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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인생
글쓴이 : 곽은혜
그 집안 사정이 어떤지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독립한 후로는 부모님 댁에 이제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한데다가,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워낙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꽤 잘 사는 축에 들었다. 아버지는 공기업 이사셨고, 엄마는 ‘사모님’ 호칭을 듣고 다녔다. 명절이면 부하 직원들이 줄을 서서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나와 다섯 살 터울인 언니는 명절 때마다 자신의 몫으로 떨어지는 선물을 들춰내고 뜯어내는데 하루는 족히 걸렸음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비싼 과자 선물세트와 위인전들, 동화전집을 동그랗게 자기 주위에 늘어놓곤 했단다.
그러다 IMF 때 아버지가 명예퇴직하게 되면서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엄마가 현명하고 알뜰해서 그동안 돈을 꼬박꼬박 모아둔 게 있었다. 부부는 사업을 할지 건물을 살지 고민하다가 겨우겨우 융자를 끼고 서울시 외곽 소도시에 원룸 건물을 샀다. 융자 빚을 갚으려고 아버지는 경비원 일을 구했다. 밤마다 술 마시고 싸우는 사람들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셨다. 누군가 다가와 시비를 걸까 봐 매일 밤 두려움에 떨며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움찔거렸다. 어느 날은 술에 잔뜩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취객이 다짜고짜 경비원 옷을 입은 아버지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붓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 엄마는 마지못해 “그럴 거면 그냥 그만두쇼.”라고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고,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때려치우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엄마는 처음으로 청소부 일을 구했다. ‘사모님’ 소리 들을 때 알게 된 사람들하고는 아예 연락을 딱 끊었다. 대신 청소부 일을 하며 알게 된 어딘가 모나고 축 쳐져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다. 가끔은 집에 초대했다. ‘내가 지금은 청소부 일을 해서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사실 난 건물을 갖고 있는 세대주라네.’라고 말하는 대신 직접 보여주는 편이 쉬웠다. 엄마가 원룸 건물의 세대주라는 소문이 퍼지자 점차 손님 발길이 끊겼다.
대학가 원룸은 시세가 너무 비쌌고, 그나마 융자 빚을 갚아나가기 부담스럽지 않았던 동네는 속된 말로 밤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든가 공장에서 주야로 일하는 사람들이 바짝 돈 벌기 위해 머무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살인사건이 많아 경찰이 수시로 들쑤시고 다닌다는 이야기나 뒷산에서 토막시체가 발견됐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문도 파다했다. 이런 무시무시하고 삭막한 동네에서 10평도 안 되는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단 말인가. 부모님이 학생인 나에게 굳이 이웃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뻔했다. 두 딸 모두 대학교 근처로 하숙을 시켰던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하고 나서는 근처 자췻방을 얻어 독립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동안 그 동네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당최 관심이 없었다.
내 집은 혼자 살기 퍽 나쁘지 않습니다.
어둡고 좁은 것이 낮에도 몸을 움직이기 싫은 내게 안성맞춤입니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10년이 넘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고장 나는 게 많아 방세를 받자마자 수리비 충당하기 바쁘다고 엄마가 투덜거릴 무렵이었다. 모처럼 토요일 아침 일찍 부모님 댁에 갔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반지하에서 뭔가 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두리번거리며 연기가 나나 살폈더니 아니나 다를까 102호 문틈으로 회색 연기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잠깐 멈칫했으나 이러다 사람이 죽지 싶어 세게 문을 두드렸다.
쾅쾅-
“여보세요!”
쾅쾅쾅-
“저기요, 윗집인데요, 누구 있어요?”
귀를 문에 바짝 대고 소리를 들어봤지만,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계단을 후다닥 뛰어 3층으로 올라갔다.
“엄마! 엄마 집에 있어?”
안방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가 발을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스윽 스윽 두 발을 끌며 현관 앞에 나타났다. 청소부 일을 10년 가까이 하고 나서는 발바닥이 영 좋지 않다.
“누구야? 어 그래, 왔니? 왜 그래? 뭐.”
“아니, 102호에서 연기가 막 나오고 뭐가 타는 거 같은데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 열쇠 있지? 열어봐.”
“잠깐만, 102호? 으응, 그 아저씨구먼. 알았으니까 넌 들어와. 내가 가볼게.”
