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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감사로 하나님을!!!
2008년 10월 19일 / (추수감사절) / 하박국 3:16-19
시편 1편에서 150편까지를 살펴보면 수많은 감사의 노래를 발견케 됩니다. 그런데 공통점 하나가 있습니다. 감사의 노래 대부분이 환란 속에서 부른 노래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환란인데 감사할 수 있습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바로 성숙된 믿음입니다.
시 50:14-15 / 고마운 마음으로 나 하나님께 감사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은 이인 나에게 너희가 서원한 것을 갚아라. 15) 불행이 닥치거든 나를 부르거라. 나 너희를 건지리라. 하여 너희는 내게 영광을 돌릴 수 있으리라.
■ 미국의 어떤 부자가 다이아몬드 토지를 발견하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을 다 팔아 그것 가지고 방방곡곡을 다 헤맸습니다. 그러나 헛수고하고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훗날 그가 팔았던 토지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가 지닌 마음(삶, 생활) 속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지 못하고 허덕거리며 삽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고, 짜증내면서 살고, 불만을 토하면서 살아갑니다. 만일 자기 삶 속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여나 불만하지 마십시오. 불만은 족할 줄 모르는 마음의 병이니 행여나 짜증내지 마십시오. 짜증은 짜증을 만들뿐입니다. 한번 짜증을 내면 온 세상이 다 짜증덩어리가 됩니다.
계 2:3-5 / 너는 나를 위해 고난을 견디었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4) 그러나 너를 나무랄 일이 하나 있다. 네가 나를 처음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 네가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라. 그래서 그렇게 달라진 이유를 찾아 깊이 뉘우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 그전처럼 힘써 노력하라.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은 항상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불평과 염려, 걱정이 아닌 감사함으로 환경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갈릴리 풍랑을 헤쳐 나가는 믿음의 사람답게 범사에 감사함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십시다.
♬ 427장 1절 /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후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3절 /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바울이 감사할 때 모든 것이 풍족해서였습니까? 만사가 형통해서 감사하고, 감사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환난과 곤고를 당했습니다. 몇 번이나 매를 맞았습니다. 옥에 갇혔습니다. 바다에서 파선을 당하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의 핍박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다메섹, 에베소, 고린도, 예루살렘, 가는 곳곳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정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만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자족(自足)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감사(感謝)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를 향해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는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 욥은 자기의 자녀를 한꺼번에 잃어버렸습니다. 재산도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것이 절망이요, 또 이런 경우 인생은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에 욥은 어찌했습니까?
욥 1:20-22 / 그 말을 듣자 욥은 자리에서 일어나 슬픔에 못 이겨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얼굴을 묻으며 21)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뱃속에서 빈 몸으로 나온 이 몸 다시 빈 몸으로 돌아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가져가지는 분도 여호와시라.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라.” 22)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도 욥은 그릇된 일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 하박국은 어찌했습니까?
합 3:17-19 / 무화과나무는 싹도 내지 않고 포도 덩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올리브나무의 소출은 실망뿐이고 논밭의 곡식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목장의 양 떼들은 모두 다 사라졌고 외양간에는 소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습니다. 18) 그렇더라도 나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 뛰겠습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나는 즐거워하겠습니다. 19)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두 발을 암사슴의 다리와 같게 하시고 모든 산들의 위에서 안전하게 달리도록 힘을 주십니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감사의 정신입니다. 세상이 악해지고 마지막 때를 향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서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롬 1:21 /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는커녕 날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시는데도 감사조차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타락한 시대요, 마지막 시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라는 속담이 말해 주듯이 사람들은 은혜를 입고도 감사를 하지 않거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은혜를 베푸는 입장에서는 희생을 하는데, 받는 입장에서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처럼 각박한 이유도 사람들이 감사를 잘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더욱 더 높아지는 것도 서로 고마운 마음을 주고받지 않는데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메마른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하겠습니까? 감사를 잊지 마십시다. 그리고 감사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겠습니다. 감사를 잘 하면 우선 나의 마음이 기쁩니다. 감사를 받는 상대방의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반대로 불평과 불만을 해 보십시오. 먼저 내 마음이 삭막해 집니다. 감사 받기를 기대하였던 상대방의 마음이 닫힙니다. 그리고 가정에 불화가 일어납니다. 교회가 냉랭해집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나빠집니다. 사회가 어두워집니다. 감사는 마치 기계에 있어 윤활유와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매사를 부드럽고 매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으면 기계에 기름칠을 안 한 격이 되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 가서는 부서지는 것과 같이 감사가 없는 인간관계는 마지막에 가서는 깨지게 됩니다. 이 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집니다.
