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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 진 과 더불어 살아가기~. 원문보기 글쓴이: 전 진
▲ 미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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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떠날 때 기분이요? I was happy."
고향을 떠날 때 기분을 물었더니 '행복했다'고 말하는 사람.
바로 미셸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위원장이다.
29살에 연고도 없는 타지로 떠나면서 그는 단지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하나만 세웠다.
그래서 그의 " I was happy"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미래 시점만을 향한다.
지금으로선 현재형이 불가능한 단어, 행복.
그는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요."
필리핀에서의 삶을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을 때 절망은 삶 그 자체가 된다.
"고등학교 때도 길거리에서 과자, 바비큐, 주스 같은 거 팔았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일해야 했어요.
체인점에서 배달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상점 같은 데서 핸드폰 파는 일도 하고, 건설일도 했어요.
전기 배선 설비, 장치하는 일 같은 거요.
어머니 혼자 일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도와야했고, 아버지는 똑똑하고 재능도 많으셨는데 운이 없으셨어요. 우리는 항상 가난했어요."
가난은 운명을 넘어서 숙명처럼 삶을 파고든다.
하루 20시간씩 휴식도 없는 고된 노동 후 서너 시간 쪽잠마저 편치 못한 하루들의 연속. 절망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일해야 했다. 살아야하기 때문이었다.
손쉽게 학대하는 사회
노동자를 원숭이 취급하는 공장.
음식을 손으로 먹도록 강요하고는 '더럽다' 모욕하는 관리자.
고릿적 이야기도, 먼 타국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지금, 당신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첫 일자리였던 OO전자에서 너무 많은 차별을 겪었어요.
특히 필리핀 노동자들에 대해서요.
아프면 '일단 회사로 오라'고 해서 반장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했어요. '필리핀 사람들이 항상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래요.
차장이라는 사람은 필리핀 사람들을 '정글보이', '정글걸'이라고 부르면서 원숭이처럼 봤어요.
교육 못 받은 사람 취급하고 '너희들은 젓가락 안 쓰니까 손으로 먹으라'고 하면서, 우리더러 '더럽다'고 이야기했어요."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도 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실은 때로 소설보다 잔인하다.
실수라도 하면 관리자 앞에서 무릎 꿇고 빌어야 했다.
그 때 미셸 위원장은 참지 못하고 노동부로 갔다고 했다.
'임금체불보다도 인종 차별적, 노동 차별적인 행태가 더 부당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재키
첫 번째 회사는 문을 닫았다.
두 번째 회사는 그녀를 성희롱했고, 세 번째 회사는 돈을 주지 않았고, 네 번째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받을 수 있는 돈은 적었고, 노동시간은 고되고 길었다.
지금도 그녀는 혼자서 기계를 3대, 4대씩 만진다. 그녀는 매일 아프다.
고향에 있는 그녀의 아기는 가와사키 병(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에 걸렸고, 한번 주사 맞는데 100만 원씩 든다.
한국에서 많은 돈을 빌렸다. 그녀는 빚이 너무 많고 그래서 아직 돌아갈 수 없다.
비현실적이라 더욱 극적인 그녀의 비극 역시 냉정한 현실의 한 단면이다.
그녀는 마지막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이주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이름은 재키였다.
"그 때 규정에 따르면 회사를 세 번만 옮길 수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 귀책사유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면 노동부에서 한번은 더 옮기게 해줬거든요.
그런데 그런 기록을 어떤 사장이 해주겠어요?
그래서 그때 경기본부의 이종만 노무사와 함께 노동부에 진정을 했어요.
재키가 진술하고, 조사도 받고 했는데, 근로감독관이 '증거도 목격자도 없다'고 '진정을 못받겠다'고 그랬어요.
성희롱이 증거가 어디 있나요?
그래서 결국 재키는 회사를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재키 씨는 아직 한국에 있어요. 그녀의 이야기는 매우 슬픈 이야기예요."
미셸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마주친 눈에 머쓱하게 떠올랐던 그의 웃음은 무거운 감정들로 인해 금세 내려앉았다. "그녀는 매우 좋은 사람이에요."
