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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가장 어렵고 힘든 관문이었지요
영국은행이 외국에 차관을 주려면 수출신용보증국[ECGD]의 보증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수출신용보증국 총재는 배를 살 사람의 계약서를 가지고 와야 승인해 줄 수 있다고 했지요
"만약 내가 배를 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작은 배도 아니고, 4~5천만 달러 짜리 배를
세계 유수의 조선소들을 다 제쳐놓고 선박 건조 경험도 전혀 없고 또 조선소도 없는 당신에게
배를 주문하겠습니까?
설사 당신네가 배를 만들 수 있다해도 사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원리금을 갚을 수 있겠소?
그러니까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확실한 증명을 내 놓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차관을 승인할 수 없소!!"
정말 난감했지만 정확한 지적이었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도 가난한 나라였지요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 배를 만든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몰라요
배를 만든다고 해도 그 배를 믿고 사갈 사람이 없었던 것이지요
정주영은 다시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바닷가의 사진을 꺼내 놓고 깊은 시름에 잠겼어요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신처럼 정신나간 사람을 찾아야 했지요
내가 누구냐?
천하의 정주영 아니냐?
여기서 무너질 내가 아니지!!"
그날부터 마음을 다잡아 먹고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소에서 만든 배를 사 줄 선주를 찾아 나섰던 거지요
허허 벌판 모래사장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당신이 내 배를 사 주겠다고 계약만 하면 내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이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 주겠소!!"
미친놈 취급당하기 딱 맞는 말이었지요
그런데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고 세번 만나니까 그런 정신 나간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다름아닌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라바노스"였지요
라바노스가 정주영의 배포를 믿고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 보고 계약을 했어요
선박에는 세계적인 라바노스지만 정주영의 사람 됨됨이에 밀려 파격적으로 정주영과 계약을 맺었지요
하지만 정주영 역시 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 했어요
"틀림없이 좋은 배를 만들어 주겠다
대신 배값을 싸게 해 주겠다
만약 약속을 못 지키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 주겠다 그래서 계약금은 조금만 받겠다
우리가 배를 만드는 진척 상황을 보고 조금씩 배 값을 내라
우리가 만든 배가 하자가 있으면 인수를 안 해도 좋고 원금은 몽땅 되돌려 주겠다"
정주영은 라바노스가 보낸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있는 그의 별장에 가서
유조선 2척을 주문 받았지요
이렇게 해서 마지막 관문을 넘어섰다 하네요
정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신화적인 이야기지요
그 뒤부터 정주영은 부하 직원이 어렵다고 하면 "해 보기나 했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하지요
정주영은 귀국하여 곧 바로 박정희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정문 앞까지 달려나와 그를 맞았지요
그 때 지도를 놓고 볼펜으로 그리며 본인의 구상을 설명하자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비서들에게 정회장이 볼펜으로 그리는 대로 공장을 짓게 해 주고 정부에서 지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원하라고 지시를 했다 하네요
훗날 박대통령은 울산 현장에 자주 들려 막걸리를 같이 나누며 정주영을 격려했다 하지요
하지만 그건 준비 작업에 불과 했어요
먼저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짓고 그 조선소에서 다시 배를 만들어야 했지요
그러나 정주영은 이때 그의 특기인 역발상 창의력을 발휘했어요
"조선소는 조선소이고, 선박 건조는 선박 건조다
반드시 다 지어진 조선소에서 선박을 만들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러면서 정주영은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병행해서 진행 시켰어요
제일 먼저 스웨덴에서 배 만드는 설계사를 데려왔어요.
