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스베덴 보리(1688.1.29-1772.3.29)
견신자 스웨덴보르그(스베덴 보리로 통일하였음) 전 조지. 트러브리지 저
p103
<아드바사리아>(성서색인)는 스베덴 보르그가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취한 두 번째 발걸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문자적인 의의는 창세기 3장 이후로는 규명하지 않았다....그는 창세기 제 1장에서 자연계의 창조가 아니라 신의 나라의 창조와 건설을 말하고, 영혼의 중생에 대한 것을 말 하였다.(전혀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르다.)
[ 창조를 다룬 모세의 기사속에는 곳곳에 성서의 이중적인 의의 즉 자연의와 영의가 있다는 것은 정원 한 가운데 생명의 나무와 지식의 나무에 의하여 명백하게 나타나 있으며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과 지식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영적인 것인데 그것들이 나무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자연의 가장 외적인 부분에 발생하는 것은 그 기원을 천계에서 얻고 있으므로 땅에 속한 것 속에서 하늘에 속한 것을 또는 자연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은 모두가 신의 마음속에 나타나 있는 사물은 자연의 가장 궁극적인 부분속에 현실적으로 구체화되지 않을수 없으며 또한 거기에 천계의 관념에 따라서 형태지워지지 않을수 없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서 모든 상응의 대원리가 발하고 있고 그 상응을 우리는 신의 허락하에 정당하게 연속적으로 더듬어 가게 될 것이다. ]
(영계일기1748, 3,4)
[ 이제 나의 마음은 형체(육체)적인 것에서 끌어내어져 영적이고 천적인 영들의 사회 안에 있을수 있는데도 늘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의 사회 안에 아무런 이상이나 차이 없이 있을수 있는 상태속에서 거의 3년간 33개월 동안 있음으로 해서-이것을 영들도 이상하게 여기고 있지만- 내가 필요한 비용 같은 일로 고민하고 그 일로 편지를 쓰거나 함으로써 나의 마음이 잠시 동안 그 일에 사로잡혀 버린 듯이 내 생각이 세상사에 강하게 집착할때에는 나는 소위 형체적인 상태에 빠져버려서 영들이 마치 나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나와 이야기를 나눌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과 비슷한 경우가 전에도 일어났다. 그것에 의하여 나는 영들은 이승의 또는 형체적인 걱정거리에 깊이 관계하고 있는 인간과는 이야기 할수 없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신체의 염려는 이를테면 마음의 관념을 끌어내려서 형체적인 것 속에 가라 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천계비의 책에 대하여
성경에서 영의가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마음이 문자의 뜻에만 머무르고 있는 동안은 그것이 그러한 영적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수가 없다(고 스씨는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리하여 창세기의 이 최초의 여러장의 문자적인 뜻에서는 그 각 장은 세계의 창조낙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덴 동산, 최초의 인간으로서 아담과 하와를 다루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또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이 각장안에 들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각장은 오늘날까지 결코 계시되어 있지 않은 아르카나(비의)를 내포하고 있음이 다음 페이지에서 충분하게 밝혀지게 될 것이다.
창세기 1장은 내적인 의미로는 전반적으로 인간의 새로운 창조 즉 인간의 재생/중생을 다루고 있으며, 특정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태초의 교회를 다루고 있고 더구나 그것은 한 음절이라고는 하지만 영적인 것을 나타내며, 뜻하고, 함축된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천계비의와 그후의 대부분의 저작속에서는 스베덴 보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의 내적 의의를 해설함에 있어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이하의 저작에서는 주님에 의해서 주님이라고 불리어질 만한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고 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천계에서 모두 주님으로 인정하며 또한 받아들여지고 있다. ](14)
예수 그리스도안에 신성이 있다는 교의는 스베덴 보리 신학의 핵심이요 바탕인 것이다.
스베덴 보리가 이 주목할만한 책의 저자이며 또한 그가 영과 천사와 사귀고 있다고 언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는 사람들의 흥미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융그 스틸링은 이렇게 쓰고 있다.
[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이 지적이고 학식이 있는 경건한 인간은 영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고 여러번 식탁에서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회화중에서도 “이점에서 나는 조금 전에 바울, 루터, 또는 죽음 사람들과 이야기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크게 뜨고 이 분이 제정신으로 그런말을 하는 것인가 하고 이상하게 여겼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그는 어떤 반대도 내세울수 없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런 이야기의 진실성이 비난되어 이 선량한 신사는 엉터리나 사기꾼이라고까지 공격 받았다. 그러나 이 공격을 나는 강력히 부정한다. 스베덴 보리 그는 사기꾼이 아니라 경건한 기독교도였다. 그가 실제로 영과 교제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전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그는 질문을 받으면 분명하게 그가 겪은 경험을 말했지만 그것을 믿어 달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필라델피아의 스웨덴 교회의 교구 목사인 니콜라스 콜린씨는 [아무도 그가 영계와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인 교섭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심하려고 하지 않았다. ]고 스톡홀름에서 말한바 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의 두드러진 증명을 얻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비난과 의심과 조소가 있었다. 하지만 스베덴 보리는 사명을 강조했다.
헤프켄 백작은 일찍이 스베덴 보리에게 [ 당신은 그 교의에 그렇게까지 많은 조소를 받은 것으로 예상되는 기적적인 설화를 어째서 공표했는가? 만일 그것이 공표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극히 합리적이었을 것 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간직하고 그것을 세상에 공표하지 않는 편이 당신을 위한 취선의 방법이 아니였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베덴 보리는 [ 나는 그것을 공표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 일로 나를 조소하는 자는 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내가 어째서 환상과 허위를 위하여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겠는가? ]하고 그는 덧붙여 말하고 있다.
왕에까지도 그는 확신을 가지고 주장했다. 구텐브루이의 종교회의에서 그의 저작에 내려진 발매금지령에 대하여 그는 항변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 나의 구세주가 자신을 내 앞에 드러내시고 내가 한 일을 또 앞으로 해야할 일을 하도록 명하신 것과 그 때문에 주님은 나에게 천사와 영과의 교제를 허락하신 것을 나는 모든 기독교국 앞에 즉 영국,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에서 또는 이들 나라에서는 여러 기회에 폐하의 어전에서 폐하와 함께 식사하는 영광을 입었을때 폐하의 가족과 5명의 원로 그 밖의 사람들 앞에서 밝힌 바 있으며 그때에 나의 사명이 유일한 화제거리로 있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
텟신 백작과 대화중에
[ 나 자신은 최근에 와서 신의 존재 그 자체까지 실제로 부정되고 있을 만큼 심해진 암흑과 과오로부터 이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주님은 이런 종류의 계시를 나 자신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 라고 말했다.
[ 참다운 환영과 영계에 있는 자와의 교제에 의하지 않고는 전에 발견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발견할수 없었을 것 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나에게 이것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기독교도의 영원한 복지와 관계가 있는 숭고한 관심 때문인 것 입니다. ]
헤프켄 백작은 이렇게 쓴 바 있다.
[ 그는 자신은 영적인 것들과 어울리기에는 너무 늙었으며 이런 어리석은 생각에 굴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신의 영원한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나에게 대답하고 자신의 계시는 진실한 것이며 또한 보고 들은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나에게 단언했다. ]
첫댓글 [카페] 주님을 사랑하는 예수교회에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