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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47장1~12절
제목 : 생명수 강
성전 부엌까지 모두 둘러본 에스겔은 하나님의 사자를 따라 성전 문에 이르러 성전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봅니다.
1. 성전에서 시작된 물(1~5절)
1) 성전 구역을 흐르는 물(1~2절)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이제 40장부터 전개된 성전의 측량과 새로운 율법의 지침이 일단락되면서 새로운 내용 곧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중심으로 성취될 이스라엘의 축복이 생명수의 환상을 통해 12절까지 제시됩니다.
실로 물과 기름짐, 축복 등은 구약에 있어서 서로 간에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 말인 바,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어 사해까지 흘러 들어가 황무하고 죽어있는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는 본문(1-12절)의 회화적 묘사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풍성한 축복을 상징합니다(시 46:4;65:9;사 33:20).
한편 이 부분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이심(계 22:1)과, 그러
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온 우주를 풍성하게 소생시킨다는 점을 보여줍니다(요 10: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으로 성도들의 죄악을 담당하셨으며 친히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언급하셨다는 점에서(요 4:10;7:38) 이 '생명수의 강'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하겠습니다.
성전 문 - 이는 성전 중앙에 위치한 성소의 문을 가리킵니다.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 생수가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갔던 바로 그 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 생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발원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편 '동쪽으로 흐르다가'는 하반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정확히 문지방 중앙에서 동쪽으로 흘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그 생수의 진행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전. - 여기서 '성전 오른쪽'(미케테프 하바이트 하예마니트)은 '그 집 가장자리의 오른 쪽'을 의미하는데, 생수가 성소 문지방의 오른쪽(남쪽) 끝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Delitzsch, Schroder, Hengstenberg).
곧 그 문지방 오른쪽은 제단 남쪽이 됩니다.
한편 '흘러내리더라'란 말은 성소가 안뜰보다 높이 위치해 있음을 암시합니다.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밖으로 흐르는 생수를 보기 위하여 바깥 북문을 통해 성전 밖으로 나와서 물이 흘러나오는 바깥 동문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바깥 동문이 닫혀 진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44:1, 2).
성전에서 발원된 생수는 성소 문지방을 지나 안뜰 동문과 바깥뜰을 지나 바깥 동문 밑으로 흘러나갔던 것입니다.
스며 나오더라(파카) - '쏟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이는 단순하게 물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차게 솟구쳐 나오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서 1절의 '흘러내리더라'와 비교해볼 때 그 물의 양이 성전 안에서 이미 상당하게 불어나 있음을 암시합니다(Delitzsch, Neumann, Gesenius).
2) 흘러 강이 되는 물(3~5절)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천사가 일천 척(약 500m)을 측량할 때마다 물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는 기적적인 사건이 네 번에 걸쳐 반복됩니다.
혹자는 6절에 언급된 '네가 이것을 보았으냐'란 말에 의거해 선지자의 직접적인 경험('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선지자가 직접 그 물을 건너간 것이 아니라 뚝을 따라서 4천 척이 되는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온(6절)것으로 봅니다(Delitzsch).
그러나 이는 6절의 구체적 내용과 '발목에 이르는 물'이라는 표현에 비추어 선지자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실로 보아야 합니다(Schroder).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 성소에서 발원한 물이 기적적으로 증가하여 이처럼 한길 이상 되는 생수의 강으로 창일하게 된 사실은 여기서의 생수가 구원과 축복의 상징이란 점에서(1절 주석 참조) 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생명을 공급하는 물(6~12절)
1) 강가의 수많은 나무(6~7절)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 여기서 '강가로'(알쉐파트 하나할)를 혹자는 '뚝을 따라'로 해석해 선지자가 뚝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는 의미로 이해하여 세 번째 측량 때까지 선지자가 직접 물을 건넌 사실을 배격합니다(Delitzsch).