배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배 만드는 공장도 없으면서 모래사장의 모래를 포크레인으로 퍼내고 웅덩이를 파 놓고 거기에 올라오는
물을 펌프로 퍼내 가면서 그 웅덩이 속에서 최초의 배를 만들었어요
공장도 없이, 도크도 없이, 모래를 퍼내 놓고 그 속에서 라바노스가 주문한 배 한 척을 만들면서 동시에
방파제를 쌓고, 바다를 준설하고, 안벽을 만들고, 독크를 파고, 14만평의 공장을 지었지요
거의 모든 직원들이 새벽 4시면 일어나 여기 저기 고인 웅덩이 물에 대충 얼굴을 씻고 일터로 나가
밤 늦게까지 일하고 숙소에 돌아와 구두끈도 못 푼채 잠을 자며 배를 만들었어요
정주영도 거의 울산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어쩌다 서울에 오면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갔어요
최초의 배가 완성되던 날 막아 놓았던 바닷물을 딱 텃지요
물이 웅덩이로 쏴 들어오면서 배가 붕 떳어요
그리고 잠시 후 붕 뜬 배가 바다 쪽으로 쑥 밀려나갔지요
세상이 온통 뒤집어졌어요
직원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눈물 바다가 되었어요
단 한 척의 배도 만들지 못 했던 우리가 세계적인 대형 선박을 만든것이지요
이것이 세계 제1의 조선국가로 성장하게 된 바탕이 되었어요
건조능력 70만톤, 부지 60만평, 70만톤급 드라이 도크 2기를 갖춘 국제규모의 조선소 준공을
본것은1974년 6월 기공식을 한 1972년부터 2년3개월 만이었어요
이 날 박정희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하여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는 휘호를 써 주었지요
현대조선은 그렇게 세워졌어요
그러나 한창 잘 나가는 듯하던 조선사업에 위기가 닥쳐왔어요
이는 바로 1973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 때문이었어요
오일쇼크로 인해 유조선을 주문했던 사람들이 배를 가져가지 않겠다는 취소가 잇따랐지요
현대 조선이 만든 배 가운데 3척이 울산 앞 바다에 그냥 떠 있었어요
그중 1척은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라바노스가 주문한 유조선이었지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현대조선으로선 휘청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정주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을 생각 했지요
"만들어 놓은 배를 가져가지 않으면 우리가 그 배를 갖고 새로운 사업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정주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지요
1976년 3월 인도하지 않은 초대형 유조선 3척을 가지고 아세아상선을 설립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원유를 우리가 우리 유조선으로 운반 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 원유를 실어나르던 외국 선박회사들이 가만히 있으리가 만무했지요
아세아 상선에 수송권을 넘겨주는 댓가로 1400만 달러를 요구했어요
그렇지만 정주영은 받아 들이지 않았지요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지 내가 택시를 타다가 자가용을 구입했는데 택시회사에 돈을 주어야 하나?
그동안은 우리한테 유조선이 없어서 자기네 배를 택시처럼 돈 주고 빌려 쓴 것인데 우리가 배를 만들고
우리 배로 우리 원유를 운반하는데 돈을 달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요구는 절대 받아 들일수 없다"였지요
정주영은 뚝심으로 버텼지요 8개월을 버뎠더니 3백만 달러로 떨어졌어요
그래도 움싹달싹 안 하고 버텼지요 결국에는 10원도 안 주고 우리 원유를 현대아세아상선에서
운송할 수 있었어요
거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뚝심도 큰 힘이 되었다하네요
그렇게 출발했던 아세아상선은 지금 현대상선이 되었지요
오일쇼크로 몹시도 정주영을 힘들게 했던 현대조선은 요즘 세계적인 현대중공업이 되었어요
이것 저것 구실을 붙여 다 만들어진 유조선을 안 찾아 가려고 떼를 썼던 라바노스
그러나 정주영은 그를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하네요
어쨌던 황량한 모래벌판 사진 한장을 보고 배를 주문해 주었던 지난날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2007년 5월25일 현대중공업 도크에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진수 됐어요
정주영이 처음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우리 해군은 미군이 폐기 처리한 구축함을 가져다
페인트 칠을 해서 쓰고 있었어요
천지개벽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봐요
이날 진수식에서 정몽준 회장은 500원 짜리 거북선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그리워 했다
하네요
지금 전세계 바다에 새로 나오는 배 5척중 1척이 현대중공업 제품이고 10척중 4척이 한국산이라 하지요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에 싼 가격으로 수주를 맡긴 배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지요
그래도 주문이 너무 밀려 배를 만들 도크가 없다 하네요
길이 200m에 15층 높이의 배를 땅 위에서 조립해 바다로 끌고가 띄우는데 이런 신 공법은
한국조선소에서만 하고 있으며 선박 엔진 또한 세계 최고라 하지요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상무는 이 기술자들은 "나라의 보물"이라고 했어요
이들이 세계 선박 엔진시장의 45%를 싹쓸이 하고 있다 하네요
그러나 2014년 부터 불어닥친 불황의 여파로 몇년간 고전을 했지만 지금 세계의 선주[船主]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어요
