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한국의 용(龍) 상징
일 자 : 2000년 1월 8일
강 사 : 허 균(한국정신문화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한국적 사고를 대표하는 용
안녕하십니까? 허균입니다.
토요일인데도 관심을 가지시고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올해가 용띠해라 그런지 용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용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징물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성격이 너무 다양하고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용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일부분이기도 한 오묘한 상징물이니까요.
우선 용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전통미술을 대할 때의 우리 생각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다양한 미술형태로 나타나는 용을
어떤 측면에서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 이유는 용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용이 갖는 한국적 사고의 대표성을 더욱 중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느날 출근해서 책상에 앉으려 하는데 난데없이 유리컵에 장미가 꽂혀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은 그 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우선 누가 가져왔는지를 생각해 보겠지요.
그리고 장미꽃이 장미과에 속하고 키가 얼마나 되고 하는 등등의
사전적 지식을 궁금해하기보다는
'왜 하필 붉은 꽃을 보냈을까?' 하는 등의 배경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꽃을 준 사람 입장을 고려해 보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전통미술, 유적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자세입니다.
또 탑을 보았을 때 그 탑을 단지 외형적인 형태나 세부적 묘사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왜 이 탑이 이 자리에 있는가?' 하는 물음을 앞서 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를 들어 영동의 영국사(寧國寺) 입구에 가면 만탑동 3층 석탑이 있는데
평지가 아닌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만탑동 3층 석탑의 비밀을 캐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필이면 이 탑이 '왜 꼭대기에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외형보다는 실제로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환경적인, 사상적인 것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문화유적을 답사한다,
혹은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뭔지, 어디에 사는지 하는 정도의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완전히 알았다고 생각지 않지요.
무엇보다 그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유적이란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용에 관한 얘기에도 적용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용 문양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는데
궁궐의 법전, 즉 경복궁의 근정전 위의 황룡, 사정전의 운룡,
근정전 주변 동쪽 계단머리에 새겨져 있는 용, 의복, 의자 등등에
용의 그림이나 조각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쪽으로는 그야말로 흔해빠진 것이 용이지요.
그림이나 건축, 종교 등 너무나 많은 분야에 용이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이 모든 용들을 뭉뚱그려 '용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같은 용이라 할지라도 그 용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고
그 성격들은 우리네 사람의 욕망을 대입시켜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게에 물건이 많아도 필요한 것만 구입하는 것처럼
수십, 수백의 용들 중에서 본인이 원하는 성격의 용을 골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문에 그려진 용과 근정전 법전의 용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은 용의 일반적인 관념도 관념이지만 용 하나 하나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변해왔는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용은 왜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람의 욕망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우리의 다양한 욕망을 다양한 성격의 용에 의해 표현해 왔다는 얘기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빗대어 충족해왔던 것입니다.
저는 용을 연구하면 할수록 사람이 과연 무엇인가를 거꾸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큰 줄기이며 또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궁궐에 표현된 용 상징
이제 용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용이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쉽게 구분해보자면
근정전 천장에 있는 황룡은 임금과 왕권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독 황룡을 그려 넣은 까닭은 노란색이 오행상 권위의 상징이자
모든 것의 중앙이란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즉, 임금의 권위와 만 백성 사이의 중심이라는
두 가지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같은 근정전이라도 동쪽 계단 위 문설주, 난간주에 새겨진 용은 어떻게 다를까요?
동쪽 계단위의 용은 예컨대 사령(四靈)의 하나로서의 용입니다.
수호신으로서의 용이란 뜻이지요.
또 궁궐에 가면 운룡도(雲龍圖)를 볼 수 있습니다.
운룡에 나타나는 구름과 용은 각각 신하와 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용은 자신이 토해놓은 영험한 구름을 타야 신비로움을 더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구름과 용이 어우러진 이 그림은 바로 군신관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신하는 현명한 임금을 모시고,
현명한 임금 곁에는 현명한 신하가 있다는 뜻이지요.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운룡도에 관한 해설이 나오며
군신관계를 중요하게 여긴 우리 나라에서는 궁궐에 운룡도를 그려 넣었던 것입니다.
