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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양자물리학으로 해석하기(1)
깨달음과 양자역학의 관계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때 못한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시 이야기 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성직자들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궁금해 하였다
그들은 율법학자인 동시에 천체를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였다
중세의 유럽에서는 교회가 국왕을 옹립하고 땅을 소유하며 진리를 전파하는 절대 권력자적 위치에 앉게 된다
교회가 모든 진리를 알고있다고 선포해 버린 것이다 교회가 곧 법이었다
평평한 지구 주위를 태양이 돈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절대 권력자 교회에 대하여 중세 과학자들은 도전하기
시작한다
코페르니쿠스,부르노,갈리레이 같은 과학자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지만 결코 과학은 멈추지 않는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영역을 설파 하면서 우쭐해 지고 성직자들은 영혼없는 과학자들은 지옥에나 떨어
져라 고 저주한다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환상이고 속임수이다 라고 반격한다
결국 교회의 핍박으로 부터 벗어난 과학자들은 신을 알려고 하는데 까지 도전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이원주의를 고안해 내었고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사이에서 유물론이 탄생하게 된다
증거없이 믿음만 가지고 따라 오라는 종교나 파고 들어도 결론없는 과학이나
모두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우주를 더욱 깊이 파고 들어 갔고 마침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과학의 승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뉴턴의 운동법칙에 이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거쳐 슈뢰딩그의 양자물리학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밝혀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태어난 양자역학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적인 양자물리학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많은 실험을 통해 여러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증명했다
먼저 근대 최고의 과학인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설명한 후 깨달음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 하자
양자역학은 한마디로 물질의 최소단위를 알갱이로 보는냐 아니면 파동으로 보는냐 이다 물질의 이중성이다.
즉 물질의 최소단위는 원자이다 원자를 또 쪼개고 쪼개다 보면 가장 최소 단위의 소립자가 있을 것이다 그
소립자들은 전기를 띤 전자로 활동하는 것이다.
전자는 에너지이다 전자가 알갱이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밝혀 내어 공식을 만들어 낸 것이 양자역학이다
실험의 결과는 보는자의 관점에 따라서 알갱이로도 되고 파동으로도 변한다는 것이다 .
즉 양자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전자를 알갱이로 다루어서는 전자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값을 알수
없었지만, 파동으로 취급하였더니 에너지의 값을 구할수 있었다 그가 바로 슈뢰딩거이다.
물질을 알갱이로 혹은 파동으로 대하고 보니 세상의 모든 미스테리한 이치들이 풀렸다.
파동으로 보이기도 하고 알갱이로 보이기도 하는 대표적인 실험이 더블 슬릿 실험이다.
<알갱이와 파동의 더불슬릿 동영상 편집>
동영상을 편집하다보니 자막이 사라져 버렸다
설명을 하면
구슬공으로 슬릿을 통과 할 때는 슬릿의 숫자대로만 모양의 띠가 생겼다 그러나 물의 파동이 슬릿을 통과하니
서로 간섭이 생겨 여러개의 슬릿 띠가 생기는 것이다 파동은 중첩을 만드다는 것이다.
다음실험은 구슬이 아닌 전자를 가지고 직접 실험을 한다 전자를 알갱이로 보고 슬릿를 통과 시키면 슬릿의
모양수 대로 띠가 생기지만 전자를 파동으로 보고 슬릿을 통과 시켜 보니 서로 간섭이 생겨 띠가 펴지면서
무수히 많은 띠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이 관찰자에 관한 실험설명이다.
슬릿의 앞에선 관찰자는 두개의 띠만 보이지만 슬릿의 뒷쪽으로 가서 보면 무수한 띠가 형성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주 아주 많은 전자를 쏜다면 벽면 모두 전자가 박혀있는 것이다 즉 입자 알갱이는 구체성을 가지지만 파동은
펴져 버려 전체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위의 실험에서도 처음 대하는 분은 이해 하기가 어렵다면
구체적인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주 작은 씨앗 (붉은점)이 자라고 자라면 아주 큰 나무로 변한다.
씨앗은 눈에 보이는 알갱이 이다 그러나 큰 나무로 다 성장하고 난 뒤에는 씨앗이라는 알갱이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공간이 아주 넓어진 나무로 되어있다 그러나 씨앗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나무의 각 세포에 씨앗의 성질이
퍼져 있다. 알갱이의 형태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의 형태로 살아 있는 것이다.
