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성지 새남터"
새남터는 한양성 밖 한강변의 노들 나루터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얕은 모래언덕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새나무터'의 준말이다 억새와 나무를 합한것이 '새나무'라고 합니다)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과 국사범과 같은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성삼문 등 사육신(1465)과 남이 장군(1468)이 처형되기도 했던 곳인데 조선 후기에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성직자들이나 지도층 신자들의 처형지로 이용 되었다.
신유박해 때인 1801년 5월 31일 주문모(야고보)신부가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여 이곳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그리고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제 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순교하였고 1846년 병오박해때 한국의 최초의 사제 김대건(안드레아)신부와 도리 신부,프티나콜라 신부,푸르티에 신부,그리고 정의배 회장과 우세영이 모두 군문효수로 순교하였다.
이 가운데 11명이 1984년 5월 6일 성인으로 시성 선포되어 새남터는 중요한 순교성지로 "영광의 땅" 이 되었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 또한 2002년 하느님의 종 증거자로 선정되어 시복시성 대상자로 인준을 받았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의 노력으로 1950년 한국 천주교 순교 사적지로 지정된 후 1956년 7월 8일 "가톨릭 순교 성지" 라는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지고, 1957년부터 한국순교복자 성직 수도회가 이 사적지를 관리해 오고 있다. 서울 대교구에서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아 새남터 본당을 설립하였고, 1987년 9월 12일에 한국순교복자성직 수도회가 한국 전통양식으로 기념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순교성지 새남터 성당에서는 2006년 9월 3일 지하 전시관을 개관하고 새남터에서 순교한 9위와 타지역에서 순교한 5위의 성인유해를 모시고 있다.
[[[새남터성지 기념관, 사진촬영금지 입니다.
새남터성지에서는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를 증거한순교자들을 현양하고.. 모든신자들이 순교 정신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하기 위해 2006년 9월3일 순교자 기념관을 개관 하였다.]]]]]]]
{{{대성전 내부의 사진}}}
♤♤♤♤외부의 조형물과 새남터 형장♤♤♤♤
☆☆☆영상실에서 관람☆☆☆☆
삼성산성지를 둘러보고, 오후에 3시 미사가 있어서
미사를 드렸답니다.
대림2주 새남터 신부님께서 마지막 미사를드리는데, 임마누엘성가를부르시고, 신자들은 여기저기 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저도 마지막 강복을 받으면서, 저도 눈에 눈물이 고였답니다.
다른곳에 가셔도 항상건강 하시고, 꽃길만 걸으시기를 바라고 바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