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크 (동남아시아 원산의 작은 사슴)의 적혈구/ @ Science
사슴과 인간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의 적혈구가 비정상적인 형태로 뒤틀리는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은 사슴의 혈구에서 이 변형을 초래하는 분자적 변화를 규명했다. 이번 발견은 1840년대 이후 연구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해왔던 수수께끼를 푼 것으로, 기형적인 혈구가 일부 사람들을 말라리아에서 구원해주는 메커니즘을 매듭짓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슴에서 적혈구의 겸상화(sickling)가 일어나는 분자적 기초를 알아낸 것은 커다란 진보다"라고 하버드 의대 의 비제이 상카란 박사(소아혈액학)는 논평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 관여하지 않았다.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는 (혈액 속에서 산소를 배달하는)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비트는 변이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DNA 결함이 베타글로빈(β-globin: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두 가지 유형의 단백질 중 하나)을 끈끈하게 만들어, 헤모글로빈 분자로 하여금 엉겨 붙어 뻣뻣한 섬유를 형성하게 한다. 이렇게 생겨난 섬유는 원반 모양이어야 할 적혈구를 초승달 등의 비정상적 형태로 뒤틀리게 만든다. 이러한 질환을 가진 인간은 왜곡되고 취약한 적혈구 때문에 모세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어, 통증, 피로, 장기손상을 겪게 된다.
그런데 여러 사슴 종(種)의 경우에도 혈구가 변형되는데, 과학자들은 지난 170년 동안 그 원인을 알지 못해 전전긍긍해 왔다. 이에 MRC(Medical Research Council) 산하 런던 의학연구소의 토비아스 워네크 박사(분자진화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전세계 15종의 사슴에서 혈액, 근육, DNA 샘플을 수집했다. 대부분의 표본은 동물원의 동물에게서 채취된 것이지만, 말코손바닥사슴(moose)와 순록(reindeer)의 표본만큼은 구하기가 힘들어, 희귀한 고기를 판매하는 업체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해야 했다.
말코손바닥사슴과 순록은 북미산 엘크와 마찬가지로 혈구가 겸상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보유한 베타글로빈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다른 사슴들과 비교해본 결과, 한 가지 핵심적인 차이가 발견되었다. 혈구가 겸상화된 사슴의 경우, 하나의 아미노산이 글루탐산(glutamic acid)에서 발린(valine)으로 바뀐 것이었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초래하는 결함있는 형태의 헤모글로빈에서도 똑같은 아미노산 교체가 일어나지만, 분자에서의 위치가 다르다.
연구진은 12월 18일 《Nature Ecology and Evolution》(온라인판)에 기고한 논문에서, "사슴에서 일어나는 아미노산 교체는, 그들의 헤모글로빈 분자로 하여금 엉겨붙어 섬유질을 형성하기 쉽도록 만드는 듯하다"라고 말했다(참고 1). 그러나 인간과 달리, 겸상적혈구를 보유한 사슴들은 완전히 건강하다. 왜 그럴까? "나는 사슴이 뭔가 비용을 치를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게 뭔지 전혀 모르겠다"라고 워네크 박사는 말했다.
인간의 경우에는 겸상화의 비용이 명백하다. 미국의 경우,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는 쉰 살 이상 살지 못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볼 때,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역에는 결함있는 베타글로빈 유전자의 출현빈도가 의외로 잦다. 그 이유는, 결함있는 유전자를 한 카피만 보유할 경우 말라리아에 덜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변형된 단백질이 말라리아 병원충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메커니즘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워네크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슴의 경우에도 적혈구의 겸상화에 뭔가 이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연구진은 진화적 분석을 통해 "사슴은 천만 년 전부터 '겸상화되기 쉽지만 건강에 지장이 없는 베타글로빈 버전'을 진화시켰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음으로, 연구진은 상이한 흰꼬리사슴(white-tailed deer) 개체군을 대상으로, 말라리아 병원충이 풍부할 경우 '겸상화를 촉진하는 베타글로빈 버전'의 빈도가 증가하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만약 변형된 베타글로빈이 사슴의 말라리아 저항성을 향상시킨다면, 그 이유를 밝힘으로써 인간의 변형된 적혈구가 말라리아 병원충을 물리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스턴 의대의 마틴 스타인버그 박사의 의견은 다르다. "인간과 사슴의 겸상적혈구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의 경우에는 산소가 부족할 때 혈구의 형태가 변하지만, 사슴의 경우에는 산소가 풍부할 때 혈구가 겸상화된다"라고 그는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사슴의 적혈구가 겸상화되는 과정을 매우 상세히 밝혔는데, 그럴수록 사슴에 관한 수수께끼는 더욱 깊어진다. 나는 사슴 적혈구의 겸상화가 사슴을 병들게 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 참고문헌 1. http://www.nature.com/articles/s41559-017-0420-3
※ 출처: Science www.sciencemag.org/news/2017/12/170-year-old-mystery-solved-why-deer-have-deformed-blood-cells-just-some-peop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