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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금강에 햇살이 들이차던 날,
박꽃처럼 하얀 열다섯 처자가
연지, 곤지 곱게 찍고
강 진사댁 맏며느리로 임명되었다
뽀얗게 펴 바른 분이 채 날아가기도 전
설, 추석 빼고 일 년 제사 열세 번
자식은 재산이요.
아들은 필수라는 문중 어르신의 덕담에
말린 치자 열매처럼 쪼그라든 심장
아궁이 앞이 제일 편하다는 걸 깨달을 무렵,
친청엄마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길고 얕은 신음을 이해했고,
삶으로 얼룩진 옷을 방망이로 두들기며
묵은 때도 설움도 날려 보냈다
끼니마다 뽀얀 새 밥 짓고,
감자, 호박 덤벙덤벙 썰어
자박자박 끓여낸 된장찌개 상 위에 올리면
시할머니
시부모
딸, 아들 일곱에
한량 같은 남편까지
밥 한 그릇 뚝딱, 해주는 게 고마워
힘들 줄 모르고
또 아궁이 앞에 앉았다
보람이 별건가
내 식구 배불리 먹이고,
깨끗이 입히고
그렇게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는 게
내 보람이지
주문처럼 삶을 보람을 읊던
박꽃 같던 열다섯 처자의
쌀알보다 뽀얗던 손은
티 안 나는 보람을 남기기고
세월 앞에서 버드나무 수피마냥 후두둑 떨어졌다
한 번도 제멋대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써본 적 없는 손이
우둘투둘 제멋대로 조각나고 뜯긴
버드나무 수피를 닮아있다
솜털 뽀얀 증손주 녀석이 온다는 소식에
하루 열댓 번 손을 씻고
얼굴에도 바르지 않던 크림을 손에 바르고
이 손으로 꽃 같은 그 아이를 만져도 되겠냐고
묻고, 또 묻던
강 진사댁 맏며느리,
나의 어머니
금강과 거북산 사이에 위치한 천내리 초입에서 433년 수령의 버드나무를 만났다.
너른 품으로 정자를 껴안고 있는 듯한 버드나무는 그 자태에 세월의 풍진이 묻어난다.
특히 족히 한 아름이 넘는 줄기는 버드나무의 생을 짐작하게 한다.
갈라지고 제멋대로 벗겨진 수피, 그리고 그 거친 수피를 뚫고 뻗어 나온 무수한 가지들.
그러나 버드나무는 수많은 가지 끝에 달린 싱그러운 초록의 생(生)이 마냥 곱고 예쁜지 바람이 불 때마다 어린아이 달래듯 어른다.
청양군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800 버드나무 433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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