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22일
얕봐서 미안해 - 몽환의 두타산을 거닐다
두타산에 가기를 벼르고 있었다. 나는 두타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두타산처럼 물 많은 산을 좋아한다. 요즘처럼 알맞은 날씨에 두타산을 느끼고 싶었다. 2년 전에 갔던 두타산엔 비가 왔다. 역시 좋았지만 비가 왔기 때문에 매우 아쉬웠었다. 아쉬운 만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5월 19일. 경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07:10에 동해/삼척으로 출발하는 일반 고속버스를 탔다. 첫차는 06:30에 있는데 그건 우등이다. 우등이 일반보다 7,000원가량 비싸다. 어짜피 걸리는 시간은 같으니 40분 늦게 도착하더라도 7,000원 저렴한 일반 버스가 나은 선택일 듯싶었다. 이나이에 우등이 일반보다 편하다고 하면 안 된다. ㅋ_ㅋ
가는동안 잘 잤다. 휴게소 내릴 때 일어나고 거의 잤다. 10시 30분에 동해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렸다. 택시를 타고 두타산의 입구중 하나인 무릉계곡 까지 가면 12,000원정도 나온다.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말 잘하면 10,000원에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버스를 탔다. 버스나 택시나 모두 지역색을 느낄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지만 돈도 아낄 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도 지나볼 겸 해서 10:40에 32-3번 버스를 탔다. 동해시의 버스는 모두 현금승차이며 어른은 1,000원이다.
내가 좋아하고 자주 가는 동해시는 작고 아담한 도시다. 허나 있을 건 다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개발되어온 천곡동은 소위 '큰 시내'를 방불케할 정도로 번화되어있다. 하지만 공기는 매우 맑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전국의 시'市'단위의 지역 중에 안과 수가 가장 적은 도시가 동해시란다. 물론 인구수와 밀집정도, 도시의 시민들이 주로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이는 분명 동해시의 공기가 좋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1:00에 무릉계곡 입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대동아파트 앞에 내렸다. 무릉계곡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집에서 가져온 사과 한 개를 먹었다. 뭘 먹든 간에 밖에 나와서 먹는 건 참 맛있다. 11:13에 무릉계로 가는 12-4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가면 지역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어 좋다. 한 아주머니께서 다른 아주머니를 버스에서 만났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 시내에 가서 침을 맞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날씨가 조금 씩 흐려지더니 무릉계곡 입구에 내리니까 비가 왔다. 11:30이었다. 입에서 욕이 연거푸 나왔다. 내가 얼마나 벼르고 왔는데 비가 오다니. 동시에 2년 전에 비오는 두타산에 무작정 올라갔다가 큰 사고가 날 뻔했던 기억까지 되살아났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2년 전의 기억은 강렬하면서고 두려웠기 때문에 비가 계속 내리면 올라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산책코스정도 되는 용추폭포와 쌍폭포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우산을 쓰고 올라갔다. 계곡에 물이 많이 흘렀다. 비가 오고있거나 비가 온 직후의 산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는 매력적이다. 입에서 절로 'ㅇ ㅏ ㅇ ㅏ'하는 신음이 나온다. 비를 머금은 나무가 뿜어내는 향기는 달다. 그 달콤한 숲의 향을 무리해서라도 많이 맡고 싶었다. 이럴 땐 잡생각을 하지 말아야한다. 숲의 향기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게 산과 자연을 즐기는 사람이 가져야할 자세다.
올라가다가 비가 그쳤다. 맑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혼자 등산을 온거다.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눈 앞에 보이는 두타산 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 앞에서 고민했다. 기상청에서는 오후에 날씨가 갠다고 했었다. 비가 많이 오면 왔던 길로 해서 내려오겠다고 다짐하고 산길을 올랐다.
처음 올라가는 등산길은 언제나 설렌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운전해서 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그 길을 나 혼자서 가면 더 좋다. 평소에 사람들이 자주 안 다니는지 등산로에 나뭇가지와 돌들이 많았다. 처음 가보는 두타산성은 어떤 곳일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올라갔다.
두타산성은 신라시대 때 처음 쌓아졌으며 임진왜란 때 이 지역 주민들이 왜병을 피해 모여들어 농성을 하기 위해 모였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도 두타산에 사람들이 자주 다녔다는 것인가. 농성을 하기 위해 저렇게 높고 험한 곳까지 주민들이 올라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물도 없고 장소도 좁고 마을과도 한참 떨어진 곳에 성곽을 짓고 농성을 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갔다. 어쨌거나 성곽을 쌓은 흔적은 남아 있었고 나는 안개에 둘러싸인 두타산의 몽환적인 전경을 구경하느라 400여년 전으로 상상력을 뻗어나가지 못했다.
