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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엄청난 플랙스! 부러워라!
랜선인문학여행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
고흐, 헤밍웨이, 괴테, 디킨스
그들의 영혼을 뒤흔든 시공간 그리고 숨은 이야기들
인문학여행이라는 플랙스를 선보이며 삶의 유희를 즐기는 박소영씨는 리얼인문학 대표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문학에 쉽게 다가가기 위해선 바라보는 방식, 접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여행을 한단다. 소영씨는 "작품이란 예술가의 삶을 잘게 부순 후, 그 부순 조각을 다시 새롭게 쌓아올린 건물"이라고 정의하는지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컨셉으로 예술가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을 썼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그건 핑계밖에 되질 않을거라고 해도 그런 여행, 아무나 쉽게 떠나지만은 못한다. 직업도 직업이겠거니와 열정과 재력도 따라야 할 수 있겠지 싶어 그 플랙스가 부러운 건 사실이어서, 포카페이스가 되지 않는 나로선 부러움을 숨기진 못하겠다. 사실 사치?일 수도 있지 않나 싶어 패스할까도 생각했는데 댓글을 통한 어느 분의 추천으로 읽기를 감행했다.
고흐, 헤밍웨이, 괴테 그리고 디킨스 순으로 그들의 삶을 따라갔는데 둘씩 짝을 지워 맞춤한 듯 삶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하다. 일단 고흐와 헤밍웨이는 둘 다 생을 스스로 마감해 버렸고,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내적아픔이 그 마감에 작용했다. 그렇지만 고흐는 결혼이란 걸 해보지도 못했고 헤밍웨이는 무려 네 번 결혼-중간에 불륜도 저지르고-했다. 괴테와 디킨스는 완전 다른 부-엄청 부자와 엄청 가난-를 가진 부모아래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작가로서 성공해 자기들 나라에서 엄청난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다. 헤밍웨이와 괴테는, 이거 뭐 연애사가 너무나 복잡해서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혀 작품이 안써지나? 라는 의문이 일 정도로 사생활이 비호감이다. 둘의 차이라면 헤밍웨이는 그래도 결혼이란 걸 네 번이나 했고 괴테는 한번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말년에 엄청 어린 여자와 결혼이란 걸 하긴 했지만..
여기까지가 소영씨가 여행하면서 알려준 작가 4인방의 삶에 대한 내 간략한 소감이다.
그렇다면 소영씨는 그들의 삶의 자취를 직접 찾아 느끼면서 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시작점은 영국 런던 핵포드 로드 87번지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고흐는 살아 생전 부나 명예를 얻지 못했고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고흐가 오늘날 세계적인 거장이 되기까지는 편지의 역할이 상당히 컸고 그 편지를 제숙씨, 즉 고흐 동생 부인의 노력이 있었단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 르픽 거리 54번지로 이동. 무슈 뱅상(미스터 빈센트)으로 불려지며 탕기 할아버지도 만나고 여러 갤러리 운영자들을 알게 된다(여기서 궁금했던 건 네덜란드 출생인 고흐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을 하며 살았는데 언어는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였다. 혹시 다중언어가능자? 그렇다면 천재맞네!). 믿기진 않으나 이때부터 고흐는 일본에 심취했다고 한다. 소영씨에 의하면 일본에 대해 지고지순한 열정을 지녔다고. 그래서 비슷한 풍을 지닌 프랑스 아를로 옮겨 가 "프로방스의 고독한 화가"가 되고 자신의 거처였던 오베르 쉬르 우아르 라부여관에서 조금 떨어진 밀밭에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테오도르마저 사망하는데 앞서 언급했던 제숙씨 요한나의 나이 28세였고 돌도 안된 아들(고흐의 조카로 이름이 고흐와 같은 빈센트)이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기에 그녀는 "고흐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일기를 쓰고" "지속적으로 고흐 회고전을 개최"했다. 그러면서 "두 형제가 나눈 편지를 영어(영어를 참 잘했다)로 번역하는 일도 계속"해 나갔다. 안타깝게도 요한나도 그리 오랜 삶을 살진 못 했는데 이제 거물급이 된 고흐의 작품들은 그녀의 아들이자 고흐의 조카인 빈센트가 유산으로 받았고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뮤지엄에 모두 기증했다. 그런 연유로 소영씨는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이 박물관에서 멈췄다.
