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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 venezolana: Ensamble Tukuy, 베네수엘라 음악의 다양성
베네수엘라 전통곡 노래와 경쾌한 만돌린 연주이다 .
tukuy 앙상블 ~
Ensamble Tukuy. Musica de Venezuela
베네수엘라 음악의 다양성 - 마릴린 모라 데 살라사르
I. 서언
베네수엘라의 민속·대중문화 유산 속에 찾아볼 수 있는 음악과 무용, 춤의 주된 장르에 대해 다뤄보기 전에 에이사벨 아렛츠 교수가 “민속문화 개론”에서 지적한 말을 인용해 보면, “대중적이라고 해서 꼭 민속적이며 민속적이라고 해서 꼭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또, 민속문화는 한민족 자산으로 사회공동체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보호되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음악과 무용, 춤은 서로 다른 지역의 특색과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그러나 그 윤곽이 뚜렷한 풍요로운 산물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게도 하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즉흥적인 가무가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종교행사에서는 성자를 기리는데 쓰
이기도 하고, 각 지역에서 노동요로 쓰이기도 한다. 베네수엘라의 민속문화는 세 민족이 반 여세기에 걸쳐 이루어온 문화여정의 산물이다. 세 민족이란 원주민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고대 유럽인들을 말하죠. 농촌 추수기에 즐겼던 가무인 라라, 팔콘 지역의 “Tura”는 원주민 풍습에서 온 것이고 산 후안의 북과 같은 북 연주는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다. 또 중미와 카리브 지역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동요, 종교음악이나 연가는 고대 유럽으로부터 온 것이다. 반면, 우리는 앞서 언급한
양식들이나 이웃국가의 문화유산과는 다른, 베네수엘라만의 전형적인 요소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라틴문화, 즉 스페인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라틴문화가 중남미인들에 기여한 바는 19세기 권위 있는 콜롬비아 학자, José María Torres Caicedo에 의해 옹호되었다. 본고에서는 저명한 작곡가와 연주인들을 배출한 베네수엘라의 음악 학파들의 변천과정과 그 지대한 공헌에 대해 먼저 살펴보갰다. 고전음악을 포함한 이들 예술인들의 작품은, 일단의 전문가들이 인정했듯이, 베네수엘라의 문화유산을 풍요롭게 했다.
II. 베네수엘라의 고전음악
식민 통치 기간동안, 바로크 음악은 역사상 그 어떤 경향보다도 베네수엘라의 민족적 선율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알려진 음악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들은 당시 음악이 종교와 성당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음악은 파이프 오르간 연주, canto llano단선 성가(그레고리 성가와 예배 성가의 자취), motete (성당에서 주로 쓰이는 짧은 후렴들)와 villancico성탄절 노래의 교육이 주종을 이루었다. 성가와 찬송가의 일부 가사들은 카리브해 인디언들 사이에서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이 분야에 있어, 베네수엘라에 선구자적 음악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으로, 대성당의 예배당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당시 막 설립된 까라까스 대학(1721)의 첫 교수, Francisco Pérez Camacho였다. 1730년 Compañía Guipuzcoana[1]의 설립과 함께 도착한 부르봉 양식은 몇몇 도시의 소박한 삶에 보다 많은 탄력과 전환을 가져왔다. 첫 사립음악학교가 설립되고 춤이 보급되고, 스페인에서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작품을 연주하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결성되면서 베네수엘라의 음악은 발전의 길을 다져갔다. 성당의 오르간 연주와 성가대가 발전하고 유럽 음악이 붐을 이룬 것은 베네수엘라의 작곡가와 연주가들을 자극하여 휼륭한 성가 레퍼토리가 만들어졌다. 초기 유명한 베네수엘라 출신 음악가들에 의해 지어진, 사은의 노래(te-deum), 미사 찬가(misa), 성가(motete), 승계송(gradual), 예레미야의 애가(lamentación), 애탄가(pésames), 성탄절 노래(tonos de navidad), 성모찬가(salve)와 성찬 봉헌(ofertorio)이 그 예이다.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작품들을 들 수 있다:
Misa de Fiscal (승려의 미사): Bartolomé Bello (1750-1804) 작, 인도주의자 Andrés Bello의 아버지
Stabat Mater: Manuel Olivares(1760-1792) 작, 혼성 사중창 연주곡
Misa de Difuntos (고인을 위한 미사): José Antonio Caro Boesi(1758-1783) 작, 삼중창
Niño Mío (나의 아기예수): José Francisco Velásquez 신부 (1755-1805) 작
Pésame a la Virgen (성모마리아에 바치는 애탄가): Pedro Nolasco Colón (1770-1813) 작.
비종교 장르로는 Juan Manuel Olivares작 Dúo de Violines(바이올린 듀엣)만이 전해오고 있다.
