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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11. 서른일곱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김복순 집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1:18~32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찬송 278 사랑하는 주님 앞에
광고 9月 대표 기도(수요예배 포함)- 김복순, 모옥희, 박이순, 이원예, 박명숙, 박영수 집사
백춘자, 조분례, 임명화 권사님, 장성자 집사님 가족 방문
추석 연휴에도 변함없이 수고하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9월 15일 11시 서울 프레스센타 방송위 모임
찬송 200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우리 요양원 정원이 400여 평입니다.
아주 넓습니다.
모두 푸른 잔디밭입니다.
엊그제도 서울 다녀와서 해거름에 널따란 잔디를 깎았습니다.
이렇게 잔디를 깎아주는 일을 30년 동안 매주 해 왔습니다.
이것이 목사님의 기쁨이고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박영수 집사님께서 목사님의 기쁨을 빼사 갔습니다.
목사님이 힘들다고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박 집사님께서 또 한 가지 기쁨을 앗아 갔습니다.
요즘 길고양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정원 푸른 잔디밭이 길고양이들의 놀이터입니다.
나무 거름 되라고 땅을 파고 버리는 음식물 찌꺼기들을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고양이 사료를 사다가 주곤 합니다.
그중에 검은 고양이가 있는데
이름을 우리 박 집사님 성을 따서 박 서방이라 부릅니다.
그 박 서방 고양이에게 밥을 주곤 하니
이제 맛 들여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멀 지기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서도 힐끔힐끔 눈치를 봅니다.
혹시 밥을 주는 목사님이 잡아가지는 않을까?
길고양이 잡아서 뭐에 쓰겠습니까?
그런데 의심이 많은 친구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천상 길고양이입니다.
길고양이처럼 믿음이 없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렇게 길고양이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항상 언어도 부정적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을 보면 길고양이 눈을 빼닮았습니다.
그래서 푸틴처럼 영혼이 없습니다.
돈도 많고 보기에도 멀쩡한데도 길고양이처럼 삽니다.
18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절,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절,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절,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절,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목사님은 인생이 뭔가에 대하여 늘 고심합니다.
그런데 인생이 아이러니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미신적인 요소가 더 많습니다.
검찰총장까지 한 윤석열 대통령도 무속 신앙 때문에
청와대까지 이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윤 대통과 함께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건진 법사, 무속 논란입니다.
지금 목사님이 준비 중인 방송국을 돕고 있는 김 박사께서(건설회사 회장, 77세)도
매일 아침 7시 즈음이면 목사님께 문자로 축복을 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김 박사님은 장로님이시고, 풍수지리 일인자입니다.
그래서 섬기던 교회에서 풍수지리가 무속 신앙이라고 시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이고 과학입니다.
우리의 음력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진보 신학을 해서 그런지
무속을 folk religion민속종교라 이해합니다.
속된 말로는 푸닥거리입니다.
우리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설교는 예수님처럼 목회적 삶입니다.
목사님 어릴 적에 새해가 되면 할아버지께서 토정비결 책을 펼치시고
운수를 보아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덕담입니다.
18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오늘 말씀의 배후에는 이스라엘의 전통 신앙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전통 신앙과 전설이 많습니다.
우리 백춘자 권사님은 30대에 남편을 잃고 80이 넘도록
홀로 살면서 자녀들을 다 키웠습니다.
이웃에서 함께 살았던 우리 김복순 집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백 권사님께서 지독히 고생고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우리 백 권사님처럼 절개 굳은 아내가 있습니다.
백제 가요 정읍사는 돈 벌로 장사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높은 산에 올라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아내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옛날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 선비는 신촌동에 있는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고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그 아가씨도 그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둘은 훗날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선비는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과거 시험이 한참 지나고 해를 넘겨도 선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서 그만 그곳에서 망부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고 처녀와의 재회를 그리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망부석이 된 사랑하는 처녀를 본 선비는
후회와 그리움에 사무쳐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요즘 유튜버를 볼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선정적인지 소돔과 고모라는 저리 가라입니다.
성경에도 롯의 아내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세기 19장에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소돔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가 일본처럼 워낙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도시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만약 그곳에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면 파괴하지 않겠다.
