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시대 竹泉 李德泂
이덕형(李德泂)[1566~1645]
【인명】조선 중기의 문신(1566∼1645). 자는 원백(遠伯). 호는 죽천(竹泉). 시호는 충숙(忠肅). 광해군의 폭정에 따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말기에 사직을 허락받지 못했다. 인조반정 후 광해군의 선처를 주장해 충신이라 생각한 인조가 그에게 어보를 맞이하게 하였다.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웠고, 두 호란에서 왕을 호종하였다. 우찬성에 이르고, 영의정에 추승되었다.
泂 멀 형; ⽔-총8획; [jiǒng] 멀다, 깊고 넓은 모양, 차다, 차갑다
이덕형(李德馨, 1561~1613)
한글 사행 기록 죽천이공행적록
25폭의 사행 기록 그림 航海朝天圖
이덕형(李德馨): 조선 중기의 문신(1561∼1613).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 시호는 문익(文翼). 1580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왜적이 대동강에 이르러 화의를 요청하자, 단독으로 일본 사신 겐소와 회담하고 대의로써 그들의 침략을 공박하였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를 알리는 진주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13년 삼사에서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들고 나오자, 이항복과 함께 이를 적극 반대하다가 관작을 삭탈당하고 용진으로 물러나 죽었다.
첫댓글 朝天
전례(前例)로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 중에 별도로 문관 한 사람을 뽑아 따라가게 하였다. 이것을 조천관(朝天官)이라 하였는데, 뒤에 질정관(質正官)이라 고쳤다
조천(朝天 명(明) 나라에 조회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