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청일전쟁
19권은 청일전쟁으로 시작하였다.
남의 나라끼리 싸운 이 전쟁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 원인과 결과가 우리 나라와 너무 밀접하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동학 농민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을 간섭하고 싶었던, 일본과 청은
동학 농민 전쟁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군사를 조선에 투입시켰다.
조선에 투입된 일본과 청은 충돌하게 되었다.
청일전쟁의 시작은 당사국이 아닌 남의 나라인 조선에서 전쟁을 하였다.
일본은 고종을 유폐시키고, 개화파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개화파 내각을 협박하여 조일맹약을 맺게 된다.
이 조일맹약은 청일전쟁에 조선 노무자가 동원되고, 조선의 양곡을 공출할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이런 지원을 받은 일본은 막강한 신식 무기를 앞세워
평양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등 청나라를 밀어붙이며 북진을 하였다.
일본은 압록강을 넘어 중국땅에서 전투를 벌이고 산동성까지 진출하였다.
결국 이 전쟁은 일본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 전쟁의 끝나고 시모노셰키 조약이 체결되어 중국이 일본에 굴복하게 되었고,
이 전쟁 이후 일본은 한반도 침략 정책을 가속화하였고,
서양 열강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국을 편들거나 일본을 편들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도 조선을 편들어 이해주려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이다.
1. 급변의 시대
동학 농민 전쟁 때 일본과 개화파가 정권을 잡고 민씨 세력을 몰아냈다는 것은
지난 18권에서 언급된 바이다.
이때 개화파들이 주도하여 개혁정책을 내놓았는데, 이를 갑오개혁이라 한다.
군국시무처를 두어 정무를 논의하였고,
김홍집을 총재로 한 중심으로 내정 개혁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였다.
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개국 기년을 사용하였으며,
신분 차별을 처례파고 개가 금지도 철폐하고,
노비제도 폐지하고, 과거제도 폐지하는 등 봉건주의 제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은, 일본인이 고문관으로 조선에 조언을 해주는 고문정치를 시작하였다.
일본은 독자적으로 가려는 조선 개화파와 잦은 대립이 일어나면서,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주도하여 흥선대원군과 개화파를 몰아내고,
고종을 복권시켰다.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였지만, 이는 일본의 내정간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고종도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할고 하였지만, 이미 전세는 뒤집기 어려웠다.
한편, 이 당시 민비는 불면증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민비는 일본과 의견을 완전히 달리하였는데,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몰아내려는 정책을 내세웠다.
그래서 박정양, 이범진, 이완용 등 친러파들을 입각시겼다.
이렇게 되자 일본 공사 이노우에는 무력으로 이를 해결하였다.
그래서 이노우에는 자신의 후임으로 미우라를 추천하였는데,
미우라는 무단파이자 군발이 출신이었다.
미우라는 민비 살해 계획인 여우사냥을 구체화한 인물이었다.
총칼을 들고, 남의 나라 왕궁에 침범하여 국모를 죽였으니,
이 얼마나 한스러운 일인가?
그저 국력 약한 것을 한탄해야 하는가?
그런 일본이 만행을 저질렀지만, 조선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이렇게 민비를 죽인 이후, 친러파를 몰아내고, 친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이름만 갖다 붙인 개혁을 실시하였다.(을미개혁)
이 개혁으로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해졌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을미개혁에 단발령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단발령으로 인해 전국은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은 유림의 자존심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유림 세력은 동학도들도 배제시키고,
일반 평민, 농민들에 대한 신분 차별이 심했던 것이다.
한편, 고종은 민비가 살해된 이후 더욱 외롭고, 두려운 날을 보냈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위협감에 날을 보냈다.
그런 고종은 일본 몰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그 러시아 공사관에서 친러 내각을 조성하여 나라를 운영하였다.
한 나라의 임금이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할 정도로 당시 조선은 이름만이 간신히 남아있던 나라이다.
러시아는 처음에는 고종에 관심을 보였지만, 점점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고종은 다시 환궁하였다.
이렇게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나라를 운영한 것을 역사는 아관파천이라 하였다.
2. 대한제국과 독립협회
환궁한 고종은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버리고
대한제국을 건국하였다.
그리고 왕이 아닌 황제라 자신을 칭했다.
이와 함께 고종은 독자적인 지도력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내정개혁을 통해 반대파를 몰아내고, 친위세력으로 내격을 결성하였다.
