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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소
2025년 3월 9일 / 룻 2장 1~7절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친다. 그러나 우연을 우연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특별한 사건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라는 세균학자는 192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하던 중 우연히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가 다른 세균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페니실린을 발명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큰 업적을 남겼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아이작 뉴턴(Sir lsaac Newton, 1642-1727)은 우연히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우연히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우연으로 끝나버린 것들도 많이 있지만, 플레밍이나 뉴턴처럼 우연히 일어난 일이 우연으로 끝나지 않고 특별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참 많다. 성경에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우연히 일어난 일에 마침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간 사건들이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본다.
■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하여 하인을 메소포타미아로 보냈다. 하인은 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 내 주인의 며느리 될 사람을 순조롭게 만나게 해 주십시오. 만일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할 때 자신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주면 그 여인이 하나님께서 예비한 여인으로 알겠습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한 여인이 왔다. 종이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였다. 그 여인은 종에게뿐만 아니라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우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연이 없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이다. 감사와 찬양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 하나하나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일어난 일이란 믿음이 있다면 감사하게 될 것이다. 즉 세부적인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두려움과 염려가 평안과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 출애굽기 2장에 보면 한 레위 가정에서 사내아이가 하나 태어났다. 당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의 가정에서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태어나자마자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게 법이었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는 그 법을 어기고 태어난 사내아이를 3개월 동안이나 집안에서 몰래 키웠다. 그러다가 더 이상 집안에서 키울 수 없게 되자 부모는 갈대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그 상자에 넣고 나일강에 띄워보냈다. 이제 아이의 생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연히 나일강에 목욕하러 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였다. 시녀를 시켜서 상자를 가져오라고 해서 상자를 여는 순간 아이가 울어댔다. 갓난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는 공주의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땅히 죽여야 하는 히브리 아이임을 알면서도 공주는 그를 나일강에 버려두거나 죽이지 않고 왕궁으로 데려다가 키웠다.
공주가 그곳에 목욕하러 온 것도 우연한 일이고, 나일강에 떠내려오는 상자를 발견한 것도 우연한 일이다. 그런데 상자를 여는 순간 때마침 아이가 울게 되었고, 우는 아이를 보는 순간 공주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서 그 아이는 살아남게 되고, 나중에 그 아이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섭리를 본다.
■ 우리의 삶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침’으로 역사하시어 당신의 뜻하심을 이루어가신다. 룻이 우연히 친족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마침, 보아스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룻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아스는 이방여인이요 남의 아내였던 룻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는데 또 한 번 ‘마침’의 역사가 일어났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보아스보다 먼저 나오미 가족의 재산권을 행사할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는데, 그 친족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기업 무를 자’라고 표현했다. 나오미 가족에게는 기업으로 받은 밭이 있었다. 이제 그 밭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밭이나 땅을 팔 때에는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가까운 친척이 밭이나 땅을 사게 해서 그 가문에 주신 기업을 다른 가문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기 가문이 지켜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보아스는 나오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아니었다.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다. 기업 무를 자의 1순위가 따로 있었다는 말이다. 그 친척이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자신이 사겠다고 하면 보아스는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보아스는 성문으로 갔다. 당시 성문은 성읍의 장로들이 모여 성읍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거나 율법에 따라 재판하는 곳이다.
룻 4:1에 보면 거기에 보아스가 가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리로 기업 무를 자 1순위인 사람이 지나갔다. 보아스는 재빨리 그를 불러 장로들 앞에서 나오미 가족의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1순위인 그 사람이 처음에는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자신이 사겠다고 하다가, 밭과 땅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과부까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말에 손을 털고 만다. 자신은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 그 다음 기업을 무를 자는 보아스였다. 이렇게 해서 보아스는 공식적으로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사게 되었고, 아울러 나오미와 룻에 대한 책임을 가짐으로 해서 룻과 결혼하게 되었다.
