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테아 님, 그대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려면 정신적을 더욱 가난해져야 합니다. 필요한 덕을 갖추는 데 그 대가 놓인 환경을 이용하고, 청빈의 보화를 참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청빈은 현세에서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빛나는 보석처럼 귀한 것입니다. |
그대에게는 선량한 동료들이 있으니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사도들과 수많은 성인들께서 모두 가난한 생활을 하셨고, 풍복한 경우에도 재물에 연연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인들 중에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주의 사람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가난과 고생을 거듭 체험하고서 수도원이나 병언에서 거룩한 청빈 생활을 해 온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성녀 바울라, 놀라의 성 바울리노, 성녀 안젤라등 많은 이들이 청빈하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
필로테아 님, 그대가 요청하거나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귀한 청빈의 덕이 그대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시어 가난한 삶을 사시다가 가난하게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동반자로서 그분의 삶을 본받으십시오. |
필로테아 님, 가난에는 그대에게 장점이 되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그대가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뜻으로 그대를 가난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는 매우 기뻐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작아질수록 하느님의 것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가난의 고통은 그만큼 정화됩니다. |
가난의 두 번째 특징은 실제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관심, 칭송과 보살핌을 받는 가난은 순수한 가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는 달리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멸시와 천대를 받을 정도로 빈곤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가난입니다. 세상 사람과 수도자의 가난을 비교하면, 세상 사람들의 가난은 일반적으로 두 번째 특징의 가난에 속하는데,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나리라 환경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그들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
그들의 가난은 남의 주의를 끌지 못하기 때문에 수도자의 가난보다 한층 더 가난하게 보입니다. 이와는 다른 수도자의 가난을 그대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그 가난이 수도자 자신의 서원과 의지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필로테아님, 우리는 가난을 불평하거나 한탄해서는 안됩니다. 한탄하는 것은 가난을 싫어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가난을 싫어하면 우리는 이미 청빈의 정신을 잃고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대의 가난함을 부끄러워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남이 주는 것을 겸손하게 받고, 거절당하더라도 이를 온순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이때는 성모님께서 사랑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으시고 이집트로 피난 가시던 고난의 여정을 묵상하십시오. 그때 성모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경멸을 당하고 얼마나 혹독한 가난을 견디어 내셨습니까? 그대가 성모님을 본받아 생활할 수 있다면 그대는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참으로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