참 쓸쓸한 삶을 살았던 고흐. 그래도 편지를 열심히 쓰고,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덕분에 그리고 영어 잘 하는 제숙씨(오래도록 살아 부를 누렸다면 욕 엄청 했을텐데 그러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아들도 모두 기증을 했기에 욕 안할게요)를 둔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그를 기억할 수 있음이 참 다행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랑스 파리 Rue du Cadinal Lemoine 74번지에서 시작한다. 미국 출생인 그는 프랑스 파리에는 특파원 신분으로 왔는데 그곳에서 무명작가로 열심히 생활했다. 카르티에 라탱(라틴 쿼터), 일명 대학가에서 헤밍웨이 뿐 아니라 제임스 조이 등 유명인들이 자취를 했다. 헤밍웨이는 의사인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출신이다. 그는 대학을 거부, 고졸자였고 신문사 기자생활을 한터라 간결한 글쓰기를 선호했다. 미군으로 세계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그의 작품들을 탄생하게 했지만 의사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강한 성격의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아 많이 삐뚤어졌다. 그렇지만 새벽 6시에 일어나 연필깎기를 시작으로 글쓰기에 몰두하고 그 와중에 아이가 태어나는데 분유까지 주고 할 건 다 하는 성실함을 지녔다. 소영씨에 의하면 이런 면은 괴테와 디킨스도 모두 지닌 작가적 성실함이다. 헤밍웨이는 작가 지망생들의 대모겪인 거트루드 스타인을 프랑스 파리 플레뤼스 27번지에서 만난다. 그녀는 헤밍웨이 첫아들 범비의 대모가 되어주기도 하는데 그녀의 살롱은 피츠제럴드, 파운드, 조이스, 엘리어트, 피카소, 앙리 마티스, 앙리 루소, 장 콕토, 에릭 사티 등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였다. 지금은 개인 주거지로 들어갈 수 없지만 소영씨가 파리에 갈 때마다 주변을 서성이며사랑하는 곳이라고.
<무기여 잘 있거라>를 펴낸 미국 키 웨스트에 집을 장만함으로써 결국 그곳이 헤밍웨이의 종착지였지만 불륜 관계였던 첫번째 부인 친구와 2번째 결혼해서 살았던 곳에서 소영씨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담으로 한여자 한대작꼴로 세번째 부인을 맞이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고 그 부인과 결혼 생활 중 또다른 사랑에 빠졌을 때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다나. 이 대목에서 오리무중인 것은 무슨 막장도 아니고 대단한 작가라 불륜도 용서되는건가? 허긴 헤밍웨이 본인도 인정! 했다고, 새로운 사랑에 빠질 때마다 대작을 한편씩.)
강한 성격 소유자인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결국은 자신이 생을 마감하는 걸 선택해 버린 헤밍웨이 역시 쓸쓸한 삶이다. 창작은 언제나 고통으로부터 비롯되나보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걸 수도, 아니 어쩌면 그러했기에 대작들을 써내려갔으니 잘 타고난 걸 수도 있는 이중성을 지녔기에 더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프랑크푸르트 그로서 히르쉬그라벤 23번지, 괴테 생가가 시작점이다. 괴테라면 소영씨 표현대로 독일 대표 엄친아로 유명한 건 사실이니 할아버지가 호텔업 여인과 두번째 결혼 후 재력가로 급부상했고 아버지는 그야말로 재벌 2세로 프랑크푸르트시장 딸과 결혼해 괴테를 낳았다. 재벌가답게 법대로 진학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 공부시켰다. 이 과정에서 병약했고 책을 많이 읽었고 덕분에 글도 많이 쓰게 됐다고. 괴테 생가는 나도 독일 배낭여행 때 가봤었는데 그 앞에 무지막지한 크기의 괴테 동상이 있었고 매우 부유해 보이는 큰 건물이었던 건 생각난다. 그당시 가난한 학생신분이었던 난, 안에는 들어가보질 못했기에 소영씨가 자세히 설명해 주는 집안을 잘 구경했다.