두타산성의 많은 바위들은 좀 앉아서 쉬었다 가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안먹었던 터에 여기서 밥을 먹었다. 평평하고 넓직한 바위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바로 옆은 낭떠러지였다. 아무도 없는 두타산성에서 운해를 감상하며 먹는 밥은 혀를 더욱 자극한다. 그럴땐 이 맛에 산에 온다는 생각마저 든다. 급하게 먹을 필요도 없었고 천천히 먹을 필요도 없었다.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다람쥐들이 옆에서 내 눈치를 살폈다. 다람쥐에게 밥을 조금 떼어 던져줬다. 다람쥐는 잘 먹었다. 다람쥐나 나나 같이 먹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서로 긴장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일어섰다. 두타산 정상까지 4km 남았다고 푯말에 적혀 있었다. 그리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가다보면 도착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km. 어느정도의 거리인가. 한강대교 4개를 이어놓은 길이다. 그냥 걸어가도 1시간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 거리를 올라가야 했는데 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밥도 먹고 잘 쉬었으니 올라가는 일이 남았다. 비가 온 직후여서 숲이 뿜어내는 향기는 달큼했다. 이것을 느끼느라 다른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꽤 높은 곳까지 계곡이 있었으며 안개가 더해져 내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이 사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혼자만 볼 수 있어서 신났고 혼자만 봐서 미안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꽤 많이 올라왔음에도 계곡이 있다. 저 평평한 바위 위에 홀로 놓인 바위는 저절로 간걸까.
올라가면서 숲이 내뿜는 맑은 공기도 즐겼고 소리도 질렀고 생각도 좀 했고 마주치는 등산객과 인사도 나누고 뒤도 가끔 돌아봤다. 산 중턱 이상 올라왔는데 특이한 모양의 지형이 보여 찍어봤다. 이 바위들이 생성되었을 때의 질감은 어땠을까. 마치 바위를 가지런히 뿌려놓은 듯한 이 모습은 분명 인위적인 것은 아니었다.
마치 바위를 뿌려놓은 듯한 모습. 이 바위는 지금도 생성되었을 당시의 질감을 그대로 전해주는 듯했다.
올라가면서 힘이 들었다. 지겹다는 느낌도 들었다. 날도 흐리고 아무런 경치도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두타산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등산 전의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산하는 한 등산객이 나에게
"아이구, 어째 거기서 올라올까! 거기서 올라오면 대단한데."
라고 해서 나는
"아, 예~ 올라오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대충 대답했다. 순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는 칭찬을 받아 위안을 느꼈지만 위안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삼척의 천은사로 내려갈 수 있는 팻말을 보고 3년전 혼자 태백에 왔던 일들을 떠올리며 계속 올라갔다.
정상에 올랐다. 등산에 지친 이후로 나를 산 정상으로 가게 해준 원동력은 정상제일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일단 목표를 세웠으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성격일까. 전자 같기도 하고 후자 같기도 했는데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싶었다. 마치 분무기를 뿌리는 것과 같은 비가 내리는 두타산의 정상은 구름에 둘러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었기 때문이다. 두타산성에서 먹다 남은 밥을 맛있게 먹어 치우고 사진을 찍었다. 오후 4시였다. 2년 전이 생각났다. 폭우 속에서 뛰어내려가듯 하산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1980년 1월1일을 가리키는 핸드폰의 작은 플래쉬로 깜깜한 산을 헤치고 계곡을 넘어 겨우 하산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빨리 내려가야했다.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산길엔 정말 한 명도 못 만났다. 괜히 무섭기도 해서 MP3플레이어로 김광석의 다시부르기를 들으며 내려갔다. 좀 빨리 내려가야 했기에 이런저런 생각 보다는 노래를 들으며 내려가는 편이 나았다. 그날 따라 외장스피커가 있는 MP3가 참 고마웠다. 하산했던 길이 내가 2년 전 등산했던 길인데, 내가 이 험하고 높은 길을 어떻게 올라왔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다, 괜히 나약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속상했다. 서둘러 내려오는 와중에도 사진은 찍었다. 하산길에 다리가 더 아팠고 젊은놈이 무슨 스틱이냐고 생각했던 것이 후회됐다.
산의 중턱인데도 이렇게 물이 많이 흐른다.
저 밧줄을 잡고 계곡을 건너가야한다. 계곡에 물이 많으면 좀 위험한 길일 것 같다.
병풍바위를 휘감는 운해.
병풍바위와 함께 셀카. 가끔, 너무 마른 내 모습이 싫어 내 사진을 찍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셀카 찍으려다 삼각대 퀵슈를 떨어뜨려, 두타산에 선물했다.
다시 무릉계곡으로 내려왔다. 시계는 7시 안팎을 가리켰다. 용추폭포와 쌍폭포로 갈까 고민했다. 위험하지 않고 아는 길이었기 때문에 폭포로 갔다. 비가 내린 후여서 계곡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물이 떨어지는 곳 아래에 들어가 앉아있고 싶었다.
사진을 다 찍고 서둘러 내려갔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무릉계곡에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적당히 무서우면서도 적당히 신나는 기분, 나는 이런 기분을 즐긴다. 즐기되, 집에는 가야했으므로 속보로 내려왔다. 하산하니 저녁 7시 40분이었다. 8시간정도 걸린 등산이었다. 조금 힘들고, 다소 빠듯하고, 날씨가 흐려 아쉬웠던 산행이었다.
