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80
[서울 역 주변 노숙자들]
지인과 노가리 골목에서 나와 서울 역으로 갔다.
내가 이용하는 무궁화 호는 한 시간 후에, 새마을호는 바로 있다고 하는데,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한 시간을 이 곳에서 허비할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는데,
나는 곧 한 시간을 허비하기로 하고 무궁화 열차를 예매한다. 얼마 전 수원에서 보낸 한 시간,
그 시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빨 빠진 책 한 권을 만났던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표를 받아들고 역을 빠져 나온다.
코로나19의 사태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은 것은 역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내려오는 계단, 그리고 앞으로 보이는 남산과 경찰서와 버스 승차장, 별다른 감흥은 없다,
옛 서울역도 여러 번 보아서인지, 차라리 남대문 시장을 가볼까 했지만 한 시간으로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계단을 내려와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용산 쪽의 길을 잡아 걸음을 옮긴다.
서울 도심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횡 한 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는다.
식당, 마트. 그리고 주차장. 어쩌면 도심 외곽지역의 한산한 모습인데, 나는 그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아니, 오래 전 서울 역 구내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이른 아침에 서울 역에 들어가면 첫 차 출발하기 전,
승객들이 역으로 몰려 들어오기 전에 적지 않은 노숙자들이 화장실에서 칫솔질과 세수를 하는 모습,
역 구내 맨바닥에 박스를 깔고 자는 사람, 긴 의자에 옆으로 구부려 자는 사람들을 깨우는 역원들,
그들이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역에서 쫓겨난 노숙자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편의점 바로 앞에서 만난 사람들, 사십대로 보이는 여성 한 사람 곁에 세 명의 남자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다.
이미 취한 사람들이, 어쩌면 아침부터 그들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한 남자가 일어선다, 바지가 곧 흘러내릴 것 같은데, 그는 바로 도로 변 빈 박스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더니
바지를 내린다.
바로 그 옆쪽에는 도로를 바라보며 막걸리 병을 옆에 놓고 한 남자가 무엇인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노래를 하는 것 같았지만 노래라기보다는 악을 쓰는 모습이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지하철 환풍구 옆에는 한 남자가 엎드려 자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더 밑에서 한 남자가 신문지 위에 앉아서 컵 라면을 먹는데 불어터졌다는 것이 한
눈에 느껴지는 라면을 먹는다.
한 여자와 세 남자,
그 중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이가 만원을 꺼내 젊은 남자에게 주며 무엇을 사 오라고 시키더니
곧 여자에게 따라가라고 한다. 여자가 일어서서 남자를 따라 편의점으로 들어가는데 여자의 눈에 빛이 없다.
무덤덤함, 아무런 표정이 없다. 잠시 후 여자의 손에는 빵이 들려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노숙자들의 일상을 써보려는 욕심에 가족에게 노숙자 생활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엄청
지청구를 들은 기억이 난다. 하긴, 일용직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개잡부) 육 개월 간을 노동자 생활을 하고,
대리기사에 관한 소설(소설 인계동)을 쓰려고 일 년간 대리기사를 하고,
노점상들의 삶을 쓰려고 한 겨울 지하철 역 입구에서 리어카로 붕어빵 장사를 했으니(그 여자의 가게),
그냥 지금처럼 여행이나 하면서 글을 쓰라고......
문득 그들의 일상을 쫓아보고 싶다. 그냥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라도 말이다.
한 남자가 그렇게 한 동안 서서 그들을 보고 있다고 느꼈는지 나를 쳐다보는데 조금의 적대감이 눈빛에
묻어 나오고 있다.
열차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다시 담배를 피워 물고 역 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여행은
1. 시간 있을 때 떠나라.
2. 가용 가능한 돈으로만 하라.
3. 가장 싸고 느리게 하라.
그러면 만 원으로도 가능하고, 어제 갔던 곳에서도 또 다른 글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