18세기 후반, 소호(Sojo) 신부로 더 잘 알려진 Don Pedro Ramón Palacios Sojo y Gil de Arratia는 베네수엘라인들의 음악 연구를 보다 심화하기 위해 훌륭한 작업을 실행에 옮긴다. 사전에 Oratorio de San Felipe de Neri (1771)에 모인 인재들을 불러, 교육에 굶주린 다른 청년들의 교육을 주도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젊은이들이 “Escuela de Chacao(차까오 학파)”의 제 2세대 베네수엘라 음악인들이다. 저명한 학자들은 이 명성있는 운동을 베네수엘라 음악사상, 그리고 어쩌면 중남미의 음악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차까오 학파에서는 종교적인 양식, 감성주의, 화음과 대위법 기교를 사용한 단아한 스타일이 큰 조류를 이루었
다. 그들의 음악은 감성적인 표현이 풍부했지만 아프리카나 원주민적인 요소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전적으로 국내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은 음악가들이 창작했기에 국가의 자부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세대는 Juan Bautista Plaza에 의하면 당시 유럽의 음악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음악을 창작했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19세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들의 작품은 비발디와 Pergolese, Playel이나 모짜르트, 하이든 같은 비엔나 출신의 유럽 고전음악을 반영하고 있다. 소호 신부의 죽음으로 그룹이 해체되자 그들 중 다수는 비종교적인 음악을 접하게 되고 작곡법이나 형식을 변화한다. 가장 중요한 작품들로는 다음과 같다:
Popule Meus: José Angel Lamas(1775-1805) 작, 지금까지도 고난주간에 연주됨
Monte de los Olivos(올리브산): Cayetano Carreño(1774-1836) 작
Canción Americana(아메리카의 노래)와 Tu nombre, Bolívar, la fama elevó(볼리바르 그 이름 드높다): Lino Gallardo(1773-1837) 작, 애국가
Benedictus: Juan José Landaeta(1780-1814) 작, 2중창 Salve: 동 작곡자의 작품, 4중창
Coplas a Jesús(예수님께 바치는 시)와 Tono a la Santísima Cruz: José Francisco Velásquez(1781-1822) 작, 신비주의 색체가 거의 없는 작품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국가인 Gloria al Bravo Pueblo(용맹한 국민에게 영광)의 작자는 Lino Gallardo로 생각되고 있다. 그는 또한 밝은 분위기의 호로뽀[2]인 La Perica의 작사가로도 알려져 있다. 19세기 상반기에는 독립의 공적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쟁탈전, 정치적 불안정이 “차까오 학파”의 절정기와 수재들의 빛을 흐려놓았다. 이 기간동안, 베네수엘라는 모든 종류의 예술분야에서 침체기를 겪었다. 차까오 학파가 일으킨 활기와 스타일을 보존하려는 일부의 노력으로는 불충분했다. 작품에 새로운 악기와 음악적 시도가 도입됨에 따라 관현악이 변해갔어도, 이 학파는 후대의 음악발전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제 음악가들은 카톨릭 의식을 위해서만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 희극, 연극과 오페라의 영향으로 식민지 음악 운동의 형식은 점차 변해갔다.19세기 중반, 베네수엘라에 낭만주의 사상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까지도 교향곡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은 국내의 정치적 혼란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20세기 초까지는 사교음악이 성행했다. 피아노연주와 노래에 맞춘 무용들이 꽃피었다. 왈츠가 뿌리내려 그 인기
는 “베네주엘라 왈츠”라는 고유한 왈츠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낭만주의 음악이 보급되었다. 사르수엘라[3], 환상곡, 피아노 광시곡, 폴카, 로만사[4], 호로뽀가 선보였다. 서정적 낭만주의가 우리나라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입지를 넓혀갔다. 베네수엘라인의 사회생활에 있어 문화센터 격이었던 성당은 이제 극장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토속 고전음악”이 침체기를 겪던 이 시기에도 국내외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곡가와 연주가들은 계속 배출되었다. 그들이 창작한 훌륭한 작품들로는 다음과 같다.
1. Quiero tu Cruz(당신의 십자가를 사랑한다): José Angel Montero(1832-1881)작
2. Segundo Trío(두번째 트리오): Felipe Larrazábal(1816-1873)작
3. 왈츠 Copos de Espuma(거품)와 피아노 메렝게 Como Ella(그녀처럼): Ramón Delgado Palacio(1867-1902) 작