지금 그의 눈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쁘게 떠올랐다 가라앉고 있을까.
그의 눈에서 마구 끓어오르는 잔울음들이 제 스스로 가라앉을 날은 언제쯤일까.
ⓒ이주노조 |
내가 여기에 있다!
비명의 내용은 모두 같다.
스스로가 소멸될 것 같은 순간, 스스로에게 외치는 절박한 호출.
"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얼굴이 있고, 감정이 있는 나는 하나의 역사로서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나의 존재가 수면 아래로 막 가라앉으려는 찰나 세상을 향해 절박하게 내뿜는 마지막 호흡. 비명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너무 쉽게 학대했어요.
차별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났어요. 왜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지…."
관리자들이 욕을 할 때, 이주노동자들은 묵묵히 참는다.
"괜찮아. 나를 때리거나 크게 다치게만 하지 않으면 돼"라며 모욕을 견디고 있을 때 미셸은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거'라고. '처음에는 욕만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너를 다치게 할 거'라고. '처음부터 그 어떤 차별이라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그런 차별적인 일을 당할 때 동료들에게 '가만있지 말라'고 이야기했어요.
'너는 그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요.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회사 물건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너의 인간존엄성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일 하러 왔지 동물이나 기계로 이 곳에 온 것이 아니다. 너는 노동자이지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존중해야만 한다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지난 여름, 미셸 위원장은 유난했던 폭염을 견디며 한 달간 단식을 감행했다.
턱선이 날렵해졌다는 말에 사람 좋게 웃다가도 금방 피로함을 느끼며 몸을 뉘었던 미셸 위원장은 토혈을 하면서도 한 달을 단식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왜 단식이었는가. 그 질문에 미셸 위원장은 "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예요"라고 했다.
"단식은 투쟁의 한 형태예요. 우리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권리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단속추방과 같은 정책들은 천천히 이주노동자들을 죽이는 정책이에요. '나의 단식투쟁은 그런 정책들로 인해 일어나는 반영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식은 스스로를 소멸시키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투쟁방식이다.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면서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미셸 위원장은 그런 방식에 회의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꺼낸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분노의 크기와는 별개로 투쟁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이탈리아에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농장에서 많이 일해요. 차별당하고 탄압당하면서. 최근에 아프리카 어린이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총에 맞은 일이 있었어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격연습을 하다가 그런 거예요. 장난으로 한 거였어요. 사람을 단지 사격연습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주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데모를 했어요. 가게도 깨부수고.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 지역사회 전체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을 탄압했던 것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지역사회 자체도 사실 피해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아요. 이주노동자와 평범한 시민들이 분리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고. 내가 단식투쟁을 한 것도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어요. 폭력적인 행위가 아닌 투쟁의 형태를,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함정에 빠지지 않기
구성원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의 여부는 그 사회의 질서를 결정한다. 사실 어떤 것이건 그럴 듯한 논리만 갖추게 되면 믿기 쉬워진다. 게다가 사람들은 내용을 알 길이 없더라도 그럴 듯한 구조를 갖춘 것이 제 삶을 소비하는 데 이득이 된다고 판단되면 손쉽게 믿어버리는 경향 또한 가지고 있다. 무엇이건 믿는다는 것은 그것과 어긋난 것들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는 의지이기도 하며, 그래서 위험하지만 또 그만큼 대단히 편리하기도 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나같이 잔인하다는 그 사장들은 별스런 나라에서 똑 떨어진, 유별나게 더러운 성격의 사람들일까. 더러운 성격의 사람들만이 중소기업 사장이 되며 또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까. 그 "나쁜 사장"이라는 이들은 바로 우리 이웃이며 혹은 누군가의 선량한 부모일 것이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성토하며 거리를 메웠던 삼삼오오 촛불의 대열에 서서 정의사회 구현을 외친 누군가였을지 모른다. 그토록 가정적이고 선량한 중소 공장의 사장들은 단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뿐이다. 단지 그들은 일정한 수입을 내고자 그들을 닦달하고 학대하며 임금을 깎아보려고 혈안이 되어있을 뿐 특별한 악감정은 없다. '나쁜 사장'들도 우리와 멀지 않은 생각과 시선을 가진 소시민들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많은 것들에 대해 포기해버리듯이, 그 사장들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지는 측은지심과는 별개로 그 모든 부당행위들을 "어쩔 수 없는 일"로 포장시켜버린다. 그들에게 정의는 멀고 추상적인 이야기이며, 현실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긴의 공장 안에서 외국인노동자를 학대하면서도 거리에서 숭고하게 촛불을 켜들고 정의를 외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우리에게도 대단히 편리하게 작동한다. 명백히 잔인한 가해자이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혹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믿어 버리는' 식의 한도 끝도 없는 논리는 가해자들을 한 순간에 선량한 이웃으로, 다정한 부모로 탈바꿈시켜 놓는다.