▶ 신앙과 감사는 서로 비례합니다. 신앙이 있으면 감사를 하게 되고 감사를 하는 사람은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해도 감사가 빠져 있으면 그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닐 것입니다. 감사가 빠져있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병들어 있는 신앙일 것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에서는 감사 찬양이 우렁차게 울려 나오고 있습니까? 불평,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까? 나의 신앙은 감사를 잘하는 건강한 신앙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병들어 있는 신앙입니까? 감사 생활을 통해 신앙의 건강도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감사하는 태도를 보면 세 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감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입고도 입을 싹 씻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배은망덕, 즉 은혜를 잊은 사람이라고 하며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서부 아프리카 맛지족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주둥아리를 닦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닭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닭은 먹을 때는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그러나 먹고 나서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듯이 주둥이를 땅에 쓱쓱 닦습니다. 맛지족은 닭의 이런 염치없는 행동을 본떠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주둥아리를 닦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똥 누러가기 전과 똥 눈 후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용무가 급하나 화장실이 없어 해결을 하지 못할 때는 별, 별 생각을 다합니다. 몸을 비비 틀며 비지땀을 흘립니다. 온통 생각은 화장실 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피하고 싶었던 화장실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은 공중 화장실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이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공중 화장실이 없었던 옛날에는 흔히 경험하는 일입니다. 화장실이 마침 눈에 띄면 뛸 듯이 기뻐 달려갑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용무를 봅니다. 그런 후 그렇게 간절히 찾았던 화장실이 이제는 보기 싫어집니다. 가기 전에 가졌던 그 간절한 생각은 어느 듯 다 살아지고 맙니다. 감사는커녕 뒤돌아보지도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떠납니다.
눈앞에 문제와 어려움이 닥칠 때는 하나님께 수 없는 다짐과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 이번에 이 일만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Please! Please!” 그러나 막상 일이 해결되니 언제 내가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입을 싹 씻습니다.
▶ 여러분! 나는 어떻습니까? 과거 하나님께 이런 다짐이나 맹세를 한 적이 없습니까? 그 때는 간이라도 빼어 드릴 것같이 하면서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습니까? 손발이 달토록 애걸복걸(哀乞伏乞) 빌지 않았습니까? 금식하며 떼를 쓰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하도 애타게 간청하기에 불쌍해서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까? 그리고 그 때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고 맹세하였던 것이 아직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맛지족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둥이를 닦는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2.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사업이 번창을 해서 감사합니다.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자식이 공부 잘해서 감사합니다. 가정이 행복해서 감사합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해서 감사합니다. 학위를 취득해서 감사합니다.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좀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감사를 합니다. 이럴 때 감사만 잘 해도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런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야비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입고도 모른척하는 괘씸한 사람입니다.
영어의 “Thank”, 즉 “감사하다”라는 말은 “Think”, 즉 “되씹어 생각하다”라는 말과 그 어원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감사할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부디 잘 생각해 보시고 감사를 잘 할 수 있는 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더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잘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감사를 하도록 복을 주십니다.
■ 영국의 성공회 감독 트랜취는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만 구덩이만 있어도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어둡고 험한 길에 조그만 빛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인생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냐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딱지만한 오두막집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조지 무어라는 사람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지 말고 당신이 받아 마땅한 벌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하 감사하라.”라고 말했습니다.
▶ 사실 불평의 눈으로 보면 불평할 일이 수두룩합니다. 불평을 말하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나? 나는 왜 이렇게 키가 작나? 왜 똑똑하지 못하나? 왜 우리 가정은 이 모양 이 꼴인가? 왜 내 부모는 저 정도 밖에 못되나? 왜 내 남편은 저렇게 무능한가? 왜 내 부인은 복부인이 되어 돈을 벌어오지 못하나? 왜 내 자식은 저렇게 지질이도 못 낫나? 왜 우리 교회는 이런가?” 모든 것이 다 불평깜!깜!깜입니다.
문제는 현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현재 나의 형편, 처지, 입장, 환경, 상황 등이 불평의 재료가 될 수도 있고, 감사의 제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파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모두가 파랗게 보입니다. 또 빨간 안경을 쓰고 보면 빨갛게 보입니다. 불평의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불평할 것뿐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감사의 안경을 끼고 보시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감사는 불행 중에서, 고난 속에서 하는 감사입니다. 이런 감사는 고차원적인 감사이며 성숙한 신앙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이런 감사입니다. 도저히 감사라고는 할 수 없는 처지와 여건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하라고 하면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을 환경에서 그는 기뻐했습니다. 정말로 감사의 조건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찬양했습니다.
