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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해설은 참가자들이 만든다
사람 이름과 나무 이름을 연결하다
9월이 되었다. 8월 해설을 하면서 9월 코스를 답사했다. 주제는 ‘이름’이 되었다. 주제라기보다 키워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무 이름 때문에 골치 아픈 거를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이름으로 정했다. 때마침 나무 이름을 정리한 <우리 나무 이름 사전>이 나온 것도 한몫을 했다.
새문안교회 앞에 선다. ‘새문’ 즉 서대문 ‘안’에 있다고 해서 새문안교회이고,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라는 타이틀이 있다는 것과 언더우드 선교사도 언급한다. 그러고는 묻는다. 참가자들의 이름과 이름이 지닌 뜻을 말이다. 말을 건네주면 훅 던진다.
“이름대로 사시는 것 같습니까?”
해설가 멘트치고는 약간 오만하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9월이 되면서 새로운 분들이 오기보다는 이미 다른 코스를 다녀간 분들이 주로 오신다. 구면인 셈이다. 거기다 식사까지 같이한 분들도 계신다. 오만한 멘트를 수그린다.
“오늘은 <우리 나무 이름 사전>을 자료 삼아 나무 이름을 알아보겠습니다. 많이 공부하신 분이니까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답사에서 제가 말하는 사람 이름들도 오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받을 만한 나무 이름 하나 가슴에 담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가자 이름을 기억했다가 틈틈이 불러주면 최고의 소통이 되는 시간이 되겠지만, 내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다. 누구는 이름을 기막히게 기억해 교회를 크게 일구고, 누구도 이름을 잘 기억해 최고의 강사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노력해보려고 하지만, 기억력 한계인지 사람 이름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기억나는 대로 이름을 불러가며 해설을 이어간다.
먼저 새문안교회 입구 화단에 있는 앵두나무 앞에 선다. 교회를 새로 지으면서 오래된 앵두나무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후계목으로 심은 것이다. 앵두나무 이름 유래를 묻지만 성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함께 책을 본다.
<우리 나무 이름 사전>에 나오는 글이다.
[앵두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이름도 따라 들어왔다. 중국에서는 처음에 열매가 꾀꼬리처럼 아름답고 먹을 수도 있으며 생김새는 작은 복숭아 같다고 꾀꼬리 앵(鶯)과 복숭아 도(桃)를 써서 앵도(鶯桃)라고 했다. 그러다 어린아이처럼 작은 복숭아라 하여 어린아이 앵(嬰)과 나무 목(木)을 합친 한자 앵(櫻)을 쓰는 앵도(櫻桃)로 변했다. 둘을 같이 쓰기도 하지만 주로 앵도(櫻桃)로 쓴다. 우리나라 벚나무를 앵(櫻)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한글 맞춤법으로 앵도나무가 아니라 앵두나무로 쓴다.]
이 글을 옮기면서 의문이 든다. ‘어린아이 앵(嬰)’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자사전을 보니 ‘어린아이 영(嬰)’이다. 오자인지 표기 과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렇다고 출판사에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 숲 공부 처음 할 때 나무 이름들이 궁금해 자료를 많이 봤으나 일관성이 없다. 언젠가 내가 도전할 영역이다.
새문안교회 옆 크레센도 빌딩 뒤로 가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세열단풍을 멀리서 본다. 리모델링 공사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다. 그러다 보니 골목길 흡연 장소를 지나가야만 한다. 참가자들도 나도 곤혹스럽지만 공작 깃털처럼 우아하게 펼쳐져 있는 수형이 멋있어 놓칠 수 없다.
다시 큰길로 나와 구세군빌딩 옆 경희궁지 표지석을 확인하고는 서울역사박물관 광장에서 수선전도를 찍고 옆길로 해서 경희궁지로 향한다. 가는 길에 벽오동나무 앞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 정부를 언급한다. 그들이 벽오동 잎을 문장으로 쓰고 있다는 것 말이다. 연결을 해보면 섬뜩하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다음 장소는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 앞이다. 경희궁 안에 있던 황학정을 헐고 거기에 폭격 시 체신청 장비를 옮겨 놓기 위해 일제가 지은 시설이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솟는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경희궁 숭정전에서 반전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본래 경희궁 터였던 곳에 새롭게 들어선 서울역사박물관이 끝나는 지점에서 계단을 오르면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느티나무가 있다. 공동이 심해 외과 수술을 받은 모습이 안쓰럽지만, 넉넉한 품과 빽빽한 잎들이 느티나무 미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잠시 감상을 하고는 느티나무 이름 유래에 대해 묻는다. ‘늦게 티 나서’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온다. 다시 또 책을 펼친다. 느티나무 글이다.
