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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서든 도망쳐야했다. 정말로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곳
에 있는 것이다.
한마디가 더 들릴 때마다 소구의 가슴은 콩닥콩닥 급하게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지금 있는 곳은 산 속에 뚫린 작은 동굴 같은 곳이었고, 동굴 밖에 모여 있
는 여섯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굴 밖으로는 도망칠 방법이 전무했고, 어떡해서든 살고 싶은 아이는 무릎
과 턱을 이용해 동굴의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무슨 소리
가 들렸지만 그들 여섯 사람은 아무도 동굴 안쪽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소
림사의 수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를 잡아먹으면 되는 것이다. 아이가
도망칠 길은 전혀 없는 것이다.
소구의 턱과 무릎은 까지고 깨져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아이는 계속 어둠만이
존재하는 동굴의 안으로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광기에 가득 찬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이를 잡아먹을 때를 기다리던
풍진자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 둘 사라
지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바위 위에 멍하니 앉아 있던 풍진자는 고개를 흔들고 동굴 앞에 서서 낄낄대
고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 자네들은 누군가?"
"풍 도장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설마 아이를 혼자 차지하려고 그러는 것
은 아니겠지요?"
전 암천혈혼대의 대주였던 오석동이 긴장한 얼굴로 갑자기 얼굴 색이 변해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풍진자를 보고 물었다.
오석동의 모습과 말을 들은 소림사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암천혈혼대의 인물
들은 모두가 무기를 들어올리고 긴장된 얼굴로 풍진자를 바라보았다.
풍진자의 머리 속에 지난밤에 자신이 벌인 일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림사의 사대금강을 모두 때려눕히고 이자들을 대리고 인간보약이라고 불리
는 아이를 납치해서 이곳에 숨어든 일까지의 모든 것이---.
풍진자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어린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했다니----.
풍진자의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져 있던 한 자루 철검이 검 집에서 빠져 나
오고 오석동은 그 순간 풍진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천하제일검에게 공격할
기회를 준다면 오석동 일행은 절대로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야 앗!"
날카로운 기합성이 산속의 공지 위에 울려 퍼지고 일대 오의 싸움은 시작되
었다.
암천혈혼대라고 불리는 정파 최강의 척살대에 속해 있던 다섯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은 죽어가고 있는 몸이지만, 그들 역시 최강이라 불리던 존재들 인만
큼 풍진자의 칼은 방어에만 급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섯 개의 검이 풍차처럼 번갈아 가며 풍진자의 몸 이곳저곳을 노리고 뻗어오
고, 풍진자는 연신 뒤로 밀리고 있었지만 눈만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꾸물럭 꾸물럭 거리며 동굴의 안쪽으로 벌레처럼 기어가던 소구의 귀로도 날
카로운 기합성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안으로 들어와서 밖
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을 잡아먹는다는 소리에 제 정신이 아닌 소구는
여전히 안으로 안으로 기어갈 뿐이었다.
풍진자의 검에 녹색의 광채가 맺히고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섬광이 일어났
다.
검기가 충천하고 동료들의 몸이 하나하나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는
동안 오석동의 머리도 목에서 분리되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 높은 곳
에서 오석광은 자신과 함께 암천혈호대에 들어왔던 사촌 오석동의 몸이 이마에
서 사타구니까지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동료들의 몸이 하나하나 두 조각으로
갈라져서 쓰러져 가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풍진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이 잘려서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던 한 사람
의 목이 땅으로 떨어져 비탈을 타고 대구루루 굴러가더니 바위 옆에 부딪쳐 멈
춰 서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풍진자는 고개를 흔들면서 검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 내고 다시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이제 아이를 구해야 할 차례였다.
저벅 저벅하는 발자국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자 소구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팔꿈치와 턱을 이용해서라도 한치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는 동굴 안으로 기어가던 소구는 어는 순간 땅이 비탈져 있다는 것
을 알자 몸을 옆으로 하고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타 타 닥'
얼마 후 동굴 안에는 풍진자가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지진 얼마
안되어 풍진자의 비명이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
"안돼! 거긴 벼랑이야!"
풍진자가 고함을 내지르고 앞으로 달려가면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것은
빈 허공뿐이었다.
