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1] 1849년,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다른 혁명가들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수의를 입은 죄수들은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총살형을 집행할 군인들이 정렬했고,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황제의 메시지를 갖고 온 것이다. “황제께서 관용을 베푸셔서 사형 선고를 거두고 노역형에 처하노라!”
이에 너무 기쁜 나머지 한 사람은 울음을 터뜨렸고, 또 다른 사람은 미쳐 버렸다.
[2] 도스토옙스키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되찾았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감방으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형에게 편지를 썼다. “생명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 그동안 내가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사소하게 여겼는지... 돌이켜 생각하니 내 심장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흘러. 비로소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깨달았어.”
죽음 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절박한 고백이다.
[3] 때로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평안하고 문제없을 땐 자각 못했던 것들도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을 때에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소 형을 비롯한 소중한 것들에 얼마나 소홀했었는지를 깨우친다.
그가 쓴 세기적인 대표작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은 사형 당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그의 체험이 빚어낸 위대한 작품들이다.
[4] 사형수의 몸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는 두렵고 떨렸겠지만, 그러한 체험이 없었더라면 최고의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제는 개그맨 박지선이 모친과 함께 세상을 떠나간 매우 가슴 아프고 우울한 하루였다. SNS에 올라오는 그녀의 해맑은 모습을 보는 것이 고문일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평소 팬들에게 보여준 이미지가 착함과 성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5] 박지선이 떠난 다음 날인 오늘, 그녀와 절친했던 동료 선배 개그맨들의 미안함과 후회가 뒤섞인 소회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것을 하루 종일 지켜보았다. 주로 이런 내용들이다.
“사랑하는 지선아, 피부병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동안 나는 뭘 했단 말인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너와 함께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선아 미안해! 너무 너무 미안해!”
[6] 사람들은 바보스럽게도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의 반복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말이다. 두 모녀의 가슴 아픈 소식이 소중한 것들을 다시는 사소하게 대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변화의 열매로 나타나기만 한다면 그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본다.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하고 늘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소홀히 취급받는 게 너무 많다.
다시는 소중한 것들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