[느티나무는 나무속이 황갈색이라서 한자로는 횡괴(黃槐)라고 한다. 누렇다는 뜻의 황(黃)과 회화나무를 나타내는 괴(槐)가 합쳐진 말이다. <방언유석(方言類釋)>(조선 정조 때 각 단어의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일본어를 모아 우리말로 풀이한 어휘집)에선 느티나무를 횡괴수(黃槐樹)라 하고 한글로는 ‘느틔나모’라고 썼다. 황색을 뜻하는 순우리말 노랑은 눋(놋)이 어원이라고 하며 괴(槐)는 옥편에 보면 홰나무(회화나무)라 하였으니 황괴의 한글 이름은 ‘눋(놋)홰나무’가 된다. 마찬가지로 <아언각비(雅言覺非)>(조선 순조 때 실학자 정약용이 지은 어원 연구서)에는 ‘눗회나무’라고 했다. 이것이 ‘누튀나무’를 거쳐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짐작된다.]
참가자들은 바로 수긍을 하지 않는다. 기존 인식을 금방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도 “이것이 ‘누튀나무’를 거쳐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짐작된다”라고 마무리를 하지 않았는가? 논쟁은 하지 않고 느티나무 가지 쪽으로 옮긴다.
“자연치유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좀 아파도 스스로 몸이 치유되는 것이지요. 정신적인 문제는 회복탄력성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노력이 필요하고요. 아니 같다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런데 사람과 나무를 비교해 보면 사람보다 나무가 이 방면에서 월등히 진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썩어서 부러져 있는 가지를 가리키며) 가지는 왜 부러질까요? 바람 때문에? 곰팡이 때문에? 곤충 때문에? 자연낙지(自然落枝)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픈 부위는 나무가 스스로 조절을 해서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하는 것이지요. 가을이 되면 떨켜층을 만들어 잎을 떨어뜨려 최소 에너지로 겨울을 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9월 해설을 처음 할 때 이곳에서 자연낙지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몰랐기 때문이다. 자연치유력만 이야기하는데, 참가자자가 자연낙지를 알려주었다. 많은 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섞어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많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 콘텐츠가 내가 준비한 내용이고, 어느 것이 참가자가 알려준 것인지 다 기억하지 못한다. 게다가 나는 공부한다는 자세로 끊임없이 텍스트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야기들이 융합되어 있는데, 웬만한 지식들은 공유하는 게 좋다는 카피레프트를 지향하고 있어서 그런지 완벽하게 출처를 언급하는 것에는 둔감하다.
‘해설은 참가자들이 만든다’는 명제는 옳다. 그러려면 해설가가 열린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해설 도중 그것이 틀린 것 같다며 이의를 제기해오면 해설을 중단하고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수긍이 되면 인정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분에게 눈길을 주어 더 풍부한 이야기를 유도하면 된다. 해설은 내 이야기를 푸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순간 화가 나면 뒷담화로 풀어내야지 그 자리에서 벌컥 응대를 하면 해설 분위기가 망가진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오는 글을 보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타마는 그의 말을 조용히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비롭고 공손하고 맑은 목소리로 완성자인 그가 말하였다. “바라문의 아들이여,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들었구려. 그리고 그대가 그 설법에 관하여 그토록 깊이 사색하였다는 것은 그대에게 참 잘된 일이오. 그대는 그 가르침 안에서 한 틈, 한 결함을 찾아내었소. 앞으로 그것에 대하여 계속 깊이 생각하여 보는 게 좋겠구려. 하지만 지식욕에 불타는 그대여, 덤불처럼 무성한 의견들 속에서 미로에 빠지는 것을, 말 때문에 벌어지는 시비 다툼을 경계하시오. 이런 저런 의견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소. 의견이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으며, 재치 있을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소, 우리 개개인은 의견들을 지지할 수 있고, 배척할 수도 있소. 그러나 그대가 나한테서 들은 가르침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며, 그리고 그 가르침의 목적은 지식욕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 아니오. 그 가르침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소, 그 목적은 번뇌로부터의 해탈이오. 고타마 가르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오.]
