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석정동(돌우물골)
위치: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구단(壇)터.
1844년 12월, 소팔가자로 돌아온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한테 장래가 촉망되는 신학생으로 인정을 받아 최양업과 함께 부제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김대건은 서둘러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에 들어가고자 했으며, 조선의 신자들에 따르면 12월 말이 조선 입국에 가장 적당한 시기였고, 또 김 프란치스코라는 신자가 그들을 맞이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해박해 이후 더욱 엄중해진 변문의 경계로 인해 서양 사람인 페레올 주교는 조선에 들어갈 수 없었고, 김대건 부제만이 조선교회의 밀사들을 따라 변문을 통과하였습니다.
1845. 1,15일, 서울 도착 . 돌우물골 (석정동)에 유숙 .
한양에 도착한 즉시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의 지시대로 앞으로 전교 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으며, 신학생 선발, 조선 지도의 작성,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 수집, 안전한 가옥 매입 등이 짧은 기간에 그가 해낸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조선과 상해를 잇는 해로를 찾아내는 일은 더욱 어려웠지만 이러한 일들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마침내 귀국하고 석 달쯤 되어 상해로 출발하는 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845. 4.30일, 선교사 영입을 위해 현석문등 11 명의 조선인 교우들과 함께 제물포 출발 .
하느님의 보호로 건강이 회복되자 준비해 온 150냥으로 배 한척을 사서 성직자를 맞을 채비를 했다.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기해박해 때 남편이 순교하고 이리저리 떠 돌며 유리걸식하고 있음을 알고서도 어머니를 찾아 뵈올 엄두도 못내니 김대건은 현석문 등 11명의 교우들과 그해 4월에 상해쪽을 향해 배를 띄웠다.
1845.6.4.일, 상해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