“…어디 아픈 사람이야?”
“어휴, 몰러. 여기 있어. 내가 가볼 테니까.”
엄마는 말도 마라는 식으로 손사래를 치더니 무겁고 둔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난 불안한 눈길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열쇠로 문을 따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신경질적인 고함이 몇 마디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연기 빠질 때까지 추워도 이러고 있어!”
“뭐래요, 아주머니? 뭔 탄내가 나던데?”
“103호, 너는 옆집에서 탄내가 나면 좀 내다보지!”
“아, 네.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저도 자다 일어나서요.”
“몰러. 뭘 올려 놓았는가 본데, 냄비 밑바닥까지 쌔까아맣게 태워서 뭔지도 모르겄어!”
끼익 103호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투닥투닥 우둔한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도 한마디 거들어 물었다.
“병원 안 가 봐도 된대? 냄비만 태웠어? 연기가 되게 많이 났는데….”
“별거 아녀. 저 아저씨가 좀…모자라. 그래서 귀도 잘 못 듣고, 냄새도 잘 못 맡어.”
“뭐, 어디가 모자라기에 귀도 못 듣고, 냄새도 못 맡아? 진짜 저러다 불났으면 어쩌려고?”
“어휴, 물어보지 마! 그냥 좀 저기야…. 머리가 좀…어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거 같어.”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고개를 약간 기울여 살짝살짝 저어댔다. 다시 안방 침대에 누운 엄마는 걱정되는지 연신 뒤척이더니 결국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저 아저씨 분명 창문하고 문 다 닫아놨을 거여. 춥다고. 저 곰팅이가 추위는 얼매나 타는지 반지하라 연기도 잘 안 빠지는디…….”
중얼거리더니 퉁퉁 부은 발바닥을 한 치수는 작아 보이는 삼색 슬리퍼에 억지로 밀어 넣고 양팔을 휘휘 저어가며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굳게 닫혔던 문이 끼익 쇳소리 비명을 지르며 활짝 열렸다. 이내 다시금 언성이 높아졌다. “추워도 이러고 있어!” 호통소리와 함께 발바닥 두 개가 느릿느릿 번갈아 계단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뭐랬니? 창문도 문도 꽁꽁 닫아놓고 아직 연기도 안 빠졌는데, 추워서 그냥 이불 속에서 요러고 오들오들 떨고 있더라!”
엄마는 익살스럽게 살찐 몸을 최대한 웅크려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긴 한숨을 쉬었다. 혼이 나간 텅 빈 가슴으로 되뇌는 어이구 소리에는 내가 모르는 세월이 묻어나와 왠지 숙연해졌다.
“춥겠지, 엄마. 지금 한겨울인데.”
“시꺼먼 연기가 아직도 방안에 그득해! 어휴 답답스러워!”
나는 별 말 없이 밖을 내다보고 매캐한 여운을 킁킁 맡았다. 그날이었다. 정확히 기억한다. 회색빛 연기가 내 인생에도 새록새록 피어오르기 시작한 때가. 그날이었다.
나는 목이 잘린 닭들을 받아와 불에 바짝 태웁니다.
모가지 잘린 닭보단, 남보다 모자라지만, 모가지 붙은 내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이사 때문에 바빴다. 직장이 서울이라 근처 월세 자췻방이라고 해봐야 10평 남짓한 원룸이다. 남자친구를 자췻방으로 데려오면, 반나절이라도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 좁은 곳에서 먹고, 자고, 뒹구는 게 영락없이 동물원 철장 안의 동물 같았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화장실에서 일보는 소리가 들리면 오만가지 정이 한순간 떨어져 나갔다.
결국 계약 기간이 끝나갈 때쯤 투룸을 알아보다가 월세가 너무 비싸지 않고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 북인천 반지하로 이사했다. 소규모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 형편으로는 도저히 더 나은 곳을 구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오래된 주방도 시트지로 새롭게 꾸미고, 더러운 장판도 색이 예쁜 카펫으로 장식하고, 군데군데 곰팡이 폈던 흔적이 남아있는 벽지도 팝아트 액자를 걸어 놓으면 그나마 나아 보일 테니, 때가 되면 알려드릴 생각이었다.