동굴 속의 벼랑 위에 선 풍진자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밑을 쳐
다보았다. 소림사 근처에서 정각의 치료를 받으며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 돌
아다니는 동안 이 동굴 또한 발견한 적이 있었다. 아래에서는 뼈 속까지 저려
오는 차가운 한풍이 몰아치는 장소였다. 이런 밑이 보이지 않는 벼랑 아래로
떨어졌으니 아이는 전신이 산산조각 나서 죽었을 것이다.
정각과 밤이 새도록 산을 뒤지면서 아이를 찾던 소림사의 승려들은 여기저기
몸이 분리되어 시체조각들이 널려 있는 동굴 앞으로 모여들었다.
정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한번 더 생각했더라면 이런 시체들은 결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횃불 하나를 손에 들고 정각 홀로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풍진자가 아직 미
쳐 있다면 몸을 피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정각뿐이었다.
" 너희들은 여기에서 시신들을 수습하거라."
그렇게 소림사의 제자들에게 한마디만을 남긴 채 동굴 안으로 들어선 정각의
귀로 흐느껴 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따라 정각의 발걸음이 옮겨지고, 정각은
동굴 안에 있는 벼랑 위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풍진자를 볼 수 있었다.
"풍진자, 정신이 돌아온 게요?"
풍진자는 고개를 돌려서 뒤를 쳐다보았다. 횃불을 손에 들고 있는 정각이 보
였다.
풍진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벼랑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어찌 되었소?"
"그 아이는 내가 구하기 전에 이 아래로-----."
말을 잊지 못하고 동굴 속에 있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를 손짓하는
풍진자였다.
정각은 한숨을 내쉬면서 벼랑을 내려다보았다.
" 이곳으로 떨어졌다면 어쩌면 살아 있을 지도 모르겠구려---."
슬픔에 잠겨 있던 풍진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며 황급히 질문을 던졌다.
" 그게 무슨 소리요?!"
"풍도장 이곳은---, 백년 전에 아수라라 불리던 18나한들을 기억하시오?"
"정각 대사, 갑자기 그분들의 이야기는 왜?"
"후우, 이건 누구에게도 말을 해서는 안돼는 것인데---, 이곳은 나한동과 연
결되어 있고 또한 백년전의 혈사를 일으켰던 금강나한들이 머물고 있는 금강동
과도 연결되어 있소이다."
"그--그렇다면?"
"어쩌면 그분들에게 아이는 구출되어 있을지도----."
"그렇다면 어서 가서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겠소?"
한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던 풍진자는 당장이라도 안으로 가고 싶어서 아
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어했지만, 정각 대사는 곤란한 얼굴이 되어서 말했다.
"그분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려면 나한동을 통과해서 가야만 하오. 일단
먼저 소림사로 돌아가서 방장의 허락을 얻어야 하오."
"그럼 어서 갑시다."
다 찢어진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풍진자가 먼저 동굴을 나서고 정각이 뒤를
이어 밖으로 나왔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두 사람의 몸은 앞서
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소림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대굴대굴 땅바닥을 굴러서 도망치고 있던 소구는 갑자기 바닥이 허전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면서 저절로 비명이 나왔지만, 입
에는 재갈이 물려 있는 상태였기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져
내려가면서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밑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공포가 아이를
다시 까무러치게 했던 것이다.
온몸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열 여덟 명의 승려들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다면
언제까지나 그들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절대의 고요
가 머물고 있는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위로부터 무언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
져 내려오고 있었다.
굳게 담겨 있던 금강나한들의 눈이 뜨여졌다. 그리고 위로 시선을 돌린 그들
의 눈에 온몸이 꽁꽁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는 한 아이가 떨어져 내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금빛의 나한들 모두의 눈이 뜨여지고 몸이 금빛으로 변한 것처럼 눈마저 금
빛으로 변해 잇는 열 여덟 쌍의 시선은 잠시 서로를 향해 교차하고 모두가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그들 모두의 몸이 허공으로 가부좌를 튼 상태로 둥실 떠오르고 그
들의 몸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고 있는 아이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금빛의 광채가 떠오르면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려가던 아이의 몸은 허공
중간에서 그물에 걸린 것처럼 한순간 출렁거리더니 멈추어졌다.
열 여덟의 금강 나한 한 가운데 허공에 떠 있는 상태가 돼버린 아이의 몸은
다시 금강 나한들과 함께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바닥에
살며시 바닥에 누여졌다.