보아스가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자신이 사고, 더 나아가서 룻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바로 그때 마침 기업 무를 1순위인 사람이 그리로 지나가게 되었고, 보아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룻과 결혼한다. 이때도 ‘마침’이라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의 역사가 있었다.
두 번의 ‘마침’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은 두 남녀의 결혼으로 끝나지 않았다. 룻기는 두 남녀가 만나 행복하게 결혼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책이 아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통해서 오벳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장성해서 결혼하여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는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이 보아스와 룻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는 단순한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 있는 다윗의 이야기이고, 세계 구원 역사의 중심에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두 번의 ‘마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가장 위대한 왕을 주시려는 계획을 이루어가셨고,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가문을 만들어주셨다. 우연히 찾아갔던 밭이 보아스의 밭이었고, 마침 그곳에 나타난 보아스와 룻이 만나게 되었고, 그것이 다윗의 가문이요 메시야의 가문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에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결코 우연으로 끝나지 않을 일들이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침’이라는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손길이 함께 하셨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마침’이라는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손길이 함께 하셔서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손길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냥 ‘우연’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 ‘우연’을 통해서 ‘마침’의 역사를 이루어가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도 못한다면 나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조금 힘들다고 짜증을 내지 말고 살아야 한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마침’의 역사를 베푸실 것을 기대하며 살면, 힘들지라도 찬송을 부르면서 살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 ‘마침’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마침이라는 단어 다음에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도 ‘마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형들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고 전쟁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알아보기 위해서 다윗이 전쟁터에 갔을 때, 마침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다윗이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다윗은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지만 물매돌과 막대기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서, 골리앗을 죽였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고 결국 왕이 되었다. 골리앗을 죽인 그 사건에도 ‘마침’의 역사가 있었다.
■ 역대하 18장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어 있을 때였다. 남 유다 여호사밧 왕과 북이스라엘 아합왕 사이에 동맹을 맺었다. 여호사밧 왕이 아합왕을 찾아갔을 때, 아합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길르앗 라못은 원래 우리 영토였는데 아람 사람들에게 빼앗겼다. 이제 우리 둘이 손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을 빼앗아오자.’ 그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아합 왕은 어용 선지자 400명을 불러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대답하도록 했다. 400명의 선지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여호사밧 왕이 볼 때 좀 이상했다. 그래서 쌀값이라는 선지자를 불러서 다시 물었다. 쌀값이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400명의 거짓 선지자의 말은 악한 영의 꾐에 빠져 한 말입니다. 이번 전쟁에 나가면 왕은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여호사밧과 아합왕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아람과 싸우러갔다. 그때 아합왕이 기발한 꾀를 내 여호사밧에게 제안한다. ‘당신은 왕복을 입으십시오. 나는 왕이 아닌 것처럼 변장하고 전쟁에 나가겠소.’ 아합이 그렇게 제안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가야 선지자가 이번 전쟁에서 자신이 죽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믿지는 않지만, 왠지 두려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아람 군대에는 왕을 죽이기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 특공대는 일반 병사와는 싸우지 않았다. 오직 왕을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는 군인들이다. 그러기에 만일 자신이 왕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면 그 특공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죽게 될지 몰랐다. 그래서 자신은 왕이 아닌 것처럼 변장하고 여호사밧을 높여주는 것처럼 해서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고 나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이 아합왕을 정확히 맞혔고, 결국 아합왕은 죽고 말았다. 그 화살은 특공대가 아합왕을 죽이기 위해서 쏜 화살이 아니었다. 일반 병사가 그냥 무심코 쏜 화살이다. 우연히 쏜 화살이었는데, 변장한 아합왕의 갑옷 솔기에 정확하게 맞아서 아합왕이 죽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아합왕이 누군가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면 이 아합왕은 우연히 죽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렇게 된 것일까? 우연히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이 분명히 있었다.
