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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디도서 제1강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말씀 / 디도서 1:1-16
요절 / 디도서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그레데 섬의 교회 목회자로 섬기고 있는 디도를 돕기 위해 쓴 목회 편지입니다. 그레데 섬은 지중해에서 5번째로 큰 섬으로 지중해를 횡단하는 선박들의 정박 장소였고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며 훈련하는 곳이었습니다. 중계무역을 하므로 부요했지만 신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우스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어 이교도들의 영향이 컸고 할례파 유대인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며 평판이 아주 나쁜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도에게 믿음의 열매를 맺고 받은 복음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자기 삶에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장로와 감독 등 지도자들을 세움으로 교회 안에 복음 진리와 영적 질서를 바로 세우도록 돕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디도서 말씀을 통해 신자의 삶에 선한 열매를 맺고 삶의 현장에서 경건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2a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하나님이 바울을 사도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레데 교회에서 여러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할례파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라는 복음 진리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복음 진리를 옳게 가르침 받고 순종하여 사는 사람은 삶의 경건함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복음을 알기 전에는 세속적이고 불경건하게 살았던 사람이 복음 진리의 지식을 통해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 이 세상에 속하여 세상 소망만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영접함으로 변하여 이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병들고 연약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산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믿음과 복음의 지식을 통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약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택한 백성들에게 심으시기 위해 바울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디도를 그레데 섬의 목회자로 세우신 목적이기도 하고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를 양 무리의 목자로 삼으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영생의 소망’에서 이 영생은 언제부터 약속된 것이며 하나님은 영생을 주는 자기 말씀을 언제,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2b,3절을 보십시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고자 영원한 창세 전부터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전도라는 도구로 복음 전파를 통해 영생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전도의 방법으로 이 복음을 전하셨고 사도 바울에게 이 복음 전도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이 전도의 사명을 제자 디도에게 맡기셨고 이 영광스러운 복음 전도의 사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맡겨진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유익한 직분들이 있지만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이 전도자의 직분은 가장 위대한 직분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디도에게 같은 믿음을 가진 나의 참 아들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디도는 ‘Titus’라는 로마식 이름을 가진 헬라인이었습니다. 디도는 사도 바울이 전파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고 그가 가르친 경건함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지식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바울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같은 믿음, 같은 진리의 지식, 같은 영생의 소망을 바울과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억지로는 할례를 받지 않게 했습니다. 이는 할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 진리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디도는 이방인이요, 할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디도는 여러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와 동역자로서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디도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바울과 동행했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가슴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기도 가운데 쓴 준엄한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곳곳에 강도도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도 없는 시대에 바울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디도는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이 모든 수고를, 넉넉히 감당해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디도는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모금 사역에도 자원하여 고린도 교회로 갔고,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당하도록 돕기도 했습니다.(고후8장) 바울은 이런 디도를 향해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후8:23) 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신뢰했으며, 충성된 그에게 그레데 섬의 교회들을 섬기는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서, 믿고 변화된 양들이 나와 같은 믿음, 같은 복음 진리와, 같은 영생의 소망을 가진, 나의 믿음의 동료요, 사역의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큰 소망이요, 진정한 위로일 것입니다. 먼저, 우리 서로가 교회 안에서 믿음의 좋은 동료요, 좋은 동역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불리는 디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복음 진리를 동일하게 양들에게 가르침으로, 양들이 디도와 같은 소망스러운 믿음의 동료요, 사역의 동역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굳게 일어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제자 디도를 그레데 섬에 남겨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디도와 함께 그레데 교회를 얼마 동안 돌보고 가르쳤는데 사정이 있어 떠나므로 미처 마치지 못한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바울이 그레데 교회를 보니 할례파 거짓 선생들이 복음 진리를 혼란케 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고 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서는데 거짓 선생들은 할례를 행하고 절기를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침으로 그레데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울은 거짓 선생들이 구원의 복음에 +α를 추가하여 복음을 훼손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다 못했는데, 디도를 그레데 교회에 남겨 남은 일들을 바로 잡고 각 성에 장로들, 즉 교회 지도자들을 세워 교회를 견고하고 바르게 세우는 사명을 맡겼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장로로 세우라고 합니까?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장로의 첫 번째 자격 요건은 책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교회 물질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불륜이나 이성 문제가 있다면 이는 크게 책망받을 문제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천사처럼 말하고 말씀을 가르치는데 실제 삶에서는 자신이 가르친 말씀과는 너무도 다른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산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부끄럽고 책망받을 문제인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사람은 한 아내에게 신실해야 하고 한 아내만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 공동체 속에서 이성을 대할 때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대해야 하고 그들과 특별한 썸씽을 맺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자신의 신앙의 삶을 아내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아야 합니다. 또한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음의 자녀를 둔 사람이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가정 교회를 중심으로 복음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허랑방탕한 삶을 살거나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거스르며 살고 있다면 덕이 되지 못하고 부모가 영적 지도자로서의 믿음의 영향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 부모의 신앙 교육을 통해 자녀가 하나님과 부모님께 순종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 교회 내의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격려가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복음의 일꾼은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로 자라도록 인내하며 양육하는 사랑과 기도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장로가 하는 역할적인 부분이 ‘감독’입니다. 감독은 영어로 ‘overseer’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고 지키는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감정대로 자기 고집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제 고집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좀 더 줄이면 말 안 통하는 사람, 한 단어로 말하면 ‘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역자들의 조언이나 의견에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데 귀를 꽉 틀어막고 ‘내가 맞고 내가 옳으니까 무조건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내의 영적 지도자들이 이렇게 하면 동역자들과 양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또 급히 분내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돕고 섬기다 보면 화날 일들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참다 참다 결국 화가 폭발해서 분을 내고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쏟아부으면 수년에 걸쳐 쌓아 올린 공든 탑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게 됩니다. 광야 길을 가던 모세는 므리바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 앞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말하였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20:10) 하고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향해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민20:12)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106:33)하였습니다.
