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기 전략 체험기 - ② 장르 차용과 알레고리/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경향신문/ 순수문학, 장르문학의 '상상력'을 입다
② 장르 차용과 알레고리
오랜 개발 독재가 막을 내리는가 싶던 순간, 그 싹을 깡그리 뭉개버리고 다시 군림하게 된 1980년의 군화―그들은 정치 사회를 다시 냉동시키고 대학가와 언론을 장악하고, 호남지역을 좌익불순분자들의 해방구로 규정,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갔다.
나는 때맞춘 듯 1981년 모교의 국문학과의 전임으로 채용되었다. 강의실에 대학생을 가장한 경찰 끄나풀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앉기 시작했다. 지식인이고 언론인이고 문학인이고 대부분 땅바닥에 머리를 꼬라박은 채 말조심을 했다. 절대다수가 순응했고, 소수는 말 한 마디 하다가 고초를 당했다. 대다수 시인은 서정이란 본령 지키기에 진력하거나 모더니즘 기법 재현에 명운을 걸고 있었다. 아주 소수의 시인이 뿌리칠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을 읽고 말 것 같은 말 한 마디씩 뱉어내었다.
현실의 삶을 왜곡하는 힘은 상존한다. 회의와 고뇌는 독과점적 부와 권력이 그들의 계몽 시스템 속에 대중을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현실의 삶은 공평하지도 않고 순리대로 이행되지도 않는다. 피하거나 물러서거나 싸우거나 선택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 점유 행위가 멈춘 적은 없었으리라. 권력은 시시각각 이념과 제도, 논리와 윤리의 탈을 바꿔 쓰고 대중을 도구로 삼아 인간사회의 생태적 삶을 무너뜨린다.
나는 교사의 입장에서라도 학생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회적 양심에서 영 동떨어진 삶을 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별곡」, 「메스컴별곡」, 「달동 별곡」, 「바퀴벌레」, 「총놀이」, 「등화관제 훈련기」, 「우리 아들 대장이 되어」 등 내 시가 발표된 『목마』 시 동인지, 『토박이』란 무크지가 회수, 배포금지 당했다. 나는 대학시절 이래 다시 당국의 경고와 압박을 감당해야 했다.
군사정권은 언론 정화니 언론 통폐합이니 하며 신문, 잡지, 방송 따위도 묵사발을 만들었다. 다수의 언론인이 그에 빌붙어 세상에 거짓말을 퍼뜨려 댔다.
꼴불견―내 머릿속에 발걸음에 따라다닌 시구는 “경(景)긔 엇더하니잇고?” 무신들의 위세에 억눌려 지내던 고려 문신들이 풍류의 멋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자학(自虐)과 풍자를 서경화한 경기체가 후렴구다.
크레파스 꺼내는 아동미술학원 다 큰 원아들
조심 조심 그리는 아버지 얼굴
강철 주먹 대신 분홍 솜사탕
회초리 대신에 안개꽃다발
가정부 운전수 함께 와 참견하며
애 잘한다, 애 잘한다
주거니 받거니 성인(聖人)심법(心法)이 다믄 잇븐니이다
솜사탕방망이 유명데스크
지우개 놓으면 회초리 떨어지고
가위 놓으면 손목 잘린다
동아, 중앙, 조선, 한국, 지방단위 신문사
국영, 국영 방송국
니 자리 내 자리 없이 어울려
대변지(代辯紙)에서 대변지(大便紙)까지 공장도 가격의 행상
위 상조(相助)ㅅ 경(景)긔 엇더하니잇고
알 둔 둥지 만져본들 알이 없고
강장제 정력제 영양제로 다져놓은
위 철석(鐵石)간장(肝腸)이라도 아니 긋거리 업더라
―졸시, 「메스컴 별곡」 전문
굳이 수사학상의 용어를 빌자면, 언어유희와 풍자와 역설, 부분적·구조적 반어가 골격을 이룬 알레고리의 시이다.
언론이 조심조심 그려내는 아버지는 당시의 전두환 대통령, 가정부, 운전수는 그 조무래기들, 그들은 다투어 알아서 기고 거슬리는 말을 자르고 사실은 왜곡하는 게 일이었다.