그러나 의인은 열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두 도시를 파괴하기로 마음먹고,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 둘을 보내 롯과 그의 가족만을 구하게 했습니다.
밤이 되자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에워쌌습니다.
두 손님을 내보내시오~
소돔 사람들은 천사인 두 손님이 남자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손님과 동성애를 저지르려 했습니다.
영어로 남색을 뜻하는 sodomy은 이 소돔에서 나왔습니다.
천사들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롯과 가족을 피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롯의 가족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 했습니다.
롯과 그 아내, 두 딸은 소돔 성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해가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지금도 사해 동쪽 아라드 Arad 지역 소금산에
여인 모양의 소금기둥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바로 롯의 아내입니다.
롯의 아내가 퇴폐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열왕기상 16장 32절입니다.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절,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 아세라의 예언자 400명을
개울에 빠트려 죽였습니다.
전설 그대로 엘리야 선지자가 1대 850으로 싸워 이겼습니다.
여기에서 아세라 Asherah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스라엘의 전통 민속 folk 여신神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단군신화와 같이 전통 신앙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성 중심의 야훼 신神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야훼는 아주 권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민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야훼(神)의 아내 아세라(여신)는 어머니처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민중의 여신 folk religion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자들의 민속종교였습니다.
이런 컬트 문화가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예레미야 7장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황후 Asherah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
바울의 천재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다신론의 심각한 문제가 만연해 있는 사회를 꼬집었습니다.
바로 우상숭배와 호모 섹슈얼리티 homosexuality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문제성도 바로 호모 섹슈얼리티였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남자로 착각하고 동성애를 저지르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종교적 배후에서 오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26절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절,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지금 세계적으로 동성 연애자를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여러 번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고 혼돈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등 역병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28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절,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절,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절,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개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딸이 아버지 롯과 동침했다지만
전통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엊그제 태풍 힌남노 때문에 온 나라가 초비상이었습니다.
지금 포항은 물바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법칙이,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질서도 문제입니다.
목사님들이 헌금을 강요하고
부를 축척하는 것도 하나님의 법칙에 위배됩니다.
우리 임 권사님도 땅 팔았는데 어느 목사님의 강요에 1500만 원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이런 목사님, 이런 교회는 전부 사이비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기독교방송을 시작합니다.
무너져가는 교회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겠습니다.
그래서 이미 떠나버린 젊은이들에게 굿뉴스 Good News 복음을 증거 할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합니다.
우리 교회도 시작할 당시 텅 빈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길고양이들처럼 기웃기웃 서성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텅 빈, 썰렁한 교회에 조립식 칸막이를 하고 무료 숙식합니다.
깨알 같은 광고 한 줄에 노숙자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분이 바로 여기에 계신 김성오 집사님입니다.
우리 김 집사님과 17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황무지를 갈아 씨앗을 뿌릴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싹을 틔우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어 자라게 하며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가을이면 추수를 해서 밥상을 차려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길고양이 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숟가락도 없이 차려 놓은 밥상만 기웃기웃 거립니다.
우리 방송국이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면
10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게 될 것입니다.
임직원 모두 최하 연봉 3.5천만 원 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님의 로망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추석 보름달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천년을 하루같이 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모자람도 없이 풍성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달을 보면 그리움이 가득한 것입니다.
어제 우리 석문분 권사님 며느리 전화가 왔습니다.
첫마디가 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석 권사님과 17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석 권사님께서 처음 목사님 교회에 찾아왔을 때는
정말 아름다운 권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들길을 걸으면 들꽃을 보고 머물러 있곤 했습니다.
들꽃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아이고 참 예쁘다!
젊었을 때 목사님을 따라다니며 심방을 한 덕분에 두 다리가 얼마나 건강했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온 것입니다.
젊은 날에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정네들은 상종하지도 않습니다.
남정네라곤 오로지 목사님만 상종합니다.
그래서 치매인데도 목사님만 알아보시더니 이제는 목사님도 몰라봅니다.
아주 수척해지셨습니다.
목사님이 매일 만나지를 못하고 주일 예배 때만 마주합니다.
그럴 때마다 손을 맞잡고서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요한복음 3장 16절
이제 마지막으로
퇴폐한 세상에 대하여 세례 요한의 외침을 외쳐 봅니다.
마태복음 3장 2절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