아이의 몸 상태를 본 열 여덟 금강 나한들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
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입가는 비명을 내지르려다 재갈이 물려
서 찢어졌는지 한치 이상 볼까지 찢어져 있었고 무릎과 턱은 가죽이 벗겨져 있
었다. 그리고 온 몸의 이곳저곳에 생겨 있는 자잘한 상처들---, 그것이 일곱
살 정도 밖에 안 보이는 어린아이의 몸에 난 상처였다.
아이를 가운데 두고 둘러싸 앉은 금강나한들의 시선은 다시 한번 교차했다.
아이의 몸은 허공으로 한자 이상 둥실 떠오르고 아이의 몸을 묶어놓았던 밧
줄과 재갈이 풀러져 땅으로 떨어지면서 재로 변하고,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지
만 아이가 입고 있던 잠옷도 역시 몸에서 벗겨져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재로
변했다.
이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아이의 몸은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가 되어 있
었고 열 여덟의 금빛의 광채가 벌거벗은 아이의 몸을 뒤덮었다.
" 우드득,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몸에서는 뼈가 부러졌다 이어지고, 상처투성이의
살가죽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백옥 빛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는 새살이 돋아
났다. 머리카락도 모두다 빠졌다가 다시 자라나서 허리까지 늘어졌다.
사흘이라는 시간동안 벌어진 일이었고, 뒤늦게 나한동을 통해 금강동으로 들
어선 정각대사와 풍진자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정각 대사는 속으로 염불을 외우면서 합장을 하고 서서 벌모세수가 끝나길
기다렸다. 옆에 서 있는 풍진자 역시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소승 정각이 사조님들을 뵙습니다."
벌모세수가 모두 끝나고 아이의 몸이 다시 살며시 바닥에 눕혀지는 순간 정
각은 합장을 하며 인사했다.
'이 아이는 누구인데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 이곳에 떨어진 것이냐?'
무공과 불심이 깊지 않고서는 결코 펼칠 수 없는 혜광심어로 금강나한들이
질문을 던졌다.
정각 역시 수련이 낮지 않아 혜광심어를 펼칠 수 있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대화하는 방법은 단순히 말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상대방의
마음속에 각인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정각은 대답 대신 열 여덟의 금강나한들에게 혜광심어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
는 아이에 대한 것을 전했다.
한순간 열 여덟의 금강 나한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 아이가 이곳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느냐?'
"그러하옵니다."
정각은 이번에는 말로써 대답했다.
불상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풍진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미 무행과 무언의 수행은 이 아이가 이곳에 떨어지면서 깨진 것이다. 말을
아낄 이유는 없었다.
"그대는 옷차림으로 보아 화산파의 사람 같은데 이곳에 무슨 일로 온 것인
가?"
"소도(小道)는 화산파의 장로로 있는 풍진자라 하옵고, 제가 미쳐서 그 아이
를 해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또 아이에게서 허락을 얻어 그
아이의 피를 얻고자 여기 오게 되었습니다."
까마득한 무림의 대선배들 앞에서 풍진자의 나이 또한 적지 않은 칠십이었지
만 말을 가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아이의 피를 얻어서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저는 마교와 싸우다 혈왕독이라는 독에 중독 되었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구했으나 시도 때도 없이 광증이 일어나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게 되니, 미치
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
러나 소도(小道)가 죽는다면 저와 함께 화산파의 여러 절기들이 세상에서 사라
질 것이니, 구차하나마 다만 몇 달의 시간만이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아
절기들을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전수하고자 함입니다."
두손을 맞잡고 간곡한 어조로 말하는 화산파의 장로라는 풍진자를 바라보는
금강나한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정각을 바라보았다.
" 이 아이의 몸에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기가 쌓여 있었고, 생사의 위험에
처하여 화기가 골수에 사무쳤노라. 그리하여 우리가 발견하였을 때에는 양기가
폭주하여 몸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지라, 벌모세수를 통하여 아이의 양기를 잠
재우고 살릴 수 있었노라. 그러나--- 극음지물을 구하지 못하면 이 아이는 나
이 이십이 되기 전에 몸이 터져 죽게 될 것이다."
"소승이 어찌해야 합니까?"
"이 아이의 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이나,
그 만큼 이 아이의 수명은 단축되는 일이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풍진자는 금강나한들이 하는 소리가 자신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수 없이 지금은 정각과 함께 풍진자는 금강동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잘읽었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
즐감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