4. Maricela: Sebastián Díaz Peña(1844-1926) 작, 이 발표가 끝난 후 듣게 되실 유서 깊은 호로뽀이다.
5. Himno a Bolívar(볼리바르 찬가): 7중창, Teresa Carreño(1853-1917) 작, 19세기 말, 20세기 초 피아노 콘서트 연주자로서 세계적인 재능과 명성을 누렸던 베네수엘라의 여성 피아니스트
6. Alma Llanera(평원의 혼): Pedro Elías Gutiérrez(1870-1954) 작, 1914년 쓰여진 사르수엘라. 이 작품의 말미에 나오는 같은 이름의 호로뽀는 후에 베네수엘라의 가장 대표적인 호로뽀가 됩니다. El Gaucho y el Llanero: 동 작가의 작품
7. La Gloria Cantemos(영광의 노래합시다)와 Su Gracia y Amor(당신의 은혜와 사랑): Enrique León(1854-1899) 작, 크리스마스 캐럴
구스만 블랑꼬 대통령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가 겪어야 했던 길고 긴 음악의 쇠퇴기는 1920년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훌륭한 음악가들이 음악 교육을 재개했다. 이들은 중흥을 꾀하는 민족주의적인 사상에 힘을 얻어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현대음악을 포용하였다. 까라까스의 Santa Capillas 골목에 위치한, 오늘날 “José Angel Lama” 음악고등학교의 전신인 옛 음악·연설학교로부터 “차까오 학파” 이래 가장 통합적이고 완전한 음악가의 그룹이 탄생했다. 거장 Vicente Emilio Sojo(1887-1974)의 지도와 Juan Bautista Plaza(1898-1965)과 José Antonio Calcaño(1900-1978)라는 두 명의 훌륭한 음악가들의 긴밀한 협력 하에, “Santa
Capilla 학파”라는 조류가 탄생한다. 이 학파는 베네수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는 “라마스 합창단” 설립으로도 분명히 알 수가 있는데, 이 합창단은 베네수엘라 합창의 시초이며 이로부터 베네수엘라 심포니 오케스트라(1930)도 결성되었다. 이들 유명 음악가들은 소호(Sojo) 신부님과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을 복원하고 베네수엘라의 음악·민속 작품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작업을 훌륭히 실행에 옮겼다. 이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견줄 데 없는 아름다움과 풍부한 감수성을 지
닌 민족주의 음악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다. 이 음악은 국민의 정신적 가치관과 관련이 있지만 종교적 요소들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오케스트라 음악에서는 표현주의, 낭만주의, 후기 낭만주의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이 음악 조류의 질적 수준은 널리 인정 받고 있으며 그 멜로디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대다수의 멜로디는 우리나라의 예술 자산의 일부이다. “산따 까삐야파”는 70년대 중반까지 베네수엘라의 음악계를 평정한다. 그들이 배출해낸 일부 음악인들은, 즉, 거장 소호와 다른 저명인사의 제자들은 국내외적으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이 학파와 관련된 작품들 중에는,
01. Misa Cromática(반음계 미사찬가): 거장 소호의 작품
02. Misa de Réquiem(진혼곡): Plaza 교수의 작품
03. El Gato(고양이): 음악비평가 Calcaño의 작품
04. Cantata Criolla(토속칸타타), Florentino el que cantó con el Diablo(사탄과 노래한 플로렌티노), Suite Llanera: Antonio Estévez(1916-1988) 작
05. Concierto Para Violín y Orquesta(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 Angel Sauce(1911-1995) 작
06. Santa Cruz de Pacairigua: Evencio Castellanos(1915-1984) 작
07. Suite Margariteña(1919년 작): Inocente Carreño 작, 작자는 여러 국내 음악상 수상한 경력이 있음. 많은 작품활동.
08. Suite Venezolana, Seis por Derecho 와 Cuatro Valses(4개의 왈츠): 베네수엘라 왈츠의 거장으로 인정받은 Antonio
09. Lauro(1917-1986) 작
10. Pastorella(목가)와 Campana(종): Moisés Moleiro(1904-1979) 작
11. Brisas del Torbe와 Aire de Verde Montaña(푸른 산의 공기): Luis Felipe Ramón y Rivera(1913-1993)의 밤부꼬
Suite “Teresa Carreño”와 Suite Lisbeth: Blanca E. Veroes de Mescoli(1913-1987)의 피아노 곡 등이 있다.아직도 대중성과 학구적 섬세함을 접목시켰던 그 시기의 민족주의적 음악은 보전되고 있다. 훌륭한 작품 중에 몇 작품을 더 언급해보자면,
12. Sinfonía Venezuela(베네수엘라 심포니) : Andrés Sandoval 작, 1924
13. Son Venezolano(베네수엘라의 소리): 혼성합창/Arcoiris(무지개): Modesta Bor 작, 1926
14. El Pregón: Raimundo Pereira 작, (1927-1996)
15. La Perla(진주): Primo Casale 작, (1904-1981)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의 연주자들로는 기타 부문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Alirio Díaz와 초기에 베네수엘라 중앙대학의 합창대에서 활동하던, 뛰어난 독주자 Jesús Sevillano를 들 수 있다.
III. 베네수엘라의 민요와 대중가요
우리나라의 음악사에서, 쇠퇴기에나 절정기에나, 방방곡곡의 쁘레고네로(pregonero)[5]와 후글라르(juglar)[6]들은 축제나 여러 가지 성격의 행사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의 모임을 흥겹게 하기 위해, 심지어는 매일매일의 일을 하면서 힘을 북돋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생활풍습이나 방식에 따라, 사람들은 계속해서 열의와 자연스런 영감을 가지고, 멜로디나 곡조, 리듬을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멜로디, 곡조, 리듬들은 이제 합법적인 문화유산으로서 그들 자신에게 속하는 재산이
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개의 집단들은 그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베네수엘라 민요를 형성해 갔다. 하나의 국가로서 베네수엘라가 소유한 특징적인 리듬과 선율에는 우리 고유의 감성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 해외 요소들의 영향이 분명히 감지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음악, 무용과 춤은 3가지 본질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비종교적 형식, 카톨릭 신앙 그리고 아직 전해 내려오고 있는 원주민의 춤이 그것이다. 이 3가지 주제들은 국내의 각 지역의 특징과 풍습에 따라 다양해집니다. 악기의 사용도 지역마다 다르다.