중소 공장의 사장들을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우리들도 그런 측면에서는 별반 다르지 못하다. '사회 정의'가 원론적이고 추상적이게 되어 삶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그것은 단지 변명거리로 전락한다. 탈세와 비리, 온갖 불법 행위로 얼룩진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서면 신의 순한 양이 되는 것처럼, 그것은 단지 면책의 도구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암묵적인 동조 하에 서로의 허물은 관대하게 덮어주면서 함께 좋은 이웃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해 인권문제를 이야기하려면 멀리 중소기업 사장들을 욕할 것 없이, 바로 자신부터 돌아보면 된다.
어디에도 안착할 수 없다
▲ <하바나 블루스>(2005) |
영화 <하바나 블루스>에는 한 가난한 음악가가 아내와 아이를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가난에 내몰린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가족의 생존이란 짐을 등에 짊어진 채 작은 농장을 짓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미셸 위원장의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안 해본 일 없었지만 가난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도 이주노동자였다. 가족들은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고된 노동을 견디다가 산재나 단속으로 다치거나 죽어간다. 그들에게 가정이란 이름은 영영 요원해진다. 가난은 자식에게 되물림되고, 탈출구는 까마득하다.
세상에 돈은 넘치지만 그들에게 돌아갈 돈은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위험하고 고된 일을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싸구려, 쓰레기 취급 받는다. 가족들을 타국으로 보내면서 주인공은 노래한다.
"이제 난 당신을 떠나보내고 당신과 나 사이에 바다를 놓아야만 합니다. 모순 속에 살고 있는 대가를 이렇게 치릅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태양과 정치와 신과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이제 원론적인 이야기들에서 한 계단 내려와 우리는 이들의 가난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권' 담론에 부쳐
"모든 사람은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해요. 홈리스나 빈민, 장애인들, 성소수자, 비정규직노동자들 모두 다 똑같이 존중받아야 해요. 모든 사람들로부터요.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돈 가진 사람들만 존중받아요. 그런 현실은 옳지 않잖아요. 먹을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은 쓰레기 취급되는 세상이 옳은 세상인가요?"
그의 물음에 떳떳한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을까. 우리는 그들의 가난을 방조한 사회에 입 다물고 사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가난에 대한 책임이 있다.
미셸의 말을 통해 바라본 한국 사회는 실상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다. 부자들만이 권리를 가지는 사회, 부자를 넘어 인격이 부여된 자본 그 자체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이다. 자본이 최상의 덕인 사회에서 자본이 배제된 것들이 삶과 분리되는 것은 어찌보면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자본의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학한 사장님'이 되었다가도 집에 돌아와 양심이란 것을 따로 챙길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 사장님들은 낯선 얼굴의 외국인노동자들을 착취하지만, 그 돈의 일부를 교회에 헌금하거나 불우이웃돕기에 낼 수 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으며 그 인기를 업고 정치가가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는 범법자들을 총리로 장관으로, 심지어 대통령으로도 허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잘못되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 또 우리는 너무 쉽게 그런 상황들을 허용하고 있다.
인권이란 온갖 현학적인 단어들로 수식된 거창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존중하면 바로 거기에 당신의 권리가 있다. 권리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 인권은 바로 당신에게서부터 탄생된다. 인권이 없어진 자리에 서서 누구든 '인권의 부재'를 이야기하면 된다. 당신을 주저앉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한 겹 벗어내고 맨발로 일어서자. 진실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