사찰에 표현된 용의 상징
이번에는 많은 종류의 용들이 등장하는 사찰로 가 봅시다.
사찰에 가면 전각, 대웅전 앞 기둥머리 등에서 용을 볼 수 있고
건물 내부의 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용이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같은 대웅전을 장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성질은 모두 다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대웅전 앞쪽의 두 마리 용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선수(船首)라 할 수 있고
천정의 것은 불법을 수호하는 불법수호의 용인 것입니다.
염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경을 보면 부처님이 설할 때
청중으로 나타나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용입니다.
반야용선은 불교에 있어서 용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도상(圖像)인데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반야용선을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양산 통도사 극락전 뒤쪽 벽과 파주 보광사 대웅전이 있습니다.
통도사의 반야용선은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이 앞장 서고
구름 위의 바다가 표현된 매우 환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의 용과 함께 어떤 경우에는
대웅전 계단 소맷돌에도 용이 새겨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기둥머리의 용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
물(四物)중의 하나인 북에서도 용 조각이 있지요.
그 모습을 보면 보통의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북의 용은
소리 지르기를 좋아하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간의 경우에는 각종 가구 류, 벼루, 연적 같은 문방구, 밥상다리 등에서
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나타나는 용들은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등용문(登龍門) 설화와 같은 소원성취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역학적으로 본 용
이와 같이 엄청나게 다양한 용의 의미와 형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비록 어렵기는 해도 용이 갖는 전체적인, 대표적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동양사상체계의 바탕이었던 주역을 빌려오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주역에 의하면 용은 팔괘 중 진괘(辰掛)에 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역학적으로 본 용의 위치라고 보면 되겠지요.
이 진괘란 것은 방향으로 따지면 동(東)이 되고
인간세상으로 따지면 장남(長南),
우리 신체를 우주로 볼 때는 바로 발(足)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움직임으로 보면 '정지'가 아닌 '움직임'의 괘입니다.
동쪽은 음·양 중 양이며 해가 뜨는 곳입니다.
그리고 대소로 따질 때 대는 양(陽)이고
소는 음(陰)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태어난 남자,
즉 장남은 양(陽)이 됩니다.
그리고 발이란 것도 시작이기 때문에 동인(動因)을 갖고 있다 하여 양이 됩니다.
움직임은 멈춤의 반대인 양입니다.
결론적으로 용은 양의 동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상적으로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게 되었는데
결론이 바로 9×9=81이라는 것 입니다.
동양에서 수 는 1에서 시작해 9로 끝납니다.
음이 극해서 더 찰 수 없을 만큼 찬 음이 드디어 양으로 변해 가는 수 가 바로 10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9가 극양수(極陽數)인 것이지요.
그래서 강력한 양의 성격을 갖고 있는 용을 그리자니
9를 겹으로 놓게 되었고 전체가 81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직접 헤아려 보지는 않으셨겠지만,
이런 이유로 하여 용의 비늘이 81개로 결정된 것입니다.
여기서도 조상님들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었는지 어렴풋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침체된 것보다는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10명의 딸보다는 아들 한 명을 더 좋아했다는 등의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극양의 동물인 용의 도상화
용을 도상화(圖像化) 함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용이 극양의 동물이면서도 보통 범상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의 가장 윗 단계, 수장(首長)으로서의 용을 나타내기 위해
거북이, 자라, 게 처럼 딱닥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과
털을 가지고 있는 일반 동물들,
깃털을 갖고 있는 조류 등에서 골고루 모습을 가져와 조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용의 뿔은 고귀함의 상징인 사슴에서 가져왔고
발은 용맹한 호랑이에서,
발톱은 모든 것을 제압한다는 매의 것에서 가져왔으며
그밖에도 도깨비의 눈, 소의 귀, 지렁이의 배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용 도상화의 특징은 결론적으로 극양의 동물로서
모든 동물의 특징이 종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상(圖像) 이야기가 나왔으니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할까요?