작은 씨앗(알갱이)은 크면서 씨앗의 형태는 흐릿하게 변해 버려 씨앗의 형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대신 파동의
에너지로 변해 있는 것이다.
붉은점 씨앗은 자아=개체=지구 라고 본다면 나무는 진아=전체=무한한 우주가 되는 것이다.
허블의 우주팽창이론으로 이야기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허블은 지금도 우주는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유로 든 것이 은하와 은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
이다.
나무 그림에서 나무가 자라남에 따라 점A에서 점B까지의 거리는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나무가 완전히 다
자란 후에는 점과 점 사이의 거리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이후에는 시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은하와 은하의 거리가 늘어나지 않으면 거대한 우주의 생명도 다한 것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 종말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양자물리학에서 중첩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나무의 뿌리쪽에 있는 씨앗 A를 철수라 하자 나무의 꼭대기에 있는 씨앗 B(철수)는 양자역학의 중첩론에 의하여
같은 인물이 된다.
즉 동시에 부산에도 철수가 있고 서울에도 철수가 있다는 것이다. 파동에 의해서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 보더라도 우리는 우주의 어디에서던지 존재 할수있고 너와 내가 따로 없는 모든 것은 하나이다 라는
일체론과 단일성이 성립된다.
단 관찰자가 알갱이(독립적=자아=집착=내부=개체)로 보는냐 아니면 파동(일체적=진아=놓음=외부=전체)으로
보는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은 물질의 최소단위를 입자로 보는냐 파동으로 보는냐 를 연구하는 것이라 하였다.
여러 학자들의 많은 실험을 통한 결론은 물질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갱이로 존재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파동의 형태로도 존재한다고 하였다.
보다 더 좋은 예를 만났다
어제 신문(중앙일보 9월3일자)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의 기사가 실렸다.
호킹교수는 예전 신의 존재를 인정하던 입장을 바꾸어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고 중력과 같은 물리적 법칙에
의해 생겼다고 주장한다.
즉 신이 우주 창조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라고 단언한다
호킹교수의 M이론에서는 물질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는 알갱이의 형태보다는 얇은 막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진 학설이다
물질의 최소단위가 입자이냐 파동이냐 아니면 알갱이도 파동도 아닌 그 중간인 얇은 막으로 되어 있는냐를 알아
내는 것은 현세와 내세,신의 유무,종교의 존재여부,현실 세상의 허상 ..등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에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양자론에서는 입자로도 보이고 파동으로도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호킹교수는 아주 애매하게 입자와 파동의 중간 형태인 얇은 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호킹교수는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라 움직임이 없다. 물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없어 몸(입자) 자체는 거의 죽음
과도 같다. 그러나 호킹교수 자체를 파동(영혼)으로 해석한다면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즉 그의 영적 에너지는 우주의 저 멀리 까지 날아가 있는 것이다.
입자 에너지가 파동 에너지 바뀐 것이다 즉 (1)편의 나무그림에서 설명 했듯이 아주 작은 씨앗(알갱이=몸)이
자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변하여 큰 나무 전체에 씨앗의 정보(유전자 정보)가 퍼져 있는 것이다.
우주는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도 계속 움직이며 돌아간다.
'0' 이란 숫자 보다 적은 수는 없다. 그렇다고 '0'보다 큰 숫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즉 '0'이란 숫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는다 움직이는 생물이다.
호킹교수의 몸은 죽었지만 그의 정보(영혼)에너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주의 먼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과 참선,기도를 할 때는 몸의 움직임이 없다. 몸은 호킹교수처럼 움직임이 없지만 영혼을 찾는 행위이다.
몸과 마음 영혼 그리고 깨달음에 대해서 뜻하지 않은 호킹교수 신문기사를 예로 들어 잠시 설명하였다

<2010년 9월 3일자 중앙일보 기사>
다시 양자물리학으로 돌아와서
양자역학에서 물질의 최소 에너지인 전자를 다루는데 있어서 보완해야 할 문제점이 생긴 것이다.
중학교에서 부터 배우는 확률 계산과 불확정성의 원리 이 두가지 이다.
과학은 미래를 알아 내기 위하여 존재한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를 알아야 하고 그 현재 상태에 물리법칙이 대입이 되어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포알을 쏘아서 목표물에 명중 할까 아닐까를 알아 내어야 한다.
