짠~ 한포즈, 조심이 제일이다. 12. 사진 찍을 때 자리를 잘 서야 돼, 내 키가 제일 크다. 마술이다. 13. 낙엽을 밟으며 입석으로 하산한다. 14. 비내리는 고즈넉한 청량사에서 15. 이때만 해도 비가 안왔는데~ 오늘은 일기탓에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16. 구도문제. 찍는 분이 조금 뒤로 와서 우측으로 시야를 돌려 탑이 안정감있게 조금 더 들어왔음 좋았겠다. 그점이 아쉽다. 17. 청량가 표현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시조 청량가] 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흰새, 황새나 백로) (산 좋은 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 백구야 헌사하랴(떠들어소문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는 물에 꽃잎 떨어져 강까지 가서 소문 낼 것이다) 도화야 떨어지지마라 어주자(어부) 알가 하노라. (어부가 알면 좋은 산 봄소식에 마음 동할 것이다) 18. 어느 곳인들 구름 낀 산이 없으랴마는 청량산이 더더욱 청절하다네 정자에서 매일 먼 곳을 바라보면 맑은 기운이 뼈까지 쓰며든다네. (이황) 19. 동쪽 하늘에 솟은 열두 봉우리 천지(天池)에 피어 오른 아름다운 연꽃과 같네 벼랑을 부여잡고 높은 꼭대기에 올라보니 수만 리 여러 산이 논 아래에 펼쳐지네. (김환) 20. 대한불교 조계종 청량산 청량사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소재 21. 자연석을 탑으로 잘 활용하였네. 22. 청량사(淸凉寺)는 연화봉 아래 있다. 23. 기왓장으로 물도랑을 만든 것이 독특하다. 24. 로마시대 전차라도 다님직한 튼튼한 돌포장길, 그 옆에 기왓장 또랑물길에. 또 그 옆으로 국화꽃 만발하고, 그 옆에 바위 절벽이 바짝 다가섰다. 기왓장은 지붕을 덮는다는 상식, 생각을 깨는 파격을 본다. 25. 안심당이라~ 절터는 높고 가파른데 따른 비보적 성격(부족한 것을 보완하는)의 명칭인것 같다. 26. 가장 먼저 안심당을 만난다. 저 뒷산의 큰 바위들에 위압감을 느끼지만, 안심해도 되겠다. 27. 서 있는 토우(흙으로 빚은 장난감 같은 것)가 왜 웃고 있는 것일까? 기왓장은 지붕을 덮는다는 상식을 깨는 파격과 함께 또 하나의 파격을 본다. 헌솥에 국화를 심었으라. 타임머쉰을 타고 100년 전으로 거슬러 가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준다면,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하겠다. 토우가 그런 생각에 잠겨서 스스로 웃고 있는 것이다.
