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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라고9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
어느 목사님의 “화엄경 이야기”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우리 삶의 나침반 같은 길잡이 스승을 대학에서나 아니면 교회나 성당, 사찰 등 종교 단체를 통하여 만나기도 하지만 나같이 가방끈 짧고 종교단체에도 다니지 않은 사람은 주로 스승을 서점에서 책을 통하여 찾게 된다. 나는 그동안 서점을 찾아가서 나와 인연이 될 것 같은 책을 골라서 그 책 속에서 내 인생에 가르침을 주시는 많은 스승을 만났다. 나는 몇 달 전 ‘영풍문고’라는 서점을 찾아가서 “화엄경, 원각경, 법화경”이라는 불교경전을 보다가 그 경전들의 저자가 스님이나 불교철학자가 아닌 어느 목사님이라는 것을 알고 별로 책의 깊이가 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으로 구입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서점을 방문하였다가 당시 내가 구입하여 읽고 있던 ‘원각경’이라는 경전이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분이 번역한 책을 구하려다 지난번에 지나쳐 버렸던 어느 목사님이 쓰신 ‘원각경강해’라는 그 책을 다시 만난 게 되는 인연이 되어 일단 구입하여 읽다보니 책을 번역하신 그 목사님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서점을 방문하여 세 권으로 된 ‘화엄경강해’와 ‘법화경강해’라는 책까지 구입하여 읽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훌륭하신 목사님 같아 오늘 소개해 보련다. 먼저, 내가 책에서 만난 김흥호 목사를 소개한다. 김흥호 목사는 1919년 황해도 서흥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진정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화두를 품었다. 평양고보에 다니다 방학이 되어 본가가 있던 고향에 돌아오면 마을 교회에서는 14살에 불과한 그를 평양고보생 인텔리라 하여 설교를 시켰다. 독립지도자로 활동하고 옥고를 치르다 돌아가신 부친을 대신하여 아버님께서 세운 교회의 강단에 섰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대중에게 설교를 하는 진땀나는 경험을 한 김 목사는 그 뒤 틈날 때마다 당시 평양과 서울의 교회에 다니면서 유명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고 어린 나이에 남들 앞에서 설교를 하면서 내심 무척 괴로워한다. "진정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10대 후반에는 당시 식민지 체제하에서 의기소침해진 한국인들을 고무하기 위해 크게 유행하던 부흥회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 후 20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법학과)에 다니면서 무교회주의자들의 성경 강의를 듣고 신앙적으로 새로 눈뜨게 된다. 그는 무교회주의자 선생들의 전집을 탐독하면서 기존 부흥회식 기독교, 즉 "유(有)교회적 입장"에서 양심에 따른 지성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무(無)교회적 입장"으로 옮긴다. 이런 입장은 후에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나면서 유와 무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한 "가온(中)교회적 입장"으로 승화된다. 그는 다석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어릴 때부터 품어온 문제인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수 있는가?"를 풀게 된 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해답이 있어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숙해져서 문제 자체가 문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풀린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1947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하한다. 생면부지의 서울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그는 정인보 선생을 찾아가 선생의 소개로 국학대학에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강연을 한 후 철학개론 교수로 채용된다. 당시 나이 많은 학생 중에는 "주역"을 줄줄 외는 사람도 있고 해서 동양철학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먼저 정인보 선생에게서 양명학을 배운 뒤, 이광수 선생을 찾아간다. 춘원은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있을 때,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으로 온 유영모 선생을 알게 되었는데, 그를 "시계 같은 분"으로 부르며 외경하고 있었다. 춘원은 김흥호 선생을 다석 선생께 추천했고, 정인보 선생도 다석 선생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김 목사는 다석 선생에게서 무서운 힘을 느꼈다. 말씀엔 인격의 무게가 실려 가슴으로 바로바로 육박해 들어왔다. 다름아닌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힘이었다. 김 목사가 본 다석은 한 번 앉으면 몇 시간이고 정좌를 하고, 평생 걸어만 다녔으며, 하루 한 끼만 먹는 참사람(眞人)이었다. 다석(多夕)이란 호에는 하루 세 끼를 저녁에 합쳐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김 목사가 파악한 다석의 실천(道)은 "一坐 一仁 一食 一言"의 "하루살이"이다. 