그러나 이 말은 생수의 강의 가장자리 곧 '뚝 위로'란 뜻으로서 선지자가 그 물 속에서 세 번째 측량 때까지 따라 내려갔다가 그 물 속에서 네 번째 측량을 목격하고 다시 뚝 위로 올라온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잔연 스럽습니다(Schroder, Hengstenberg).
나무가 심히 많더라 - 여기서 '많더라'(리브)는 원어상 '(양이나 질에 있어서)풍성한'이란 뜻으로 단지 나무의 많음을 말 한다 기 보다는 나무와 함께 그 열매의 풍성함까지도 내포한 말입니다(Schroder).
따라서 본 구절은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으로서의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되살아나는 바닷물(8~10절)
(1) 동쪽으로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니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납니다(8절).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
선지자는 이제 그 물의 방향과 그 물로 이해 발생할 결과를 12절까지 언급합니다.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 여기서 '동쪽'(하그릴라 하카드모나)을 뜻하는 히브리어 중에 '하그릴라'는 '끊다', '구역을 나누다'란 뜻의 '갈랄'에서 파생된 말인 바, 그 물이 동쪽의 전 지역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동쪽의 제한된 지역 곧 사해 북쪽의 요단 강 유역으로 흘러갔음을 알게 합니다.
또한 '아라바'는 팔레스틴을 남북으로 가른 요단 유역의 저지대를 통칭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문맥상 사해와 연결되는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Schroder).
이 지역은 가늘고 긴 저지대이며 전지역의 2/3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 - 혹자의 견해대로 '지중해'를 가리킨다기보다는(Rosenmuller, Ewald) '사해'(死海)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이 사해는 성경에서 '염해'(창 14:3;민 34:3;신 3:17;수 3:16;12:3 등), '동해'(18절;욜 2:20;슥 14:8), '아라바 바다'(신 3:17;수 3:16;왕하 14:25),
'바다'(암 8:12;미 7:12) 등 다양하게 불리워졌습니다.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 본 구절은 사해 곧 죽은 물이 성전에서 발원한 생수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9, 10절), 살아있는 물로 고침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죽음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당신의 백성을 옮기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암시합니다.
(2)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번성하였습니다(9절)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 여기서 '강물'(나할림)은 원어상 복수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혹자는 이를 그 강의 지류들이란 뜻으로 해석합니다(Kliefoth).
그러나 이는 그 물의 창일함과 강한 흐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Hengstenberg, Delitzsch, Umbreit).
그러한 강의 강력함이 모든 죽음의 세력을 휩쓸어 버리고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바다가 강을 흡수하는 현상과는 달리 그 생수의 강은 죽음의 바다(사해)로 들어간 후 생명의 능력으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변환시킵니다.
(3)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입니다(10절)
“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 '설 것이니'(암두)는 '서다'라는 뜻 외에 '거주하다', '머무르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풍성한 고기들로 인해 어부들이 그곳에 영구히 정착하게 될 것을 예시합니다.
한편 혹자는 '에네글라임'을 요단 강이 합류하는 사해 서쪽 해변의 최북단으로 이해하여 이 '강가'를 사해 근방 내륙의 엔게디로부터 이 에네글라임까지 곧 요단 강이 사해로 유입되는 지점의 강가로 해석합니다(Jerome).
그러나 본절의 문맥상 주요 주제가 사해의 소성에 있다는 점에서 이는 그 지명의 모호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사해의 전지역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Hengstenberg, Ewald).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 고기가 번성하는 것 외에 많은 종류가 혼재되어 있으리라는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 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창 1:11, 21, 25)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이 창조 당시의 축복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Neumann, Havernick).
이는 또한 상징적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구원받게 될 성도의 보편적이고도 급격한 증가를 예시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기에 상반절의 '어부'는 곧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의 사역자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마 4:19, 20;눅 5:11, Hitzig).
2) 소금 땅으로 남는 진펄과 개펄(11절)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
기적적인 소성의 기사 속에서 예외적으로 소성치 못할 지역이 언급됩니다.
