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ImL-M_YhPU?si=Xi5-AWPaqDYmVQFa
Yuja Wang: Shostakovich Concerto No. 1 in C minor for Piano and Trumpet [HD]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으며 산책에 나섰다. 요즘 다니는 코스인 마천초등학교 뒤 담장을 돌아 비포장 도로를 따라 걸으면 서울시와 하남시의 경계가 나온다. 밭두렁 길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서울, 저쪽은 경기도 하남 땅이다. 큰 도로 같으면 '안녕히 가십시오!' 와 '어서 오십시오!'라는 이정표가 등을 맞대고 서로 다른 땅임을 알릴 텐데, 사람 둘이 횡으로 나란히 걸으면 꽉 차는 이 한적하고 좁은 도로에는 반듯한 이정표 대신 비스듬하게 드러누운 세로 막대기에 겨우 알아볼 정도의 푯말만 써 있다. 그 길을 오가는 차도, 사람도 드물다. 서울에서 하남으로 넘어갈 적 왼쪽 방향에 철거주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고 보이는, 사람 키보다 낮은 판잣집이 다닥 붙어있지만 바람만 불면 스러질 듯한 그 집 마당에도 서울 넘버나 경기 넘버를 단 승용차가 보인다.
날씨가 보통 매서운 게 아니다. 머리에는 모자, 모자 위에 헤드폰, 눈에는 안경, 목에는 목도리를 입까지 가리고 걸으니 얼굴이 빠끔한 데가 없다. 드러난 볼에 와닿는 살을 찌르는 매서운 공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바람 소리도 세다. 귀를 헤드폰 속에 숨겼지만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면서 사납게 울린다. 헤드폰의 공기 유입구를 통해 스치는 겨울바람이 직접 귀를 스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추울 때 신체 부위에서 가장 약한 곳이 양쪽 귀다. 그 귀를 소리나는 귀마개로 가렸다. 외부의 공기를 차단한 소리나는 귀마개 속에서 음의 파장이 연속적인 공기의 흐름을 만든다. 톡톡 튀며 자지러지는 피아노 소리가 볼에 와닿는 겨울바람 못잖게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살아 꿈틀대는 피아노의 생동감이 잠시 뒤로 물러서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금관이 타현 건반인 피아노의 톡톡 튀는 소리를 제치고 쨍쨍거린다. 빠르고 짧은 트럼펫의 소리가 피아노 음악의 영역에 과감히 끼어 든 것이다.
피아노가 주된 음악에 웬 트럼펫?
의아할 수 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그런 음악을 만들었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피아노협주곡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피아노다, 하나 지금 듣고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이야기할 때도 그럴까? 대개 피아노 협주곡은 3악장이지만 쇼스타코비치는 한 개의 악장을 추가했고, 쉬지 않고 활동하는 피아노를 도와주는 특별한 악기 트럼펫을 등장시켰다. 달리 표현하면 트럼펫이 피아노를 도와주는 개념에서 벗어나 두 개의 악기가 동등의 자격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면 이 곡은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형식에서 벗어나, 독주 악기 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단테로 볼 수 있다.
피아노와 트럼펫을 같이 들을 수 있는 고전음악 형식이라면 먼저, 트럼펫 소나타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쉽사리 찾을 수 있는 곡이 많지 않다. 연주 곡 위주의 대중 음악쪽은 어떨까?
니니 로소, 장 끌로드 볼레리의 트럼펫 연주 곡에도 피아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피아노와 트럼펫이 만드는 음악은 희귀하다는 결론이다. 그 귀한 음악을 피아노 협주곡으로 탄생시킨 쇼스타코비치의 기발한 생각이 놀랍다. 이 곡은 다음과 같이 곡명을 바꾸어도 될 것이다.
Piano Concerto No.1 C minor Op.35를
Concerto for piano and trumpet in No.1 C minor Op.35로.
쇼스타코비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에는, 생동감, 전율, 지랄, 발광 고귀함과 천박함을 겸비한 대중적인 요소, 의도로 감상하려는 생각을 접고 드미트리의 생각을 따라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조율을 하고 나면 지랄하듯이 발광하는 톡톡 튀는 단편적인 음들이 기괴히 날뛰면서 전율을 만들고, 끝내는 음악이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즈음, 음악으로부터 생동감은 느슨한 감상자의 심성으로 전이되어 충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작은 키의 안경 너머 보이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매서운 눈매를 보면 그 동공 속으로 빨려드는 착각을 하듯이, 그가 만든 음악으로 빨려들어가는 몰입을 느낄 때면 전신이 꿈틀 됨을 알게 된다. 가볍게 시작해서 다대하게 마치게 하는 것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다.
글 : LPman, 무학대사의 무한감득 음악!
https://youtu.be/BPnHAKeXi-g?si=6LxQbcAYDqIOL-kp
Shostakovich - Piano Concerto No.1 - Andaloro/BerlinerPhilharmoni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