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2 - 위정(爲政) - 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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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由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깨우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 由, 孔子弟子, 姓仲, 字子路. 子路好勇, 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 故夫子告之曰: 我敎女以知之之道乎! 但所知者則以爲知, 所不知者則以爲不知. 如此則雖或不能盡知, 而無自欺之蔽, 亦不害其爲知矣. 況由此而求之, 又有可知之理乎! 由는 공자의 제자로서 성은 仲이고 자는 자로다. 자로는 용맹함을 좋아하였는데, 대개 그가 알지 못한 바를 억지로 안다고 한 것이 있었기에, 공자께서 그에게 이렇게 알려 주었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안다는 것의 도를 가르쳐주겠다! 단지 아는 것이면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면 알지 못하는 것으로 하라.” 이렇게 한다면, 비록 혹시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스스로를 속이는 폐해가 없으니 역시 그 안다는 것에 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이로써 앎을 구한다면, 또한 알 수 있는 이치가 있음에랴! 朱子曰 子路粗暴 見事便自說曉會得 如正名一節 便以爲迂 和 那箇知處也 不知了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則無自欺之蔽 其知固自明矣 若不說出求其知 是使人安於所不知也 故程子說出此意 經意方完 旣不失於自欺 又不失於自畫 주자가 말하길, “자로는 거칠고 난폭하였으며, 일을 보면 곧바로 깨달아 이해하였다고 스스로 말하였는데, 예컨대 ‘명분을 바르게 한다’는 한 절에서 곧장 우활하다고 여겼던 것이니, 저 아는 부분마저도 합하여 모두 알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곧 자기를 속이는 폐단은 없게 되니, 그 앎이 본래부터 스스로 밝은 것이다. 만약 자신이 알기를 추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는 바에 안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자가 이 뜻을 말하자, 경전의 뜻이 비로소 완전해진 것이니, 이는 이미 자기를 속이는 데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또한 스스로 한계를 긋는 데에서도 잘못을 범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人苟恥其不知而不求問 是終不知也 以爲不知而求之則當知矣 故云是知也 정자가 말하길, 사람이 만약 그 알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묻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끝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알지 못한다고 여겨서 구한다면, 마땅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안다고 말한 것이다. |
2 | 聖人只爲人將那不知者 亦說是知 終至於知與不知終無界限了 若人能於其知者以爲知 於不知者以爲不知 而不强以爲知 此便是知了 只爲子路性勇 把不知者亦說是知 故爲他說如此 성인께서는 단지 사람들이 저 알지 못하는 것을 또한 안다고 말하기 때문에, 끝내 앎과 알지 못함이 결국 경계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하여 아는 것으로 삼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모르는 것으로 삼되, 억지로 아는 것으로 삼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단지 자로는 본성이 용감하여 알지 못하는 것도 또한 안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말한 것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問學者之於義理於事物以不知爲知 用是欺人 亦可矣 本心之靈 庸可欺乎 但知者以爲已知 不知者以爲不知 則雖於義理事物之間 有不知者 而自知則甚明而無蔽矣 故曰是知也 以此眞實之心 學問思辨 硏究不舍 則知至物格意誠心正之事 可馴致也 夫子以是誨子路 眞切要哉 此章言之若易 而於學者日用間關涉處甚多 要當步步以是省察 則切身之用 蓋無窮也 曰 此說甚善 누군가 묻기를, “배우는 자가 의리와 사물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여기고서 이를 이용하여 남을 속인다면 이 또한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심의 영이라면,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는 것을 이미 아는 것으로 여기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비록 의리와 사물 사이에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스스로를 아는 것에는 매우 밝아서 덮어 가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안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한 마음으로써 널리 배우고 살펴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여 연구하기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앎이 지극해지고 사물의 이치가 궁구되며 뜻이 정성스럽고 마음이 바르게 되는 일들이 차근차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로써 자로를 깨우쳐주심이 진짜로 절실하고 요약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장에서 말한 것이 평이한 것 같지만, 배우는 자에게 있어서는 일상생활 중에 관여되는 곳이 매우 많으니, 마땅히 차근차근 이로써 성찰해야 하고, 그렇게 한다면, 제 몸에 절실하게 활용함이 아마도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 말이 아주 좋다”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是知也 言是乃知之道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이것이 안다는 것이다.라는 것은 이것이 바로 앎의 도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强其不知以爲知 非惟人不我告已 亦不復求知 終身不知而後已 好勇者 多喜自高 不服下人 故有此弊 此必子路初見孔子時 孔子以此箴之 後來有聞未之能行 惟恐有聞 及人告以有過則喜 則必改此失矣 然終有見義欠透徹處 是以知食焉不避其難之爲義 而不知食輒之食爲非義也 不知者以爲不知 則人必我告已 亦必自求之 豈非知之之道乎 신안진씨가 말하길, “억지로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긴다면, 단지 남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나도 더이상 앎을 추구하지 않으므로, 종신토록 알지 못하고서 끝날 따름이다. 용맹함을 좋아하는 자는 대부분 자신을 고상하게 여기는 것을 좋아하며, 남에게 굽히는 것을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폐단이 있는 것이다. 이 일은 틀림없이 자로가 처음으로 공자님을 만났을 때, 공자께서 이로써 자로를 경계하신 일이었을 것이다. 나중에는 ‘들은 것을 아직 행할 수 없으면, 오직 다시 듣는 것이 있음을 두려워하였다’거나 ‘남이 허물이 있음을 알려주면 기뻐하였다’는 것이었으니, 반드시 이러한 잘못을 고쳤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의를 보는 데에 투철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이런 까닭으로 ‘여기서 밥을 먹으면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 것이 의가 되는 것’만 알았을 뿐 ‘위출공의 밥을 먹는 것이 의가 아님’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남이 반드시 나에게 알려줄 것이고, 또한 반드시 스스로도 앎을 구할 것이니, 이 어찌 아는 것의 도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