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26일이니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이 날은 당시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격의 날이었습니다. 파나마의 복싱영웅으로 11전 11승 11KO 무패를 자랑하던 헥트로 카라스키야를 파나마 적지에서 홍수환 선수가 4번 다운 당하고 일어나 KO로 이겨 우리에게 4전 5기라는 말을 남겨준 날입니다.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타이틀을 걸고 맞붙는 게임인데, 이 주니어페더급은 카라스키야를 위해서 만들어진 체급미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사라테, 사모라 같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즐비했던 경량급에서 카라스키야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체급이라고 할 정도로 카라스키야의 우세가 예상되었던 경기인데 홍수환 선수가 네 번이나 다운 당하고도 이를 이겨서 초대 참피언이 되었으니 우리 국민들이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누가 권투선수인지조차 모르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프로권투가 가장 인기가 높았고 그건 아른이나 애들이나 다 마찬가지여서 권투중계가 있는 날은 거리가 한산했고, 대형 티비가 설치된 다방이나 시골은 티비가 있는 집에 모두 모여 손에 땀을 쥘 때였습니다.
당시 11전 11승 11KO를 구가하던 카라스키야는 '지옥에서 온 악마'로 불렸을 정도로 대단한 이름을 자랑했고,. 아득히 먼 파나마에서 벌어지는 세계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솔지깋 비관론이 우세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기량이나 체력, 신체 조건 등으로 보면 홍수환 선수가 절대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홍수환 선수가 두 체급을 석권하는 참피언이 되었기에 한동안 그 얘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1981년 프로 통산 전적 18승(16KO) 5패를 끝으로 복싱 글러브를 벗고 정계에 입문한 카라스키야는 시장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오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했다고 합니다.그 카라스키야가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는데 9일에 홍 회장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복싱 체육관에서 재회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있습니다.
40년 전의 일이고 홍수환 선수는 지금 66세의 나이인데 카라스키야는 56세의 나이입니다.
카라스키야는 "비록 꿈꿔왔던 역대 최연소 세계챔피언은 되지 못했지만, 정치인으로서 챔피언이 됐다. 파나마 시민들로부터 그때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후회는 없다"며 "결국 아무리 큰 실수를 저질렀어도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고 한 인터뷰에서 얘기했다고 합니다.
카라스키야 의원은 1999년 국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홍수환을 만난 뒤 17년 만에 재회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는 "우리는 서로 존경하고 아끼는 사이다. 그 당시 경기에서 한 명은 이기고 한 명은 졌지만 둘 다 잘 살아가고 있고, 나라의 보배로 서로의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고 합니다.
그는 "금요일에 만나면 '홍수환 선수, 지금도 잘살고 있었네, 아직도 운동선수 같아'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홍수환 선수가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한번 꼭 껴안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카라스키야 의원은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싶고, 한국 경제발전상도 알고 싶다"면서 "38년 전 방문 당시 한국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이번에 인천공항에 와서 한국이 얼마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로 감탄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그를 실패한 권투선수로 만들지 않고 성공한 위인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그 이름을 보니 옛 기억이 새롭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