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 김응상
초여름에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나섰다. 햇살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더위를 물리고 있다. 이마의 땀을 식히며 가로수 그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초로의 농부가 운전하는 경운기가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적재함에 앉아 모자를 눌러쓴 아낙이 먹거리를 농부에게 건네준다. 잠시 후, 열매가 많은 가로수 아래 경운기를 세운 농부가 잘 익은 살구를 따서 아낙에게 전달한다. 살구나무 가로수가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는 오후다.
가로수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코흘리개 시절 학교 앞 신작로에서 고삐 풀린 염소가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그 뒤에 동네 아저씨 두 분이 피하라고 소리치며 뛰어왔다. 나는 그 순간 무서움에 힘껏 달렸으나 염소보다 느렸다. 염소가 내 뒤를 바짝 따라왔을 때, 엉겁결에 나무 뒤로 숨어 위기를 모면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몽당빗자루 같은 길가의 미루나무는 내게 고마운 나무로 자리 잡았다.
열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논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맑은 하늘을 나르던 비행기에서 동그란 물체가 내려오면서 점점 커졌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호기심에 맨발로 달려갔다. 그 동그란 것은 낙하산이었다. 계속해서 내려오는 낙하산은 도착하는 장소에 따라 다른 모양을 보였다. 그것은 밭과 둠벙에도 내려왔고, 사과나무 과수원과 도로에도 떨어졌다. 도로에는 차들이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마침 낙하산이 가로수에 걸려 사고를 막았다. 나무에 매달린 병사는 거미줄에 얽힌 잠자리 같이 버둥대며 힘들어했지만 큰 탈 없이 구조되었다. 잠시 몸부림치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있었으나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 온 뒤의 고르지 못한 신작로는 많은 물구덩이를 만들었고, 가끔 달려오는 자동차는 세찬 물장구를 치면서 지나갔다. 가로수는 그 물을 맞으면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다. 건조한 날은 차가 지나가면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먼지는 잎과 가지, 줄기에 두껍게 내려앉아 숨쉬기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묵묵히 제 자리를 고수한다. 남과 비교하지도 않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바람이 흔들고 혹한의 추위가 공격해도, 동물이 상처를 입혀도 내색하지 않는다. 누구와 시샘하지도 다투지도 않는다.
도심의 가로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촉수 높은 불빛으로 잠들지 못한다. 아스팔트에 갇힌 뿌리는 숨을 쉬기 위해, 인도를 울퉁불퉁하게 하며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옹이 하나하나에 고난과 아픔이 낙인되어 삶의 애환을 그려 넣고, 터진 살갗이 고달팠던 삶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아우성과 한숨 소리가 가슴 아프게 들려온다. 한이 맺혀 흘리는 눈물을 어떻게 해야 닦아줄 수 있을까. 탁한 공기로 멀미를 앓는 도시에 청량감을 더해주는 나무다. 우리 곁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생명체다.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가진 고마운 가로수가 사람들의 무관심과 외면으로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
도심을 벗어난 가로수의 삶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은 갓 이발을 한 신사의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자연적으로 정형화된 수형을 만든다. 청주의 플라타너스 길은 녹음이 우거져 여름에 시원한 터널을 이룬다. 무성하게 높이를 자랑한다. 아산의 은행나무길은 인위적인 손질을 최소화하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했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는 전문가의 정성스럽고 세심한 손길로, 훤칠한 키를 뽐내며 고상하고 품격 있는 자태를 보여주는 소나무길이 있다.
김해의 벚나무길은 꽃이 많이 필 수 있게 세심하게 보살피고, 충주의 사과나무길, 영동의 감나무길은 열매가 충실하게 맺히도록 가지치기를 해 준다. 마치 인간의 천태만상 삶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특성과 용도에 맞는 적절한 보살핌을 받는다.
이제는 아스팔트 4차선이 된 신작로의 가로수는 사라졌다. 넓은 도로가 휭하니 지나가는 바람 같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젊은 시절에 생계를 위한 활동으로 바쁘게 살았다. 이제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어 옛 추억을 찾아보려 했으나 그 미루나무는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한적한 시골의 신작로를 걸으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가로수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자신의 몫을 다하는 가로수에 따뜻한 보호의 손길이 더한다면 안전하고 아늑하고 포근한 안식처 같은 길이 될 것 같다.
올가을 가로수는 어떤 모양과 색깔로 우리를 맞이할까. 석양으로 커가는 모습이 믿음직한 군자의 위엄을 갖춘 듯 다가온다.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마음이 고결하게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