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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1-16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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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전에 엘리야가 불평으로 오직 이스라엘에 자신만이 유일하게 남은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만이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가 7천 명이나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이스라엘이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바알을 공식화하고 숭배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신앙을 지켜오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나봇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하지 않자,
아내 이세벨이 들어와 물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했고,
자신이 나봇의 포도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사실 이세벨의 입장에서 왕이 백성의 포도원을 하나 빼앗지 못해서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속적인 군주의 관점에서 왕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세벨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당연한 것도 그녀의 모든 생각은 세속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삶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이세벨은 이 문제를 세속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그 위에 옥새를 찍어 나봇과 같은 성에 사는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금식을 선포하고
불량자들을 통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해서 나봇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이세벨이 제시한 방법은 율법적인 것이었다.
금식을 선포하는 것은 온 백성에게 집단 회개를 선언하는 의미이고,
누군가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두 사람의 증언과 그 내용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신성모독 죄는 백성들이 나봇을 죽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율법에 있는 내용들을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심각한 죄악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저지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세벨은 율법을 사용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율법의 기본 정신은
무시하고 자신의 방법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봇과 같은 성에 살던 장로들과 귀족들은 이세벨의 편지에 지시된 대로 행했다.
결국 나봇은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한 죄인들에 의해서 무고하게 죽고 말았다.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내려갔다.
나봇이 죽었다고 해서 나봇의 포도원이 아합에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의 재산은 철저히 폐기되어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다.
그런데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나봇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아합이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의 슬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은 것은
죄악에 빠진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가증스러워지는지 보여준다.
이세벨이 아합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모두 율법적이었다.
율법의 있는 내용들을 사용하여 나봇의 죽음이 표면적으로는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세벨이 율법의 내용들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율법의 기본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완전히 어기고 있었다.
즉 이세벨은 율법의 정신을 무시한 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율법을 사용하는 잔혹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를 망각한 채, 말씀을 문자 그대로만 지킨다고 하여
거룩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그분의 뜻을 실현하라는 것이지,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뜻을 실현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기
하나님, 율법을 문자 그대로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법 안에 담겨 있는 당신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율법 정신을 잃지 않고,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제가 지켜가는 율법 가운데 당신의 뜻이 실현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