27-1 청량사 주지 지현 스님 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필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 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28. 안심당,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는 곳. 그래서 저 웃고 서 있는 토우를 더 웃게 만들어야지. 29. 연못이 작은 웅덩이 수준. 30. 범종루, 주련 聞鐘聲煩惱斷 문종성번뇌단 ; 이 종소리 들으시고 번뇌 망상 끊으소서 智慧長菩提生 지혜장보리생 ; 지혜가 자라고 보리심을 발하소서 離地獄出三界 이지옥출삼계 ; 지옥고를 여의고 삼계를 뛰쳐나와 願成佛度衆生 원성불도중생 ; 원컨대 성불하시고 중생제도 하옵소서 * 보리菩提 ;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닫는 지혜 * 종을 치면서 이 게송을 염송(念誦)한다. 31. 더는 잎 피우고 꽃 피울 꿈을 가지지 못해도, 아직 남은 꿈은? 저 앞의 바위기둥 만큼이나 오래 버틸 힘이 나에게는 있다고 고사목 둥치가 생각하고 있을 것. 생각은 자유니까. 32. 바위와 나무, 누가 더 검소한가? 바위는 그저 의연하고 가난한 단벌신사. 나무들은 연중 가장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연중 수백벌의 여벌 옷을 필요로 한다. 그 많은 비용은 누가 대주나 아마도 태양이 보조해 주는 것같다. 33. 청량사내 이정표 34. 부처님을 향한 진리, 해탈의 염원으로 저 탑이 저토록 날렵하고, 경쾌하고 고준高峻하다. 35. 탑너머 건너쪽 가장 높은 산봉이 축융봉이다. 청량산 12봉중 하나로 꼽힌다. 36. 37. 38. 청량사의 큰 법당은 <유리보전>이다. 약사여래를 모셨고, <약사전> 이라고도 한다. 불상은 국내 유일의 紙佛인데, 금색칠을 한 것이다. <유리보전 주련> 願此鍾聲遍法界 원차종성편법계 ; 원컨데 이 종소리 모든 법계에 두루 퍼지소서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유암실개명 ; 철위지옥의 모든 어둠도 다 밝아지소서 三途離苦破刀山 삼도이고파도산 ; 삼도와 도산지옥의 고통에서 여의고 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성정각 ; 모든 중생을 바른 깨달음 얻게 하여 주소서. * 삼도 ; 지옥, 아귀, 축생 * 철위 ; 10지옥중 철로 둘러싸인 곳 * 도산 ; 10지옥중 칼 지옥 39. 유리보전은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라고 한다. 공민왕은 1361년 제2차 홍건적의 난 때 이곳으로 피신해 와서 지냈다. 건너편 산록에는 공민왕의 사당도 있다. 40. 탑 앞의 큰 소나무에 관한 전설. (삼각우송) 원효대사가 여기에 절을 지으려 할 적에 마을에 뿔이 3개 달린 소를 부리는데 소가 말을 잘 듣지 않고 길들여지지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원효가 절에 시주하라고 권했더니 농부가 그렇게 했다. 절에 온 소는 그때부터는 말을 잘 들었다. 원효는 이 소를 활용하여 절을 짓는데 이 소의 힘을 잘 활용했다. 그 소의 무덤에서 자란 이 소나무는 큰 가지가 셋이다. 그래서 <삼각우송> 이라고 부른다. 41. 동자승, 얘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벌써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자세일까? 재질은 도자기로 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구리로 만든 것일 게다. 42. 그런데 나무대좌가 좀 아니네. 다시 고쳐야겠구만. 43. 44. 비내리는 청량사 고즈넉한 모습. 비가 와서 응진전까지도 가보지 못했다. 응진전은 원효가 주로 수도한 곳이고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45. 제봉 김창식 시인 시조 오산당1 육육봉 하늘 자리 산꾼 집 열어두고 오가는 길손님들 차 한 잔 들고가세 탐진치(貪嗔癡) 허공에 날려 나를 벗어 듣는다. 46. 좌측은 청량정사(吾山堂)로 이황 선생이 청량산을 사랑한 뜻을 기려 1832년 순조 32년에 창건된 유교유적이다. 우측은 산꾼의 집. 비가 내리는 날이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오산당 유허> / 강세원(<<석당유문>> 중, 조선말기 고종때 사람) 당호가 오산이라 도학이 보존된 곳 선생께서 가신 뒤에 누가 있어 논할건가? 천길이라 솟은 대석 품격높은 암혈이요 이 고장의 맑은 강물 생명수의 근원이 되시었네. 지난날 유학의 액 차마 어찌 논할 손가? 끼친 자취 되찾으니 어느덧 석양일세. 이 산을 어찌하면 무이곡과 같이 하여 도가 합한 천년세월 온 세상에 받들건가? 47. 산꾼의 집 앞, 길가에 큰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어느해 풍우에 넘어져서 죽었다. 이 나무를 위령하는 글을 김성기 시인이 큰 독에다 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