대한제국의 체제를 부정한 독립협회를 해산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일련의 개혁을 광무개혁이라고 불렀는데,
뒤늦게 고종이 자주권을 찾아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로움과 두려움은 어쩔수 없었는지,
밤마다 잔치를 벌이는 등 심한 낭비벽으로 재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
이 당시 독립협회가 결성되어 대중계몽화를 이끌었다.
그들은 만민공동회를 열어 대중의 이론을 수렴하는 대중정치를 실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이 결과를 정책으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강제이긴 하지만, 정부대표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독립협회의 주요 인사들이 내각에 진출하였는데,
내각에서는 고종관 자주 대립하였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종은 독립협회를 해산시켰다.
이후, 독립협회는 민권운동에 나섰고, 지하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3. 을사늑약과 조선의 멸망
조선의 지리적인 잇점은 주변 열강의 충돌로 이어졌다.
그렇게 일어난 전쟁이 러일전쟁이었다.
이 러일전쟁에서 예상을 깨고 일본이 승리하였다.
이 러일전쟁을 통해 서양 열강들은 조선에서의 일본의 우선권을 인정하였다.
어쩌나 조선은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일본은 이제 아무런 꺼리낌 없이 조선침략을 위한 발걸음을 하였다.
일본은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일진회를 만들도,
일진회 회원들과 보호 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을사늑약)
을사 늑약 이후, 대한제국은 친일내각이 구성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통감정치가 시작하였다.
이때 통감으로 온 이가 이토 히로부미이다.
고종은 연금을 당했다.
연금 당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몰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을 보냈다.
하지만, 이해관계에 눈이 먼 열강들 중 조선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나라는 없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인정조차 하지 못해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억울함에 이준은 병이 생겨 이국땅에서 죽고 말았다.
이 헤이그 사건이 일본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일본은 고종을 폐위시키고, 그의 아들을 즉위시켰으니,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는 순종이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1907년 조선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고,
1910년 조선 경찰을 해산시켰다.
아직까지 나라의 명분이 있었다.
이때 상황은 나라는 있는데, 그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없고,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없는 이상한 나라가 바로,
대한제국의 모습이었다.
을사늑약 소식이 백성들에게 전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의병활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나라빚을 갚아 나라를 되찾자는 국채보상운동도 일어났다.
지신인들 사이에서는 백성들의 계몽이 국력을 키우는 방법이라 생각하여
대한자강회, 신민회 등 여러 단체가 생겨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러던 와중에 해외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는 소식이다.(1909.10.26)
자신의 죽음과 맞바꾼 안중근 의사의 행동하나는 온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더욱 일본에 저항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자, 일본도 더욱 조선병합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한일합병조약이 1910년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올해로 백년이 되었다.
사실 백년이란 시간은 그리 오래된 시간은 아니다.
지난 백년동안 우리나라에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갑작스런 변화가 있어서 백년이 길게 생각될 수 있지만, 백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벌써 안중근의 의사의 뜻은 수백년 수천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의 뜻을 이어오는 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파란집 지붕아래 사는 지능낮은 사람들이 그의 뜻을 따르겠는가?
국회의사당 안에 자신의 밥그릇 챙기는데 열중인 사람들이 그의 뜻을 따르겠는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 그의 뜻을 따르겠는가?
신성한 법을 다루는 이들이 권력의 노예가 된 것을 보면,
100여년 전 윽사늑약을 체결한 을사오적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차피 권력의 노예는 강한 힘에게 달라붙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이야 다른집 지붕의 양반이 권력이 가장 세지만,
백년전처럼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되면, 그 외국세력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세력에 빌붙는 것은 안보는 뻔한 일 아닌가?
이런 우리나라에서 사는법은 그들과 마주치지 않게
법을 잘 준수하면서 사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조용히 지내야 한다.
사실 이렇게 그들의 진실을 지적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적는 것도 무척 가슴떨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무서운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
그밖에 한국사 이야기 19권에서는
개방과 함께 서양 문화가 들어와 변한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책제목 : 한국사 이야기 19 - 오백년 왕국의 종말
지은이 : 이이화
펴낸곳 : 한길사
펴낸날 : 2003년 12월 15일
정가 : 10,000 원
독서기간: 2009.04.23 - 2009.04.27
페이지: 380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