즉 새벽에는 일어나 꿇어앉아 공부하고,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저녁에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밤에는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아침은 "봄"이요, 따라서 꿇어앉아 동서의 고전을 보며, 낮은 '여름"이요 따라서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저녁은 '가을"이요 따라서 겸허하게 "갈무리(추수, 즉 식사)"를 하고, 밤은 "겨울"이요, 따라서 깊은 잠에 빠져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다석은 하루를 곧 일생처럼 살았다. 밤마다 십자가에 달리고, 아침마다 부활했다. 그는 그의 정신일기(多夕日誌)에 하루하루를 셈하여 기록하였다. 그에게 있어 "오늘"은 언제나 "오!(감탄사) 늘(영원)"이었다. 김 목사는 스승이 실천해 보인 그 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걸어갔다. 김 목사는 다석을 따라 다닌 지 3년 만인 어느 날 북한산 구기동 계곡 폭포가 있는 곳에서 요한복음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 대한 다석의 설명을 듣고 귀가 뚫리는 경험을 한다. 그 후 심신이 지극히 쇠진해 있던 김 목사는 어머님의 간절한 권유로 결혼을 생각한다. 그러나 다석은 한사코 제자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너무나 병약하던 김 목사는 오로지 쉬고 싶어 스승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한다. 이때 그는 신촌에 있던 천막교회를 인수받아 대신교회를 세운다. 그러나 결혼을 했어도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주역"에 몰두했다. 매일 한 괘씩 종이 위에 그려놓고 종일 들여다보다가 35살 되던 해 3월17일 오전 깨달음을 얻는다. 평소 다석은 한국인이 신약성경을 이해하려면 유대인의 구약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동양의 유불선(儒佛仙) 삼교와 서양에서 유입된 기독교의 근본 오의(奧義)를 회통한 후 그 견처(見處)를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으로 남겼다. 斷斷無爲自然聲 자신을 텅 비웠을 때 자연과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卽心如龜兎成佛 마음의 본체를 깨치면 만물이 부처다 三位復活靈一體 부활한 정신에 성부 성자 성신이 하나의 영으로 빛난다 天圓地方中庸仁 하늘과 땅의 진리는 인간에게서 구현된다
이후 김 목사는 연세대, 이화여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유, 불, 선, 기독교의 주요 경전을 3년간씩 총 12년 동안 읽어나갔다. 1963년 44세 되던 해, 미국으로 교환교수 겸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뒤, 동 대학에서 종교사학 석사학위를 받는 한편 웨슬리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전 미국 감리교단의 비숍(감독)이며 한국 감리교 명예감독이었던 레인즈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 인디애나주 감리교회의 정목사로 등록된다. 김 목사는 1984년 65세로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직을 한다. 그해 영국으로 가서 재영국 한인교회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귀국,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강의를 하였으며 1996년 이화여대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40여년 전부터 돌아가시기 전(2012년)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동양고전과 성경을 강의하였다. 첫 시간에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둘째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 성경 내용이 동양적 정서로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김 목사께서 쓰신 불경을 소개해 본다. 【아래 그림】<화엄경 강해>는 불교경전 중에서 우리나라 불교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화엄경 80권에 대한 김흥호 목사의 해설이 '화엄경 강해' 3권으로 출간된 책이다.
일반적으로 불경은 석가 사후 400년 내지 500년만에 나왔다. 석가의 사상을 이어받아서 그 당시 글 잘 쓰는 사람들, 사상가들이 그것을 문학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논어’는 제자와 스승이 질의응답을 한 내용이다. 그런데 불경은 석가가 죽은지 500년 후에 제자들이 문학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니까 불경은 하나의 작품이지 석가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경전이 많은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많을 수 있겠는가.
성서에서 예수님은 늘 하느님의 나라를 말했지만 하느님의 나라가 어떠하다고 한마다도 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세계는 말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가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의 요한계시록 같은 것도 모두 문학작품이지 사실은 아니라고 김흥호 선생은 명쾌하게 말씀하신다. 【아래 그림】우리나라 불교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화엄경을 김 목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풀어낸다.