배가 고파 등산로 입구에서 쪼꼬바를 하나 사먹었다. 등산 후에 먹는 음식은 뭐든 맛있다. 버스는 30분정도 후에 온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묵호항에 갔다가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택시를 탔다. 묵호항까지 15,000원에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대학 동문이었다. 서로 반가워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78학번이셨는데 그때는 학생들이 학점을 관리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은 없었고 다만 졸업이 학생들의 목표였다고 했다. 기사님이자 선배님이신 그 분은 후배인 나를 보고 반가우셨던지 학교다닐 때의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 주로 선후배에 관한 이야기, 사회 참여에 관한 이야기,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내가 가끔 하는 얘기는 선배님의 "요새 세상이 너무 팍팍해서..."라는 대답을 낳을 뿐이었다. 사업을 하시다 건강이 안 좋아 동해로 오셔서 택시운전을 하셨다는데 동해 공기가 좋아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했다.
묵호항에 내렸다. 나는 15,000원을 지불했다. 기사님은 조심히 올라가라는 말씀을 남기고 다음 손님을 태우기 위해 떠나셨다. 순간 그분이 야속해졌다. '나 같으면 후배 만난 게 반가워서 좀 깎아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런 것 같고 야속함을 느끼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야속함과 자신에 대한 미움 속에서 불편해하다가 결론은 쉽게 났다. 야속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어리석을 수도 있는데, 세상은 팍팍하니까 나 자신이 어리석은 쪽이 옳다는 게 결론이다. 어리석으므로, 고쳐야한다.
아버지께서 사오라는 수산물이 묵호항엔 없음을 확인하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와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8시간의 등산을 했다면 매우 피곤할 터인데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번도 잠자지 않았다. 잠이 오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왜 그럴 까 생각해봤는데 맑은 공기를 많이 마셔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동안 한적한 영동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서울로 왔다.
더러는 힘들어서 아무런 생각도 안 했지만, 내가 왜 등산과 여행을 좋아하고 이로부터 얻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등산과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등산과 여행이 재미있고 이것으로부터 나와 세상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맑은 공기와 계곡, 바위, 숲, 수려한 경치가 좋다. 그래서 등산과 여행을 즐긴다. 또한 등산과 여행은 나를 알게 해준다. 내가 속해있는 사회는 나에게 국적, 성별, 나이,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의 사회적 위치를 부과한다. 그것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나는 사회에 속해있으므로 그런 것들과 관계를 가지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속에서 그것들은 나에게 어떠한 것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데 그 압력은 내가 가진 개별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다만 제한된 선택항으로 나를 인도한다. 그 흐름 속에서 살아왔고 그 흐름 속에서 울고 웃어왔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안에서 선택항들에 대해 고민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개별성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사회 속에서 용인되는 '보다 좋은' 선택항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
산은 하나의 인생과도 같다. 시작과 끝이 있고 더러는 오르막길이 있으며 더러는 내리막길이 있고 정상도 있다. 도중에 쉬어갈 수 있지만 쉬는 만큼 정상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이 늦어진다. 하지만 빨리 정상에 오르겠다고 무리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등산에 걸리는 거리와 눈 앞에 펼쳐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내가 어느정도로 움직이면 무리가 없을까에 대해 잘 생각하면서 적절하게 움직여야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다. 물론 오르막길을 빨리 올라도 힘들지 않은 사람은 빨리 올라도 상관 없다. 내리막길도 마찬가지다. 등산과 하산만 목표로 잡고 힘들게 오르내린다면 산행이 즐겁지 못하며 산에 대한 기억도 별로 남지 않을 것이고 다음날 몸만 피곤해진다. 이 원리는 나에게도 적용되고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며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산 속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국적, 성별, 나이,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은 무효하다. 아무리 내가 돈이 많거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고 한들 산과 자연은 이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돈 많다고 덜 힘들고 유명하다고 정상에 빨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산 속에서 사람은 보다 솔직해질 수 있다. 이 솔직함을 갖고 내가 가야 할 눈 앞에 보이는 산길과 전체적인 산길을 생각하며 산행을 하면 보다 온전하게 나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나를 어지럽히는 잡것들이 없는 산에서 나를 공부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내가 해야할 선택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 선택에 믿음을 준다.
이 나이에, 이 깜냥에 산과 인생에 대해 논하는 게 무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많이 다녔고 생각도 했으며 이만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과정 속에서 결론을 내려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근데 너무 많이 쓴 것 같다...
첫댓글 그란디누구... 혹시영원히 짝사랑하는 아돌...
일찍 일어났네.... 하이 좋은 아침 ,,,!! 8월 내내 행복해야해.....
에고 어제 재봉친구와서 새벽까지 놀아서 근지 졸려 글 다 못보고 자로 갑니다 ㅎㅎㅎ
하고 참네 친구 자는 사이에 살그머니 왔넹
근디 누가 산행기을 썼데요 갸가 누구래요 이글쓰느라 욕봤네요
ㅁㄴ지 고렇게 궁금혀요... 내 앤이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