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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 주실 목사님은 정승현 목사님이십니다. 우리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시고 미국 플로 신학교에서 선교학 PhD를 공부하시고 인도네시아에서 3년 동안 선교사로서 또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현재는 한국에 있는 주한 대학원 대학교, 우리나라에 있는 선교 전문대학원입니다. 거기서 우리 선교사님들 박사 과정을 지도하고 계시는 교수님이십니다. 지금 연구 학기로 나오셔서 베를린에 5주 계시다가 이번에 한 열흘 정도 프랑스를 방문하시게 됐어요. 귀한 목사님이시고 또 우리 교단의 중요한 선교 포럼 세미나에서 많은 발제와 또 역할을 해 주시는 우리 목사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쉬러 왔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어서 요청을 드렸고 또 우리 교회가 마침 미시오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2주 설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또 그런 연장선상에서 오늘 귀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나오셔서 나도 너희를 보내로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실 때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오실 때 우리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오늘 파리 선한 장로교회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여러 차례 설교를 해보았지만 이렇게 역사 있는 그런 특별한 교회에서 설교한 거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 교회에 대해서 참으로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통하여 복음이 전 세계로 퍼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오늘도 이 부족한 사람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증거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목사님께서 해주신 대로 제가 5주 동안 베를린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베를린에 있는 몇몇 곳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같이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진을 보시면 저 보이는 큰 교회가 베를린에서는 제일 큰 베를린 돔이라는 교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카톨릭 성당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개신교 교회입니다. 아마 베를린에 방문하신 분은 아마 한 번쯤 가보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다음 사진을 보여주시면 제가 개신교 예배였기 때문에 지난 주일 오전 10시에 예배를 드렸을 때 이제 찍은 장면이고요. 다행히 영어 통역기가 있어서 예배에 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사진을 보여주시면 저게 베를린 돔의 정면에 있는 그림입니다. 일반적으로 큰 성당이나 교회를 보면 가운데 스테인글라스로 되어 있는 경우들을 여러분 많이 보셨을 거예요. 노틀담 성당에도 들어가 보면 정면에 이제 스테인글라스가 잘 장식이 되어 있는데 베를린 돔에는 들어가면 저렇게 세 그림이 정면에 있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가장 왼쪽에 있는 그림이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런 사진이고 그림이고, 가운데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런 그림이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그림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 기독교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의 세 가지 사건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아마 저 세 가지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배경이 방금 전 그 그림의 가운데 사진과 오른쪽 사진, 그 주변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읽어주셨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면 요한복음 20장 19절 초반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잘 아시다시피 금요일날 오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우리로 말하면 토요일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인 토요일에 지나신 다음에 우리에게는 주일 아침 그러니까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바로 안식 후 첫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있었던 일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그러니까 주일 저녁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당연하고 여러분들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에요. 왜냐하면 불과 예수님께서 3일 골고다에서 정말 참혹하게 돌아가셨잖아요. 그 모습을 그 모습을 보았던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던 것은 당연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네 마이크를 바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제자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에 문을 특별히 밤에 다 같이 모여 있었지만은 문을 잠고 그렇게 있었어요. 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장소가 골고다 언덕이라는 곳이에요.
여러분 잘 아시죠?
근데 이 골고다 언덕이 어딘지에 대해서 많은 성서 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정말 그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던 장소가 어디인지 많은 성서학자들이 연구를 했어요.