다음으론 독일 베츨라어 로테하우스로 이동한다. 외가댁이 베츨라어여서 고등법원 견습생을 이곳에서 했었는데 여기서 바로 그 운명적 사랑 샤를로테를 만났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의 약혼녀였으니 운명도 참! 괴테는 이 모든 괴로운 경이로운 운명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녹아내려 출간해 그 당시 노란 조끼가 유행하고 팬덤이 난리도 아니었으나 소설 속 주인공이 선택한 생의 마감을 많은 젊은이들이 따라하는 '베르테르효과'로 이 소설은 재판금지 판정을 받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이 엄청난 운명을 뚫고도 또다른 사랑에 빠지는 괴테였으니 가장 사랑했다는 릴리 쇠네만과 일곱살 연상 유부녀 폰 슈타인 부인 그리고 마침내 총각행세의 종지부를 찍었던 결혼까지 이르게 된 가정부 출신 16살연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까지 괴테의 연애사는 스펙타클하다. 이런 연애들을 하는 동안 괴테는 이탈리아 베로나와 로마에도 갔다가 독일 바이마르에 정착한다. 결국 괴테가 사랑해서 50년 넘게 살았던 곳이다. 이 곳 일름공원엔 괴테 가르텐하우스가 있고 괴테 내셔널 뮤지엄이 있다. 바이마르는, 괴테가 프랑크푸르트 생가에서 20대 초반에 구상해 쓰다말다를 반복하며 60년 이상 매달려 마침내 생을 마감하기 1년 반전에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괴테는 여기서 그야말로 원없이 살았다. 공화국 제2인자급인데다 높은 연봉받고 집받고 말년엔 무지하게 어린 여자와 결혼해 아들까지 낳고 손주까지 얻은데다 대작을 마무리까지했으니..
소영씨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여긴 괴테가 한때 디렉터로 일했던 곳으로 독일 공공도서관 중 가장 오래된 곳중의 하나라는 거외엔 특별할 게 없지만 도서관 매니아인 나로선 마지막 도착지가 여기여서 기분은 좋다.
독문학도의 길을 걸었던 나로선 괴테가 참 부담스러웠다. 아버지께서 독일 출장 중 사다주셨던 파우스트 원서를 한 장도 펼쳐보질 않았다. 지금도 친정집 어딘가에 고대로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어려운 말만 골라 했을까? 애초에 재벌 출신이어서 레벨이 달랐나? 쉽게 말하면 없어 보이나? 대문호 괴테를 감히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건방짐이 아니라 그냥 나의 느낌 그대로이다. 그렇지만 인간 괴테를 간접적이나마 알고 나니 그도 한 인간이었고, 오히려 오래 살아 자신의 가족과 주변인들을 모두 앞세워 보낸 쓸쓸한 사람이었다는, 글을 쓰지 않았다면 더 쓸쓸했을 뻔 했다는 연민이 든다. 이래서 대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겨!