현재상태란 대포알의 모양,대포의 모양..등이다 그리고 물리법칙은 대포알에 주어지는 힘,대포의 방향 등이다.
정확하게 계산하였다면 대포알은 목표물을 명중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하게 조준하여 쏘아도 명중하지 않는 대포알도 있다
여기서 관찰자의 중요성이 나온다.
대포를 쏘는 포병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쏘는 대포알이 명중할 수도 있고 명중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즉 명중확률 50% 안명중 확률50% 이다.
이번 한 발의 대포알은 포병의 입장에서는 예스 아니면 노 이다.
포대장에게 혼날 수도 있고 칭찬을 들을 수도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물어 치기다 불안하다.
그러나 포대장의 입장에서는 약90%의 명중률을 자랑한다 .
왜냐?
쏘는 대포알의 수도 많고 포병도 많기 때문에 정확한 물리법칙으로 계산하여 쏘기 때문에 확률계산으로는
약90%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대포알로 계산 한다면 확률은 거의 100%이다 아주 아주 적은 불발은 무시해 버린다 이것이
확률이다.
그래서 불안한 포병의 입장과 느긋한 포대장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세상을 어떻한 입장에서 바라보는냐에 따라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고 지옥으로 만들수도 있는 것이다.
물리법칙은 확률 계산이고 물리는 불확정성 원리이다.
우주는 지금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물리법칙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
가장 근접한 값을 계산 해 낼 뿐이다.
양자역학에서 파생되어 나온 확률과 불확정성 원리 이것이 가장 최근의 과학 현 주소이며 걸어온 길이다.
미래의 무한한 과학은 어디로 갈것인가?
양자물리학에서 물질의 최소단위는 전기를 띤 전자로 되어있다 즉 에너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에너지가 알갱이만 되어 있다고 주장하여 보이는 부분만을 대상으로 물리학을 적용시킨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은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다 라고 주장하여
얻은 결론이 물질의 최소단위는 알갱이로도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초능력,염력,귀신,신통력,천리안,
에너지가 알갱이로만 존재 해서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알갱이가 아닌 파동의 형태로 된 잠재된 에너지로 계산하여야만 미지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물질이라는 것은 뇌가 알갱이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자들은 '지나가다 돌부리를 걷어차면 발가락이 아프다' 라는 것을 현실이라고 주장하고는 이것은
경험이고 일상이고 생각이고 인식이다 라는 전재하에 뇌의 반응을 실험 한다.
어떠한 물체를 보게 하고 물체의 모양을 입으로 설명하게 한다. 그 다음 눈을 감기고 같은 물체를 상상하게
하고는 물체의 모양을 입으로 설명하게 한다 .똑 같은 설명이 나왔다 즉 눈으로 보지 않고도 뇌가 물체를 설명
하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볼 때 반응 했던 부위의 뇌와 눈을 감고 설명했던 뇌의 부위는 똑 같은 부분이었다.
물체를 눈이 본 것인가 아니면 뇌가 본 것인가
현실은 무엇인가 눈으로 보는 것만 현실인가? 뇌가 인식하는 것도 현실인가?
뇌는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는 초당 4000억 비트의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2000여 가지의
정보들만 처리한다는 것이다.
뇌에 올라오는 정보의 대부분이 자신을 보호하는 즉 이기적인 힘의 정보들이다 라고 한다.
정보의 대부분은 주위환경,몸,시간,일상적인 것에 관한 것들이다.
나라는 것,현재의 세상이라는 것,인식하고 있는 2000여가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뇌는 4000억개의 정보를 처리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2000여 가지만 인식한다는 것은 뇌의
신경망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정보를 통합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뇌는 가능하다고 믿는 것들만 보는 것이다.
영성개발을 한다거나 명상,참선,기도 등은 신경망을 통합시키는 훈련이다.
신경망을 통합 시키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미지의 영역도 스스로 만들어 내고 보이는 것이다.

우주는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다. 단지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앞에서 호킹교수가 이야기한 '우주는 창조되지 않았다'는 말을 뒷받침 해 주는 대목이다.
우주의 창조론과 진화론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 하였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발명은 없다 오직 발견이다.