*
이사하고 두 달 정도는 살림살이를 채워 넣느라 워낙에 빠듯했기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두 달 반 정도 부모님 댁에 가지 않았다. 괜히 돈이 없을 때 부모님 댁에 갔다가 이렇게 사는 게 죄송해질 것 같았다. 그러니 한동안 102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내가 다시 부모님 댁을 찾았을 때 무언가 달라진 게 없었다면 아마, 다시는 102호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냉장고에 웬 닭고기가 이렇게 많아요? 누가 이렇게 많이 먹는다고?”
부모님 댁에 오자마자 냉장고부터 뒤지는 게 익숙해진 난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숯불구이 닭고기 10마리가 모두 포장된 채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부모님은 아무도 손대지 않는 음식을 돈 주고 사올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걸 네 엄마가 사왔겠니, 내가 사왔겠니? 102호가 월세 대신에 꼬박꼬박 갖다 주는 거야, 그렇게. 근데 아무도 안 먹고 저러고 있는 거지.”
“102호? 그 때 그 불날 뻔했던 집 맞지?”
아버지는 갑자기 보던 TV도 끄고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어딘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래. 그 아저씨가 좀…모자라는 거 같어. 본 적 있나? 내가 봤을 때는 지체장애 뭐 그런 거 아닌가 싶어? 생긴 것도 좀…그렇게 생겼어. 키는 쬐끄맣고, 목이 이렇게 앞으로 나와서….”
“아아. 네네.”
“으응. 근데 그 아저씨가 그, 트럭 있지, 트럭에서 닭고기 뱅글뱅글 구워서 2마리에 만원! 해서 팔고 그러는 거 있잖아.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한대요.”
“사장이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사장? 사장은 무슨 사장이야? 어이구, 지 까짓 게 돈이 어디 있다고. 월세도 못 내서 안 팔린 닭고기로 대신 내고 있는데.”
“그런 것도 아르바이트를 써? 사장도 아닌데 그렇게 마음대로 막 안 팔렸다고 가져와도 돼?”
“몰라. 되니까 가져오겠지, 뭐. 아니면 자기도 월급을 그걸로 받나 보지. 자기 집에도 아주 많대요. 매일 삼시 세끼 그것만 먹는다더라. 너 먹으려면 먹어라. 여기 밑에 사람들한테 다 돌렸어. 너무 많이 줘서. 그래도 남아요, 그래도. 며칠 전에 네 언니 왔다 갔거든? 닭고기 많다고 좋다고 애들 갖다 주겠다고 그러다가 한 입 먹어보고는 아예 손도 안 대더라, 야.”
“아버지도 드실래요?”
“싫어. 난 영 찜찜해서 안 먹어. 아주 영 찜찜해.”
고개까지 획 돌리는 아버지가 괜히 괘씸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닭고기를 맛있게 먹어보겠다고 죽 죽 찢어 입에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뱉고 싶었다. 고무 지우개도 이보단 부드러울 것 같았다. 살코기보다 뼈가 더 많아 보이기까지. 이걸 어떻게 돈 주고 사 먹나 싶었다. 이러니 장사가 안 될 만도 하다.
“월세를 얼마나 못 냈는데요?”
“한…넉 달 됐나? 이번 달에 못 내면 넉 달째네. 넉 달 맞아. 근데 그걸 어떻게 내쫓니? 여기서 나가면 바로 노숙자 될 게 뻔히 눈에 보이는데? 안 그래?”
“가족은? 없으려나? 나이가 그렇게 많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나?”
“그…나도 자세한 건 모르겄어. 뭐, 마누라랑 아들이 하나 있다는데…. 나이는 모르겠는데. 꽤 먹어 봬.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거 같어. 네 엄마가 알지. 네 엄마가 말은 저렇게 해도 얼마나 챙기는지 몰라. 네 엄마 몰라? 아주 불쌍한 사람 보면 못 도와줘서 안달인데. 난 그냥 내 집에서 장사나 안 치렀으면 좋겄어.”
장을 보고 돌아오는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우렁찼다. 엄마의 볼멘소리가 현관문 밖에서부터 났다. 집에 들어와 안방 침대에 걸터앉기까지 내내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엄마를 붙잡고 물었다.