■ 에스더 말씀에도 ‘마침’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 어느 날 안 할 수로왕이 저녁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왕궁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기록한 역대일기를 가져오라고 해서 읽게 만들었다. 그 역대일기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아서 우연히 읽던 그 역대일기를 통해서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내시 두 명이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드개가 알고는 왕후 에스더를 통해서 음모를 막았다. 우연히 읽은 역대일기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그때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을 주었는지 묻는다. 아무 상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밖에 누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자, 하만이 거기 있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다.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하만은 왕이 자신을 부를 줄 알고 거기에 온 것이 아니다. 모르드개를 죽이도록 계획을 세우고 왕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 온 것뿐이다. 그런데 왕이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리겠다고 마음 먹은 그 순간에 마침 하만이 거기에 와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오히려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에 태워서 하만 자신이 직접 그 말을 이끌고 온 성을 돌아다니며 모르드개의 신하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모르드개를 죽이고, 모르드개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유대인 전체를 죽이려고 했던 하만의 음모는 틀어지고 말았다. 결국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하만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유대인을 모두 죽이려고 했던 계획에서 하만의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고 만다.
모르드개가 죽을 위기에서 존귀함을 받고, 오히려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던 하만의 기가 꺾이고 하만이 죽음에 이르는 그 전환점에 ‘마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백성 유대인을 살리시기 위해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나타낸 말씀이다.
■ 하나님의 일하심에 우연이란 없다. 미국 펜실베니아주를 상징하는 새가 있는데 바로 갈매기이다. 그 배경에 이런 사연이 있다. 펜실베니아 지역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 정착해서 힘들게 벼농사를 짓고 드디어 수학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셀 수도 없는 수많은 메뚜기 떼가 밭을 점령하고 곡식을 파먹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손이나 막대로 메뚜기를 쫓아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청교도들은 모두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절망하고 낙심하고 있던 그때 주일도 아닌데 교회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종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다 모이자 종을 친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기도합시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마칠 무렵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밖을 쳐다보니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수많은 갈매기 무리가 날아와서 곡식을 먹고 있던 메뚜기 떼를 사정없이 잡아먹고 있었다. 이 일로 사람들은 메뚜기 걱정을 덜었고 이듬해 농사까지 풍작을 거뒀다. 갈매기들의 배설물이 땅에 좋은 비료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 펜실베니아 주를 상징하는 새를 갈매기로 정했고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있다.
갈매기들이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날아온 것이 그저 우연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열심을 다해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연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가 있다. 우리는 우연히 만들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계획이 분명히 있다. 그 계획하심을 발견해 나가는 기쁨을 찾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잘 먹고 잘 놀고 잘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만드신 분, 나를 설계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그분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 어느 신문에 한 할머니의 생활 수기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운명인 줄 알았더니 시련이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생활수기이다. 20살 난 외아들이 갑자기 불치의 병으로 누우면서부터 기구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가산을 다 탕진하고, 50살이 넘어 방직 공장 직공생활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너무너무 힘든 삶 때문에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사 모았다가, 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차마 죽을 수가 없었다. 힘든 삶의 나날들을 술로 화를 달래던 남편마저 위암으로 죽자 절망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다. 앉은뱅이 아들과 함께 밤잠을 안 자며 종이봉투를 만들어 푼돈을 모았다. 그러다가 아들을 시계수리 학원에까지 보내게 되었고, 아들은 불구의 몸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최우수상을 받으며 졸업하였다. 이제는 집도 장만하고 시계 가게도 차릴 수 있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전파되자,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자진하여 이 할머니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찾아왔고, 많은 사람의 축하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우연히’를 통해 ‘마침’의 역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주어진 작은 삶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다. 본문의 룻도 늙은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보리밭에 나가 열심히 이삭을 주었다. 그러다가 ‘마침’의 역사를 통하여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다. 힘들다고 희망을 포기해버리면 ‘마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가 없다.
