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행1:12-26)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내러티브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천사들이 나타나 주님은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곳은 감람산입니다.(12절) 제자들이 모두 감람산에서 주님을 환송하고 주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따라 1km 정도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14절) 이때 모인 제자들은 열한 사도들과 여제자들, 성모 마리아와 주님의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초기에는 가족들이 주님을 향해서 미쳤다고 말했어요.(막3:21)
예수님의 가족들은 주님이 30세가 되어 가족들을 떠나서 제자들을 모으며 공생애 사역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오해했습니다. 그렇게 했던 그들이 주님이 십자가-부활-승천하시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들이 주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주님이 누구이셨는지 제대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동생들 가운데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와,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 등도 있었어요. 신약성경 저자들 가운데 이 두 사람이 주님의 동생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모습은 참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아직 성령이 임하시기 전의 변화입니다.
2. 그들이 아무도 이견을 말하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모였어요. 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의 시작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며 여호수아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모세와 함께 40년을 광야를 방랑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습니까? 노예근성이 늘 남아 있어서요. 그런데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서 요단강을 건너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리고 성 진격을 앞두고 할례를 받고,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전혀 다른 성숙한 모습-일사불란하게 침묵 가운데 순종하는 질서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에서 부모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배운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전과 다른 모습이 나타났어요. 훈련과 순종은 이렇게 시간이 걸립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모였던 곳은 13절,“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이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다락방이었어요. 다락방이라는 번역은 다소 편견을 제공합니다. 다락방에서 120명이 어떻게 모일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면서, 예루살렘에 가면 이 다락방이라고 추정하는 곳에 방문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커다란 집입니다.
3. 2층 다락방은 없고, 탁 트인 건물만 남았어요. 2001년 제가 현장에 들어가 보니, 120명은 물론 그 이상도 들어갈 수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왜 이때 모인 제자들의 수가 120명이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규모는 12제자를 시작으로 70인 제자, 오늘 본문의 흔히 말하는 120문도, 그리고 고전15:6 사도 바울이 부활의 목격자를 전하는 목록 가운데 등장하는 500여 형제까지 이어집니다. 주님의 공생애 동안에 최대 제자 공동체는 500여 명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까지 목격한 자, 500명 가운데 120명만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어요. 나머지 380여 명은 어디에 갔습니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4.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이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적지 않은 제자들이 누구의 제재를 받지 않고 모일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에 모였어요. 그곳은 마가의 어머니 다락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던 중, 베드로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16절,“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해서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오늘 우리는 성경의 앞뒤를 다 알기에 가룟 유다를 잘 알고 있습니다만, 당시 제자들은 유다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성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만찬을 하며-최후의 만찬-성찬식을 나눴어요. 이때 주님이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배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는 아니지요? 하며 말을 하였고, 주님은“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 사람이 바로 나를 팔 사람이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지만 나를 파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그때 유다도“선생님, 저입니까?”하고 물었고, 예수님은“그렇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5. 예수님은 사실-진리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든지 망설이지 않고 답하셨어요. 대제사장이, 네가 그리스도냐고 물을 때에도 주님이 인정하면 죽는지 아시면서도, 네 말이 맞다고 답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유다가 주님께 빵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합니다.(요13:27) 주님이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유다가 밖으로 나가자 제자들은 그가 단지 재정을 맡은 자라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시는 줄로 여겼습니다. 사도들이 이때는 유다의 정체를 몰랐지만, 이제는 알았습니다.
유다는 베드로처럼 회개하지 않고 자살을 택했습니다. 베드로는 유다 이야기를 꺼내며 이 일은 시69:25, 109:8 말씀이 이뤄진 것이라고 선언했어요.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정확하게 성경을 인용하며 설명했습니다.‘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베드로는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를 보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을 말하고, 자격이 있는 자는 두 명이 있었어요. 두 명의 후보를 놓고 기도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기도 후에 제비뽑기로-투표가 아니라-맛디아를 선출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곧 임하심을 앞두고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왜 이때 이 일을 했습니까? 그리고 투표가 아니라 제비뽑기로 제자충원을 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6.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바로 승천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부활을 확신하도록 여러 차례 만나주셨어요. 제자들이 혼자 있을 때, 둘이 있을 때, 11명이 있을 때, 바울이 전해주는 것처럼 500여 형제에게요. 주님이 제자들에게 부활을 확신시켜 주시는 시간이 40일이 걸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제자들은 불안하여 숨어있다가 용기를 얻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좇아서 온전히 순종하였어요. 120명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120명 가운데는 열한 제자들은 물론 여제자들과 예수님의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100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사항이 생깁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제자들은 모두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좇아서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은 500여 명이 아니고 120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380여 명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어느 주석을 보면, 제자들 대부분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나머지 제자들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7. 어떤 이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500여 형제는 자기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적인 눈을 열어주신 사람들이라고도 해석을 합니다. 또 다른 주석가들은 성경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120은 12의 열 배로서 완전수를 의미한다.(수비학-neumerology) 이런 주석이나 해석을 보면 역사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이들의 노력인 것으로 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 중 상당 수가 어떤 형편에 있었든지, 주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가장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로 여기지 않았어요. 이런 일은 어느 시대에나 반복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100% 순종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한 제자들이 120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순종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시고 사용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은 받고 싶은데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율배반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의 강림을 기다리면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도만 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를 충원했어요.
8. 성령이 강림하시면 제자들을 인도하시고 행하실 일들이 많았지만, 제자들은 스스로 할 일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귀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이 변화되고 제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들은 제자충원을 하면서 무리하게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도의 자격을 정의했습니다. 21-22절,“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사도는 주님의 공생애 시작부터 제자들과 동행한 자라야 했어요.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증언하는 증인이고요. 적격자가 두 명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제자들은 사도의 자격을 갖춘 두 사람 중에서, 주님께서 택해주시도록 기도했어요.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구약 시대에 가끔 나타났던 방법입니다. 참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후보로 발표하고, 투표 대신에 제비를 뽑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 교회처럼 선거 운동을 할 필요도 없고요. 총회장-노회장-각 교회 항존직 선거도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이 욕심이 있어서 수용을 안합니다. 제자들은 이 일을 행하고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복음 제시
9. 예수님은 제자들이 여러 가지 미숙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끝까지 가르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유언으로 남기시고 승천하셨어요. 천방지축이었던 제자들이 주님이 승천하신 후 주님의 말씀을 좇아서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전해줍니다. 주님의 제자양성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만 보면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가룟 유다는 스승이신 주님을 배반하고 겨우 은 30에 유대 종교인들에게 팔았어요.(유다의 잘못된 판단)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이 심문당하는 곳까지는 가서 주님이 어떻게 되시는지 노심초사 보았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너도 그들 중 하나라고 묻자, 베드로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했어요. 세 번이나 반복해서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주님의 이름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고 부활하신 후 다시 만나주셨어요. 베드로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어요.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시면서요.(요한복음 21장)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오래 참고 기다리심으로 끝내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베드로뿐입니까? 역사상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기대
10. 하나님은 오늘도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시고 연단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이 온전한 제자가 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제자는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아요.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가장 좋은 훈련은 다음 주에 우리가 나눌 성령이 강림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나 신학 공부, 또는 제자훈련을 잘 받아야 하지만, 이 모든 공부나 훈련 위에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제자들이 성령이 강림하시기까지 그들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성실하게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말씀 나누기 두 번째 시간인데,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나눌 때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성령님이 임하시고 또 우리 포항 빛내리교회가 건축 이후에 성령께서 교회를 괄목하게 친히 세우시는 올 한 해가 되도록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