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성격검사
20여 년 전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원장수녀님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그는 우리 부부를 빈 교실로 데리고 가서 당시로선 생소했던 MBTI 성격 테스트를 시작했다. 난 평소 얌전했던 수녀님이 신자 성격을 왜 갑자기 테스트하는지 의아했다. 사목회 총무 일을 맡고 있었기에 거부하지 않을 거라 믿고서 먼저 택한 것 같았다. 난 그날 설명을 듣고도 MBTI가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그 뒤 성당에서 전 신자를 대상으로 MBTI 성격검사를 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5년쯤 지나 몽골여행에서 심리학전공 박사과정 학생 10여 명을 만났고 그들에게서도 MBTI를 들었다. 이들 지도교수도 여행에 동참했는데 그 역시 수녀님이었다. 그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와 MBTI 책자까지 한 권 받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론 MBTI를 이해하여 남의 성격을 검사하긴 어려웠다. 평소 혈액형별 특성을 그대로 믿지 않았듯 MBTI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MBTI 검사가 큰 인기를 끈 것은 3년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명 출연진이 이 검사를 받는 모습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작년 말 한 조사에서 18~29세 젊은층 90% 이상이 MBTI 검사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30대 75%, 40대는 53%, 50대 40% 가까운 국민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요즘 MBTI를 모르고 젊은 사람과 대화하려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국민 중 절반 이상이 검사해본 경험이 있다니 혈액형을 통한 성격유형화를 넘는 열풍이 아닐 수 없다. 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줄인 MBTI는 외향․내향,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 등 지표에 따라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INTJ 등과 같이 영어 알파벳 4개로 표현한 것.
MBTI는 브리그스와 마이어스 모녀가 1940년대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융의 이론에 기반해 당시 여성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미국 CNN은 한국의 MZ세대가 데이트 상대를 찾는데 MBT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많은 한국 젊은이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알아가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MBTI유형을 보고 잘 맞는 사람을 골라 만난다는 것. 데이트에서만 아니라 각종 상품 마케팅, 채용-취업 시장에서도 MBTI가 쓰일 정도다. 기업의 3% 정도가 이미 MBTI를 채용에 활용한다고 했다.
문화칼럼을 쓰고 있는 K는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자신은 MBTI 검사에서 INFP가 나왔고 이는 ‘망상이 많은 이상주의자로서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유형’이었던 것. 한 기업은 INFT 지원은 받아주지 않는다고까지 했으니 그가 그럴 만도 했을 것 같다. 당연히 그는 분노했고 "자신이 여러 회사 부속품으로 20여 년을 굴러왔는데 그딴 비과학적인 검사로 부적격자로 몰다니"라고 흥분했다. 그러면서 INFT 유명인으로 앤디 워홀과 존 레넌, 반 고흐를 들먹였다. 이들은 모두 단명한 괴짜들인데 자신의 꿈은 장수라니 이를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