1. 베네수엘라의 비종교 음악
비종교적 음악 장르들은 의식의 치루기 위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음악의 두 영역, 즉, 오락과 노동에 관련한다. 사실상 이 음악형식에 관한한 우리는 그다지 다양한 장르를 갖고 있지는 않다. 가장 잘 정착된 장르로는 호로뽀, 베네수엘라 메렝게, 왈츠, 빠시오[7], 자장가, 동요, 노동요, 밤부꼬[8], 또나다, 가이따 술리아나(Zulia주의 가이따)가 있다.
1.1. 호로뽀
호로뽀는 베네수엘라 음악과 춤 중 가장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교수이자 연구원인 Luis Felipe Ramón y Rivera에 의하면 1815년 경 호로뽀라는 명칭은 까라까스에서, 형법관련 문서에 대중춤으로서 언급되었다고 한다. 호로뽀는 19세기 말 민족예술의 한 장르가 된다. 어쩌면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즉, 지역 까우디요들과 그들의 세력에 맞서기 위한 군사파견관련소식의 통신과 통신방식의 발전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부는 원주민의 토착어(카리베, 께추아, 혹은 야꾸로)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며 일부는 Xarob(하라베)라는 아랍어에서 왔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호로뽀의 근원은 유럽에
있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인들이 가지고 온 판당고, 플랑멩꼬, 안달루시아 전통춤들로부터 기원한다. 호로뽀의 유럽-스페인 근간은 그 춤의 독특한 3개의 스텝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Valsíao(곡에 따라 천천히 시작하기도 하고 빠르게 시작하기도 한다), zapatíao(하프나 만돌린이 절정을 이룰 때)와 escobillao(여성무희가 무대바닥에 발을 비빌 때) 가 바로 그것이다. 리듬에 있어서 특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장르가 다양해진 전통가무에 그 기반을 둔 정해진 화음 진행 방식을 썼다는 것이다. 그 다양해진 장르에는,
- 꼬리도(corrido), 특정 음이 강조되지 않는 단조로운 음악(Pedro F Sosa Caro의 Alcaraban Compañero)
- 갈레론(galerón), 침착한 분위기의 노래가 있고 꾸아뜨로와 “큰 기타”가 반주하는 율동적인 춤이 있다 (민요 Ave María ¡Qué Muchacho!와 El Gavilán)
- 빠사헤(pasaje), 후렴없는 고요하고 반복적인 음악(Sebastián Díaz Sánchez의 Maricela, José La Riva Contreras의 Pasillaneando, Ignacio “El Indio” Figueredo의 Maria Laya, Juan Vicente Torrealba의 Pasaje 8번과 Eneas Perdomo의 La Fiesta en Elorza)
- 골뻬(golpe). 시의 연과 후렴에 관한 새로운 방식, 시적이면서도 강함(민요 Pajarillo와 Ignacio “El Indio” Figueredo의 El Golpe de Gabán)
호로뽀가 전역에 전파되자 이제는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남부의 중앙평원에서는 호로뽀를 하프와 꾸아뜨로[9], 마라까[10]로 연주하는 반면, 서부평원에서는(바리나스와 뽀르뚜게사) 만돌린, 꾸아뜨로, 마라까로 연주한다. 동부에서는 꾸아뜨로, 아코디언 또는 꾸에레따, 만돌린, 북, 마라까와 기타로 연주한다. 아마도, 여러 지역의 연주방식에 따라 분류한다면, Joropo Llanero, Joropo Tuyero(민요 Malhaya la Cocina와 Pedro Marín의 Yaguaso Rajuñao)와 Joropo Oriental(Ricardo Sandoval의 La Bailarina(무희)와 민요 중 Golpe y Estribillo)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호로뽀 작품 중에는 우리의 대중가요인 Alma Llanera와 Juan Vicente Torrealba의 감성적인 작품인 Concierto en la Llanura(평원의 콘서트)가 있다.