찰스 디킨스. 영국 런던 홀번 도로시가 48번지 찰스 디킨스 뮤지엄이 시작점이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인간백과사전'을 만들어 낸 작가"이며 어린 시절 선생님이 지어 준 별명 '이니미터블(독보적 존재)'로 불리우는 디킨스는 빚쟁이 아버지를 둔 덕에 어려서부터 구두약공장 등에서 일하며 갖은 고생을 하고 자란 이답게 가난한 자들에 집중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대중적인 재미와 함께 사회를 풍자하고자 했던" <올리버 트위스트>나 소년 가장의 뭉클한 이야기 <니콜라스 니클비>, "영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오래된 골동품 상점> 등 이들 작품에 등장한 곳들이 런던에 실재하고 있다. 포츠마우스 거리에 있는 '오래된 골동품 가게', 디킨스의 아버지가 갇혀 있었던 런던 마샬시 감옥, 그리고 독한 냄새를 참아가며 일했던 구두약공장(이 곳은 현재 차링크로스역으로 바뀌었다) 등이다.
디킨스는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엔 저잣거리로 나가 평민들,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을 관찰하며 산책을 했다. 그 관찰을 토대로 자기 경험을 녹여 작품들을 썼다.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묘사했지만 해학을 곁들여 유명해졌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웃지!' 유머가 빠지면 절대 안됨의 법칙이랄까?
런던의 디킨스 흔적을 훑은 뒤 런던 동쪽 로체스터 길드홀 뮤지엄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디킨스는 말년에 14년 동안 여생을 보내며 <위대한 유산>을 집필했다. 로체스터에는 <피크위크 페이퍼>에 등장하는 불 호텔이 있고 영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고대성당도 있다.
소영씨는 디킨스가 결혼해 살았던 퍼니벌스 인은 현재 홀본 바스(푸르덴셜) 빌딩으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 디킨스가 기자 시절부터 단골이었던 맥주집 '올드체셔 치즈'에도 가 보는데 이 술집은 무려 1600년부터 영업하고 있다고.
다음으론 디킨스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지나다니며 선망했던 바로 그 집을 자수성가해 구입한 곳, 개즈힐 하우스로 이동. <두도시 이야기>도 이 곳에서 집필했다. 여담으로 이게 바로 성공이지! 하며 어깨 으쓱했을 것 같다!
소영씨의 발걸음이 멈춘 곳,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디킨스가 영원한 잠을 자고 있다. "디킨스가 첫 저작물을 내고 눈물을 흘린 곳.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 런던에서 그가 사랑한 장소"이자 "그를 품은 곳"이다.
디킨스는 멘탈이 강한 사람같다.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성공해보겠다고 속기 공부도 하고 기자도 되었다. 그래서 셈이 빨랐고 글을 잘 썼다. 손해보지 않고 그의 작품을 어떻게 활용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알았다. 어떻게 보면 아이돌 사업을 하는 기획사들이 코흘리개 돈을 하염없이 끌어 모으는 것처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도록 재미있고 통쾌하게 썼고 부자들에게는, 디킨스 자신이 손수 광대가 되어 낭독회를 열어 다가가 돈을 끌어모았다. 그야말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해내고 엄청난 부를 거머쥔 성공한 작가가 된 것이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 삐뚤어지지 않고 그것을 작품에 녹여내는 승화를 만들어냈으니 디킨스도 천재다.
♡ 늘 도서관 관계자분들과 한글도서목록을 수고로이 올려 주시는 평상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
1년에 52권 서른 두번째 읽은 책
랜선인문학여행
2021년 8월 9일 달요일에
첫댓글 폭풍 독서네요. ㅎㅎㅎ
좋아하는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 가보는 것은 재미있을 듯한데,
아직 저는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까지 읽지 보지 못한
소로우 [월든]의 배경인 월든 호수는 한 번 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 가서 [월든]을 들면 읽어낼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나도 좋아서 독후감을 올렸는데
해외여행 시에 어느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후대 팬의 성지순례라고 할지요.
괴테의 로마 이태리 여행기를 구하는 중,
나의 디킨스 애장품, 아니면 그냥 디킨스 goods는 어린이용 그림책, Charles dickens 일대기 그림 by mick manning
그래픽이 너무 좋아서 ( 한국의 손녀에게 줄 책을 내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