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덕분에 독서량이 늘었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아들방에는 다양한 책이 많았다. 그 책을 무시로 읽다보니 밥상머리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고 재미도 쏠쏠했다. 사십 대 후반에 읽은 『아리랑』은 삼십 대 중반의 아리랑과는 달랐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리랑을 읽고 A4용지 50쪽으로 정리했다. 『태백산』을 다시 읽고 31쪽으로 정리했고 10년 뒤 『한강』을 읽고 42쪽으로 정리했다. 사색의 폭과 깊이는 나이에 따라 변하고 있었다.
지금은 정리했던 독후감과 『아리랑 연구』을 읽고 이 글을 쓴다.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과 한강, 32권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울었고 어머니의 굵은 주름과 손마디가 이해되어서 또 울었고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부르시던 노래의 한을 알게 되어 통곡했다.
지지리도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안을 일으키고 동생들 공부시키려고 손끝 성한 날이 없었던 누님을 생각하며 한밤의 별을 찾았다.
조정래는 「글감옥에서 탈출」에서 ‘민족주의가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토대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듯이 인류 보편성도 모든 민족이 존재가 공평해질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으로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는 아직 유효하다.’라고 했다.
아리랑에서는 ‘지난날 식민지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모든 사람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 되어 민족 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 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 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 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민족 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 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4년 8개월의 지필 기간을 거친 끝에 2만 장의 분량으로 탈고되어 12권의 대하소설로 간행된 『아리랑』은 제1부 「아, 한반도」, 제2부 「민족혼」, 제3부 「어둠의 산하」, 제4부 「동트는 광야」로 구성되어 있다. 다루는 시간대는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기 1년 전인 1904년부터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까지 41년간에 걸쳐져 있다.
아리랑은 그 무대가 김제 만경 중심의 곡창지대, 군산, 서울, 함경도와 만주, 연해주, 하와이, 일본 등 당시 우리 민족의 생활현장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아리랑은 대하소설인 만큼 기본적으로 만인보 작성과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송수익, 공허, 정도규, 수국이 같은 인물이 주체가 된 사건들이 뼈대를 이룬다면 무명의 존재들이 주체가 된 사건들은 살과 피를 이룬다. 이 소설에서 수난과 민족사는 감골댁 가족, 송수익과 그 아들들, 정도규 형제 등이 이루어 내는 가족사에 응축되어 있다.
제1부는 동학군 궐기 직후에서 한일합방을 거쳐 토지조사령이 발표되기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일진회, 동학, 의병, 제1차 한일협약, 한일합방, 하와이 이민, 스티븐스 암살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나타난다. 제1부에서는 살인, 강간, 음모 등의 악행을 서슴지 않는 일본 세력과 친일파의 행동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제2부는 토지조사가 시작된 1912년경부터 경신참변이 있었던 1920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전국토지 조사 실시, 역둔토 특별처분령, 장인환 사건, 하와이에서의 대조선국민군단 창설, 3·1운동, 만주에서의 여러 단체에 의한 독립투쟁, 공산주의 바람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펼쳐진다. 토지조사와 그로 인한 조선 농민들의 몰락상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토지조사령의 진상을 파헤치면서 경제적 침탈을 역설한 것은 지금까지 일제를 다룬 역사소설과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점이라 하겠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침략보다 경제적 침략이 더 무서울 수 있다.
제3부는 1920년에서 만주사변이 있었던 1931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관동대지진, 공산주의 운동 전개, 조공 붕괴, 아리랑 영화 상영, 신간회 창립, 만주에서의 독립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제3부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는 데 두드러지게 힘쓴 부분이다. 일본인 지주와 친일파들이 점점 힘이 강성해지는 가운데 온갖 횡포를 일삼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독립운동하는 존재들이 개인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불행한 처지에 빠지고 마는 장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인간을 파악하고 그릴 때 피와 살 그리고 뼈 등 여러 요소에 골고루 주목했다는 증거가 된다. 아리랑에서는 자기 한 몸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고 자기 가족보다는 민족을 우선 생각하는 숭고한 개인의 운명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사의 면모를 그리면서도 그 개인의 인간다운 모습을 그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4부는 일본군에 의한 재만 조선독립군 대토벌이 시작된 1930년대 초에서 해방까지의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조선독립군 대토벌 작전, 일장기 말소 사건, 선만척식회사 창립, 코민테른 7차 대회, 조선족 중앙아시아 이주령, 진주만 폭격, 정신대와 징용 강제 등 역사적 사건을 확인한다.
일본의 패망을 전제로 하면서도 송수익, 공허, 오삼봉, 방영근, 송가원, 필녀, 수국이, 옥녀 등을 비롯한 대승적이며 투쟁적 인물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나 그 운명의 결말을 밝은 쪽으로만 그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죽는 것으로 그려놓아 비극적 색채를 강조한다. 작가는 조국이 오랫동안 식민지 상태로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보다 투쟁적 인물이건 범상한 인물이건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 했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이제 일본을 가슴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머리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글감옥에서 가출옥」에서 작가는 ‘나는 『아리랑』을 왜 쓰며,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부가 바뀔 때마다 작가의 말을 통해 대충 밝혔다. 분단 대립으로 반토막 나고, 친일파들의 의도적인 차단과 망각을 조장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구체적이며 총체적으로 바로 알고, 식민지 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굴욕감과 패배감, 수치심을 진실한 역사 사실들을 통해 우리의 식민지 시대는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였음을 확인시키고, 우리 모두에게 상실되어 있는 민족적 긍지감과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라고 진술했다.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제목이 왜 『아리랑』인지 이해되었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죽어간 식민지 시대의 수많은 젊은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삶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던 이 땅과 그 땅을 벗어난 아득한 외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조선인들, 이들의 기막힌 사연과 사연을 작가는 열두 권의 책으로 압축시켜 놓은 것이다.
온갖 모순과 갈등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옹호하며 전파하는 존재가 지식인이다. 그 지식인은 작가이기도 하고 사회지도층일 수도 있고, 너와 내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고 지식인이 제 역할을 하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통일 대한민국을 아리랑에 담아본다.
2024.7.11.(14)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3부작 32권을 다 읽어셨군요. 염상진의 열정에 버금갑니다.저는 오래전 태백산맥만 읽고 숙제로 남겨 둿는데....
대단한 독서광의 표상입니다. 32권을 읽고 요약 정리까지. 밥을 먹어 배부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소화까지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자세에 경의 감을 표합니다. 독서수필의 표본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글을 통하여 그 대강을 짐작해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희회장님 대단한 독서입니다 독서는 곧 훌륭한 작가를 만듭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엄청난 독서량에 감동입니다
회장님 많은 양의 독서량에 독후감까지 대단하십니다
과연 회장님 다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