1.2. 베네수엘라 메렝게
베네수엘라 메렝게는 가이따(gaita)나 구아사(guasa), 동부의 악단들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다. Cruz de Mayo와 몇몇 성자들을 참배하기 위한, 베네수엘라 중부해안 의식의 다양한 리듬을 단순화한 것이다. 20세기 초, 음악인들, 특히, 까라까스 음악인들은 장난 같은 내용을 주로 담는 베네수엘라 메렝게의 작곡을 위해 이 의식의 리듬을 빌렸다. 초기에 메렝게는 식자들의 모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은밀한 약속장소”, 또 어떤 이들은 “대중무용 사교장”으
로 부르는 마빌(mabil)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마빌(Aragua, Carabobo)이라고도 부른다. 멜로디는 화음이나 율동적인 리듬이 보여주듯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메렝게는 주로 해안지역 주민들에 의해 향유되었다. 그러나 메렝게에는 분명 3가지의 종류가 있다. 즉, rucaneao(까라까스), oriental(동부), larense이다. 음악적·리듬적 관점에서 도미니카의 메렝게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베네수엘라에는 다음과 같은 정선된, 매력적인 메렝게들이 있다.
1. El Norte es una quimera Nueva York : Luis Fragachán 작
2. La Pelota del Carey: Lorenzo Herrera 작
3. El Cumaco de San Juan: Francisco Delfín Pacheco 작
4. Compadre Pancho: Francisco Carreño 작
5. Carmen la que contaba dieciséis años와 Préstame tu máquina: Balbino García 작, 1900-1969
6. Negra la Quiero 와 Barlovento: Eduardo Serrano 작, 1911
7. Criollísima: Henry Martinez 작, 1950
1.3. 왈츠 또는 빠시오
유럽의 왈츠가 베네수엘라에 도입되었는가 하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자들은 왈츠가 19세기 상반기에 베네수엘라에 도착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초기에는 당시의 상류사회에 스며들었지만 대중이야 말로 왈츠를 고전적인 왈츠가 아닌 진정한 베네수엘라의 것으로서 소화해낸 장본인들이다. 베네수엘라 왈츠는 꾸아뜨로와 기타가 주를 이루는 대중적인 악기들로 연주된다. 우리식 왈츠는 베네수엘라의 혼혈문화와도 같이, 호로뽀의 리듬과 스페인 춤의 8분의 6박자적 요소, 또
는 사빠떼아도[11] 스타일과 아프리카, 또는 원주민으로부터 기인하는 약조를 왈츠에 접목했다. 19세기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베네수엘라의 왈츠는 두가지 경향을 한 데모으는, 다양한 수준과 기원을 가진 작품들로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 두 가지 경향 중 하나는 귀족 문화에서 기원하는 피아노 연주곡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적인 기타연주이다. 그 시대의 일부 작곡가들은 피아노와 기타를 모두 사용하여 대중적인 감성을 자아내는 왈츠들을 남겼는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El Diablo Suelto, 왈츠-호로뽀 와 Ecos del Corazón : Heraclio Fernández(1851-1886) 작
Quejas del Alma: Antonio Delgado Briceño 작
Marietta: Ramón Delgado Palacios(1863-1902) 작
Dama Antañona: Francisco de Paula Aguirre(1865-1939) 작
Raúl Borges(1862-1967)와 그의 작품인 Valse Venezolano(베네수엘라 왈츠), Marisol, Preludio(서곡)가 일으킨 활기,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Natalia를 포함해서 Cuatro Valses(4개의 왈츠)를 지은 거장 Antonio Lauro(1917-1986)의 공헌으로, 기타연주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왈츠를 복원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급하게 됩니다. 거장 Borges는 저명한 파라과이의 기타리스트 Augustín Barrios “Mangoré”에게서 테크닉 지도를 받았다. 이후 등장한 음악가들은 선도자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곡들을 작곡한다.
Brumas del Mar: Balbino García(1900-1969) 작
Loriana, Lheylani 와 Zulay: José Rafael Cisneros 작, 1915
En la Negra Espuma: Manuel Enrique Pérez Díaz 작
Preludio Criollo: 세계적인 작품, Rodrigo Riera(1932-1999) 작
한편, Alirio Díaz는 대다수의 기타연주곡들을, Freddy Reina는 꾸아뜨로연주곡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다. 베네수엘라의 안데스 지역에서는, 특히 Táchira에서, 왈츠는 빠시오(pasillo)라 불린다. 그러나 이것은 콜롬비아의 빠시요와는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다. 무용으로서 베네수엘라의 왈츠는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를 반복하며 끝을 맺다. 1부는 주로 차분한 분위기, 2부는 주로 밝고 힘찬 분위기이다.
1.4. 자장가와 동요
자장가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어머니들이 첫 몇 달 동안 불러주는 애정어린 성격의 모성애적인 멜로디이다. 리듬과 그 구성 측면에서 창조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요는 합창곡이며 간혹 유럽풍, 특히, 옛 스페인의 로만세의 경향을 띤다. 옛 스페인의 로만세는 메렝게와 아기날도(베네수엘라의 크리스마스 캐럴)와 비슷하기도 하다. 지금도 일부 농촌지역과 마을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음악이 남아있다. 그 예가 Doñana와 Matarile이다.