화엄경은 무슨 부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달리 말해서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다. 더 다르게 말하면 인격의 이야기요 더 다르게 말하자면 이것의 나의 이야기다. 내가 인격이지 나를 떠나서 어디에 인격이 있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내 인격 속에서 느꼈을 때 ‘화엄경’이 이해되는 것이지 내 속에서 그 인격을 느끼지 못하면 ‘화엄경’이라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아래 그림】<화엄경 강해>는 3년여에 걸친 김흥호 목사의 강의를 그대로 우리말로 풀어서 쓴 책이기 때문에 읽기도 쉽고 이해도 쉬워 처음으로 화엄경을 접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화엄경강해’ 서문에서 김흥호 목사는 "부처님은 자신을 안 사람이다. 노자도, 공자도, 예수님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들의 경전을 읽는 것은 그 속에서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라고 말씀하신다.
김 목사가 동서양의 경전과 종교서적을 두루 섭렵하는 것은 '종교와 종파, 철학과 학파를 초월해 개개인이 내면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눈 뜬 사람'으로 표현한다. 진리에 눈 뜬 사람이란 뜻이란다.
"불교에선 ‘피안(彼岸)’이라 하고, 기독교에선 ‘하늘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김흥호 목사께서는 학자답게 ‘이상세계’라고 말한다. 이상세계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세계다. 눈 뜬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이상세계요. 눈 뜬 사람이 되기 위해선 눈 뜬 사람을 만나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아래 그림】다음 책들은 그 동안 내가 화엄경을 공부하기 위하여 읽었던 책들이다.
의상대사는 화엄경 80권을 210자로 간추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만들었고, 원효대사는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이라는 한마디로 덮어버렸다. 즉, ‘일도(一道)’는 ‘화(華)’요, ‘출생사(出生死)’는 ‘엄(嚴)’이요,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은 ‘경(經)’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한길로 생사를 벗어나리라”라는 말이다. 【아래 그림】 의상대사는 화엄경 80권을 210자로 간추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만들었고, 대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다시 여덟 글자로 압축한 것이 “行行到處(행행도처) 至至發處(지지발처)."이다‘
"걷고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란다. 즉, 인생이란 ”출발한 곳이 마침내 끝나는 곳이고, 끝나는 곳이 다시 출발하는 곳이다.“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원효대사는 걸림 없는 삶으로 생사를 벗어나라 했는데 의상대사의 "걷고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 (行行到處 至至發處)."라는 한마디는 거대한 우주공간에서 티끌만도 못한 왜소한 인간으로서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앞에서 인생무상의 허무한 그림자가 엄습해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어쩌라!. 이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을... 운명의 그날까지 나아가고 나아갈 뿐이다.
【아래 그림】이 책은 은정희 교수가 쓴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로 불교관련 전문서적으로는 Best Seller겸 Steady Seller에 속하는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자가 16쇄 판이니 말이다.
몰론 전공서적으로 과거 수많은 사법고시 준비생들의 필독서인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개론’같은 경우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판이 156쇄 판이니 여기에 견주기는 어렵지만 어려운 불교관련서적임을 감안하면 16쇄 판을 찍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책임을 입증한 셈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대승(大乘)은 예수, 석가, 공자 같은 분들이며 기신(起信)이란 대승이 나와야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할 때 왜 믿음이 생기냐 하면 예수님이 대승이기 때문이다.
예수나 석가, 공자 같은 분들은 인류의 스승이고 우주의 스승이다. 그런 것을 불교에서는 대승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의 부록인데 이를 보면 이 책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가 짐작이 간다. 대승기신론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없는 탓으로 논란이 되어 오기도 하지만 대승불교 시대의 후기에 나타는 불교사상서 중 가장 뛰어난 논저로 알려져 있다. 【아래 그림】<원각경 강해>는 불교경전 중에서 중국 불교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원각경에 대한 김흥호 목사의 해설이 원각경강해로 출간된 책이다.
원각(圓覺)을 유교식으로 번역하면 ‘대학(大學)’이나 ‘중용(中庸)’이다. 원(圓)은 대(大)와 같으며, 각(覺)은 학(學)이다.
또한 원각(圓覺)을 중용(中庸)이라 번역하면 원(圓을 중(中으)로 각(覺을) 용(庸)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원각(圓覺)을 도덕(道德)으로 본다. 원(圓)이 도(道)이며, 각(覺이) 덕(德)이다. 【아래 그림】나는 선생의 주옥같은 강해를 한마디도 빠트리지 않으려고 연필로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읽고 있다.
모든 종교나 철학은 다른 종교나 학문을 수용해야 살지 그렇지 못하면 죽고 만다.
