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유가사 [ 瑜伽寺 ] 와 대견사 [ 大見寺 ] (경북사찰)
유가사[ 瑜伽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27년(신라 흥덕왕 2) 도성(道成)이 창건하였다. 889년(진성여왕 3) 원잠(垣岑)이 중창하였으며, 1047년(고려 문종 1) 학변(學卞)이, 1452년(조선 문종 2) 일행(逸行)이 각각 중수하였다. 전성기에는 3천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1682년(숙종 8) 도경(道瓊)이 대웅전을 보수하였고, 1729년(영조 5) 취화(就和)와 파봉(巴峰), 1760년 보월(寶月), 1776년 밀암(密庵), 1797년 낙암(洛巖)이 각각 중수 또는 중창한 바 있다. 1976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용화전·산령각·범종루·천왕각·백화당·나한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측면 각 3칸으로 내부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본래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지장탱화·괘불이 남아 있었으나 1993년에 도난당하였다. 현재는 사진을 복사한 것이 걸려 있고, 1964년 우송(友松)이 제작한 칠성탱화와 신중탱화가 함께 모셔져 있다. 용화전은 정면·측면 각 1칸으로 내부에 높이 102cm인 석조미륵불좌상이 있다.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로 석가모니삼존불과 후불탱화가 있고, 삼존불 좌우에 각 8폭씩 십육나한도가 걸려 있다. 한편 산령각은 정면·측면 각 1칸으로 1976년에 조성된 산신탱화와 독성탱화가 걸려 있다.
부속 암자로는 수도암(修道庵)과 도성암(道成庵)이 남아 있다. 수도암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이름 높고, 도성암은 경상북도 3대 수도처로 손꼽힌다. 유물로는 괘불과 삼층석탑·부도 15기가 전하며, 이 중 괘불은 가뭄과 질병, 왜군의 침략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찾아가 소원을 빌던 유물이고, 삼층석탑은 1920년 인근 원각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높이 3.64m로서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한편 수도암에서 150m 떨어진 곳에는 낙암과 월호(月湖) 등 15인의 부도가 모여 있다. 모두 석종형 부도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가사 [瑜伽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대견사 [ 大見寺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흥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이다. 이 터가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지만, 1416년(태종 16) 2월 29일과 1423년(세종 5) 11월 29일 이 절에 있던 장륙관음석상(丈六觀音石像)이 땀을 흘려 조정에까지 보고되었고, 종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다고 한다.
절의 폐사에는 빈대와 관련된 일반적인 설화가 전래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 1900년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李在仁)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17년 다시 폐허화되었다.
2011년 11월 대견사 재건 공사가 착공되어 2014년 3월 적멸보궁, 요사채, 산신각, 목조와가 등 건물 4동이 완공되었다. 이로써 대견사가 폐지된 지 100여년 만에 다시 복원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남아 있고, 무너진 구층석탑과 거대한 석조선각불상,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洞窟臺座) 등이 있다. 이 중 축대는 현재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동굴은 참선 또는 염불도량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도굴꾼에 의해서 무너진 구층석탑은 원래 높이 4.5m, 기단 너비 1.2m이었던 우수한 작품이다.
전성기에 이 절은 비슬산의 중심사찰이었다고 한다. 산 밑에 있는 소재사(消災寺)는 옛날 이 절의 식량이나 각종 생활용품·의식용품 등을 공급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소재사 앞터에는 방앗간을 비롯하여 두부공장·기왓골 등도 있었다 한다. 현재 이 절의 축대 밑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으며, 가뭄 때면 달성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견사 [大見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