1.5. 노동요
우리의 민요 중에는 일을 쉽게 하는 노동요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요의 미와 효력으로 인해 우리는 초원에서 일과 동시에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부르며 가축몰이와 젖짜기를 훨씬 수월하게 해낸다. 이런 종류의 후렴은 맷돌을 돌리거나 옥수수껍질(Nueva Esparta주와 Sucre)을 벗기거나 커피(Táchira)를 수확할 때도 들을 수 있다. 노동요 멜로디의 음계에 관한한, 지역 토속음악과 육체노동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로운 리듬과 우수에 젖은 감성적인 가사, 긴 음표가 특징이다. Tonada llanera(평원의 가락)은 베네수엘라의 평원에서 일하면서 영감을 얻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휘파람을 불며, 즉흥적으로 민중의 감정과 지혜가 담긴 가락을 바꿔가며 부르는 이 노동요들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뛰어난 작품으로는,
El Ordeñador: Antonio Estévez 작
Madrugada Llanera y La Paraulata: Juan Vicente Torréalba 작
Por el camino: José Reina(1908-1973) 작
Arpa: Eduardo Serrano 작, 1912
Venezuela habla cantando: Conny Mendez(1898-1979) 작등이 있다.
싱어송라이터인 Simón Díaz(1929)는 Tonada del Cabrestero와 같은 주옥 같은 작품들을 내놓음으로써 노동요의 부활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6. 가이따 술리아나
마라카이보 호수 남부의 아프리카풍 “가이따 데 땀보라(gaita de tambora)”로부터 기원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인정받지 않자, 학자들은 가이따 술리아나의 기원을 스페인으로부터 온 멜로디들(danza, 빠소도블레pasodoble, 호따 아라고네사 jota aragonesa, 마주르카, 꾸아드릴랴[12], 모떼떼, 란세로, 리고돈, 왈츠, 판당고, 대무 와 캐럴)에서 찾으려 했다. 몇몇 학자들에게는 캐럴이 이 음악형식의 주된 기원으로 생각되고 있다. 가이따는 20세기 초 마라카이보의 El Saladillo, El Empedrao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불려졌던 헌가이다. 아마도 가이따 술리아나라는 이름은 스페인 바스크, 아스뚜리아스, 갈리시아 지방의 “가이따(가죽피리, 뿔나
팔)”라는 악기에서 왔을 것이다. 일부 스페인 지역에서 불려졌던 같은 종류의 노래들, 특히, 갈리시아 지방의 “gaita gallega(갈리시아 가이따)”와 유사하다. “Gaita gallega”는 발랄하고 흥겨운 일단의 음악가들이 각 가락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에 맞춰 부르는 노래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스페인의 전통을 보전하기 위해 스페인 악단들을 모방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정착하였다. “가이따”는 후에 “후로(furro)”로 대체되며 여기에서부터 “베네수엘라 후루꼬(furruco venezolano)”가 탄생했다. 이 악기는 다양한 리듬이 한데 어울어지는 축제에서 음악을 주도하는 악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축제에서는 주로 피리, 구이로, 북, 삼봄바, 꾸아뜨로와 함께
데시마, 아기날도, 판당고 등을 불렀다. 가이따 술리아나는 계속 변화해 여러가지 형식을 띠게 되었다. “전통적 가이따 술리아나”로부터 보다 “현대적인 가이따 술리아나”(1960)로 전국에 보급되었다. 후에, 전자악기(피아노, 기타, 구아요, 뚬바도라)들이 도입되어 베네수엘라의 가이따와 조화를 이루는 “대중 가이따”가 나타났다. 아직은 우리의 민속음악에 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베네수엘라 국민에 의해 사랑 받고 있다. 최근의 뛰어난 작품으로는 Ricardo José Aguirre González의 “그레이 술리아나(Grey Zuliana)”가 있다.
2. 종교의 영향을 받은 베네수엘라의 음악
종교적 모티브를 가진 음악과 춤은 본래 성당, 성당의 앞마당에서, 또는 카톨릭행렬의 행진 시에 연주되었으며 각 지역의 변천과정에 따라 다양화되었다. 오늘날 종교행사들은 성자를 기린다는 본연의 목적을 잃지 않은 채, 거리, 광장, 성당 인근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행사 시에, 주민들은 기도가 되었던 찬양이 되었건, 성자들에게 청원가나 찬가를 부른다. 이러한 음악과 춤에는 스페인과 아프리카 노래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적인 요소는 각 공동체의 풍습에 잘 적응했으며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예술적 표현이 닮아갔다. 축제 때 다양한 음악작품이나 춤이 선보였는데, 따무낭게, 북춤, 성탄절 노래를 비롯한 여타의 대중가요들이 그 예였다.