고타마의 경지는 모르지만, ‘지식욕에 불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의견에 정답은 없다’는 점만 인식하고 있으면 불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답사와 해설은 실내 공부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생각은 길을 나설 때부터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시간들이 즐겁다.
경희궁 동쪽 문인 여춘문(麗春門) 앞에는 여덟 그루의 느티나무가 연리목으로 자라고 있다. 빙 둘러보면 한 그루가 여덟 그루가 되었는지, 처음부터 여덟 그루를 심었는지 가늠이 어렵다. 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먼저 전제를 단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나무를 계속 보면서 어떤 추론이 가능한지 말해주세요.”
여러 의견이 나온다. 정리 멘트는 이렇다.
“연리목 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love’라는 말이 주로 나온다. 분위기가 화사해진다.
숭정전에 들어가서는 퀴즈를 낸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하나로 묶어서 보십시오. 이 궁들과 경희궁의 차이가 있습니다. 뭘까요?”
여러 의견이 나오면 정리를 한다.
“지금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 앞에 있는데도 우리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호기심이 보이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경희궁’은 서울시가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경희궁 역사를 시작한다.
“우리 조선의 옛 모습은 거의 일본이 파괴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숭정전, 정각원, 정조, 고종 이야기를 말하고는 숭정문으로 나아가 아래를 굽어보며 양잠소, 총독부중학교, 경성중학교, 서울고등학교 등을 말한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 걸어가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팽나무 앞에 선다. 팽나무 열매를 팽총의 총알로 써서 팽나무로 불린다는 이야기를 한 뒤 팽나무에서 자라고 있는 지의류를 보면서 준비한 내용을 꺼낸다.
인터넷 자료를 옮긴다.
[지의류(地衣類)는 버섯도 아니고, 이끼도 아니며, 식물은 더더욱 아니다. 지의류는 하나의 단일한 생물이 아니다. 하얀 균체의 곰팡이와 녹색, 청남색의 조류가 만나 공동생활을 하는 공생체인 ‘균류’이다. 이렇게 종류는 다르지만 서로 도움을 주며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물을 ‘공생생물’이라고 한다.]
이 내용을 함께 공부하듯이 이야기를 나누고는 정리를 한다.
“EBS 다큐 ‘지의류를 아십니까?’를 보았습니다. 문광희 교수가 서해 바닷가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몇 년 전에 바위에서 자라고 있던 지의류가 다시 오니 없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데크 길이 나 있었습니다.
지의류는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기오염 측정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의류가 점점 사라진다는 거 그만큼 지구 환경이 심각해진다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랩걸>에 나오는 내용을 압축해서 전달한다. 내용보다는 공부를 하는 자세에 대해서다. 옮겨온다.
[논문 지도교수와 나는 과일즙이 농축되어 씨가 되는 동안 기온의 패턴을 반영하는 온갖 화학반응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기온 정보를 담은 씨앗이 화석이 된다는 우리 이론은 아직 정착된 것이 아니어서 이렇다 할 답을 찾기도 힘들었다. 나는 주된 질문을 더 작고 다루기 쉬운 일련의 질문으로 나눠서 살펴볼 요량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첫 번째 할 일은 팽나무 열매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추운 기온과 (비교적) 따뜻한 기온 사이의 다른 점을 비교하기 위해 나는 미네소타와 사우스다코타에 사는 팽나무 몇 그루 주변에 보초를 세웠다. 1년에 걸쳐 정기적으로 두 지역에서 나는 나무 열매를 거둘 계획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실험실에서 나는 수백 개의 열매들을 종잇장만큼 얇게 저며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피사체를 350배 확대하는 현미경으로 팽나무씨를 들여다보니 매끈하다고 생각했던 표면은 딱딱하면서 바삭바삭한 물질이 가득 들어찬 벌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시작점으로서 복숭아씨를 개념적 준거로 삼아, 나는 팽나무씨 몇 개를 복숭아 한 가마니는 녹일 만한 산(acid)에 담가서 남은 물질을 관찰하자고 마음먹었다. 벌집모양의 표면을 메우고 있던 물질이 녹아 없어진 후 하얀 레이스 같은 구조가 남았다. 이 작고 하얀 구조물을 진공 상태에서 넣어서 150도로 가열하자 이산화탄소가 나왔다. 그 하얀 격자무늬 창살 속에 어떤 유기물이 들어 있다는 의미였다. 또 한 겹의 수수께끼였다.]