모래바람이 휘날리던 미포만은 이제 배 조립품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아 졌지요
그곳에선 3일마다 1억 달러짜리 거대한 배가 한척씩 쏟아지고 있어요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배를 찍어 낸다"고 하지요
세계 조선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하네요
한척의 배를 만든 이익금으로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정주영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라 했나봐요
그리고 또 1984년 "정주영 유조선 공법"이라는 내용으로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지요
당시 충남 서산 간척사업 A지구 매립공사는 6.4km를 연결함으로써 완공되는 사업이었지요
이 사업으로 생기는 육지는 여의도 면적의 43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땅이 었어요
바다를 막아 옥토를 만드는 국가사업때 마지막 물막이 공사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 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드나드는 물의 양이 3억4천만톤, 밀물시의 유속은 초당 8미터에 달해
20톤에 달하는 돌 망태를 넣어도 그대로 물에 휩쓸려 갔지요
흔히 최종 물막이 공법은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장비로 물 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가는
점고식[漸高式 또 덤프트럭등 육상장비를 이용해 점차 구간을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漸蓄式]
그리고 이들 두 방법을 같이 쓰는 병행식 들이 있어요
하지만 서산 간척지 공사는 빠른 유속으로 인하여 통상적인 공사방법으로는 엄청난 비용과 작업기간이 오래동안 소요 될 것이 불을 보듯 뻔 했지요
이때 정주영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대형폐유조선으로 조수를 막아 놓고 물막이 공사를 하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놓았어요
이 획기적인 공법의 사용으로 계획공기 45개월 가운데 36개월을 단축하여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방조제를 쌓는 성과를 올렸으며 200억원의 경비도 절약함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요
정말 정주영 다운 배포요, 정주영 다운 공법이었지요
이 기술은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아 "유조선 공법"으로 명명되어 지금 세계 여러나라에서 배우고
있다 하네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큰 별은 가고 없어요
2001년 3월 21일 당신이 설립한 서울 아산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났지요
정주영 회장이 타계했을 때 미국 CNN방송이 한 시간 이상을 특집으로 방송했는데 이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호는 아산[峨山]이며 1915년 11월 25일에 농부인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의 6남2녀중 장남으로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지요
8세에 통천 송전소학교에 입학하여 13세에 졸업하였으며 그와 함께 졸업한 동창생은 27명
그의 정식 최종학력은 소학교 졸업이 유일하지요
2000년 5월에 현대명예회장직에서 물러났고
1987년 제 1회 한국경영 대상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98년 IOC 훈장과 노르웨이 왕실훈장을 수상하였으며
사후에는 2001년 5월 제 5회 만해상 평화상이 추서 되었지요
이후 5년 뒤인 2006년 11월 미국 타임[TIME]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에 선정되었으며
2008년 DMZ평화상 대상이 특별추서되었지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하면 된다는 신화룰 창조하신 거인 정주영!!
대한민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경제 대인이 었지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했어요
우리는 그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위인중에 위인 거인 중에 거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ps
임성범님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사랑하는 쌍용동우회원들께
독수리 타법으로 한자 한자 올릴 때 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선각자요 경제부흥의 한축을 담당하신
정주영님의 뛰어난 리더쉽과 넘치는 상상초월의 지혜에
깊이 감동을 받으며 그 헌신의 노고에 우리 후손들이
길이길이 잊지 말고 감사해야 될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삼복 더위에 모두모두 건강들 하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주영회장님 일대기를 보는것 같습니다.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라도 잘 살고 있는것은 그런분들 때문이 아닐까.
쑥버무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납작보리 국죽으로 연명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런 선각자분들이 한없이 우러러 보입니다.
어렵게 자료를 구해서 글로 옮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 글, 두고두고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