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지?
- 임지은
냉동된 떡을 전자레인지로 데운다
떡이 따뜻해서 좋구나
전자레인지는 참 좋은 물건이다
근데 얘야, 좋은 것은 비싸지?
세탁기에서 나온 수건을 턴다
엄마는 손목이 예전 같지 않아서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
근데 얘야, 통돌이는 싸도 전기는 비싸지?
검은 봉지로 채워진 냉동실을 연다
엄마, 만두는? 거기 검은 봉지
치킨은? 그 옆 검은 봉지
먹다 만 투게더는? 그 위 검은 봉지
꽁꽁 묶인 것을 풀어보려다 도로 넣은 것이
엄마와 나 사이엔 가득하고
너무 많은 것을 간직하려다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엄마는 물티슈 한 장으로
입을 닦고 식탁을 닦고
방바닥을 닦고 쓰레기통을 닦는다
다 컸단 사실을 잊고 가끔 나도 닦는다
함께 있으면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 있다
방문을 열어 보면 엄마는 각종 영양제를
입안에 털어 넣고 있다
우리 사이에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많아서
근데 엄마, 그거 비싸지?
ㅡ 『시로 여는 세상』(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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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물건이 효용가치보다 가격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지요
그렇지만, 세계적인 명품을 가지기 위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야하는 광경도 보게 됩니다
비싸면 좋다는 게 일반적인 소비심리가 되었습니다
시 속에서 화자는 그저 양양제를 털어먹지만, 실제로는 치료제가 대부분입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많은 자녀들은 부모님을 위한 선물에 신경을 쓴다고 하는데요
'건강하지 못해서' 비싸서 고르지 못한다면 깊이 생각할 게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걸....
희로애락을 같이 할 마음만 있다면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이라도 백만금이 된다는 걸...
첫댓글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이라도 백만금이 된다는 걸..." 밑줄을 긋습니다.
선생님 날마다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