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날 잔칫상에 이어 장래를 점칠 만한 물건들을 올려놓고 집도록 하는 걸 돌잡이라고 한다.
요즘 부모를 기쁘게 하는 돌잡이 물건은 돈이나 청진기, 연필, 판사가 두드리는 방망이 같은 것이다.
옛날 개성상인 집에서는 아이가 엿가락 잡는 것을 경사로 여겼다고 한다.
엿은 끈끈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재물을 한번 쥐면 놓치지 말라는 게 개성상인들이 아이에 거는 바람이였다.
개성 출신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개성인은 일본인 기관장이 발 붙이지 못한 곳이라고 했다.
전기회사에 일본인이 경영자로 오면 개성 사람이 똘똘 뭉쳐 전기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 개성에는 개성 사람 자본과 경영진으로 이뤄진 전기회사가 생겨났다.
관변 은행 조선식산은행, 지금 산업은행도 개성에 지점을 내면서 지점장만은 조선인을 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성상인들이 일절 거래를 트지 않을 기세였기 때문이다.
신용, 단결, 근면, 절약, 한 우물 파기...개성상인의 미덕을 가리키는 말은 많다.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無借入 경영정신'이다.
'남의 돈 빚내 장사하지 않는다'는 자세였다.
IMF 위기때 은행 빚 있는 기업들이 많이 무너졌다.
그러나 태평양화학, 신도리코, 에이스 침대 한일시멘트 계양전기 같은 개성 상인 2세 기업은들 달랐다.
오히려 사세를 키우거나 잠시 어려움을 겪더라도 곧바로 재기했다.
이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20%도 안 됐다.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연 뒤 고려 王都였던 개성의 삶들은 박해를 많이 받았다.
사대부들은 관직 진출 길이 막히자 살아남으려고 장사에 뛰어들었다.
믿을 건 자기밖에 없으니 빚을 져선 안 된다.
식자 층이 하는 장사여서 거래 내역부터 꼼꼼히 기록하는 전통을 쌓아 갔다.
개성상인들만의 독특한 장부 정리 방식인 '四介治簿法'이라는 복식부기가 그렇게 해서 발달했다.
문화재청이 그제 구한말 개성상인 집안에서 쓴 회계장부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인삼 장사와 금융업을 한 박씨 집안에서 25년 동안 쓴 복식 부기 장부에 30만건의 거래 내역이 빼곡하다.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에서 이익잉여금 배분에 이르기까지 현대식 복식부기 방식이 완벽하게 들어 있다고 한다.
막스 베버는 "복식부기에 담긴 경제적 합리주의가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했다.
잭 웰치나 빌 게이츠만 바라볼 게 아니라
개성상인의 복식부기에서 합리적 경영시스템의 교훈을 얻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김태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