여러분들께서는 삼조룡(三爪龍), 사조룡(四爪龍), 오조룡(五爪龍)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용을 발톱 수에 따라 구분한 것인데
지금 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실진 몰라도
과거에는 이 모두가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만약 도상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난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세조실록을 보면 조선시대 때 해마다 명나라로 사신을 보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사신들은 엄청난 선물과 함께 임금이 쓴 친서나 선물 목록을
보자기로 싼 함에 넣어 가져가는 데 그 보자기에 용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함을 받을 사람이 중국 황제이므로
발톱 수가 가장 많은 오조룡을 그리게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하루는 화원의 실수로 발톱을 4개만 그려서
확인도 안한 채 북경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신의주에 거의 도달했을 때에야 그 사실을 알고 급히 조정에 알리니
임금이 당장 불러 그림을 다시 그려 길을 떠나 보내고는
용을 그린 사람은 물론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장 50대, 70대, 100대를 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도상에 부여한 상징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종 때 청나라와 결별을 한 뒤
원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 이후에야 비로소 오조룡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왕과 왕비라 할지라도 한 단계 낮은 사조룡을 그렸고,
세자는 삼조룡만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나라와 나라, 임금과 백성 등
신분 사회질서 속에 용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실이 이러하니 일반인이 옷에 용을 새기는 등의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아무튼 사조룡 사건 이후 보자기를 그릴 때는
모든 사람들이 엄청 긴장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용 뿐만 아니라 봉황의 깃털 하나 그리는 것까지 그것이 뜻하는 의미가
무척 다르므로 상징물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는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의 아홉 마리 용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용을 계속 만들어 내었다는 얘기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
용이 아홉 아들을 낳았다는 이 설화는
바로 인간의 욕망을 성취시켜줄 신령스런 용을 성
격이 다른 아홉 마리의 용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아홉 마리의 용들은 각각 전공이 따로 있어서
누군가 기원을 하게 되면 백발백중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할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홉 마리 용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 용들간의 공통분모를 찾아보기로 합시다.
첫 번째는 비희( )란 용입니다.
답사를 가면 탑비를 많이 보게 되는데
거북이 모양 비슷하게 생긴 밑 부분을 귀부(龜趺)라 부르지요.
거북이처럼 생긴 귀부가 바로 비희입니다.
용이 거북이처럼 표현되었다고 하면 맞겠지요.
이 용은 무거운 것을 짊어지기를 좋아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석처럼 무거운 물건을 거뜬히 짊어지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희가 비석을 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귀부의 발을 자세히 보면 좌우대칭인 경우가 드문데
그 이유는 귀부가 움직이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길떠남의 목적지가 불국정토(佛國淨土)일 것이고
도교에서는 선계(仙界)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포뢰(蒲牢)입니다.
사찰의 종은 소리가 크고 우렁찰수록 좋은데
모든 사람의 소원이 시방(十方)세계로 널리 퍼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용이 바로 포뢰입니다.
포뢰는 원래 동해바다의 고래를 엄청 무서워해서
고래를 보면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르는데
그야말로 우주를 진동할 만큼 큰 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포뢰를 종 윗부분에 고리로 만들어 넣고 '용뉴(龍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달아놔서 되는 것은 아니고 울게 해야 하므로
포뢰가 가장 무서워하는 고래를 갑자기 출현시킬 양으로
종을 치는 당목(撞木)의 모양을 고래로 새겨 넣었습니다.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물고기 모양의 당(撞)을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선암사가 있습니다.
비록 고래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비늘과 입 모양으로 보아
당초에 고래를 형상화하려고 했던 흔적이 아닌 가 합니다.
세 번째는 공하(蚣 貢)입니다.
