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사도행전 15장 13-16절『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다시 씌우지 말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베드로가 한 말을 듣고 바로 받아드리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에 대해서 말을 하니 잠잠해진 것이다. 표적과 기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어서 야고보도 같은 말을 계속 이어나간 것이다.
구약성경에 이방인 통해서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운다고 말을 하지 않았느냐 라고 야고보가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되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 17-18절『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레겐 퀴리오스 포이온 타우나) 함과 같으니라 (εστιν τω θεω παντα τα εργα αυτου에스틴 토 데오 판타 타 에르가 아우톤)』
이것은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레겐 퀴리오스 포이온 타우나”는 이 모든 것을 행하시는 주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에스틴 토 데오 판타 타 에르가 아우톤) “그의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에게”라는 말로 다른 사본에는 있지만 여기에는 빠져 있다. 17-18절 두 문장을 연결하여 다시 번역하면『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영원 전부터 그의 모든 일을 행하심을 알게하시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으니라』이다.
아모스 9장 11-15절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9장은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6절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환상이며, 7-1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의 모습을 묘사하고, 1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킨다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는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아모스서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회복시키시겠다는 소망의 말씀으로 끝맺고 있다.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끔찍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다시금 회복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모스는 7-9장에서 다섯개의 환상 보았는데, 그 중에서 본문에 기록된 성전기둥이 무너지는 환상은 가장 치명적인 심판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성전은 이스라엘의 심장이며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즉 선택된 백성들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구별된 장소였다.
9장 11-12절의 말씀은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여행 보고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듣고 인용한 말씀이다. 야고보 사도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사실에 대해 아모스 9장 11절 이하를 인용하면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했다.
아모스를 통한 예언이 약 760년이 지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다. 그래서 이제는 유대인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백성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이제 더 이상 유대인만 선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율법주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만, 율법도 지켜 나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임마누엘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초대교회가 유대교적 잔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할례 문제로 인해 자칫 예루살렘교회 역시 분란에 휩싸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공식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종교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바로 본문 속의 제1회 예루살렘공의회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주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할례 여부, 즉 할례가 구원에 절대적인 조건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 회의석상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에 대한 할례를 반대하면서, 인간의 그 어떤 공로나 의가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음을 강력하게 역설하였다.
베드로는 율법이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가 복음의 중심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이방인들도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다.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때문이 아니라 호 로고스를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텐 피스텐은 그 믿음이다. 그 믿음은 바로 호 고로스를 받아드리는 믿음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성도가 세례를 받고, 성령이 임하면, 성도의 심령에 성전이 세워지는데, 이 성전에 호 로고스가 말씀으로 임재하시는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성전이 세워진다는 말씀이다.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에 감동된 성도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말씀을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