숲해설을 한다는 게 뭔지 깊게 생각해주는 글이라고 말한다. 숲해설은 숲과 나무를 읽어주는 게 아니라 생태계 전반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그러려면 <랩걸>의 호프 자런처럼 공부하는 게 옳은데 그러지 못해 반성만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대목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내가 받은 감동을 그냥 전하고 싶어서라고 덧붙인다. 그것은 호프 자런의 심정과 같다고 한다. <랩걸>의 글이다.
[이 가루가 오팔(opal)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이 우주에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작고 부족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나는 나만의 독특하고 별난 유전자들이 모여서 생긴 존재일 뿐 아니라 창조에 관해 내가 알게 된 그 작은 진실 덕분에, 그리고 내가 보고 이해한 그 진실 덕분에 실존적으로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팽나무의 씨를 강화하는 광물질이 바로 오팔이라는 확실한 지식은,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전까지는 나만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그것이 알 가치가 있는 지식인지 아닌지는 오늘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느꼈다.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서서 그 사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싸구려 장난감이라도 새것일 때는 빛나 보이듯, 내 첫 과학적 발견도 그렇게 반짝였다.]
실험과 관찰을 통한 과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만일 이를 실제로 행한다면 나무를 잠시 접하고도 받은 존재감과 감동보다 더 큰 느낌들이 밀려들 것 같다. 이는 나중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면서 현재에 받은 감동을 참가자들과 나누는 것,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본래 장소에서 옮겨진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통과해 돈의문터, 경교장, 구 서울기상청을 지나 홍난파 가옥 뒤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이었던 어니스트 베델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고, 홍난파 가옥으로 내려와 봉숭아를 본다. 보편적 인권을 위해 싸운 이방인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는 국내인의 삶을 슬쩍 보면서 딜쿠샤로 향한다. 가는 도중 작은 스트로브잣나무에 크게 달려 있는 열매도 보고, 빨갛게 익어 있는 산딸나무 열매도 맛본다.
딜쿠샤에서 앨버트 테일러의 행보를 추억하고, 그 앞 권율 장군 집터 은행나무에서 생명력을 느끼고는 옆으로 이동해 포장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뿌리를 보면서 또 한 번 나무의 위대함과 인간의 이기적인 간섭을 연결시켜 본다.
빌라 앞 성곽 아래 텃밭에 있는 여러 작물을 함께 보고 있으면 마치 가족 같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친 심신에 에너지를 넣어주며 종로도서관 뒤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갈참나무에 다다른다. 알면서도 모를 듯하고 재미있으면서 짜증을 주는 참나무 종류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불쑥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노래를 읊조린다. 그러고 여기서 말하는 ‘갈잎’이 갈참나무의 나뭇잎이라고 짐작하는 학자가 있다고 말한다.(그런데 이 분의 책을 다른 곳에서 보니 거기에는 떡갈나무로 짐작한다고 되어 있다. 이럴 때마다 참나무 동정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종로도서관 화단에 있는 일본목련(일본에서 온 목련) 앞에서는 이 나무의 북한 이름이 황목련(꽃 색깔에 연노란색이 들어 있는 특징을 살려 작명)이라는 말을 한다. 백송 앞에서는 백송의 북한 이름이 흰소나무라고 말한다. 종로도서관 아래에 있는 비술나무 앞에서도 비술나무의 북한 이름이 비슬나무라고 말한다. 그러면 참가들은 나무의 특징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북한 이름에 호감을 갖는다. 이 해설 내용 역시 의도가 있었다. 마지막에 볼 생소한 나무 이름을 오래 기억시키기 위해서다.
9월 해설 막바지에 다다른다. 사직단 입구에 있는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황철나무 앞에 선다. <우리 나무 이름 사전>에 나오는 글이다.
[한반도 북부에 자라는 사시나무의 한 종류로 한자 이름은 황철목(黃鐵木)이다. 황철령, 황철봉, 황철산 등 ‘황철’이 들어간 지명은 주로 북한에 있으며 황철나무 자생지와 거의 일치한다. 황철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서 황철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한다.]
길가로 나와 보호수인 향나무 앞에서 마무리 멘트를 한다.
“오늘 나무 이름 가운데 선생님과 비슷해 보이는 이름이 있나요? 아니면 오래 기억하고 싶고, 닮고 싶은 나무 이름이 있나요?”
소감을 듣고는 또 시간이 되는 분들과 함께 서촌 음식문화거리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맛나게 먹는다. 9월 해설도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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