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는 사랑을 위하여
하늘은 파랗다.
미세먼지도 초미세먼지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늘색이 곱다.
얄궂게도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더니 그래도 한 가지 이롭게 하려는 듯 공기 속 먼지들을 거두어 내렸는지 하늘색이 파랗고 하얀 뭉게구름이 여기저기서 솟아나고 있다.
깨끗함은 언제 봐도 정갈한 느낌이 들고 평온하다는 생각을 한다.
참 많은 시간이 지났나보다.
한두 자 생각대로 썼던 글들이 오늘로서 700번째라는 엄청난 양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무엇을 쓸까? 하고 몇몇 일을 생각해봐도 마땅함을 찾지 못하다가 누군가 뒤쫓아 오는 것도 아닌데 허겁지겁 컴퓨터 앞에 앉아 욕망을 드러내본다.
시간은 많은 부분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열정을 가지고 했던 작은 욕망들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작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소소한 행복의 참맛을 일깨워주었고 세상사 어떤 일이든 무감각하게 살 수 있는 평온을 가져다주고 있다.
하고 싶었던 욕망들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쉬이 시간에 실려 떠나고 내속에 남은 작은 사랑은 아직도 망울로 맺혀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욕심도 내게는 없다.
오직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가 해서 즐겁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뿐이니 하루하루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또 흘러간다.
수없이 쏟아지는 뉴스에서 귀를 닫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도 초월하였으며 누구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에 마음을 놓았다.
오고 가는 것은 그것이 추구하고 싶은 대로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아니하고 누군가 내게 말하는 어떤 얘기도 별로 감각이 발동하지 않아 시간처럼 고요하게 세월을 벗 삼고 있으니 뭐가 대수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내가 온전히 이 세상에 존재함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눈앞에 보이는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해본다.
아무렇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했던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과 생각으로 맞이하면서 흔히 말하는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싶다.
관심 갖지 않았던 베란다의 식물에 물을 주면서 얘기를 나누고 갈증 난 모습에서 새로운 활기를 발견하는 미세한 감각이 발동하면 그 느낌이 가져다주는 환희를 노래하고 싶어진다.
내 생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작아 소생할 가치마저도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다 죽어가는 난초를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심정처럼 가만히 기도하며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 작은 기력쯤은 살아있지 않을까 쉽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늙어가는 인생이라 열정은 없을지 몰라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가장 단순한 생각만이 존재한다면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수월한 일일 것이다.
누구를 위해 내가 희생하고 정열을 불태울 자신은 없다.
그것은 내가 용기 내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을 초과하여 열정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나이에 맞지도 않지만 나 또한 무리할 만큼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 방식대로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일이 나에게 행복감과 안정감과 즐거움과 쾌감을 가져다준다면 사랑하면서 할 수 있는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아파할 만큼 마음이 젊지도 않지만 그 따위의 열정은 이미 오래전에 사그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사랑하게 된 작은 일들은 지천에 깔려있다.
글을 쓰는 일, 그림을 그리는 일, 영어회화를 배우는 일, 화분에 물을 주고 화초와 대화를 나누는 일, 이런 잡다한 일들이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저녁을 먹고 혼자 운동이라는 명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작은 천(川)을 따라 생각 없이 걷다가 무심결에 올려다 본 커가는 달을 발견하고 조용히 앉아 떠오른 누군가를 한번쯤 그리워해보는 여유 또한 얼마나 사랑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을 너무 위대하고 거창하게.
허지만 내 속에 남아 있는 사랑은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그 못 죽어 목숨 부지하는 작은 미물처럼 꼬무락거리며 가끔씩 살아 나를 일깨워주는 힘이다.
사람마다는 생각이 다르겠지.
그러니 아무런 감흥 없이 보내는 일상도 어떤 이에게는 따듯하거나 차갑게 느끼는 법이니까.
수많은 생각을 적고 그것을 먼 훗날 내가 생각하고 기억했던 느낌으로 느끼고 싶어서 적었던 작은 글들을 가끔 혼자서 읽고 웃을 때도 있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이것은 내가 살아 존재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현상이며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사람의 관심에 귀 기우리며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이 설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일지라도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감정인 것 같아서 내려두고 그냥 무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좋음과 싫음을 논하고 싶지 않다.
오랜 시간 좋아하고 미워하고 기뻐거나 슬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로애락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았는가?
그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으로 남았으며 무엇 때문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고 싶었는가?
살면서 자꾸만 묻고 싶었던 그 수많은 의문들이 어쩌면 젊고 용감하고 힘이 있어 가능했던 부질없는 생각이었을 뿐이라며 웃고 싶으니 말이다.
작은 힘이 존재할 뿐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빠져나가는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어제 그 당당함이 오늘은 왠지 비굴한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한발 물러나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의 준엄한 경고를 무시할 수 없으니 어찌 하겠는가.
하고 싶은 욕망들 스스로 내려놓지 않아도 알아서 떠나고 없지만 혹여 생마음이라 가능할거라 착각하고 덤빌까봐 무서워서 매일 똑같은 기도를 하게 된다.
내게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무엇인가? 하고.
세상을 욕심내고 싶지 않다.
주어진 작은 것에 만족하고 존재함에 감사하고 싶다.
그것이 설령 하찮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이 만족하고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니까.
누군가 가진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심 내려두고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내속에 살아 숨 쉬는 작은 사랑을 온전히 살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냐며 웃을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
얼마 남았을지 셈할 수 없는 인생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다가 이생을 하직 하는 날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소풍 아름다웠노라고 말 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나는 나에게 남은 사랑을 하며 살고 싶다.
뜨겁지 않고 미지근하여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살다가 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고 싶은 새로운 세상에 꿈꾸는 소망이고 작은 바램이기 때문에...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주절대며 갈구했던 그 무엇은 내 속에 남은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불태울 수 있는 지금을 위한 준비였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오랫만에 읽으니 좋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