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443호]
돈
송경동
처 아버님은 빨치산이었다
3년을 산에서, 그리고 3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왔다
평생 보안관찰로 고향에서도 살 수 없었고
수박등 장사 우산살 장사
안해본 것 없다고 했다
결혼하겠다고 찾아뵌 첫날
노동자고 월세방에 살며
더더욱 생활을 돌이켜 반성할 마음이 없다 하자
노기 띤 음성으로
음, 돈이 있어야 하네 돈이, 하셨다
그때 정말 돈이 한푼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내게 돈 이야기 하시지 않았다
자신도 죽을 때까지 방 한칸 없어
셋째딸네 집에서 여섯 달 누웠다 가셨다
가끔 욕창이 난 등 긁어주고
손 다리 주물러드리면 마냥 행복해하셨다
벽제 용미리 공동묘지에
봉분 없이 깨끗이 묻히셨다
십수년이 흘러 나는 아직도 생활을 반성하지 않고
전문 시위꾼으로 집회현장을 쫓아다니지만
가끔 그의 어조로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하곤 한다
조금은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젠 장인어른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사소한 물음에 답함』(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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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는 농담이 있지요... 생각하면 참 슬픈 농담입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일은
더더욱이 송경동 시인처럼 진짜 시인으로 산다는 일은
'나는 아직도 생활을 반성하지 않고/ 전문 시위꾼으로 집회현장을 쫓아다니지만'
푸념같은 시인의 고백처럼 생활과 불협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한데요...
'조금은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송경동 시인의 말이 요즘 송시인의 처지와 겹치면서 먹먹해지는 아침입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일이 자꾸만 막막해지는 아침입니다.
사는 일이 그저 시시한 날들이지만.... 그래도 사는 일이 詩詩한 날이 올까요?
시시한 말로 시편지를 마무리해봅니다.
2015. 4. 13.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