〈성인(聖人)심법(心法)이 다믄 잇븐니이다〉는 주세붕(周世鵬)의 「도동곡(道東曲)」 9장(九章)의 제2장에서, 〈만고연원이 그츨 늬 없으리샷다〉와 〈잔월효성이 아시리이다〉는 고려 의종 때 정서(鄭敍)가 유배의 슬픔을 담은 「정과정곡」의 표현, 몸속에서 맴돌던 시구를 패러디하여 풍자적 상관물로 쓴 것이다.
70, 80년대에는 전통 민중가요―담시, 서사민요, 민중가사 등 변두리 장르 차용의 시들은 억눌린 민중의 한과 독재의 모순, 자본의 횡포 등을 풍자하고 있었다. 내가 경기체가 양식을 차용한 것은 민요나 가사의 양식보다 ‘경기하여(景幾何如)’의 우의적 제시 양식이 주지(主旨)를 객관화 하는 데 용이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 근대화란 곧 서구화라고 인식되어 온 우리 문학사에 대해, 우리 전통의 맥을 잇는 근대시형이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욕이 작용한 점도 없진 않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현실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환상과 해체를 뛰어넘는, 인간의 중심 자체가 무너지는 어이없는 현실을 두고, 말뿐인 서정과 공허한 환상 따위가 어찌 창의적 상상이 되고 창의의 해체가 되랴? 말을 할 수 없는 시절의 언어유희, 엉뚱한 추상의 권위에 맹목화 한 언어는 아무리 치장을 한다 해도 한낱 기회주의적 비겁에 불과한 것이리라.
적극적인 현실 대응 의지는 1987년 서낙동강 강변, 김해군 가락면으로 주거지를 옮긴 후에 본격화한 환경고발 내지 생태주의 시에서도 이어졌다. 우리집 마당에 닿아 있던 강은 이미 새들의 놀이터가 아니었고 흘러서 더 낮은 데로 이르는 본성조차 잃은 상태였던 것이다.
시적 주체란 시인의 절실한 원망(願望)에서 생성된다. 생태 복원과 생태 파괴 현장의 고발은 사회 생태 회복의 문제로 심층적 생태를 향한 소망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언제나 잘못돼 있고 불합리한 상태에 놓여 있다. 온갖 명분―배금주의, 출세주의, 효율제일주의 따위―을 내세우지만 정작은 정의와 자유의 협생, 공평한 생명권을 가리고 무력화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란 현실과 주체 간의 간극에서 생성되고 차이성 지향과 동일성 구현이란 양면을 함께 지니는 언어체계가 된다.
내 시는 이른바 전위시인들과 대중 취향의 시인들이 주는 자기 카타르시스가 빼먹는, 원초적인 생명성 같은 나름의 환상을 갈망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맨 처음
공중에다 돌을 던진 사람은
새가 되어 공중에 들고,
>
세상에서 맨 처음
물에 대고 돌을 던진 사람은
물고기가 되어 물에 들고,
세상에서 맨 처음
사람에게 돌을 던진 사람은
사랑이 되어 그의 가슴에 들고.
―졸시, 「맨 처음―석시시대」 전문
돌을 던져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사랑이 되다니. 일반 상식 밖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돌을 던진 행위는 사랑과 그리움의 표현일 뿐이다. 창공이 그리우면 새가 되고, 물속을 사랑하면 물고기가 되어 물에 들고, 사람을 사랑한 존재는 사람의 가슴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깃드는 세상, 이를 상상인지 환상인지 구별하는 일은 허사(虛辭) 놀음에 지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돌은 애초에 예리한 흉기도, 파괴의 수단이 아니다. 파괴의 논리도 무기도 없던 세상, 인간과 자연이 최선의 자유와 연대감을 함께 갖추었던 시절―돌은 타자와 자아 사이의 그리움과 사랑의 표현일 뿐이지 않았을까? 현재에 대한 차이의 각성은 가장 순수하고 본래적인 삶을 지향하는 시적 체험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내 시의 표현은 거의 아이러니를 품은 알레고리에 기대고 있다 할 수 있다. 알레고리란 특정의 상황이나 사건을 극적으로 제시하면서 아이러니로 대표되는, 차이와 유사의 언어에 의한 표현 전략이다.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은 광의의 이미지나 비유와도 어울릴 수 있거니와, 나의 경고 알레고리, 패러독스, 아이러니 등 언어적 전략들과도 연계된다 하겠다. < ‘차이 나는 시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 2.2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