“뭐 때문에 또 이래?”
“102호 아저씨! 이번 달도 돈 못 내겠다는데 그럼 화나지 안 나?”
“뭐? 지금 오다가 얘기했어?”
“그래!”
“왜, 왜 못 준대? 아들 있다며, 마누라도 있고! 전화해서 달라고 못 해? 거, 아들놈이 아주 불효자구먼! 제 아비가 저래 사는 거 아나 모르나?”
“흐응! 저렇게 생겨먹고 어떻게 아버지 소릴 듣길 바랄까. 어디 가서 지 밥벌이도 못 해먹는데 귀찮기만 허지. 그래서 연락 안 하는 거 보면 몰러?”
“그, 닭구이 사장한테도 월급을 못 받는 겨?”
“거기서도 모가지 짤렸슈!”
“아니, 왜?”
“뭘, 왜야. 왜기는. 비융신 짓 하니까 그랬겄지. 들어보니까 그 사장도 좋은 일 한답시고 써 줬더구만. 오죽 답답했으면 잘랐겄어. 오죽하믄? 거기다 괴기는 안 팔리지, 남은 거 자꾸 가져가지.”
“뭘 가져가. 가져가도 되니까 가져온 거 아니었어?”
“어이구. 안 되는 건데 집에 먹을 게 없어서 하나 두 개 가져오다가 걸려서 잘린 거래유! 우리 준 것만 봐도 하나 두 개 가져온 게 아닌디 뭘.”
“아이고. 도둑질이지 뭐야 그게? 도둑질이지.”
“그래. 누가 뭐래? 돈 안 내고 남의 집에 사는 건 도둑질 아니고? 참나, 바보천치여서 거짓말도 못 해유. 물어보면 그냥 ‘네…. 잘못했어요. 네. 아줌마. 죄송해요….’ 이런다니까!”
엄마는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고개를 구부려 박고 내가 보지 못한 어떤 남자의 비겁한 표정을 흉내 냈다. 일그러진 표정의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엄마는 부엌으로 나와 냉장고 안의 닭고기를 하나 뜯었다.
“억울해서 이거라도 내 뱃속에 쳐넣어야 뭘 받아먹었다, 셈 치지!”
엄마는 식탁 의자에 털썩 앉더니, 우적우적 고기인지 뼈인지 모를 닭 뭉치를 아무렇게나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나는 성난 사자에게 다가가는 조련사의 마음으로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먹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먹겠던데 나는.”
“입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뭘. 하, 이걸로 삼시 세끼를 때운다니?”
“그러니까…. 근데, 그 아저씨가 그렇게 바보 같은데 어떻게 결혼은 했대? 연애결혼은 아니었겠지?”
“연애는 무슨! 아무것도 몰라유, 저 아저씨는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를 사람이여.”
“설마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를까….”
“아이, 글벙어리 같어. 계약서 쓸 때도 한참 쓰기에 내가 뺏어서 이리줘보슈 하고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는데 뭘.”
아직 노기가 서려 있는 말투에 난 잠자코 앉아서 검고 텅 빈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닭 뭉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는 진정이 됐는지 들고 있던 닭 뭉치를 내려놓았다. 엄마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얘,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사니? 아무리 저런 바보 상병신이라도 그렇지, 제 아빈데 궁금하지도 않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그럴 수가 있니? 불쌍해. 참 불쌍해. 내일 교회 같이 가자고 했더니 ‘싫어요. 사람 많아서…싫어요.’ 이러고 있더라. 어휴. 그래서 ‘괜찮아. 아줌마가 옆에 있을게. 10시까지 옷 입고 준비하고 있어. 내가 문 두드리면 같이 교회 가자.’ 그랬더니, ‘네…알겠어요.’ 이러더라고.”
“교회 다녀?”
“안 다니지.”
“몇 달 월세 밀린 집주인 아줌마가 가자니까 간다는 거지 그게.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고.”
“그래도 밖에 좀 돌아다녀야 해. 저 아저씨는 허구한 날 빛도 안 들어오는 방안에서 요러고 대가리 콕 쳐박고 쪼그리고 누워있어. 꼭 이 닭고기같이 누워있다니까. 방은 숯불처럼 펄펄 끓게 해놓고도 춥다고. 춥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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