또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이 일상적인 쾌락 상황에서 느끼는 도파민 강도를 100이라고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월급을 받을 때가 150, 게임할 때가 175, 술을 마실 때는 150~200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술로 도피하고자 하다가 술에 취하게 되고 술에 취하게 되면 큰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 돕다가 말을 안 듣는다고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폭력을 행사함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지고 가정 내에서도 구타가 있을 때 가정이 깨집니다. 또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할 때 삯꾼처럼 돈을 위해 하지 말고 사명감과 섬김과 봉사의 자세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 오직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삼1: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양들이건, 동역자들이건, 선교사님들이건 어느 누구라도 우리 삶을 오픈하여 대접하며 섬기기를 힘씀으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신실한 자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교회 지도자들은 선행을 좋아해야 합니다. 세상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선한 것들은 선하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영적 교제를 나누며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적인 생활에서 무엇을 즐거워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TV 드라마를 비롯한 세상이 주는 즐거움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받은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주위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같은 일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특별히 말씀에 대한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미쁜 말씀은 복음의 말씀, 경건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실한 말씀은 그대로 순종하여 지켜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영접하고 그대로 순종해서 내가 먼저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며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가르쳐 양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것이 장로나 감독, 즉 영적 지도자들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왜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합니까? 그렇게 할 때 능히 바른 가르침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양심에 거리낌없이 올바르게 양들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16절에서는 거짓 선생들의 실상을 깨우쳐 주면서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그레데 교회에 어떤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까? 10-13a절을 보면, 교회 안에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가 많았습니다. 특히 유대교의 할례를 주장하는 할례파 가운데 더욱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영적 의사로서 거짓 선생들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가르쳐서 돼지 족발이나 삼겹살은 쳐다도 안 보고 밖에 나갔다 오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정결하게 하므로 깨끗한 척하지만 내면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내면에 없으므로 세속적이고 물질적이어서 불순종하고 쓸데없는 잡담을 많이 하고 거짓말하고 속였습니다. 바울은 한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을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도다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믿음의 가정들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도가 이들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그들의 입을 틀어 막아버리라고 말합니다. 입에 테이프를 붙여 막아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서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어 입을 닫도록 해야 합니다.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b,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진리의 말씀에 비추어 사랑과 겸손함으로 엄히 꾸짖을 때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을 온전하게 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경책과 책망을 통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꾸짖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서도 양들에게 말도 못하고 가만히 내버려두다 보면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고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게 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들을 여전히 부정하다 하면서 이것은 먹고 저것은 먹지 말라 가르치고 반드시 할례를 해야 구원받는다고 하고 또 혼인을 금하고 금욕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깨끗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깨끗하고 속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정한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음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양심이 더러우면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고 혼인을 안 하고 금욕적으로 살아도 더러운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주장하였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없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고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만 좋게 보이는 이중적인 삶을 사는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들일 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레데 섬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만 하고 악한 짐승이고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도에게 이런 사람들을 섬기는 장로와 감독을 세울 때 높은 영적 지도자의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을 지도자요, 감독으로 세우라고 하십니다. 깨어진 토기와 같은 그레데 섬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세워야 하는 사명이 디도에게 태산처럼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레데의 모든 영적 상황을 다 알면서도 디도에게 이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디도의 인간적인 리더십과 능력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요, 디도 안에 자신과 동일한 믿음, 곧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르쳐준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디도가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살 때 하나님이 그의 삶에 믿음과 경건에 이르는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그레데 영혼들을 섬길 때 미쁘신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동일한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심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렘18:4) 하나님은 훼손되고 깨어진 죄인의 모습을 새롭게 빚으셔서 아름다움을 창조하시는 뛰어난 토기장이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거짓말쟁이에, 악한 짐승에,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였던, 죄로 쓸모없어진 부서진 존재를 새롭고 소중한 그릇으로 만드시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으사 사용하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깨어진 죄인들을 새롭게 하시고 선한 행실을 가진 복된 존재로 변화시켜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립니다. 이 역사를 섬겨야 하는 디도가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기 위해 자기희생이나 여러 아픔과 인내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내의 장로들, 영적 지도자들을 세워 그들과 함께 동역하여 양들을 잘 섬겨야 할 것입니다. 양들을 섬기는데 있어 여러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이를 통해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변화되는 놀라운 생명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에 그가 겪어야 하는 아픔과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교회의 장로, 감독, 교회의 지도자들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한 영혼을 맡아 섬기고 양육하는 목자로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을 배워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이 믿음으로 하나님 곁에 서서 복음의 지식을 깊이 받아 그대로 순종함으로 내 삶에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양들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믿음과 진리의 지식의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실 것을 믿고 소망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디도처럼 성경 중심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올바른 삶을 살아내면서 이 시대의 가정과 직장과 캠퍼스와 사회 공동체 속에서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