중국의 종밀이란 선사가 선과 화엄의 대가가 되어 유교와 도교를 다시 연구하여 재해석하여 불교 속에 유교와 도교를 다 수용함으로써 결국 당나라를 불교 일색으로 만들었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는 일생동안 불교에 수용된 유교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불교 속에 수용된 유교의 성(性)을 끄집어내고, 후에 왕양명이 불교에서 심(心)을 끄집어내어 결국 불교에 수용된 유교를 다시 완전히 끄집어내었다.
이렇게 유교가 다시 정립되어 송나라에서 유교가 점차 발달하여 명나라 시대에서는 유교 일색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이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기보다는 타종교나 다른 사상을 수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모든 종교는 특히 유일신 사상을 가진 종교는 타종교와 대립하여 맞서서 싸우기보다는 타종교를 수용해야 한다. 예전에 일본의 세계적인 선불교 학자 한 사람이 우리나라를 돌아보고 가서 한국에서 불교를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은 김홍호 선생밖에 없다는 내용을 일본 신문에 기고한 바 있었다. 【아래 그림】불교의 핵심은 “불(佛 ), 법(法), 승(僧)”이라는 삼보(三寶)이다. 불은 스승이고, 법은 교과서(교재)를 말하고, 승은 Class(교단)라는 것이다 또한 불은 각자(覺者) 깨달은 사람을 의미하고, 법은 우주 만물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진리’도 법이고,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도 법이며 승가는 하나의 교실, 교단을 의미한다.
크게는 불(佛)을 설명하는 것이 ‘화엄경’이요, 법(法)을 설명하는 것이 ‘법화경’이며, 승(僧을) 설명하는 것이 ‘원각경’이다. 【아래 그림】이 책은 내가 처음에 구입하여 보던 원각경으로 원각경에 대한 한자원문을 담고 그 아래 한글주석과 영어해설을 수록한 책이다. 【아래 그림】이 책의 저자이신 전종식 선생도 대단한 분이시다. 전종식 선생은 기술고시 출신으로 공직에 봉직하면서 젊은 시절을 과학기술분야에서만 종사해왔던 공학도였다.
40대 중반부터 부인의 권유로 사찰에 가기 시작하여 불교에 심취, 불도(佛道)에 깊이 귀의하여 인간의 내재적 정신세계를 탐구해왔으며, 그동안 수많은 불교서적을 편찬하신 분이다. 【아래 그림】<법화경 강해>는 불교경전 중에서 일본 불교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법화경에 대한 김흥호 목사의 해설이 법화경강해로 출간된 책이다.
대승경전으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읽은 불경이 ‘화엄경’이라면, 중국 사람들은 ‘원각경’을 많이 읽고, 반면 일본 사람들은 ‘법화경’을 많이 읽는다.
【아래 그림】법화경은 불교에 대한 특별한 전문 지식이 없이도 평이하면서도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원각경 강해나 화엄경 강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동서양의 철학 종교사상을 함께 말씀해 나가신 김흥호 선생의 강의를 친근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법화경은 어머니의 사랑을 강조하는 경전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참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그림】불문학자이자 불교학자인 민희식 선생의 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 선생님도 오래전에 내가 서점에서 책을 통하여 만난 내 인생의 나침반 같은 스승으로서 나는 이분 이 쓰신 책을 거의 모두 구입하여 읽었다.
이 책은 법화경'을 역해하여 신약성서와 비슷한 부분을 찾아내 제시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성서학자들을 놀라게 한 부처와 예수의 닮은 점을 살펴보고 있으며, 부처와 예수의 참된 모습을 찾아낸다.