이 용의 성질은 물을 엄청 좋아해서 물 가까이 있는 것을 매우 즐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찰 입구나 궁궐 입구를 보면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기 이전을 사바세계로,
건넌 다음을 불국정토로 나누어 상징하고 있는 것니다.
경주 불국사에는 연화교, 칠보교가 있는데 그 밑에는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는데도 교(橋)자를 붙이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상징적 구분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보통 다리를 보면 무지개 모양의 홍예로 되어 있는데
둥그런 부분의 중앙 안쪽 천장부분에 공하가 붙어 있습니다.
선운사의 승선교, 송광사의 우화루, 여천 흥국사 입구의 홍예교 등이 대표적입니다.
공하는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사악한 것을 차단하는 능력를 갖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애자( )라는 용입니다.
애자는 무엇이든 베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무기가 발달해 얼굴도 모르면서 서로 죽이고 살리고 하지만
과거에는 얼굴을 맞대고 창과 칼로 싸워야 했기 때문에
어떤 무기를 가졌느냐가 전쟁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무기 중에서도 칼은 무척이나 중요한 기본 무기였지요.
그래서 칼의 손잡이에 조각된 용 조각은 베기 좋아하는
애자의 능력을 받아서 적을 모두 무찌르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이문( 吻)입니다.
이문은 멀리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보는 능력을 가진 용입니다.
그래서 궁궐건축에 치미, 망와를 보면 이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멀리 본다는 것은 척후가 잘 된다는 의미이고 척후를 잘 한다는 것은
임금이 궁궐에만 머물러 있어도 만 백성을 두루 살필 수 있다는 뜻이므로
모름지기 왕이 가져야 할 능력과 태도, 태평성대를 소원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별히 치미는 용모양이라기 보다는 꼬리 부분 같기도 하고 등지느러미 같기도 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 문양도 이문에서 파생된 것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섯 번째로는 도철( )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철을 보기가 어렵지만
중국에서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용 중 하나입니다.
도철은 무엇이든 먹어 없앤다는 용인데 제기(祭器)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추상화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일곱 번째는 산예( )입니다.
산예를 사자의 고어(古語)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산예는 상상의 동물이므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산예는 겉모양이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특히 불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향로 뚜껑 등에서 많이 발견 할 수 있지요.
산예는 곤수구라는 공을 갖고 놀기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 공에서 새끼사자가 나타나 애지중지 키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에 가면 궁궐이나 사당 앞에 사자가 양쪽으로 버티고 있는데
보통 공을 갖고 있습니다.
몸집은 동물을 닮아 있지만 얼굴은 용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는 초도(椒圖)로써
이 용은 걸어 잠그기를 좋아하는 폐쇄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성문 등을 보면 문고리에 조각되어 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초도가 옆모습이 아닌 앞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마치 귀면처럼 보이지만 문고리에 조각된 것들은 초도를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
아홉 번째는 폐안( )입니다.
폐안은 갈무리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용입니다.
옥문의 자물통을 용 모양으로 만드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폐안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아홉 종의 용은 우리의 욕망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용의 이름은 상황에 따라서 더욱 다양하게 구분됩니다.
예를 들어 용이 되려다 못된 이무기는
사람들의 설정에 따라 만들어진 용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며
탑비에 새겨진 용을 이룡이라고 불러 구분하는 것이나
싸우기를 아주 좋아한다고 해서 이름 붙인 성용,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면서 비를 내려주는 용이 있는가 하면
청룡, 화룡, 울기 좋아하는 맹룡, 등등 이름이 다른 용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 용이란 너무나 가까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용에 대한 우리의 고유관념
민담이나 설화 등을 보면 많은 용들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 어디에서 용이 나타나더니 탑이 솟고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라'
하는 투로 용이 출현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현상들이 잇달아 생겨납니다.
꿈에서 용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몽룡(夢龍)이라 했다는 등의 이야기이지요.
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용이 예견의 힘을 갖는 신령스런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옛날 어린이들의 글자교본인 『훈몽자회』를 보면 용을 '미르 龍'이라 해놓았습니다, '미르'는 순 우리말로서 '미리'라는 뜻입니다.