2.1. 따무낭게
라라(Lara)주에서 6월 13일 열리는, San Antonio de Padua를 기리는 축제에서 비롯된 베네수엘라 민요 중 하나이다. 따무낭게는 화려할 뿐만 아니라 북 또는 꾸마꼬, 마라까[13], 꾸아뜨로, 세이스(seis)[14] 로 구성된 그룹에 의해 연주되는 풍부한 멜로디와 리듬을 지녔다. 다양한 작품이 있는데, ‘8분의 6박자(Seis por Ocho)’나 갈레론(Galerón)과 같은 작품들은 널리 전파되었다. 8분의 6박자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리듬은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북부의 까르나발리또[15]와 유
사한다. 따무낭게는 매력적이고 율동적인 무용에 힘과 춤, 색깔이 어울어진 음악으로서 베네수엘라의 가장 뛰어난 음악장르 중 하나이다. 시작은 2명의 남자가 막대로 싸움을 하는 ‘전쟁’으로부터 시작한다. 후에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추는 bella, chichivamos, Juruminga, Perrendenga, Poco a poco, Galeón 등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은 3쌍의 무희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꾸아드릴야를 본딴 Seis por Ocho(8분의 6박자)나 Seis Figurao로 끝납니다. 음악은 코러스와 듀엣 혹은 솔로가 번갈아 부르는 여러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다.
2.2. 북춤
북춤에는 멜로디와 춤이 있다. 북연주와 북춤을 동반한 이 음악은 베네수엘라 민요 중 가장 대표적인 음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박자가 밑에 깔리는 가운데 솔로의 목소리는 후렴을 부르는 합창단과 어우러진다. 멜로디는 매우 특이하며 아프리카 음악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물라또[16] 풍의 음악들이다. 그러나 이사벨 아렛츠 교수님에 의하면 대다수의 경우 베네수엘라화된 음악이다. 큰 북춤과 둥근 북춤이라는 두 가지 장르가 대표적이다. 큰 북춤은 단순한 리듬이 그 특징이며, 1쌍, 또는 3쌍의 남녀가 어깨나 허리에 매고 북을 연주하고 다른 무희들은 아프리카-안띠야스풍의 “danzas convulsivas(동요의 춤)”를 상기시키는 태고
의 놀이를 표현한다. 이 춤은 Zulia, Trujillo, Mérida와 같은 북서지방이나 안데스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로인 San Benito de Palermo를 기리는 축제에서 주로 공연된다. 침방겔레스 춤(Bailes de Chimbangueles)은 성자를 기리는 행렬에게 흥을 돋구기 위해 북 연주에 맞춰 공연한다. 멜로디를 들으면 참가자들의 다짐 또는 질책, 열의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둥근 북춤은 큰 북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주로 Aragua, Carabobo, Miranda, Vargas와 같은 해안 지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녀 쌍들, 한 무리의 사람들이나 개인이 연속해서 춤을 추기 시작하며, 전적으로 아프리카에서 기원하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진정한 사교춤이다. 안무는 도
발적이며, 신체 접촉이나 몸짓, 손놀림과 여성이 남성에게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희는 파트너가 여러 무희나 관객들이 이룬 원에서 자신을 밀어낼 때까지 춤을 춘다. 남자는 약간 몸을 숙인 채 춤을 추기 시작하며 여자가 함께 춤추고 있는 남자 파트너에게서 여자를 빼앗다. 여자들이 남자 파트너를 빼앗기도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종교적인 춤이라는 것을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가끔 격렬한 리듬에 도달하지만 부두(안띠야스)나 마꿈바(브라질)의 특징인 마술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2.3. 크리스마스 캐럴
베네수엘라에는 악대나 “신부”로 이루어진 그룹이 부르는 귀중한 캐럴목록과 여러 가수들이 듀엣으로 부르는 아기예수 찬송가들이 많다. 대체로 메렝게 리듬으로 이루어진 매우 베네수엘라적인 음악들이다. 서부에서는 가이따로 연주되는 것이 잘 알려져 있고(민요 La Cabra Mocha와 Noberto Pirela의 Sentir Zuliano), 동부에서는 악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데스 지역에서는 2박자나 8분의 6박자를 씁니다. 또, 행진곡, 가이따 혹은 유럽풍의 객주집 노래가 솔로로 연주되기도 한다. 안데스 지역에서는 캐럴(예: 민요 A adorar el Niño 아기예수 찬송가)로 그 진행이 구성되는 La Paradura del Niño(Mérida), La Procesión de las Posadas(Tách
ira)와 같은 의식을 치룬다. 중부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다룬 즉흥극(Rafael Salazar의 Pregón Caraqueño)을 볼 수 있다. 동부에서는 소위 “부활절의 유희”라는 가무극이 보전되고 있다. 안무는 물고기, 새, 보트, 비행기등을 표현한다. (민요 Mare-Mare, Carite, Burriquita, Pájaro Tilín, Aguinaldo Margariteño) 크리스마스 캐럴은 솔로의 노래가 합창단의 후렴과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또,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현악기와 타악기를 사용한다. 꾸아뜨로, 만돌린 또는 바이올린, 땀보라[17], 후루꼬로 반주가 이루어진다. 때로는 “guitarra grande(큰 기타)”나 금속 혹은 호박으로 만든 차라스까를 연주하기도 한다.