그런데 성서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곳일 것이다 저곳일 것이다 의견이 조금 분분했는데 왜냐하면 워낙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대략적으로 두 가지 정도에는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 성전 안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 밖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0절이나 히브리서 13장 12절에 의해서 그 성문 밖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의견이 일반적인 의견입니다. 그러니까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 성전 밖에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그럼 예루살렘 성전 밖에 골고다 언덕은 어디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이 있었는데 그 골고다 언덕이라고 했을 때 언덕이 몽마르트 언덕처럼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었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대신 골고다 언덕은 조금 높은 곳이었지만은 오히려 그곳이 높은 곳이었다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일반적인 거리였다고 학자들이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마태복음 27장 39절에 보면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실 때에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라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보고 그분을 모욕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어요. 예수님의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던 것이죠. 누구든지 이 사람의 도를 따르거나 이 사람처럼 유대인의 율법과 다른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이 사람과 같은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이반 타이반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을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알려졌던 베드로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어떤 작은 여종 한 사람이 너도 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니었냐라고 했을 때 그 군인도 아니고 여종이 하는 이야기가 두려워서 예수님을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하고 그곳을 떠났던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마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두 많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같이 모여 있었고 그다음에 문을 잠그고 있었던 것이죠. 바로 그럴 때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 20장 19절 후반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러분 아마도 제자들은 무척이나 기뻤을 것입니다. 그래서 20장 2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여기 한글 성경으로는 기뻐하더라라고 되어 있는데요. 제가 불어는 모르니까 영어 성경을 보면 기뻐하더라가 그냥 조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버 조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그냥 기뻐한 것이 아니라 정말 너무너무 기뻐했다는 거죠.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20장 20절에 지금 읽은 구절에 보면 뭐라고 기록되어 있냐면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고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 성경 구절 말씀이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은 초대교회에 많은 이단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대표적인 이단이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 이단이 주장했던 것이 무엇이었냐면은 가현설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게 무엇이었냐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실제 육체가 아니라 가상 현실 가치 그냥 영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건 실제로 육체적으로 죽지 않았다는 그러한 이안들이 초대교회에 많이 있었어요. 그것을 가현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요한복음 20장 20절에 있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는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 예수님 그분이 육체적으로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여러분. 그래서 실제로 제가 오늘 PPT를 만들진 않았지만 여러분 요한복음 20장에 조금 내려가서 2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시는 의심 많던 도마에게 하시는 유명한 말씀이 있죠.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장면이 있어요. 이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없는 말씀입니다. 근데 요한복음에만 이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오면 제자들이 두려워서 모여 있었는데 그 사이에 예수님께서 오셨고 그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니까 제자들이 너무너무 기뻐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정말로 이틀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기뻐했고 또 영어 성경으로는 오버 조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20장 21절에 다시 한 번 말씀하세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 어떤 두려움 가운데 계십니까?
아니면 어떤 불안 가운데 계십니까? 아니면 여러분 어떤 어려움 가운데 계십니까?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참된 평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들이 한국에 있든 프랑스에 있든 혹은 또 다른 국가에 있든지 여러분의 삶에 언제나 주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까지는 어떤 면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예수님이시니까 예수님은 내가 어려울 때 오셔서 평강을 주시는 분이구나. 여러분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근데 여러분 20장 21절에 다시 한 번 보세요. 우리를 굉장히 당황시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이 상황을 지금 제자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그 사람들은 떨고 있어요. 자칫 자신들의 신분이 발각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그러한 위험한 가운데 살고 있었어요. 근데 예수님께서요. 놀랍게도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 위험한 현장으로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는 건 좋은데 그 위험한 곳에 보낸다고 하시면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순종해야 됩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머물러야 됩니까?
아니면 갈릴리로 도망을 가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독일에서 제가 베를린에 있을 때요. 베를린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 하나 있습니다. 화면을 보여주시면 저게 브란덴부르크 문이라는 곳입니다. 아마 처음에 느끼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는 카루젤 개선문하고 조금 비슷하다 그런 생각을 하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사실 맞습니다. 왜냐하면 저 기본적인 건축물은 로마의 개선문에서 온 거기 때문에 양식이 좀 비슷하긴 해요. 근데 실제로 아마 가보신 분이 있겠지만은 브란덴부르크 문은 훨씬 더 큽니다. 폭이 훨씬 더 커요. 한 3배 정도 더 큽니다. 그런데 저기는 1989년 11월 9일에 있었던 동독과 서독의 그 통독의 상징물이에요.