미리가 무엇입니까? '밥 미리 먹어 놓아라', '미리 가 있어라' 하듯이
예견된, 준비된 이란 의미입니다.
징조가 있어 결과가 나온다고 할 때 앞서는 것이 미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은 예시, 계시의 동물이 됩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심지어는 실록에까지 용이 출현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용이 나타난 다음에 왕세자가 등극하고,
풍년이 들고 하는 등의 내용이 반드시 따라 붙습니다.
용이 무엇인가를 예견해 주는 신기한 동물이라 할 때
이에 필적되는 동물로는 호랑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용과 호랑이는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호랑이에 대한 성격부여는
토끼에게 속아넘어가는 어벙한 동물, 어릿어릿한 동물,
은혜를 갚아주는 호랑이,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로서의 호랑이 등
좋건 나쁘건 사람의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은 다분히 현세 초월적, 예시적 동물로서 성격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용에 대한 기본관념입니다.
용의 현세초월적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앞에서도 언급했던 반야용선입니다.
반야는 큰 지혜, 용선은 용 모양의 배란 뜻입니다.
금강경(金剛經)을 보면 정토로 가기 위해서는 뗏목을 타는데
해안에 도달하면 그 뗏목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즉 방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뗏목은 사바세계에서 불국정토로 가는 이동의 수단으로써
대웅전 기둥 윗쪽의 용 머리는
바로 반야용선의 선수인 것이며 대웅전은 배인 것입니다.
배 안에는 부처님, 보살, 불자 등이 함께 타고 있는데
배는 용두가 향하는 방향, 즉 피안의 세계인 극락정토로 가게 됩니다.
사찰 계단머리에 용을 새겨두는 것은
반야용선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부여한 것으로 이중적 표현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익히 알고 있어서 자세히 언급할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흔히 쓰는 말중에 등용문(登龍門)이란 것이 있습니다.
용문은 중국 양자강 상류에 있는 협곡 이름인데
해마다 봄이 되면 상류로 올라가는 물고기들이 애를 쓰는 험한 곳이지요.
결국 강한 놈들만 상류로 올라가 살아 남는데
인간으로 보자면 출세를 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래서 등용문이란 용문(龍門)에 오른 사람, 즉 출세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민화중 용과 잉어 그리고 조개와 새우가 그려진
충성 충(忠)자 그림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그림은 등용문처럼 벼슬을 받고 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을 갖는 것으로
용으로 변해 가는 잉어, 즉 '어변성룡(漁變成龍)'란 그림입니다.
용으로 변해 가는 용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받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런 그림에는 주로 새우나 조개 등이 함께 등장하는데
껍질이 단단한 생물들을 갑각류라 하지만
여기서의 '갑'이란 갑, 을, 병, 정 할 때처럼 맨 처음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우나 조개는 최고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용이 갖고 있는 신비한 능력, 성격은 인간의 욕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또 어떤 용도로 쓰는가에 따라
용의 모양과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양과 성격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써
용이란 단순히 신비한 힘을 갖는 상징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세기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상징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문학적, 민속적인 측면에서
용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전공이 미술사이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만 설명을 드렸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용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문학과 민속 안에서의 용을 두루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의 재발견과 한국관광공사는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오후 3시,
한국관광공사 지하상영관에서 월례시민문화강좌 <우리문화사랑방>을
무료로 개최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바랍니다.
전화문의 : 02)723-4206 |
첫댓글 이글 용보다 길었나요. 지금 창밖으로 서서히 짙어지는 안개를 보고 있습니다. 용의 숨결인가요. 모든 언어는 존재한답니다. 오늘 용을 만나고 싶었나 봅니다. 제가 그러네요...
아니요. 이글 용만한 길이더군요. ㅎㅎ. 내가 전에 쓴 글에 용모양의 등이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그 글을 좀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용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