양자물리학 설명 동영상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카리브해의 섬에서 콜롬버스의 배가 다가 왔을 때 섬에 살고있던 원주민들은 콜롬버스의 배를
전혀 볼수가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배는 그들이 전에 보아왔던 것들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뇌나 경험의 정보 속에 콜롬버스의 범선이라는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섬의 추장겸 주술사는 바닷가에서 물결이 이상하게 출렁이는 것을 보았지만 배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여긴 주술사는 계속 의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게속 바라보니 결국 범선이 보이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주술사는 범선의 침입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항상 따랐던 주술사의 말을 믿고 바다를 바라보니 주민들에게는
즉각 법선이 보였던 것이다.
없었던 것이 나타난 것이다.
창조가 아니고 발견이다.
위의 예를 통해서 영성개발 또는 마음 다스림은 무한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무한한 세계를 창조 해 낸다 무한한
영혼의 세계를 날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심하지 않는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우주는 물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를 딱딱한 공처럼 되어 있다고 생각 하지만 원자핵 주위는 무수한 전자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원자핵도 전자처럼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물질도 아닌 비물질들을 가장 견고하고 딱딱한 형태로 여기는 것은 생각 뿐이다 .
생각만이 딱딱하다는 것이다. 생각은 구체화 된 정보 조각 같은 것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습관화 된 생각 혹은 개념화 된 정보이다.
무한한 우주는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 보이지도 않고 경험 해 보지도 않은 파장 에너지의 형태로 이루어
져 있다.
무한한 우주라 함은 현세상과 사후의 세상 즉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모두를 포함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은 無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없다고 할것인가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관찰자 이다
관찰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요
관찰의 대상에서 빠져 버리면 저 세상이다.
즉 관찰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이승 되기도 하고 저승이 되기도 한다.
이승은 경험의 세상,중독성의 세상,오감의 세상이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전에는 항상 다녔던 길을 간다 경험을 했던 길만 있는 줄 안다 이승만 경험 했기에
저승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들만 중독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금만 범위를 넓히면 현실세상의 모두는
중독자이다.
중독이란 화학적으로 황홀한 감정이며 척추의 내분비선을 통하지 않고서도 일어나는 성적인 자극이다.
중독은 폭포처럼 멈출수 없는 물줄기 같은 것이다 성적인 충동은 환상이란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성적 중독자라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프로이드-정신분석학자)
중독은 최면이다 최면에 걸려 사는 것이다.
중독,최면,오감,경험 모두가 관찰이 일어나게 하는 요소들이다.

중독을,최면을,경험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즉 관찰자가 누구인지를 찾아 본적이 있는가
다시 말하면 최면에서 빠져 나온적이 있는가
최면이나 중독자들은 보다 더 나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중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법만 배우며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더 나은 꿈꾸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일반적인 정신의학에서는 대상을 이용 할려고만 하기 때문에 자신을 이기는 더 좋은 방법을 이야기 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승에서는 항상 불쾌한 선택 불리한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다른 선택을 하여야 한다.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여러분 스스로 선택을 해야한다.
종교지도자,정치인,교수,경제인,언론인들이 도움을 절대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당신의 선택을 막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음의 길을 가야한다.
관조(관찰)하는 자가 되어야한다 .
중독의 구렁텅이에 있는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라 .
이 뭐꼬? 란 화두를 가지고 바라보라 많은 것을 찾으려 하지 마라 그져 바라보기만 하라.
'내가 중독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꿈일거야' 라고 소리치며 놀라 머리를 흔들며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서 하늘로 비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활이 지루하거나 영적인 감흥이 없는 삶을 사는 이유는 그들을 가슴 뛰게 하는 지식
이나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 탐진치라고 하였듯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죄악을 넘어서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앎이란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다.
-명상과 기도 최면이란 것도 앎이 없기 때문에 걸린다.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우상들의 외모나 학벌,재력,언행의
최면에 걸려 자신의 영혼은 표면 위로 나타내지 못한다.
결국 그런 것들에 굴복해서 그져 그런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면의 표면막을 뚫고 나와야 한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계속 질문하면 자신의 신경망은 도약의 개념들과
교류하게 되어 날개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오던 오래된 개념들은 하니씩 떨어져
나가고 우리의 뇌는 무한한 우주의 신경망과 재구성하게 되고 새로운 개념과 재접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결국 내면에서 밖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어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바뀌면 선택이 바뀌고 선택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무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