이 '법화경과 신약성서'에는 성경에는 삭제되어 있는 예수님의 13세-30세까지의 불교수행을 한 예수대사에 대한 생생한 역사고고학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 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 그림】나는 종교나 철학관련 어려운 서적들은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한 Memo를 만들어 주머니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읽었다. 김흥호 목사를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태산 같은 분이 바로 그의 스승인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이다. 김 목사가 만난 '눈 뜬 사람'은 다석(多夕) 류영모 (1890~1981) 선생이다. 다석은 유교.불교.도교 등 동양의 전통 3교에 기독교까지 섭렵한 사상가다. 김 목사에게 다석을 소개해준 사람은 춘원(春園) 이광수다. ‘공자’ 강의로 유명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유영모 선생을 만나 보지 못 한 게 천추(千秋)의 한(恨)”이라고 아쉬워했다는 데서 유명모 선생의 학문적, 사상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석은 조선왕조가 몰락해가고 서구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시기에 1890년에 태어났다. 이때는 가톨릭 전교 100년이 지나고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고 소학교와 중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그는 특히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고 천문학에 매료되었다. 성격이 곧고 이지적이었다. 동경에서 예과인 물리학과를 마쳤다. 한학의 대가로서 서구근대학문의 세례를 받았다. 죽음에 대한 심각한 고민, 톨스토이, 동양사상은 정통신앙에서 벗어나게 했고 구도자적인 신앙의 길로 가게 했다. 동경에서 예과를 마치고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농사꾼으로 살기 위해 귀국했다. 조선왕조는 남에게 일시키고 놀고먹으며 족보 자랑하는 양반도덕으로 망했다고 보았다. 지식을 취하려 대학에 가는 것은 편해 보자, 대우받자 하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은 양반사상, 관존민비 사상이다. 이마에 땀 흘리며 사는 농부를 이상으로 알았다. 일하며 섬기는 삶을 추구했다. 노동자 농민이 세상의 짐을 지는 어린양이다. 빨래하고 청소하는 사람이 귀인이다. 다석은 풀뿌리 민주주의자다. 다석 선생은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을 스승으로 함석헌을 제자로 사귀었다. 성서조선에 기고하면서 김교신을 가까이 했고 최남선, 정인보, 이광수와 사귀었다. 이들은 모두 민족적 주체적 근대문화정신을 추구했다. 서구의 민주정신과 과학정신,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고 동양적 한국적 사상과 영성을 추구했다. 기독교 신앙에 서면서도 다른 종교들과 철학사상에 회통하는 신앙과 사상의 세계를 열었다. 유영모 선생의 영성과 사상은 동양정신과 서양정신의 창조적 결합이다. 첫째 서구의 기독교 신앙을 동양적 한국적 정신으로 풀었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적 한국사상, 한국적 기독교사상이다. 예수와 민족혼의 만남이고 성경과 동양사상의 결합이다. 둘째 서구의 근대철학의 원리와 정신을 받아들여 민주적이고 이성적이며 영적인 사상을 형성했다. 한국전통사상과 근대정신의 종합이다. 서구근대 철학의 핵심원리는 이성주의이며 이것은 데카르트에 의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으로 표현되었다. 생각하는 이성이 철학적 사유의 주체이고 사회활동의 주체이다. 18세기 계몽주의는 이 원리를 관철시키는 운동이었다. 계몽이란 “미성숙한 인간을 성숙한 인간으로 일깨우는 일”이며 성숙이란 “남의 도움 없이 이성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유영모 선생은 생각을 사상과 영성의 중심에 세웠다. 생각이 삶의 중심이었다. 나같이 무식한 놈이 다석 유영모 선생에 대하여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울 것 같다. 【아래 그림】다석 선생의 ‘중용’ 일반적으로 중용(中庸)에서 '중'(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고, '용'(庸)이란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을 뜻한다. 유명한 서양인 동양철학자 James Legge는 중용을 “Being without inclination to either side is called 'CHUNG(中)", admitting of no change is called 'YUNG(庸)'“라고 번역하였다. 중용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다. 【아래 그림】다석 선생의 생전에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기독교는 참 나의 깨달음인 영성신앙을 버리고 사도 바울의 교조신앙, 대속신앙, 의식신앙이 되어 예수의 탈을 쓴 유대교의 기복신앙(샤머니즘)이 되어 버렸다.
예수의 가르침은 회개하라는 영교(靈敎)이다. 초기 예수교를 그노시스(gnosis)라고 한 것은 영교(靈敎)란 뜻에서다. 그런데 바울로 신학이 득세하면서 그것을 영지주의라 하며 배척하였다. 【아래 그림】또한 다석 선생의 생전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예수의 가르침을 그르친 이가 바울로라면 공자의 가르침을 그르친 이가 주희이다. 이 주장을 듣기 싫어할 사람이 많은 것을 알지만 바른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른 말 한마디 하라고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이다. 【아래 그림】다석은 "속의 속이 중(中)인데 중이 참나"라고 했다. 참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이다.
