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은 말이 없다
그날은 눈이 오지 않았다. 차디찬 빗방울만 속삭이듯 내렸다. 날이 푹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겨울바람은 여전히 뼛속을 파고들었다. 계절을 잊은 비구름 아래로, 넓게 펼친 기와집이 있었다. 보에는 생체기가 가득하고, 기와도 몇 놈은 이가 나갔다. 그럼에도 가구에는 먼지 하나 쌓이지 않았고, 대들보도 반듯했다.
고운 흙과 자갈로 덮인 마당에는 큰 소나무가 아름드리 뻗어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백발노인의 봉분이 솟았다. 기어코 소나무를 가리고 섰지만, 그것이 살아생전 노인의 뜻이라는듯 했다.
봉분 앞으로는 상복 차림의 유족과 조문객이 늘어섰다. 그들은 향을 피우고, 봉분을 향해 큰 절을 두 번 올렸다. 성분제는 일각만에 끝났고, 조문객들은 하나 둘 발걸음을 돌렸다. 그중 얼굴에 삐뚜름한 주름이 가득한, 나이 많은 유족은 대청마루에서 홀로 입을 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노인네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시지 않다니.”
백발노인의 소원은 눈발이 소복이 쌓이는 날 고요히 잠드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하늘은 언 날씨를 생각 않고 비만 하염없이 내렸다.
“저 염병할 구름은 웬종일 재수도 없게・・・・・・.”
나이 많은 유족은 지포라이터의 부싯돌을 튀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만우법무법인이라고 날인된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바로 옆에서 마찬가지로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사내가 말했다.
“유산일랑 전부 다 공평하게 나눠야지. 혼자 먹을 생각은 얼씬도 말어.”
사내의 셔츠는 단정했지만 소매가 해져있었고, 주름진 구두엔 흙먼지가 살짝 묻어 있었다. 사내의 얼굴에는 나이 많은 유족의 그것과는 또 다른 주름이 아직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 많은 유족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깨끗한 피부에 정장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성 유족에게로 발걸음 했다. 그 둘은 입과 귀를 맞추는가 싶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때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여성 유족은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높고 큼지막이 외쳤다.
“이 사람들이 미쳤네, 미쳤어. 참나.”
그녀는 빨간 가죽 재킷을 걸치고 보랏빛 아이섀도와 립글로스를 칠했다. 분노 때문인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서였는지,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입은 재킷만큼이나 시뻘겋게 되었다.
큰 소리에 수십에 달하는 유족의 눈과 귀가 그녀에게 쏠렸다. 젊은 유족은 당황해서는 황급히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뿌리치고는 한층 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보는 눈이 얼마고 듣는 귀가 얼만데 유산 떼먹을 궁리를 하고 앉았어?”
장내에 나지막한 웅성임이 일었다. 줄곧 대청마루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던 사내는 입김을 내뱉고, 눈을 흘기고 묵묵히 부싯돌만 튀겼다.
“미쳤지 미쳤어. 돈에 단단히 미쳤어. 그렇게 돈이 좋으면 여긴 왜 왔어? 가서 일이나 하지. 아니지 돈 때문에 온 건가? 아버지는 어찌 되건 관심 없고 돈이나 떼어먹으려고 온 거지?”
빨간 가죽의 앙칼진 목소리가 메아리 치자, 장내는 정적이 일었다. 나이 많은 유족은 어느새 빨간 가죽만큼이나 낯을 붉혔고, 이내 두껍고 투박한 손이 그녀의 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매서운 통증이 뺨에 번지자, 빨간 가죽은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이 년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얻다 대고 지랄이여 지랄이! 솔찬히 여기서 아버지 아프실 때 밥 한 끼 해드리고, 약 한 종지라도 지어드린 사람 있어? 고생이란 고생은 내가 다 했잖여. 왜 나한테만 성화여! 그리고 넌 옷이 그게 또 뭐여. 아버님 상 당하신게 장난이여? 시뻘건 꼬락서니 하고는.”
나이 많은 유족은 버럭 성을 내고도 아직 화가 가시질 않는지, 거친 숨을 내뱉고 담뱃갑과 까만 지포라이터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는 애꿎은 대문을 소리 나게 열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빨간 가죽의 흐느낌은 비에 젖은 모래바닥에 스몄고, 주위 유족들은 그녀를 조심스레 달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이 많은 유족의 험담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더 옳겠다. 그를 속물이라 함은 곧 거울에 돌을 던지는 일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 파편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라이터를 부추기던 사내는 기어코 한 까치에 불을 붙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떠다니는 듯했다.
비는 이미 그쳤지만, 비구름은 하늘을 맴돌았다. 사내가 머금은 숨을 길게 내뱉자, 연기는 처마를 타고 올라가 먹구름의 한 귀퉁이가 되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당에 모인 아이들에 시선을 한 번 두고는, 봉분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끝내 눈은 오지 않았고, 봉분은 말이 없다. 남겨진 자의 속삭임은 떠나간 자의 침묵 앞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봉분은 끝내 고결하고 순수한 눈송이를 그리며 긴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