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낙산구간 트레킹
구간 : 한성대입구~장충체육관
거리 : 4.1km
소요시간 : 약 2시간
낙산(124m)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낮다.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 타락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낙산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하듯 걷기에 적당하다.
한성대 5번 출구에서 나와 길 건너 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혜화문이 보인다.
길을 건너서 계속 직진.
혜화문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년(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웠다. 이 때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혜화문을 나오서 건널목을 건너면 낙산구간 계단이 나온다.
낙산구간 성곽이 시대별로 다르다.
각자 성석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각자성석이라고 한다. 여기 있는 각자성석은 충정도의 음성현(음성군) 백성들이 공사를 담당한 구간의 시점을 표시한 것이다.
한양도성에는 다양한 시기와 유형의 각자성석이 290개 이상 있다고 하는데, 한양 도성에 남아 있는 각자성석은 14c에는 천자문의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하였고, 15c에는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18c이후에는 축성 책임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겼다.
장수마을 입구 벽화에는 메모장에 그들의 바램을 적어 놓았다.
삼군부 총무당
이 건물은 세종 때 없앤 삼군부를 흥선대원군이 1865년(고종2년) 부활시키면서 그 청사로 1868(고종5년)년에 지은 건물로
조선말기에 설치된 삼군부의 청사 중 간운데 중심건물이엇고, 1930년대에 현재 자리로 옮겼다. 총무당의 현판 글씨는강화도
조약때 조선의 대표였던 신현이 썼다.
장수마을에서 빠져나와서 성곽을 따라 걷는다.
암문으로 들어가면 낙산공원
낙산구간은 이화 벽화마을을 둘러 볼 수 있어 참 좋다. 우리도 잠시 벽화마을을 잠시 탐방하기로 한다.
고양이 세 마리가 보인다.
가스밸브를 중심으로 예쁜 벽화를 그려 놓았다.
사람이 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뭐랄까? 음~
성곽너머로 보이는 집들이 성냥곽들을 얹어 놓은 듯하다.
저 멀리 남산이 보인다.
저 멀리 흥인지문이 보인다.
흥인지문 공원너머로 보이는 교회 청탑이 하늘과 맞 닿아 멋스럽다.
흥인지문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었
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으로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동대문 DDP
여성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DDP는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동대문 지역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토대 위에 새로운 미래적 가치와 비전을 더한 동대문의
새 풍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3번 출구를 지나 우측 골목을 접어 든다.
광희문
한양도성의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 불렀다. 태조 5년(1396)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으로,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으며,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내의 장례 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우리는 목멱산 방향으로.
신당동 성당 앞으로 지나서 큰 도로까지 나가서 길을 건넌다.
길을 건너면 아랫쪽으로 동대문 체육관이 보인다.
우측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신라호텔 뒷편이다.
신라호텔 정원이다.
목련에 벌써 봉오리가 피어났다.
잠시 쉬어가는 성곽마루
반야트리호텔을 빠져나가면 국립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