▶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때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정부 관리들은 타락과 부패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국제 정세까지도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지금까지 형님 나라로 의지하고 있던 애굽은 이제 국운이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유다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신흥 제국 바벨론은 강대국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시시 탐탐 유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멀지 않아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 나라를 침략해 오리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유다는 내적, 외적으로 아주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선지자로서 누구보다도 이런 급박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하박국은 가슴이 떨렸습니다. 두 다리에는 힘이 다 빠졌습니다.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합 3:16 / 주께서 이 모든 일을 내게 들려주셨을 때 내 뱃속의 창자가 모두 뒤틀렸고 내가 주님의 우렁찬 음성을 들었을 때 두 입술이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내 모든 뼈가 물러지고 내 두 무릎은 후들거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우리를 공격한 그 백성에게 망국의 재앙을 내리는 그날을 나는 여전히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을 해 보셨는지요?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는 것 같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상상해 보면 어떤 처지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은 드디어 침공해 왔습니다. 그리고 국토를 황폐하게 했습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열매들은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외양간의 소는 끌려 같습니다. 우리 안에 있었던 양들은 그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을 부지하는데 필요한 양식마저 구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극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하박국은 감사를 했습니다. 찬양을 하며 기뻐했습니다.
합 3:17 / 무화과나무는 싹도 내지 않고 포도 덩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올리브나무의 소출은 실망뿐이고 논밭의 곡식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목장의 양 떼들은 모두 다 사라졌고 외양간에는 소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양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하박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가서 힘찬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합 3:18-19 / 그렇더라도 나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 뛰겠습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나는 즐거워하겠습니다. 19)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두 발을 암사슴의 다리와 같게 하시고 모든 산들의 위에서 안전하게 달리도록 힘을 주십니다.
역경과 환란은 오히려 하박국의 믿음을 더 높고,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어떻게 견디어 나갔습니까?
합 2:3 / 왜냐하면, 내가 지금 네게 보여주는 계획들이 아직도 정해진 시각을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들은 느리지만 꾸준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질 그 시각을 향하여 달리고 있으니 절대로 실망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 성취가 느리고 지체되더라도 꾸준히 기다려라. 그 시각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단 하루도 넘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기다리는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내심이 부족한 성도가 있습니까? 하박국을 통해서 배우십시다.
합 1:2 /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합 1:13 / 주의 두 눈은 진실로 너무나 깨끗해서 악한 일을 구경만 하지 못하시며, 사람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할 때에 그저 보고만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은 저 민족의 반역자들을 방관만 하시며, 악인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의롭고 선한 사람들을 삼켜 버릴 때에, 왜 주님은 가만히 계십니까?
기도 응답이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야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정한 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다리는, 또 기다리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전 3:1 / [세상 만사에 때가 있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고, 모든 목적은 다 이룰 기한이 있다.
루터도 말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정한 때에, 하나님의 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는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항상 모든 일이 나의 때에,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괴롭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고 답답하지만 기다려야 합니다. 하박국의 경우 어찌했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너무 더디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쉴 수는 없습니다. 기도를 쉬는 일은 죄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박국이 순종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이 성전에 계십니다. 그리고 “어리석고 오만하고 불손한 죄인들아,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주경신학자 매튜 헨리의 말입니다. “하박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은 믿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환란과 역경 속에서 감사를 할 수 있다는 것, 극한 상황 속에서 찬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사가 형통할 때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때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 환란 속에서 감사와 찬양을 한다는 것은 고도의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를 할 때 하나님은 그 감사를 통해 더욱 더 높은 차원의 믿음으로 승화시키십니다. 그러한 믿음을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 미국에 예수 잘 믿는 목재소 직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경제가 나빠 불황 속에 빠져있을 때인데 해고 통지서가 날아온 것입니다. 우리 중에 직장 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만 남자에게 있어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입니다. 요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분들이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고 통지서를 받은 이 사람은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당장 먹여 살릴 가족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따지듯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런 어려울 때 직장을 잃게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 믿어 왔는데 이런 시련을 주시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까?” 한참 동안 낙심과 좌절과 불평 속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직장에서 쫓겨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걱정, 근심이 없어지며 마음이 기뻤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얼마 동안 지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여관을 시작하면 어떠하겠냐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목재소 직원으로 오랜 동안을 일을 했기 때문에 여관을 지을 나무를 외상으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관을 짓고 나서 그 이름을 Holiday Inn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에 체인을 갖고 있는 호텔 Holiday Inn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장래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어떻게 닥칠지 모릅니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질지, 자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업에 어려움이 있을지, 잘 다니던 직장에서 문제가 있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박국이나 바울과 같은 감사를 하십시다. 만일 이런 감사가 하박국이나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 주시는 말씀은 나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이런 감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성숙한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 우리 중에 어려운 시련과 고난 속에 놓여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위로와 용기를 얻으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 드리는 찬양과 감사를 더욱 값지게 보십니다. 지금 내가 시련과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믿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 지금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그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내가 수완이 좋아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룬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만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을 다시 취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내가 감사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형통할 때나 곤고할 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이 잘 되어갈 때나 잘 되어갈 때나, 하나님께 감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은혜와 복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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