선생이 중용을 '줄곧 뚫림'이라고 한 것은 성령이 예수의 말처럼 마음 속에서 생수처럼 줄곧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다석이 마음의 가운데가 뚫려서 하느님의 성령과 통하고 신통(神通)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본 것은 중용을 기독교 신앙의 자리에서 본 것으로 파악된다. 【아래 그림】나는 가방끈 짧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종교에 관심이 많아 여러 종교의 책들을 구입하여 읽고 있다. ‘전승무교’는 이 시대 사람들이 남긴 종교, 즉 인류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의 원형종교가 되는 삼신교와 덕교의 흔적을 찾아서 추적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굿당에 가면 볼 수 있는 굿이 우리 전통 종교인 3개의 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도 살펴볼 수 있다.
서구의 학자들이 의미를 정의한 종교는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를 그것이 신이든 영원성이든 초월성이든 인간이 짝사랑한 종교다.
그러나 우리의 고대종교는 인간이 신을 짝사랑한 종교가 아니라 신이 인간을 짝사랑한 종교다.
만약 인간이 신을 짝사랑하지 않으면 온갖 죄를 뒤집어씌우고 지옥으로 보내겠노라고 협박하는 외래종교와는 근본이 다르다. 이점이 우리 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다.
하늘의 신들이 인간을 위하여 하늘을 버리고 땅으로 내려오는 종교가 우리의 고대종교이다. 하늘의 신들이 땅으로 내려와서 인간을 두로 이롭게 베푸는 행위가 ‘홍익인간주의(弘益人間主義)’이다. “네가 나를 믿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투의 협박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아래 그림】종교는 인류가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거듭난 이래 한 번도 버린 적이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영원한 화두이다. 사람이라면 아무도 종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종교의 역사는 2500년을 상한선으로 한다. 불교와 도교의 나이가 2500여 년이고, 기독교의 나이는 20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2500년 전에는 지상에 인류만 있었고 인류가 당연히 향유하여야 할 종교가 없었다는 말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명쾌하게 해답을 줄 수 있는 책이 이 책이다. 【아래 그림】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4335년 전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내건 조선에도 당연히 종교가 없었다고 보거나, 종교는 있었는데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조선의 실체 자체를 부정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황당한 말일 것이다.
【아래 그림】그러나 조선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인류가 향유하는 종교의 원형종교로서, 삼신교三神敎니, 태백진교太白眞敎니, 덕교德敎니 하는 종교가 있었다.
삼신교는 14000년 전에 마고가 세운 마고지나의 종교였고, 태백진교는 6000년 전에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의 종교였고, 덕교는 4335년 전에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의 종교였다. 덕교는 이미 10000년 전에 한인천제가 세운 한국桓國에 그 종교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 영혼을 지옥에 보내느냐 천당에 보내느냐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불교의 역사가 2500년의 역사를 상한선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의 선조가 무려 14000년 전부터 이런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니, 놀라 자빠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래 그림】이 책에서는 이 시대 사람들이 남긴 종교, 즉 인류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의 원형종교가 되는 삼신교와 태백진교와 덕교의 흔적을 찾아서 추적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굿당에 가면 볼 수 있는 굿이 우리 전통 종교인 3개의 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가도 추적한다. 이 무교는 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당의 역사를 이야기 하지 않고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삼성당의 초기 역사도 추적해 우리가 궁금해 하는 원형종교를 풀었다. 【아래 그림】이 책은 루마니아 출신의 유명한 비교종교학자인 마르치아 엘리아데 교수가 쓴 책이다.
이 책은 처음으로 샤마니즘의 모든 현상을 밝히는 동시에 샤마니즘을 종교사 전체 속에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종교사학자의 입장에서 샤마니즘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또한 소개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샤마니즘은 고대의 접신술인 신비주의인 동시에 주술이자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의 하나이다. 이 책은 이것을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국면에서 소개하고 중앙 아시아와 북아시아에서의 샤마니즘의 발전 소사(小史)를 살펴보고 있다.
【아래 그림】이 책은 서울대학교풀판문화원에서 펴낸 “불교의 주역/노장 해석”이란 책인데 이해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책은 불교적 바탕 위에서 유교 경전을 주석한 지욱 선사의 주역선해와 감산 선사의 노장선해를 전편과 후편으로 구성하여 엮은 책이다.