IV. 결론
베네수엘라의 민속음악은 -비록 적은 비율이기는 하지만- 원주민의 표현력, 스페인인의 매력과 섬세함, 아프리카인들의 관능적인 매력과 열망, 그 외에 적응과정에서 차차 나타난 여러 소스들이 어울어진 역사적인 산물이다. 요약하자면 토착풍습과 비종교적 형식, 종교의식과 현대적인 자취들이 구현되어 있으며 이들은 시공 속에서 계속되는 변천과정을 겪어 왔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음악과 춤은 다양한 강세와 악기반주, 수많은 응용방식이 한데 어우러진 역동성을 지닌다. 우리나라의 지형과 굴곡에 따라 그 모습은 차이를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든든한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음악문화는 각 지방의 독자적인 강
한 멜로디와 대중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음악학교들의 음악 보전을 위한 소중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한다.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뛰어난 창작활동을 꽃피웠으며 그들의 작품은 이미 우리 국민에 의해 민속음악으로서 인정 받았다. 우리는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음악의 보고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의 전통, 생활방식, 일상의 노동, 역사, 일화, 장난, 발전, 고통과 베네수엘라인들의 희망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요소들이 모여있다. 국민의 창작활동에 대한 존중, 우리의 것에 대한 강조, 멜로디에 대한 열정과 유머감각은 베네수엘라 민속음악에 살아 숨쉬고 있다. 시간상의 관계로, 밤부꼬, 폴로, 서정시, 풀리아와 깔립소
와 같이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훌륭한 음악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었던 점 양해하길 바란다. 오늘 강연은 베네수엘라 내에서 가장 중요시 되고 있는 음악 양식과 춤에 대한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인들의 밝고, 명랑하며 익살스럽고 활동적인 태도는 그들의 문화근간을 발전시키고 공고히 하며 고양시키는데 있어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이는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으며 우리가 모든 이들의 노력과 협력 속에 신중하게, 그리고 굳건히, 도전을 대면해갈 수 있게 해주는 민족정신을 북돋아주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여정에는 변화가 없으리라 믿는다.
참고문헌
1. Aretz, Isabel: Manual de Folklore 민속문화 개론(Monte Avila Editores 출판사, 1972년, 베네주엘라 까라까스)
2. Plaza, Juan Bautista: El Rescate de la música colonial 식민지음악의 복원, (동 작가의 ‘Una vida por la música y por
Venezuela de Manuel Castillo Didier. 음악과 베네수엘라를 위해 한 평생을 살았던 마누엘 가스띠요 디디에르’에 수록)
3. Consejo Nacional de la Cultura, Instituto Latinoamericano de Investigaciones y Estudios Musicales Vicente Emilio Sojo, 베네수엘라 문화이사회, 비쎈떼 에밀리오 소호 중남미 음악연구소, 연구모음집 4호, 1985년 까라까스)
4. Ramón y Rivera, Luis Felipe: Nuestra historia en el Folklore 우리의 민속사(Monte Avila Editores 출판사, 제 2판, 1990년, 까라까스, 베네수엘라)
5. Salazar, Rafael: Sojo y la canción humorística popular 소호와 해학적 민중가요(Revista Musical de Venezuela 베네수엘라 음악잡지, 8주년 22호, 1987년 5월-8월, 베네수엘라 문화이사회, 비쎈떼 에밀리오 소호 중남미 음악연구소, 까라까스 베네수엘라)
기타:
VENEZUELA 베네수엘라: Aquiles Nazoa 글, Karl Weidmann 사진(Oscar Todtmann Editores 출판사, 1996년, 베네수엘라 까라까스) Colección de Compositores Venezolanos para Guitarra 베네수엘라 기타연주곡 작곡가 모음, 1, 2, 5권, Alejandro Brusal 편집, Vicente Emilio Sojo 재단, 베네수엘라 문화이사회, 1998년, 베네수엘라 까라까스)
01. 베네수엘라 까라까스 지방과 스페인 간의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설립된 왕립무역회사. 1730년부터 1785년 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운영되었으며 식민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스페인 북부, 특히, Guipuzcoa의 바스크 자본가들 지분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였음.
02. 베네수엘라 특유의 대중무용
03. 일종의 경희가극
04. 연애시곡
05. 방이나 호외를 큰소리로 외치고 다니던 사람
06. 대중 앞에서 가무를 선보이던 사람들, 뜨내기 광대
07. 대중무용의 일종
08. 콜롬비아와 에쿠아도르 에스메랄다스의 대중무용과 그 가락
09. 베네수엘라의 작은 4현 기타
10. 박의 속을 빼내고 안에 돌멩이를 넣은 악기
11. 발장단을 맞추며 추는 옛 스페인의 춤, 그 곡
12. 특히 19세기 경에 성행했던 네 사람이 추는 춤
13. 호박 속에 옥수수등을 넣어 소리내는 남미의 악기
14. 구두소리를 내는 대중춤의 하나
15. 북서부의 전통군무, 음악은 짧은 노래를 동반한다.
16. 백인과 흑인의 혼혈
17. 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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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송님 덕분에 다양한 음악을
감상해 볼 기회가 있군요
즐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