왜 저기가 상징물이냐면 저 브란덴부르크 문 앞을 기준으로 저 문의 뒤쪽은 동덕이었고 저 문의 앞쪽은 서독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왕래가 불가능한 곳이었어요. 저 문이 경계였어요.
근데 이제 통독이 되면서 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제는 저곳을 왕래할 수가 이제 당연히 있었겠죠. 그래서 저곳이 이제 통독의 상징이 됐어요. 그런데요. 저 브란덴부르크 문에 가보시면 다음 사진을 보여주시면 저 중에 가깝게 찍은 거고요. 그다음 사진을 보여주시면 저런 장소가 있는데요. 저것이 무엇이냐면 홀로코스트 박물관이에요. 그러니까 나치가 유대인들을 갖다가 학살했던 그것을 갖다가 보여주는 박물관입니다.
그런데 저 박물관의 위치가 방금 전에 보여드렸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독일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도 가장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불과 걸어서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굉장히 특이한 건축물이죠. 그렇죠 저것이 무덤을 상징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를 반영할 수도 있는데 저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진짜는 저 위에가 아니고 지하에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지하에 내려가 봤습니다. 지가 지하에 내려보니까 여러분들 여기 파리에 있는 박물관에도 들어가 보시면 처음에 이제 신체 검사를 다 하잖아요. 그리고 가방 검사도 하고 그런 것처럼 이제 저 박물관에서도 다 검사를 하고 내려가요. 박물관에 내려가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제 가보실 분도 있는데 제가 미리 다 스포해서 죄송한데 한 방은요 그냥 굉장히 심플한 방인데 거기 큰 화면이 있어요. 그리고 그 나치 시대에 죽음을 당했던 유대인들의 얼굴을 커다랗게 보여주면서 그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계속해서 바뀌죠. 사람들이 워낙 많이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과 이름이 계속 바뀌어요. 또 한쪽은 그때 당시에 나치가 어떻게 했는지 유대인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에 대한 그림이 전시가 돼 있어요. 보기에 불편한 그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그래서 파워포인트는 만들지 않았지만 한 그림을 보면 나치가 거대한 웅덩이를 팔았어요. 그리고 그곳에 수십 명의 사람을 일렬로 다 나열해가지고 다 집어넣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거기에 흙으로 덮어버리는 거죠. 그러한 일을 예전에 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이 밤마다 얼마나 두려워했을까요?
자기 집에 있을 때 밤에 가족이 모여 있는데 밤에 누가 그 문을 두드린다면 여러분들 그 유대인들이 얼마나 공포 가운데 지냈을까요?
여러분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 이 제자들이 느끼는 공포는요. 그와 거의 비교 할 수 있습니다. 불과 예수님께서요. 3일 전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분주한 곳에서 그렇게 참혹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놀라운 말씀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을 사지로 모으시는 게 아니라 여기에 복음의 말씀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요한복음 20장 22절 말씀이에요. 오늘 성경 말씀 여러분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요. 제자들에게 나가라고 얘기하시면서 동시에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냥 나가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만 하신 말씀이 아니에요. 또 언제 하셨냐면 아까 베를린 돔 예배당의 가운데 맨 마지막 그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바로 직전에 하셨던 말씀 사도행전 1장 4절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읽어볼게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기다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것 그것이 무엇이죠?
보혜사 성령이에요. 요한복음에만 세 번을 이야기하셨거든요.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그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도 그 성령을 기다리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본문 말씀을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무엇이었냐면은 예루살렘의 그 공포의 상황 가운데에서도 불안의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평안을 받기를 원하셨어요.
두 번째로는요.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안이 늘 함께하시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때로는 학교에서 때로는 가정에서 때로는 선교지에서 여러분 아마 느끼셨을 거예요. 주님의 평안이 없으면 이 외국 땅에서 하루라도 살기 어렵다는 걸 여러분 느끼셨을 것입니다.