본절에 언급된 '진펄'(비차)은 '진흙 수렁'을, '개펄'(게베)은 '물웅덩이'를 각각 의미하는 바, 모두 사해 주변의 언덕에 위치한 진흙 웅덩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우기에 바닷물이 넘치면 그 넘친 물이 계속 이 웅덩이 속에 고여 있게 됩니다.
따라서 그 고인 물들은 곧 증발하게 되며 그 지역은 남아 있는 소금기로 두텁게 덮이게 됩니다(습 2:9).
본절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비유해 소성치 못하는 땅을 언급하고 있는 바, 상징적으로 생수의 강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구원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영멸 속에 버려지게 되는 죽음(악)의 세력을 가리킵니다(슥 14:17, Havernick).
3) 강가의 온갖 과일나무(12절)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계 22장에 언급된 생명수 샘과 그 주변의 생명나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조 당시 에덴의 풍성함의 주요 근원이 강과 나무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것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사역(창 13:10;사 12:3)은 새로운 창조 사역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 점진적으로 강조된 본 구절이 묘사한 상황은 그 생수가 결코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바, 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회복과 구원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 생수가 위에 언급된 영원한 생명과 풍요의 원천이 되는 이유를 재삼 강조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즉, 그 물이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며 번성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거처, 곧 성소에서 직접 발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Hitzig).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 9, 10절에 언급된 고기가 식용되 되듯 실과 역시 식용이 됩니다.
이러한 실과의 식용은 창조 당시의 에덴의 정황과 연관 지어 질 수 있습니다(창 2:9).
그 생수를 통해 열린 실과의 식용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기인한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수를 통해 자란 생명나무는 그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뿐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나누어 주게 됩니다.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약 재료'(리트루파)는 원어상 '고치다'란 뜻의 '라파'에서 파생된 말로서 병들고 썩은 것을 고치는 의학적인 효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약 재료가 병들고 썩어진 세속적인 이방 세계에 작용함으로써 그 세계가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 사역을 통해 치유받고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계 22:2).
묵상 Point
1) 성전의 담과 성전의 물
40~46장까지의 핵심 단어가 성전의 ‘담’이었다면, 47~48장의 핵심 단어는 성전의 ‘물’이다.
가로막는 ‘담’과 가로질러 흐르는 ‘물’, 서로 대조되는 이미지인데 성전은 이 둘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통제하고 제한하고 가로막고 구분하는 것이 성전이지만, 동시에 포용하고, 흘러넘치고, 스며들어 번지는 것이 또 성전이다.
‘담’만 강조하면 교회는 편협한 율법주의에 빠진다.
‘물’만 강조하면 교회는 상대주의적인 방종에 빠지게 된다.
교회는 진리로서의 ‘율법’과 그 율법의 참 정신인 ‘거룩’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율법의 다른 참 정신인 ‘자유’와 ‘은혜’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진리라는 ‘담’을 잘 지킬 때 엄청난 자유와 은혜를 만끾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2) 성전 문지방에서 솟는 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물의 근원이다.
세상이 사막과 같이 죽음의 땅, 불모의 땅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어디든 그곳은 사막이고, 광야다.
죽음의 땅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에만 있다.
하나님의 뜻이 서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순도하는 백성이 있는 곳에만 생명이 있다.
교회가 바로 그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성전이다.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복종하는 자녀들이 바로 성전이다.
3) 생명을 살게 하는 물
물은 점점 불어나 급기야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강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물이 지나가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든 나무가 푸르름을 되찾는다.
열매가 끊이지 않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된다.
성전에서 나오는 이 ‘물’이 단지 신선한 생명력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살아있는 어떤 것이 그 생명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죽은 것까지도 살릴 수 있는 물이 된다.
죽음의 구덩이 시해에 어부가 등장한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나온 이 물을 성령이라고 하신다.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 새 창조가 일어났듯이, 이 성령으로 새로운 나라가 설 것임을 보여준다.