■ 새옹지마 / 한 사업가가 인도에 갔다가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가 길을 제대로 모르고 헤매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를 놓칠까 노심초사하는데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그 택시 기사에게 원망과 욕설을 퍼부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비행기를 3시간 30분 동안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투덜대면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TV 속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놓쳤던 그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속보였다. 그 후, 그는 크게 반성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좋을지? 나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교훈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옹지마’라고 한다. 인생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진짜 해가 될지? 득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어떤 기쁨이 이후에는 고통으로 판명되기도 하고, 고통의 사건이 이후에는 즐거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 고통스러운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조금 시원한~cool 하게 받아 드리자. 이것이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다가올 일을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주어지는 매사에 ‘길흉화복’은 하늘에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
결론으로 이영표 선수의 간증을 본다.
내가 하나님을 만난 건 2001년이었는데, 처음 믿게 됐을 때는 누구든지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번은 나를 보던 선배 형들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 하나님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입만 열면 하나님 얘기냐’ 그냥 너 혼자 열심히 믿으라는 얘기였다. 그때 숙소로 돌아오면서 ‘맞다. 나만 열심히 믿으면 되지 왜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또 성경에 대해 아는 척, 잘난 척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제 방에 들어와서 한 6개월 전에 어떤 분께서 주신, 읽어야지 하면서 들고만 다니던 책을 꺼내 가운데 부분을 딱 폈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진리를 아는 자가 진리를 모르는 자 앞에서의 침묵은 죄악이다.’
너무 깜짝 놀랐다. 하루 이틀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나 같은 죄인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고 응답하시는가? 너무 깜짝 놀라서 며칠 후에 다시 그 책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 구절을 찾으려고 몇 번이고 자세히 뒤져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어떤 자리에 가서 하나님 이야기를 하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지거나,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 이야기를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 구절이 떠올랐다.
2002년 월드컵을 이틀 앞둔 어느 날. 2002년 월드컵을 이틀 앞두고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회복까지 3개월 진단을 받았다. 너무 서운해서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했다. ‘제가 국가대표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월드컵에 나가게 하신 분이 주님이신데 여기서 부상을 당하면 지난 1년 반 동안 고통스러운 훈련을 이겨낸 시간은 도대체 뭡니까?’ 그렇게 실망해 있던 중 한 선교사님께서 ‘욥기’를 읽어보라고 하셔서 말씀을 읽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제가 말로는 하나님을 위한 월드컵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실제로는 ‘잘해서 실력을 인정받아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아쉬움과 원망이 죄송함으로 바뀌면서 회개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지금 너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뭐니?’라고. 나는 “축구요, 월드컵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걸 날 위해서 포기할 수 있니?’라고 또 물으셨다. 나는 ‘이제 정말 포기해도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때 제 마음은 정말 아쉬움이 아닌 기쁨이었다. 다음 날, 언론에는 이영표 선수는 교체된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나는 월드컵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고 기도한 후에 히딩크 감독님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침에 일어났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다. 완전하진 않지만, 뛸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회복이 돼서 세 번째 포르투갈전부터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부상 때문에 경기를 열흘 정도 쉬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출전한 포르투갈 전에서 저는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박지성 선수의 골을 어시스트하게 됐고, 더 놀라운 건 경기가 끝난 후 내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가 되었다. 사실, 나는 기도하면서 ‘골을 넣지 않고 어떻게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라고 기도했었다. 그런데 경기가 다 끝난 후 몇몇 선수들과 무릎 꿇고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셨고, 또 그 장면이 중계되게 해 주셨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우리의 왕이라는 사실을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신앙은 우연을 섭리로 해석하게 한다. 이것이 섭리 신앙으로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서 섭리 신앙을 철저히 가지도록 훈련하신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이 빠지는 것도 하나님의 간섭하에 일어난다.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얼마만큼 섭리를 인정하느냐? 그것이 믿음의 척도가 될 것이다(칼뱅). 우연과 섭리는 모순되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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