저는요. 인도네시아 선교사라고 아까 우리 성 목사님께서 소개해 주셨는데요. 정말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어요. 인도네시아는요. 90% 88% 인구가 2억 7천만 명 정도 되는데 88% 정도가 무슬림입니다.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에만 무슬림이 한 2억 명 정도 살고 있어요. 길거리에요. 교회가 없습니다. 노틀담 성당과 같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스크들이 거리에 즐비해 있어요. 전 세계에서 두 번째 두 번째로 큰 모스크도 자카르타 한복판에 있습니다. 한꺼번에 10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모스크예요.
그런 곳에서 하루에 다섯 번씩 미나렛이라고 하는 그 탑을 통해서 계속해서 꿀란을 갖다가 암송하는 소리를 들어요. 하루에 다섯 번씩 늘 들어야 됩니다. 정말이지 그 삶 가운데 그러한 곳에서 살 때에 내 마음에 주님의 평강이 없으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었던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그러한 현장에 살고 계시지는 않지만 이 프랑스라는 곳에서 삶을 살 때에 이곳에서 또 여러분들만이 겪는 어려움과 불안과 공포가 있을 것이에요. 여러분 그 가운데 늘 주님의 평강이 임하시기를 다시 한 번 기원드립니다.
그런데요. 주님께서는요. 우리에게 진짜 원하시는 게 뭐냐 하면요. 주님의 평강과 위로를 받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주님은요. 어렵고 힘들고 때로는 두렵고 공포까지도 있는 곳에 우리가 나아가기 원하세요. 그냥 나가는 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아가서 승리하기 원하세요. 그게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얘기하셨던 거예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요. 지금 성경책이 있잖아요. 성경책을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예요? 여러분 베드로 아니에요?
베드로 그 유대인들이 두려워가지고 여정이 너도 예수님 따르던 사람 아니냐 한마디에 아니다.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던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어떻게 됐죠?
완전히 변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사도행전 2장에 놀라운 설교를 했던 사람이 사도 바울도 아니고 누구였어요?
베드로였어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요. 그래서 그날 몇천 명이 유대인들이 회심한 내용을 여러분들 알고 계세요. 우리는요.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성경 책을 통해서 다 볼 수 있어요.
또 우리 우리 성원용 목사님께서 책을 쓰시고 강조하신 것처럼 위그노 사람들처럼 성령이 충만하면 종교 개혁의 목숨을 걸고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냥 위험한 곳에는 나갈 수 없어요.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 성령의 인도함 따라서 우리가 보통 때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정말로 원하셨던 것은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요. 주님의 평강도 받아야 되지만 동시에 주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매일매일 세상으로 나가서 그곳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한번 비교를 해볼까요?
우리 여기 집사님들 권사님들 자녀들 다 키워보셨잖아요. 그렇죠 저도 대학생 된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있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바깥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학교에서 또는 어디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 사랑을 서로 나누며 위로를 받고 주님의 평강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녀들이 집에서만 그렇게 안락하게 평안하게 살기보다는 동시에 어떻게 해요?
세상에 나가서 승리하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때로는 세상에 나가서 자기가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기를 우리 부모들은 원해요.
그러지 않는 부모님이 있을까요?
어떤 부모님이 자녀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이야.
우리 집에서만 잘 자라 건강하게만 잘 자라다오.
그러는 부모님은 없으실 거예요. 누구나 집 안에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나가서 자기 일을 열심히 감당하고 승리하기를 모든 부모는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요. 마찬가지예요. 예수님께서요. 그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도 마찬가지였던 거예요.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고 그래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하지만 부활한 내가 너희들에게 원하는 것은 너희들이 세상에 줄 수 없는 평강을 나에게 받아라.
그것을 원하셨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이제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올라가실 거잖아요. 그 제자들은 그 무서운 유대인들과 일평생을 살아야 되잖아요. 그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게 뭐였어요?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그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받고 나아가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하셨다는 거죠. 그게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승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강조하셨던 거예요.
사랑하는 파리 선한 장로교회의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주의 평강을 받으시고 동시에 예수님이 주시는 약속하신 그 성령을 받아서 날마다 프랑스에서 한국에서 또 다른 선교지에서 승리하신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