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談] 혼자 설 수 없다면 둘이서도 설 수 없다 (방예나 산업·시장정책연구부 연구원 혼자 설 수 없다면 둘이서도 설 수 없다 )

[한국개발연구원]

방예나 산업·시장정책연구부 연구원

‘결혼을 앞두고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이것은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최근 수개월간 나의 가장 큰 질문이었다. 가치관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을 만들면서 생기는 어려움을 건강하게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넷플릭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통해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레이첼은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이야기는 그녀가 남자친구인 닉과 함께 지인의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에 가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둘은 결혼식에 갈 겸 싱가포르에 있는 닉의 가족들도 만나기로 한다. 레이첼은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닉이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부유한 남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 그렇듯 레이첼은 닉의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게 된다. 닉의 어머니는 좋은 학교에 다녔지만, 결혼을 하면서 자퇴를 결심하고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들에게 전해지는 전통 반지도 받지 못하고 오랜 세월 시집살이를 겪었다. 그래서 레이첼처럼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여교수는 며느리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그녀는 가족들 앞에서 레이첼의 가족사를 뒷조사한 내용을 폭로하며 레이첼은 혼외 자식이라 닉과 결혼시킬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가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른 것은 이후 레이첼의 선택에서 그녀의 주체성과 자존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레이첼은 자신도 이런 집안과 결혼할 수 없다며 나가 버린다. 닉은 상속자 자리도 포기하고 그녀를 따라 뉴욕으로 가기 위해 레이첼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닉의 어머니를 만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을 빼앗을 수는 없기에 기꺼이 떠나겠다고 말하고 돌아선다. 미국행 비행기 안, 레이첼 앞에 닉이 다시 나타나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어머니의 반지를 내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마침내 닉의 어머니는 현명한 레이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 역시 내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받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자기중심이 바로 서 있는 레이첼이 멋있게 느껴졌다. 혼자 설 수 없다면 둘이서도 설 수 없다는 말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해왔는데, 결혼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인 것 같다. 결혼은 새로운 시작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연애의 결실이기도 하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맞이하여, 단풍을 닮은 붉은 색 가득한 이 영화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