이 생명의 성령으로 새로운 나라가 설 것임을 보여준다.
이 생명의 성령으로 살아나는 성도와 교회가 되자.
생동력을 회복할 뿐 아니라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를 기대하자.
말씀 가이드
에스겔 환상 속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예수님에게서 나온 복음 그 자체다.
에스겔은 물의 정체를 궁금해야며 500미터씩 발걸음을 옮겼지만, 우리는 그 물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그물은 에스겔을 지나 우리에게도 흘러왔으며 우리는 그 물에 속하여 또한 흐르고 있다.
근원에 닿으라. - 성전에서 졸졸 흘러나와 세상에 콸콸 흐르는 물은, 성전이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요7:38)로 성취되었다.
생명에 닿으려면 예수님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분의 십자가를 만나야 한다.
함께 젊어지고 함께 못 박힐 때(갈2:20) 우리 생명도 흐른다.
생명을 전하라. - 성전에서 나온 물은 생명을 번성시킨다.
창조의 근원인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창2:10),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수정 같은 강(계22:1)의 모습과 같다.
예수님과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우리와(엡2:22)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떠한가.
성령에 잠기라. -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은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한다.
에스겔은 발목으로, 무릎으로, 허리로, 그리고 헤엄쳐 온몸으로 그 물을 경험했다.
성령은 이론이 아닌 잠기고 헤엄쳐 경험해야 할 대상이다.
내 앞에 성령의 물은 얼마나 차 있는가?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우리에게도 흘러왔다.
바로 우리가 에스겔 성전의 증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
어느 곳에 닿아 생명을 싹틔워야 할까.
생명수로 덮어줘야 할 ‘사해’를 찾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절 생명수의 원천(源泉)이십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온 물이 네 갈래 강이 되어 온 땅에 생명을 공급하듯(창 2:10), 또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만국을 치료하듯(계 22:1,2), 바다처럼 땅을 뒤덮어 생명을 되살리는 물이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전에서 흘러내립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도 오늘 우리를 통해 세상에 공급되고 있습니다(요 7:38).
나는 몸과 영을 살리는 생명수를 공급받기 위해 매일 하나님께 잇대어 있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5,8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처음엔 발목에 찰랑거리더니 점점 넓고 깊게 흘러나가서 건너지 못할 거대한 강을 이룹니다.
급기야 그 강은 요단 골짜기와 사해 주변 사막을 뒤덮고 사해까지 흘러넘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의 진척이 느리고 규모가 미미하다고 불안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슥 4:10).
졸졸 흐르는 시냇물같이 시작된 하나님의 일이라도 반드시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어 세상을 적실 큰 강물이 될 것입니다.
6-12절 생명수 강가의 나무에서 달마다 새 열매가 자라고 병을 치료하는 잎사귀가 납니다.
강물이 흘러 들어간 사해에서는 각종 생물과 물고기가 되살아나 마치 지중해(큰 바다)를 방불케 합니다.
이것은 분명 처음 창조 때에 보았던 일들로, 지금 흘러넘치는 생명수가 세상을 회복하여 새 창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렘 2:13) 이스라엘의 악행 때문에 그 땅이 황폐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그 배에서 생수의 강’(요 7:38)이 흘러나와 주변과 이웃의 생명을 소생케 할 것입니다.
8-10절 여호와께 불순종하고 바알을 섬기며 땅의 안식을 빼앗던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자 이스라엘 땅은 비로소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하여 본격적으로 땅을 나누어 받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 전역에 생명수를 공급하여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성전과 백성뿐 아니라 온 땅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우리 일상의 현장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제 삶에도 하나님의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도록 삶 곳곳을 정비하게 하소서.
열방-이란에서는 이슬람 성직자들로 구성된 지도층과 국민들 사이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란의 이슬람 신정통치가 종식되고 종교와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적 정권이 세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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