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덥던 여름이 가고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나 보군요.
유난히 더웠던 여름 휴가 때였지요. 당신은 땀을 뻘뻘 흘리며 빨래며 집안 청소며 아이들 뛰놀던 자리 정리에 정신없었지요. 그러면서도 당신은 나에게 도와주지 않는다고 투정 한 번 안 하고 묵묵히 그 일을 해냈지요. 그렇게 당신은 가족에게 받기보다는 주기만 했죠. 당신은 가족에게 끝없이 희생만 했죠. 그러기에 우리 귀여운 두 딸과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한 여인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당신을 존중할 것이며 사랑하겠노라고 당신에게 약속할게요.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로, 당신에게는 믿음직한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부끄럽지 않는 가장으로 살게요.
그동안 나는 당신과 살면서 부족한 점이 너무도 많았어요. 당신을 아프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한 번에 모두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씩 고쳐 나가며 당신과 오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할게요.
벌써 날이 밝아 오네요. 어젯저녁 결혼기념일이라고 케이크에 불을 켜 놓고 폭죽을 터뜨리며 소녀같이 좋아하던 당신 얼굴이 잊히지 않아요. 자그마한 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당신, 곤히 잠들어 있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고 싶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이 마음 영원히 간직하며 결혼기념일 선물로 당신에게 바칠게요.”
2001. 8. 24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감동이었다. 잠시나마 창피하게 여겼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요즘 세상이 인정 없고 삭막하다고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우리 사는 세상은 더없이 따뜻했다. 할아버지를 택시에 태워 드린 뒤 뛰어다니며 볼일을 봐야 했지만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