저자는 이 두 책을 통해 감산과 지욱의 유ㆍ불ㆍ선 3교의 융화이론을 정밀하게 밝히고 있으며. 나아가 불교와 유교라는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바른 진리를 찾아가도록 인도한다.
【아래 그림】우리 한민족이 알아야할 전통종교가 천부경과 동학이다.
이 책은 한웅과 수운의 연결고리를 연구한 책으로 저자가 여러 학술지에 발표했던 15편의 글들을 모아 엮었다. 동학의 창시자가 수운 최제우라면, 천부경의 사상적 시원은 한웅이다.
저자는 두 사람이 역사적으로 큰 시차가 있지만 그 사상적 원류가 매우 비슷하다고 보며, 한웅과 수운이 한국사상의 시종이라고 말한다. 한웅과 수운에 대한 사상사적 탐구를 제시하고 있다 【아래 그림】영어도 공부하면서 세계의 종교를 공부하기 좋은 “The Religions Book”이란 책을 소개한다. 【아래 그림】이 책은 세상의 모든 종교에 대한 이해하기 쉽고, 혁신적인 가이드북이다. 초기 종교적 믿음에서 새롭게 생겨난 종교에 이르기까지, 배경이 된 주요 개념들과 ‘믿는다’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래 그림】힌두교, 불교,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와 같은 세계 5대 종교를 비롯하여 고대 및 원시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믿음에 관한 고찰을 한다. 【아래 그림】쉬운 용어와 종교적 사고의 모든 면들을 설명하는 센스있는 일러스트, 그리고 단계별 도표를 통해 편안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아래 그림】인류 역사에서 종교와 영성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주요 사건들과 기원에 대해 거시적인 시각으로 설명한다. 간디, 세인트 폴, 그리고 알 가잘리와 같은 저명한 인물들의 가르침과 더불어서 주요 종교들의 분파와 독트린, 그리고 서로 다른 전통 등에 대한 내용들을 참고자료로 구성하였다. 또한 전 세계의 근대 대안 종교와 영성적인 믿음에 대해 탐구하고, 이러한 것들이 태동하게 된 사회 정치적 배경을 같이 설명한다. 【아래 그림】이 책은 영어공부를 겸해서 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고대 및 현대의 믿음과 종교철학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마치 면서】 나는 다석 선생이나 김흥호 목사의 다음과 같은 종교관을 존경한다. 기독교가 타종교들보다 질적으로 우월하다거나 예수가 다른 성현들보다 탁월하다는 식의 생각을 초월하여 구원자는 예수도 교회도 아니며 오직 하느님 한분뿐이라는 개방적인 종교관이다. 하느님 홀로 구원자이기 때문에 예수는 여러 구원자 중의 한 분이며, 세계의 지각있는 종교들은 모두 하느님의 구원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전달한다고 보는 신(神) 중심의 종교관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책은 성서라고 한다. 이렇게 혁명적인 책을 그저 내세의 신앙적 근거로만 삼으려는 우리 신앙의 현실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우리 세대에게 맡겨진 숙제와 같다 끝으로 성철스님은 생전에 스님으로서 과학서적도 많이 읽으셨고 성경책 등 다른 종교관련 책들도 많이 읽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고 나서 성철스님께서 한 말씀이 “불교만한 종교가 없더라!”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그 말씀보다는 “성경책도 읽어보니 불경이나 다를 게 없더라. 그리고 예수나 석가가 추구하는 바는 같더라!“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열반에 드셨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훨씬 많은 감동을 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에는 어느 스님이 쓰신 ‘성서이야기‘라는 책이 세상이 나올 날을 기대해 본다. 이화구 올림 P.S., : 오늘도 별로 재미없는 얘기만 올려서 내 사진 두어 장 올려본다. 첫 번째 사진은 평범한 은행원으로서 나의 사진이다. 두 번째 사진은 경찰총장석에 앉아서 박은 사진이다.
나는 금년이 은행생활 37년째이다. 그리고 금연은 우리 60년생들에는 만으로 55세가 되는 해이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걸려 58세까지 나머지 3년 급여를 퇴직금으로 받고 떠난다.
그래서 그런지 올 여름이 남들은 덥다고 하는데 나는 찬바람이 불면 정들었던 은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올여름이 더운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런데 벌써 입추와 말복을 지나고 다음 주는 여름이 물러간다는 처서다. 다가올 가을을 생각하면 쓸쓸해지는 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