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말렵의 왕족들은 대부분 팔자가 비운이다. 팔자는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나가는 귀격팔자로 결정이 나면 이 귀격이 운에 의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동일하게 조선 왕조 말에 태어나도 귀격으로 결정이 난 팔자는 망하는 나라를 버리고 일본에 붙어서 작위를 받고 평생 호식하면 살아간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완용이다. 비록 왕족은 아니지만 일국의 신하가 망국하는 나라를 버리고 일본의 작위벼슬을 받고 평생 부자로 살다가 갔다. 그러나 덕혜옹주처럼 초년의 출수부용과 말년의 매금사주로 태어난다면 말년이 어렵다. 좋고 나쁜게 변하면 이게 유중성패이니 원국이 바뀌는 것이다.
이 명조는 호수에 놓인 을목(乙木)이 사월(巳月)에 핀 연꽃이니 출수부용(出水芙蓉)의 상(像)이라 고귀한 신분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격국이 아름다울 적에는 남자는 천하를 주름잡고 여자는 "왕후의 귀함을 얻는다"하였다. 을목(乙木)편재는 아버지임으로 고귀한 신분은 고종일 것이고 어린시절은 "출수부용(出水芙蓉)"의 삶을 증명하듯 존귀(尊貴)하게 자란다. 그러나 을신충(乙辛沖)이라 아버지와 이별하는 슬픔이 있는데 이것은 "승도구류 (僧道九流)"하는 부목(浮木)의 상(像)이니 고향을 떠나 이국만리에서 지내게 된다. 이 명조는 진사(辰巳)가 공망이니 정관(正官)사화가 공망이다. 사화(巳火)공망에 앉은 을목(乙木) 아버지가 위태롭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공망이 실현이 되려면 말년사주가 흉해야 한다. 곧 일간이 매금사주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출수부용에서 승도구류로 떨어질 수가 있겠다. 곧 덕혜옹주의 사주에서 조선 고종의 마지막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본래 승도구류 (僧道九流)는 종교에 귀의(歸依)하는 삶이다. 그러치 못하면 많은 인생의 파랑을 겪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년에는 많은 토(土) 속에 묻힌 신금(辛金)이라 매금(埋金)사주이기 때문이다. 출수부용 (出水芙蓉)이 되는 사주가 말년에 매금을 만난 사주가 되면 그 시점이 승도구류 (僧道九流)가 되는 것이다. 이 명조는 일,시지가 축술형(丑戌刑)하는데 축토(丑土)가 일간 신금(辛金)의 묘고지(墓庫地)가 된다. 그래서 신축(辛丑)일주는 신금(辛金)이 바로 자좌(自座) 입고지라 덕혜옹주 본인은 입고(入庫)물상으로 태어난 상이다.
그래서 매금(埋金)된 신금(辛金)은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게 된다. 신금(辛金)일간이 토(土)에 갇히는 물상이다.
그 운명대로인 삶을 살아왔다 떠나는 것이다.
덕혜옹주 이력 근황
어머니는 소주방 나인 출신으로 고종의 후궁이 되었던 복녕당(福寧堂) 양씨.
덕혜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 고종과 함께 보냈기에
아버지에 대한 정이 그만큼 깊었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제는 1925 乙丑년(만14세)에
그녀를 강제로 일본에 유학 보낸다.
18세 己巳년에 모친이 사망했고
20세 1931 辛未년에는 일본의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의 정략결혼까지 성사시켰다.
45세 병신년에 자식이 사망했다.
모친이 사망한 후 19세 庚午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평생 정신질환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